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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등번호 37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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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런 제임스 드라이포트 Darren James Dreifort[1] | |
출생 | 1972년 5월 3일 ([age(1972-05-03)]세) |
켄터키 주 위치타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위치타 헤이츠 고등학교 - 위치타 주립대학교 |
신체 | 188cm / 92kg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3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2번 (LAD) |
소속팀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94~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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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활동했던 前 야구 선수.2. 선수 시절
위치타 주립대학 시절, 마운드에서 26승 5패, 17세이브, 2.24의 가공할만한 평균자책점과 타석에서는 314타수에서 0.318의 타율과 25홈런, 89타점을 올리며 골든 스파이크 어워드와 로터리 스미스 어워드[2]를 동시에 수상한다. 즉 대학 시절엔 훗날 오타니 쇼헤이로 유명해지게 된 투타겸업을 30년가량 앞서 먼저 했던 선수로 엄청난 기대를 받았다. 드래프트를 앞두고 있던 시점에서는 마무리 투수/지명타자를 겸업했기 때문에 투수로 들어올 것이냐 야수로 들어올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3]결국 1993년도 드래프트에서 알렉스 로드리게스에 이어 전체 2순위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지명되었으며[4] 데뷔 시즌인 1994년부터 박찬호와 함께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5]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게 된다. 그리고 투수를 잘 키우는 다저스의 영향이었는지 드라이포트는 투수로 육성되기로 결정된다.
당시 다저스는 그를 선발 투수로 키울 것인지 마무리 투수로 키울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6] 강력한 무브먼트를 동반한 90마일 중후반대의 강속구와 고속 슬라이더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충분히 위력적인 무기였지만, 당시부터 선발투수로 뛰기에는 체력이 딸린다는 약점이 있었으며 야수 겸업을 하느라 완성도가 떨어진 것 때문에 육성이 덜 잡힌 데뷔 초창기에는 선발보다는 불펜 쪽에 적합하다는 평가였다.
그러나 입단 후에는 기대치에 비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1995 시즌에는 토미 존 수술을 받는 바람에 1년을 통째로 날렸다. 드라이포트의 유리몸 기질은 이때부터였다.[7] 그래도 이때는 다행히 재활을 잘 해 1998 시즌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고, 1999 시즌과 2000 시즌에 각각 13승과 12승을 거둬들였다.
하지만 2000 시즌 이후 FA 자격을 얻었는데, 사실 선발로서 평균자책점은 4점대로 썩 인상적이지 못했으나 당시 28세인 젊은 나이와 훌륭한 구위를 갖춘 잠재력 등을 이유로 5년간 5,500만달러라는 거액에 재계약하게 된다. 드라이포트와 박찬호는 다저스의 차세대 에이스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이었는데, FA 계약으로 영입한 케빈 브라운의 7년 1억500만 달러에 달하는 고액연봉 때문에 다저스는 둘 중 한 명만 데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한 해 먼저 FA가 된 드라이포트가 고액계약을 따냈기 때문에 다저스의 페이롤은 심각하게 치솟았고 이는 박찬호의 텍사스 레인저스 이적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계약은 다저스 최악의 계약 중 하나이자 칼럼니스트들의 무한 까임의 대상이 되었다.
우선 드라이포트는 첫 시즌인 2001 시즌에는 팔꿈치 부상으로 4승 7패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거둔다. 게다가 2002 시즌에는 그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다시 한 번 토미 존 서저리를 받으며 시즌을 날리고 만다. 돈값을 하고는 싶었는지 2003 시즌을 앞두고 이른 복귀를 강행했으나 무릎과 엉덩이가 말썽을 일으키는 바람에 10경기 등판에 4승 4패에 그쳤다.
다행히도 2004 시즌에는 제대로 돌아올 수 있었으나 당시에는 수술 재활 체계가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았기에 토미 존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아버린 이상 선발 투수로 뛰기에는 무리였고, 결국 5,500만 달러짜리 중간계투[8]가 되며 다저스 최악의 계약이 되어버렸다. 성적은 60경기 등판 1승 4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4.44였는데, 50.2이닝을 던지는 동안 삼진을 63개나 잡아냈을 정도로 구위만큼은 여전했다. 하지만 2004년 이후로 부상이 재발, 결국 2004년 말 엉덩이 수술, 2005년 초 양 무릎 수술과 어깨 수술을 받으면서 2005 시즌은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고, 시즌 후 계약기간이 끝나며 그대로 은퇴하게 되었다.
드라이포트의 통산 성적은 48승 60패 11세이브 ERA 4.36으로 먹튀 치고 통산 방어율은 평균 수준인데, 사실 드라이포트가 먹튀라 불리는 이유는 성적이 완전 폐급이기 때문이 아니라 성적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을 받은 데다가 잦은 부상으로 선발로는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불펜으로도 자주 나오지 못했기 때문. 연 500만 달러 정도만 되었어도 지금 같은 위상은 아니었을 텐데, 연 1100만 달러라는 대형 계약을 하고 툭하면 드러누운 것도 모자라 돈까지 다 받아먹었으니…
드라이포트는 FA 전에도 극심한 유리몸이었기에 역대 최악의 먹튀는 아니더라도 역대 최악의 유리몸 반열에는 확실히 들어간다.
3. 기타
- 드라이포트라는 이름은 유리몸으로 인한 먹튀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통하는 중이다. 드라이포트가 유리몸 먹튀로 더욱 유명세를 떨친 이유는 바로 그가 유리몸 기질만이 아쉬웠을 뿐 재능만큼은 역대급이었던 특급 유망주였다는 점과 그의 바로 앞 순위에 뽑힌 선수가 다름아닌 알렉스 로드리게스였기 때문이다.[9]
4. 관련 문서
[1] 발음 DRY-fort[2] 대학 야구선수들한테 주는 최고의 상이다.[3] 똑같이 대학에서 마무리 투수/지명타자를 하다가 들어온 사례는 토드 헬튼이 있는데 이쪽은 1루수를 선택해 1997년 데뷔 이후 2013년까지 현역으로 뛰었다.[4] 공교롭게도 당시 둘 다 에이전트가 스캇 보라스였다.[5] 미국에서 마이너를 거치지 않고 바로 메이저로 간 선수는 1871년부터 약 140여년간 메이저리그 역사 이래 17명 뿐이다.[6] 여기에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가 개입해 선발 투수로 뛰지 않으면 계약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는데, 보라스는 고액 계약도 잘 뽑아내지만 구단에게 선수의 대우에 대해 으름장도 잘 놓기로 유명하다.[7] 수술과 재활 체계가 잡혀 있지 않았던 당시에는 토미 존 수술을 받는 것은 투수 커리어에 매우 위험한 것으로 여겨졌다.[8] 참고로 2018년 기준 역대 불펜투수 평균 최고액 계약이 웨이드 데이비스의 3년 5,200만 달러인데, 데이비스의 경우 다들 알다시피 로열스 불펜 3대장의 일원이라 일개 가능성만 보여준 유망주였던 드라이포트와는 달리 확실히 검증된 불펜 자원이었다. 게다가 데이비스 계약은 드라이포트보다 무려 18년 뒤에 맺은 계약인 것을 감안해야 한다.[9] 하지만 이쪽도 뉴욕 양키스에서는 약쟁이 먹튀로 전락하는 바람에 결과론적으로는 둘 다 먹튀라는 사실이 변치는 않는다. 물론 에이로드는 첫 계약까지는 먹튀가 절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