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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라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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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일본
2.1. 일본프로축구 출범(1993년) 이전2.2. 일본프로축구 출범(1993년) 이후2.3. 일본의 추격: 2000년대(2000~2009년)2.4. 대등한 라이벌: 2010년대(2010~2019년)2.5. 현재: 2020년대2.6. 한·일 팬들의 관점2.7. 해외의 시각2.8. 역대 한·일 전적
3. 이란
3.1. 지긋지긋한 악연3.2. 침대 축구3.3. 역대 한·이 전적3.4. 장기화되는 AFC 아시안컵 무관
4. 기타 라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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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라이벌들을 정리한 문서.

2. 일본


대부분의 한국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일본에 대한 라이벌 의식이 매우 강하다.[1] 특히 축구는 다른 어떤 스포츠보다도 내셔널리즘이 강하게 작용하기에 한일전의 열기가 더욱 뜨겁다.
자세한 내용은 한일전, 한일전/축구, 도쿄 대첩 항목 참조

2.1. 일본프로축구 출범(1993년) 이전

건국 초기부터 역사적인 이유 및 지리적 인접성으로 인해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과 라이벌 의식이 매우 강했다.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최종예선에서 양국은 맞붙었으며 당시 전쟁이 끝난지 1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한국은 일본 원정에서 1승 1무를 거두어 일본을 제압하고 최초로 월드컵 16개국 본선에 진출하였다. 특히 해방된지 고작 9년밖에 안 지난 시점이었기 때문에 민간의 반일 정서가 매우 강했으며 이 때문에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 대표팀의 방한을 거부하고 일본 원정을 떠나는 한국 대표팀에 승리를 독촉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다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축구에서 일본은 한국 국가대표팀의 적수가 아니었다. 한국은 1954년 스위스 대회 출전 경험과 1986년 이래 꾸준히 월드컵에 나선 경험이 있던 반면 일본은 1998년 이전까지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아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지금은 일본에 완전히 역전당한 아시안컵 커리어 역시 본래 격차가 엄청났는데 한국은 아시안컵 초대, 2대 대회 우승팀이었고 이후에도 우승만 못했을 뿐 꾸준히 토너먼트에서 활약한 우승후보였던 반면 일본은 1988년 이전까지는 아시안컵 본선조차 진출하지 못한 약팀이었다. 또한 현재의 압도적인 한일전 전적이 증명하듯 20세기 내내 한일전은 한국의 일방적인 경기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이유로 해방 이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반세기 동안 일본 축구는 몇 수 아래로 여겨졌다.

그럼에도 한일관계의 특수성으로 인해 일본은 1950년대부터 강렬한 라이벌리로 간주되었으며 어쩌다 한일전에서 패하는 경우 축구팬들을 포함한 많은 한국인들이 분노했다.[2] 다만 일본 내에서는 반한 정서가 상대적으로 옅었으며,[3] 일본인들 역시 축구보다 야구, 스모 등 기타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이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인들의 관심이 훨씬 더 높았다.

2.2. 일본프로축구 출범(1993년) 이후

일본은 1992년 아시안컵[4] 우승과 1993년 J리그 출범을 계기로 장기적인 계획을 야심차게 세웠다. 일본 축구 시장과 실력이 차츰 향상되기 시작한 이후로 1994년에는 아깝게 미국 월드컵 24강 본선행이 좌절되었으나, 1998년에는 프랑스 월드컵 32강 본선에 진출하는 등 본격적으로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홍명보가 1994년 미국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패배 이후 국가대표 경기에서 "이제부터 일본에게 패배하면 나는 축구선수에서 은퇴한다." 같은 충격 발언을 하는 등 비장한 각오로 일본을 상대하곤 했지만 이 시점부터는 과거보다 전력의 격차가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 확정과 1998년 월드컵 진출로 월드컵 2연속 진출이 확정된 일본은 이 시점부터 점점 라이벌의 면모를 갖추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여태껏 쌓아놓은 자산으로 아시안컵, 월드컵, 상대전적 등에서 충분히 압도하고 있던 상황이며 이때까지도 한일전에서 한국이 우세하는 경기가 많았기 때문에 여전히 일본을 도전자로 여기던 시기였다.

2.3. 일본의 추격: 2000년대(2000~2009년)

2000년대부터 일본이 한국을 추월했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오기 시작했으나 여전히 한국의 위상 및 커리어에 일본이 거세게 추격하던 시기였다. 이 무렵부터 진정한 라이벌 구도가 성립되었다.

아득히 벌어진 역대전적은 어쩔 수 없었지만 이 시기부터 상대전적은 대등하게 가져가기 시작했고 2000년, 2004년 우승으로 총 3회를 만들며 아시안컵 우승 횟수 역전이 이루어지며 아시안컵 커리어에서는 일본의 우세가 굳어지기 시작했다.

