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星音盤
1. 개요
대성음반은 서라벌레코드에서 ‘피디(PD) 메이커’ 시스템을 구축했던 전무 이흥주가 독립해 1981년에 세운 회사이다.2. 상세
산울림의 음반 제작을 맡아서 하던 이흥주는 서라벌을 퇴사한 후 산울림의 리더였던 김창완과 한국 음원제작자협회장을 역임한 서희덕을 문예부장으로 입사시키고 대성음반을 설립하였는데, 그래서인지 대성음반에서 출반(出盤)한 첫 번째 음반은 산울림 7집이며 카탈로그 넘버도 0001번이다. 설립 초기에는 음반에 대성음향과 대성음반 표기가 혼용되었지만, 이후 대성음반으로 확정되었다.김창완, 서희덕의 주도로 대성음반은 창립 첫 해부터 산울림, 로커스트 등 밴드 앨범을 시작으로 김태정, 김범룡, 정광태, 김원중, 홍삼트리오, 조인숙, 너랑나랑, 안정희, 혜민, 유태인 등 많은 신인 가수들을 발굴하며 주목을 받았다. 또한 조용필, 이정선, 산이슬 출신 주정이, 김민식 등 인기가수들의 앨범 20여 장과 해외 팝 음반으로 상당한 판매수익을 올렸다. 특히 미국의 음반사 MCA와 라이선스계약을 맺었던 대성음반은 1982년부터 서울 종로1가에 소재했던 무아음악실에서 무료 팝송 감상회를 개최해 대성황을 이루기도 하였다.
또한 당시 마이너한 음반들을 많이 출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뮤지션들에게 대성음반은 "돈 안 되는 음반도 꺼리지 않고 내 주던 회사"라는 인식이 깔려있었으며, 실제로도 그랬다. 김창완은 이 시기 무려 개소리를 샘플링해 한국 최초로 샘플링 기법을 앨범 전면에 사용한 음반인 노래하는 강아지를 발매하였으며, 독도는 우리땅이 실린 웃기는 노래와 웃기지 않는 노래 1집도 이 회사에서 발매되었다. 이에 대해서 정광태가 다른 음반사들을 돌아다니며 부탁했지만 가사가 장난스럽다, 괴상하다며 퇴짜만 맞다가 그 노력이 가상해서 간신히 받아준 곳이 대성음반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1984년부터 1986년까지는 대성음반의 전성기였다. 처음 산울림과 캠퍼스 밴드 위주로 앨범을 제작했던 대성음반은 언더그라운드와 주류 가수들 그리고 트로트에서 국악까지 다양한 음반을 발매하며 영역을 넓혀나갔다. 수많은 히트 앨범을 제작하여 흥행과 작품성의 균형을 갖춘 대성음반은 지구, 오아시스, 성음, 서라벌, 히트레코드 등을 위협하며 업계 랭킹 6위의 다크호스로 급부상했다.
1991년 이호연이 설립한 기획사 대성기획(현 DSP미디어)과 관련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