월드컵에서도 일본의 추격은 이어졌다.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로 월드컵 2회 연속 및 최초 16강을 달성한 일본은 2006년 독일 월드컵에도 연이어 진출하여 한국과 마찬가지로 아시아 내 월드컵 단골 진출국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다만 2002년에는 한국이 월드컵 4위라는 불멸의 기록을 달성해 일본의 16강 진출을 무색하게 만들었고, 2006년 월드컵에서도 같은 32강 조별본선 탈락이었지만 한국(17위)이 일본(29위)을 최종 성적에서 압도하는 등 월드컵 성과에서는 여전히 한국의 우세가 지속되었다.

2.4. 대등한 라이벌: 2010년대(2010~2019년)

한일 양국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나란히 16강에 진출하였고 최종 성적에서 일본(9위)이 최초로 한국(15위)을 앞서며 한국이 자랑하던 월드컵 커리어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거치며 일본이 한국보다 우위인 커리어가 생기면서 한국은 일본의 절대적인 상위호환으로만 보기 어려워졌다. 게다가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아쉽게 16강 실패(19위)한 한국과 달리 일본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16강에 진출하며 월드컵 2라운드 진출 횟수에서 한국을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일본>한국이라고 주장하는 파가 나오기 시작한다. 일부 팬들을 비롯해서 심지어 전현직 선수들까지 이미 2010년대부터 일본이 한국을 실질적으로 넘어섰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그간의 성적을 바탕으로 이 시기까지는 한국이 일본보다 우위라는 주장을 하는 팬들도 꽤 있다.

이 시기의 맞대결 특히 소위 도쿄 대첩이라는 경기 등을 바탕으로 한국의 우위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편향적인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2010년에는 확실히 한국이 3전 2승 1무라는 좋은 성적을 차지하긴 했으나,[5] 2011년에 삿포로 참사로 일본이 3:0 스코어와 경기내용 모두 압승이라는 결과를 냈으며, 한국은 2012올림픽에서 당시 스페인까지 이긴 일본을 이기며, 첫 동메달 획득2017년 일본동아시안컵에서 당시 알제리 쇼크 감독의 일본을 대한민국 신태용호가 4:1로 격파하며 일본에게 참패를 안겼다.

2.5. 현재: 2020년대

2020년대 현재 일본은 한국에 뒤쳐졌던 커리어를 많이 따라잡았고 몇몇 성과에서는 크게 추월했다. 대표적인 성과로는 월드컵 2라운드 16강 진출 4회 vs 3회,[6] 아시안컵 우승 4회 vs 2회[7] 등이 있다. 그 외 국가 클럽 대항전인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성적도 대한민국 12회 vs 일본 8회로 격차를 꽤나 좁힌 상황이다.

다만 상대전적은 이미 너무 벌어진지라 현실적으로 뒤집는 것이 불가능하다. 또한 월드컵 성적 역시 단순 2라운드 진출 1회 차이로 일본의 우위를 말하기는 어려운 것이 한국 측에는 월드컵 4강 진출 경력, 월드컵 통산 승점 랭킹 31점[8](아시아 1위) 및 역대 월드컵 본선 진출 횟수 우위 등 여전히 내세울 무기가 많다. 아시안컵의 경우 우승 횟수는 일본이 한국의 2배이며 4개국만 참가하던 시절에 우승한 한국과 달리 훨씬 최근의 성과인지라 한국 축구팬들도 일본의 아시안컵 성적 우위를 인정하는 편이나 여전히 아시안컵 통산 승점 랭킹(한국이 2위, 일본이 3위) 등 한국에 유리한 지표가 조금은 남아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따라 서로간의 대결에서도 2000년대 이후에는 그 전과 같은 모습은 많이 사라졌다. 축구 내적인 면에선 완벽히 동등한, 관점에 따라 우열이 갈리는 라이벌에 걸맞은 관계가 되었다.

축구 외적인 면에선 한일관계가 점차 개선되면서[9] 온건한 라이벌 관계가 되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과거에 비해서 무거운 분위기가 아닐 뿐, 지금도 최대의 라이벌 더비 매치이기 때문에 여전히 다른 국가들과의 경기와는 부담감과 마음가짐이 다르다. 오히려 한국의 국제적인 위상이 많이 올라가면서 일본의 입장에서 한국이 정치, 경제적으로 껄끄러운 상대가 되어버리고 일본인들에게도 한국은 가장 큰 라이벌이 되면서 일본에서도 한국전에 대한 경쟁의식과 투지가 많이 올라왔다.

과거[10]와는 달리 A급 대표팀 경기는 양측 모두가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서로가 꺼린다. 한국 입장에서 고사하는 비중이 더 높지만, 일본에서도 점점 한국전 패배가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있다. 양국 모두 상대에 패하는 순간 엄청난 비난이 따라오고 만약 월드컵과 같은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한일전을 했다가 지면 선수단의 분위기가 위축될 수도 있다. 그 결과 2011년~2021년 10년 동안 1군 대표팀 경기가 단 두 번 밖에 없었다. 국내파로만 무장하여 친선전보다 못한 동아시안컵(한국 2승 1무 1패)이나 연령별 대표팀 경기만 치러졌다.

친선전을 빼면 만날 수 있는 게 월드컵 예선이나 아시안컵인데, 월드컵 지역 예선은 2018년은 둘 다 2시드라서 못 만났고 2014, 2022 두 번 모두 만날 확률 50%를 피했다. 아시안컵에서는 2015 아시안컵 16강 조별리그에서 만날 확률 25%였으나 피해갔고 결승에서 만나는 대진이었으나 일본 8강 5등 탈락, 한국 준우승으로 못 만났다. 2019년 24강 조별리그에서는 둘 다 1시드여서 못 만났고 결승에서 만나는 대진이었으나 한국 8강 5위 탈락, 일본 준우승으로 못 만났다.[11] 2023년 아시안컵 24강 조별리그에서도 1시드라 만나지 못했고, 일본이 이라크에게 패배하는 일이 일어나 조2위가 되어 16강에서 만날 가능성이 커졌으나 한국이 요르단, 말레이시아랑 비겨서 조2위가 되어 만나지 못했다. 무엇보다 아시안컵이나 월드컵 예선이나 한국은 이란, 우즈벡 등과 일본은 사우디, 호주 등과 지속적으로 엮이면서 서로간의 조우가 더욱 어려웠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한일전이 몇차례 없었다는 사실에 아쉬워하는 축구팬들도 많다.

21세기한일전 전적은 2024년 기준으로 5승 6무 6패로 호각세이다. 어쨌거나 한국은 항상 유력한 아시안컵 우승후보였고, 일본의 월드컵 성적은 최고가 월드컵 9위(16강)이며,[12] 아직까지 4강 준결승은 커녕 8강 준준결승에도 진출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13]

그리고, 2020년대 들어서 일본이 5대 리그, 특히 분데스리가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이 많아지고[14] 네덜란드나 포르투갈, 벨기에 같은 중소리그에도 많이 진출하면서 유럽파가 증가했다. 따라서 월드컵 최종예선과 같은 중요한 경기에서 나오는 일본 1군 명단을 보면 5대 리거를 비롯한 유럽파 선수들로 명단을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은 공격진은 유럽파가 많으나 미드필더와 수비수들은 K리거와 아시아 리그 선수들이 대거 포진되어있다.[15] K리그가 아시아권에서는 좋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축구의 중심지는 유럽이기 때문에 한계가 명확하다. 물론, 한국은 축구선수들이 병역의무를 반드시 수행하는 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일본 선수들보다 해외 리그 진출에 불리하다.[16]

한국에서는 그동안 차범근, 박지성,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등 세계무대에서 통하는 스타플레이어들의 존재로 인해 스타플레이어가 거의 없는 일본을 얕잡아보는 경우가 많았으나 일본이 지속적으로 유럽파를 늘려온 결실을 맺고 있다.[17]

그러다가 2022년 9월 안양에서 열린 덴소컵 [18] 대학국대매치에서 한국이 일본에게 3:2로 승리하였다.## [19] 그리고 2023년 8월 일본 쿠사나기 스타디움에 열린 U18매치 한일전 sbs컵에서 1:0으로 승리, 2023년 10월에 중국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남자부 결승전에서 한국이 일본에게 2:1로 승리하여 최근 국대 연속 참패들을 극복하고 있다. [20]

2.6. 한·일 팬들의 관점

이런 상황이라 각 대표팀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국가대표 팬들은 자주 논의를 벌이곤 한다. 일본의 우위를 주장하는 팬들은 아시안컵 최다 우승(4회) 및 대한민국의 아시안컵 부진, 아시아 월드컵 최다 2라운드 진출(4회),[21] 2023년 현재 시점의 일본의 한일전 연승,[22] 일본 국대의 유럽파 숫자와 주요 선수들의 몸값 총액 등을 근거로 제시한다.

반면 한국의 우위를 주장하는 팬들은 한일전 상대전적, AFC 챔피언스 리그 최다 우승 국가(12회) 등 클럽 레벨에서의 비교 우위, FIFA 월드컵 최다 본선 진출(11회),[23] 역대 월드컵 승점 랭킹 우위,[24] 아시아 유일의 월드컵 4강 진출,[25] 그리고 차범근/박지성/손흥민 등 역대 아시아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들이 한국 선수들이었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운다.

일각에서는 역사적 위상과 업적은 한국이, 현재 위상과 실력은 일본이 더 우세하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한일 양국 축구팬들이 그나마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점은 고점은 한국이, 저점은 일본이 높다는 것이다. 때문에 한국이 우세를 주장하는 쪽은 스타플레이어의 슈퍼플레이에 중점을 두고 일본의 우세를 주장하는 쪽은 일본 팀의 강한 결속력과 높은 평균 레벨, 안정적인 팀플레이에 중점을 둔다.

2.7. 해외의 시각

한일관계의 라이벌은 세계의 축구팬들 사이에서도 유명하기 때문에 아시아 축구 최고의 라이벌전으로 한일전을 뽑는 팬들이 많다. 2014년에는 영국 가디언지가 선정한 국가대표팀 더비 매치 TOP 10에 한일전이 5위에 오르기도 했다.

다만 유럽 국가들처럼 서로 도발이나 디스가 오가거나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유럽에서 뛰는 한일 선수들은 서로 사이가 좋고 리스펙하는 경우가 많으며 한일 현지팬들의 경우에도 온라인상에서나 감정이 험악하지 오프라인상에서는 간혹 갈등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꽤나 우호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

2.8. 역대 한·일 전적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역대 전적은 2022년 7월 27일 A대표팀 기준 81전 42승 23무 16패[26]로, 한국 대표팀이 압도적인 우세를 점하고 있다.[27]

# 자세한 내용은 한일전/축구도쿄 대첩 문서 참고.

3. 이란

3.1. 지긋지긋한 악연

아시아 축구 5강 중 한 국가로, 유독 국제무대에서 죽을 쑤지만[28] 아시아 내에서 상당히 강한 면모를 보인다. 한국, 일본, 이란, 호주, 사우디 5개국 사이에는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특히 한국과는 각종 국제대회 및 지역 예선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이 이끌던 시절 한국은 이란을 상대로 아쉬운 모습을 자주 보였다. 2011년 아시안컵 8강전 이후 11년 후인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승리를 거두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이란을 이겨보지 못할 정도였다. 케이로스 감독이 떠난 후 그 위세가 많이 죽었지만 메흐디 타레미, 사르다르 아즈문, 알리레자 자한바크시 등 핵심 선수들은 여전한 클래스를 보이고 있다.

아시아 최고 라이벌 매치로는 한일전이 꼽히지만 1998년 이후 한국과 일본은 정작 월드컵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지 않았으며 아시안컵에서도 만나는 빈도가 상대적으로 적다.[29] 그래서인지 막상 라이벌 매치라도 경기 전에 긴장감이나 승부욕에 비해 경기 후에는 뒤끝이 개운한 편이다.

반면 이란과는 여러 대회에서 지긋지긋한 악연을 쌓고 있는데 아시안컵에서는 이란 쇼크로 유명한 1996년 대회부터 2011년 대회까지 5번 연속으로 8강에서 맞대결을 펼쳤다. 게다가 월드컵 예선에서도 2010 월드컵 최종예선부터 2022 월드컵 최종예선까지 4번 연속으로 같은 조에 속하는 악연이 계속 되었는데, 특히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그 유명한 케이로스 감독의 주먹감자 논란이 터지기도 했다. 그러나 2026 북중미 월드컵 최종예선에서는 기존의 두 개의 조에서 세 개의 조 시스템으로 변화되었고, 동시에 1포트 국가가 2국에서 3국으로 늘어남에 따라 피파 랭킹을 기준으로 대한민국과 일본, 이란과 함께 1포트에 속하면서 지긋지긋했던 이란과의 최종예선 악연은 카타르 대회에서 끝을 맺게 되었다.

이렇듯 한국-이란은 아시아 축구계의 숨겨진 빅매치라 부를 수 있는 라이벌 관계이다. 식스투 참사2011 아시안컵 이란전, 그리고 역대 한국-이란전 중 최고 명승부라는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동메달 결정전 등 맞붙는 경기마다 명승부가 나오는 경우가 흔했다.

세계 무대에서는 아시아 톱 레벨의 성적을 거두는 한국이지만 아시아 내에서는 유독 자주 만나는 이란에게 자꾸 덜미를 잡히며 고전하고 있다. 앞서 언급됐듯이 케이로스 부임 후부터 쌓여온 악연으로 감정적 어그로 문제가 있다. 또한 이란 측도 한국에 대한 라이벌 의식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재미있게도 한국의 주유니폼은 붉은색, 보조 유니폼이 흰색[30]이지만 이란은 주유니폼이 흰색이고 보조 유니폼이 붉은색으로 정반대이며[31], 대표팀의 별명(이자 상징동물) 또한 한국이 호랑이[32], 이란이 사자[33]인 점 등 여러 면에서 대조된다.

이렇듯 한일관계가 같이 얽힌 일본과의 한일전과 달리 이란은 철저히 스포츠만으로 얽힌 전통적인 축구 라이벌이라 할 수 있다.

3.2. 침대 축구

2002년 한일 월드컵 준결승 이후 한국 대표팀은 유럽 축구를 비롯한 세계 무대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한국이 처해 있는 현실은 아시아이고 세계 무대에서는 도전자지만 아시아 무대에서는 역으로 한 수 아래 상대들을 상대하는 입장이었다. 상대적으로 약팀인 아시아 상대들은 한국을 상대로 밀집 수비나 침대 축구를 하는 비중이 높다.

이란은 서아시아권에서 침대 축구에 특화된 편은 아니지만 한국과 2000년대 이후 중요한 경기에서 자주 매칭됐고, 중요한 순간에 침대축구를 하며 이러한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게다가 케이로스와 최강희 간의 주먹감자 신경전까지 터지면서 감정적 어그로가 끌리기 시작했다.

박지성이 대표팀에서 뛰고 있었던 시절에는 한국이 이란보다 강했고,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도 홈, 원정에서 모두 1:1 무승부를 거두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면서 웃게 됐고, 이란은 탈락하면서 절망했다. 하지만 2011년 박지성의 은퇴 이후에는 7경기에서 3무 4패로 단 한 차례도 이기지 못하면서 10여 년간 철저하게 밀리다가 2022년에 12년 만에 2:0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3.3. 역대 한·이 전적

이란 대표팀과의 역대 전적은 2022년 3월 24일 기준 33전 10승 10무 13패로, 한국 대표팀이 열세이다. 전적을 보면 알겠지만 사실 지리적 인접성 및 과거사로 인한 양국 간 라이벌리 때문에 한일전에 관심이 압도적으로 쏠려서 그렇지, 아시아 축구사에서 일본 못지않은 한국의 라이벌이 이란이다.

비교적 근래에 아시아 톱 레벨에 진입한 일본과 달리 이란은 일찌감치 아시아 축구의 강자였으며 아시안컵 최다 승점을 보유하는 무시 못할 강팀이다. 한국보다 국제무대 성적이 낮지만[34] 2000년대 중반까지도 상대전적으로 열세였던 만큼 최근에만 이란에 약한 모습을 보인 것도 아니다. 2000년대 중반에는 밀렸던 상대전적을 대등하게 맞춰갔지만 2010년대 넘어와서 다시 벌어졌다. 한국 입장에서 이란은 언제나 까다로웠고 또 중요한 길목에서 자주 만나는 골치아픈 상대이다.

이란 원정을 가서 고전을 면치 못한 것도 한국인들이 이란을 난적으로 생각하는 주요 원인이다. 이란은 우리나라 홈에 원정을 와서 3번의 승리를 거뒀던 적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이란 원정에서 2004년에 U23 대표팀이 이천수의 결승골로 승리를 제외하고, 단 1경기도 이긴 적이 없다. 이란의 홈구장인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8전 3무 5패이고, 득실차도 4득점 11실점으로 열세이다.

3.4. 장기화되는 AFC 아시안컵 무관

두 국가 모두 아시안컵 무관 기간이 장기화되면서 다른 의미로(...) 치열한 라이벌리가 펼쳐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67년, 이란은 51년 동안 무관을 이어가고 있고 기간만 따지면 이란의 무관 기간이 더 짧긴 하지만 대한민국은 67년 동안 4번의 결승 진출을 기록한 반면 이란은 51년 동안 단 한번도 결승전에 도달한 적이 없다.

사실 두 국가 모두 아시아 내에서는 일본, 호주,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아시아 5강으로 묶일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장기 무관 행보는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다. 심지어 2006년에 AFC로 편입되어 9년 만에 아시안컵 우승을 기록한 호주, 원래 아시아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아시안컵 2연속 우승으로 신흥 강호로 떠오른 카타르를 생각하면 두 전통 강호의 아시안컵 기록은 더더욱 비참해진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두 국가의 무관 행보가 얼마나 더 길게 이어질지, 두 국가 중 무관을 먼저 끊어내는 건 어느 쪽이 될지도 알 수 없기 때문에 대한민국-이란의 라이벌리를 더더욱 치열하게 만들어주는 하나의 요소로 평가된다.

4. 기타 라이벌

4.1. 북한

북한은 국방백서상 대한민국의 적이다. 따라서 남북전은 실력적인 라이벌리보다는 역사적, 정치적 문제로 인한 라이벌리이다.

과거 광복 이전 경평대항축구전으로 한반도에서 가장 치열한 라이벌 경기였다. 경성축구단[35]은 1933년 5월 11일 창단된 서울 연고의 축구팀이며, 1917년에 창단한 불교청년회 축구단이 잠시 해단하다가 1925년 조선축구단으로 재창단되었고, 조선축구단에서 일부 선수들과 운영진들이 나와서 같은 서울의 라이벌 경성축구단으로 합류했다. 그리고 평양축구단은 1918년 무오축구단으로 창단했다.

광복과 분단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변화했고 지금까지 남북전으로 이어진 역사이다. 만약 남북통일이 된다면 엘 클라시코같은 볼거리가 많아 질 것이다.

과거에는 북한이 한국보다 먼저 66월드컵 8강(8위) 기록한 적도 있었고 북한에게 패할 것을 두려워해 한국이 지역예선에 출전하지 않거나,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북한과 한국이 만나 무승부를 거두고 당시 제도로 공동 금메달을 수상하는 일도 있었다. 70년대 정도까지는 실력적으로도 역사, 정치적 문제로도 북한은 한국 축구 최대의 라이벌이었으며 가장 의식하는 상대였다.

다만 현재 21세기에는 두 팀의 실력차가 매우 벌어진 상태라 북한이 한국의 적수는 아니다. 그럼에도 북한 선수들의 투지나 평양 원정 등 리스크로 인해 마냥 쉬운 상대는 아니다.
하지만 객관적인 팀 전력과는 별개로 거친 북한의 플레이와 수비위주의 경기운영 때문에 한국이 고전하는 경우가 많으며 저득점 경기나 무승부가 되는 경기가 많이 나온다. 실제로 00년대 이후 한국과 북한의 전적을 보면 한국이 2승 7무로 앞서고 있는데 2승을 거둔 경기가 1-0 승리며 7무승부 중에서 2경기는 1-1이었고 5경기는 0-0 경기였다.

4.2. 중국

중국과는 실력 차이가 몹시 크나 양국간의 감정적 문제로 인한 라이벌 관계에 가깝다.

실력적으로는 공한증이란 말이 있었고 2010년에서야 중국 대표팀이 한국에게 첫 승을 따냈을 정도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공한증이란 말이 나올 만큼 중국 쪽에서 한국을 매우 강하게 의식하고 있으며 한국의 제도를 많이 따라한다던가 중국 축구선수들이 한국 축구나 한국 축구선수들에 대한 발언도 심심찮게 할 정도로 의식을 많이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게 졌을 경우 엄청난 대패가 아니면 너무나 당연한 패배이기 때문에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무승부만 해도 만족한다

한국 측에서는 625 때문에 적대감을 가질 수도 있었겠으나 첫 대결이 1978년이란 늦은 시점이고, 새로운 라이벌리를 형성하기에는 서전부터 중국이 2연패로 시작해서 너무 이기질 못했으며 이 시기에는 미국과 중공도 국교정상화를 하는 등 옛날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그래서 21세기 이전까지는 큰 관심이 없었고 절대적으로 아래라는 인식이 강했으나 중국의 국력이 매우 높은 속도로 올라가고, 주변국과 마찰을 빚으며 축구까지 그 여파가 많이 번졌다. 실제로 2017년 최종예선에서 한국이 중국에게 무기력하게 1:0으로 진 경기가 있었는데 이 때를 기점으로 슈틸리케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졌다.[36]

4.3. 이탈리아

축구 실력으로 보나 역사적 위상으로 보나 한국은 이탈리아의 적수가 전혀 되지 않지만 이탈리아 쪽에서 악연으로 인해 라이벌리를 의식한다.[37] 양팀의 A매치 전적은 1승 1패로 의외로 호각이며 단 두 경기밖에 치르지 않았으나 이탈리아에서 2002년의 패배를 강하게 의식한다. 게다가 1966년에 북한에게 진 것까지 겹쳐 은근히 한국을 더욱 의식하는 경향이 있다.[38]

2020년대에 접어들면서 2002년 월드컵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졌는지 이제 현역 국가대표 선수들이 직접 한국에 대해 복수 등을 언급하는 일은 별로 없으나, 당시 축구선수들은 꾸준히 한국을 언급한다.[39]


[1] 예외는 양궁, 쇼트트랙, 바둑 정도로 이들은 일본의 실력이 떨어지고 중국이 잘 하는 편이라 최대 라이벌이 중국이다. 반면 배구의 경우, 한국의 실력이 떨어지므로 중일전이 더 주목받는다. 농구의 경우, 본래 한중전이 라이벌이었으나 최근 일본이 무섭게 치고 올라왔기에 삼파전 양상에 가깝다. 한편 축구 다음으로 한일전 열기가 치열한 야구의 경우, 원래 어느 정도 격차가 있었으나 201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그 격차가 확연히 벌어지고 국제대회 성과에서도 큰 차이가 생기면서 현재는 전력상으로 팽팽한 라이벌로 분류하기 어려운 편이며 야구팬들 역시 현실을 담담하게 인정하는 편이다.[2] 특히 단순히 반일 감정 뿐만이 아니라 상기했듯 객관적인 전력 또한 일본이 한국에 전혀 미치지 못했으므로 한일전 패배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현재 중국이나 동남아를 상대로 패하거나 졸전을 펼치면 한국 축구팬들이 충격을 받는 것과 유사하다.[3] 일본인들이 한국을 의식하기 시작한 시점은 1990년대~2000년대 즈음이며 반한 정서가 널리 퍼진 시점은 2010년대 즈음이다.[4] 8개국(8강) 본선 대회[5] 이 시기 관계자들은 일본 좋은 일만 해줬다는 평가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은 도쿄 대첩이라고 기분을 냈지만 일본 측에서는 월드컵 출정하기 전에 일본의 인식을 바꿔서 일본이 실리축구로 돌아가게 해서 2010 월드컵 16강(9등)을 이뤘다는 것이다.[6] 한국: 2002년(4위), 2010년(16강 15위, 2022년(16강 16위) vs 일본: 2002년(16강 9위), 2010년(16강 9위), 2018년(16강 15위), 2022년(16강 9위). 한국도 1954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일본을 이기고 16개국 본선에 진출한것까지 포함하면 16강 이상 진출 횟수가 총 4회이나, 54 월드컵 당시에는 1라운드 16강 조별리그였다.[7] 한국: 1956년, 1960년 vs 일본: 1992, 2000, 2004, 2011년.[8] 2026 북미 월드컵 본선 기준 전승 우승 승점 24점을 넘었고 일본도 역대 월드컵 승점 27점을 얻었다.[9] 1998년 일본 대중문화를 시작으로 조금씩 개선되기 시작했고, 2020년 코로나 이후로는 관계가 많이 좋아진 편이다.[10] 2010년 무렵까지는 1년마다 하는 한일 정기전도 꽤 많이 했던 만큼 역사적으로 보면 두 나라의 축구는 교류가 많았다. 일본은 한국이 가장 많이 A매치에서 맞붙은 나라이기도 한데 한일 정기전 등으로 실력을 자주 겨루었다.[11] 2010 월드컵 예선도 최종예선에서 만날 확률 50%였으나 비껴갔다. 2011년 아시안컵 16강 조별리그에서 만날 확률 25%였으나 피해갔고 1월 25일 준결승에서 만나 일본이 승부차기 승을 했다.[12] 2002년 9위(16강), 2010년 9위(16강), 2018년 15위(16강), 2022년 9위(16강)[13] 참고로 2022년 12월 피파랭킹은 일본 20위, 한국 25위로 맞대결 1번이면 순위가 뒤바뀔 수 있는 백중세이다. 반면 월드컵 통산 승점 랭킹 또한 한국 26위(31점), 일본 29위(27점)로 한국이 4회나 더 많이 진출했음에도 격차가 굉장히 좁다.[14] 2023-24시즌 기준 도안 리츠, 이타쿠라 코, 하세베 마코토, 하라구치 겐키, 아사노 타쿠마, 이토 히로키 등 일본인 분데스리거가 다수 포진하고 있다. 거기다 소속팀에서의 입지도 매우 좋은 편이다.[15] 그나마 미드필더는 이강인, 이재성, 황인범, 홍현석 등 유럽파가 어느정도 있으나 이중 빅리거는 이강인, 이재성 둘 뿐이며 수비형 미드필더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수비진은 김민재를 제외하면 현재 베스트멤버가 모두 K리거이다.[16] 올림픽 메달이든,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든 둘 중 하나는 무조건 따야 하는데, 애초에 국가대표에 뽑히는 것도 힘든데다가 나간다고 해도 이러한 성과를 보장받지 못한다. 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단 한번 따봤을 뿐이고 훨씬 쉬운 U23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딴다는 보장이 없다. 실제로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하고 2014년 우승하기까지 28년이 걸렸다. 게다가 이미 유럽에 진출한 선수들의 경우에는 팀에서 대표팀 차출을 거부하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손흥민의 경우에도 2012년 올림픽과 2014년 아시안게임 같이 병역특례를 받은 대회는 소속팀의 차출거부로 출전하지 못했고, 정작 2016년 올림픽에는 출전했지만 메달을 따지 못했다가 2018년 아시안게임에서 연장 혈투 끝에 금메달을 따서 병역특례를 받았다. 물론 운좋게 20대 초반에 병역특례를 받은 선수들은 본인의 실력만 된다면 해외에 진출하기 정말 쉬워진다.[17] 특히 쿠보 타케후사미토마 카오루는 빅리그에서 꽤나 센세이셔널한 활약상을 보여주며 현재 아시아 선수가치 1, 2위에 올라있고, 토미야스 타케히로엔도 와타루는 역시 EPL 명문 구단인 아스날 FC리버풀 FC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며 이토 히로키 역시 독일 명문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였다. 이외에도 이타쿠라 코, 도안 리츠, 모리타 히데마사, 스가와라 유키나리, 카마다 다이치 등도 유럽 소속팀에서 수위급 자원으로 활약 중이다. 물론 한국 선수들도 지속적으로 유럽 진출에 나서고 있어서 양적으로 해외파 숫자를 꾸준히 늘리고 있다.[18] 덴소컵 한일전 승리 전반전, 후반전, 연장전반,연장후반[19] 그 해 2022년 8월에 대학국대매치에서 일본에게 0:5 참패와 연령별 연패를 설욕하였다. 그러나 이후 다시 3연패로 격차가 있음이 나타나고 있다.[20] 그리고 참고로 2020년대 한일전 승리 중 아챔에서는 대한민국 팀이 일본 팀을 여러차례 승리하였으며, 대표적으로 2021년 아챔 8강에서 한국의 포항 스틸러스가 일본의 나고야 그램퍼스3:0 승리, 파일:포항 vs 나고야 8강전.gif 2022년 8월 아챔 8강전 일본 사이타마에서 한국의 전북 현대 모터스가 일본의 비셀 고베를 3:1로 격파하였다. (아쉽게 준결승전에서 우라와에게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졌다.)[21] 2002 월드컵 9위(16강), 2010 월드컵 9위(16강), 2018 월드컵 15위(16강), 2022 월드컵 9위(16강). 한국도 일본을 이기고 진출한 54 월드컵 16개국 본선 진출까지 합하면 16강 이상 진출 총 4회이나, 54월드컵 당시는 1라운드 16강 조별리그였다.[22] 벤투호의 2021년 요코하마 열린 친선 한일전 0:3 패배와 2022 EAFF E-1 풋볼 챔피언십에서의 한일전 0:3 패배. 이 시기에는 연령대 대표팀 포함하면 5연속 0대3 패배를 했다.[23] 일본은 통산 7회 진출로 아시아 2위이지만 한국과 4회나 차이가 난다.[24] 한국 26위(승점 31점), 일본 29위(승점 27점)[25] 다만 부당성 여부를 차치하고 일본과 동남아, 서양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월드컵 4강을 폄하하는 시선이 만연해 있다. 자세한건 히딩크호/편파 음모론 참조.[26] 승부차기전까지 포함하면 43승 19패이다.[27] 다만 21세기의 전적은 6승 7무 6패로 양쪽이 서로 팽팽하다.[28] 일례로 이란은 1978월드컵 14위 이후 월드컵 16강에 진출한 적이 없다. 2018월드컵에서 아쉽게 16강에 실패했다(18위). 이란이 월드컵 최종예선에서는 압도적인 강자 중 하나로 군림하나 정작 월드컵 본선에서는 다른 아시아 팀들이 선전할 때 유독 힘을 못쓰는 경우가 많다.[29] 그나마 친선전, 동아시안컵 등에서 자주 마주하나 양국 모두 풀전력으로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부터 2022 카타르 월드컵까지 한국은 이란, 일본은 AFC로 넘어온 호주와 계속 같은 조에 묶였다.[30]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검정 계열[31] 이 탓에 두 팀이 맞붙는 경기는 항상 양쪽 다 주유니폼만 착용한다.[32] 정확히는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33] 정확히는 'Shiran e Iran(이란의 사자)'라는 별명으로 불린다.[34] 이란의 국제대회 성적은 좋은 편이 아니다. 아시안컵 통산 승점 1위임에도 1976년 3연패 이후 반세기 동안 아시안컵 무관 행보를 이어가고 있으며 1978월드컵 14위 이후 월드컵 16강도 진출한 경력이 없다. 2018월드컵에서 아쉽게 16강에 실패했다(18위). 이렇듯 명성 대비 실제적인 국제무대 성적이 아쉬운 팀이 바로 이란이다. 자세한 내용은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참조.[35] 이 시절 경성축구단은 1935년에 천황배 JFA 전일본축구선수권대회(일본 FA컵)에서 우승한 적이 있다.[36] 슈틸리케는 카타르에게 3:2로 패배하고 소리아 발언을 했던 것이 가장 결정타였지만 중국전 패배도 그 못지않게 여파가 컸다.[37] 한국 쪽에서는 오히려 어떻게 우리가 이탈리아와 라이벌이 될 수 있나 하는 반응이며 이탈리아를 라이벌로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다만 2002년 당시 이탈리아 선수들의 비매너 플레이 및 이탈리아가 여전히 2002년 패배를 집착적으로 의식하는 것에 대해서는 한국에서도 비판 여론이 높다.[38] 이는 남북한 모두 Korea라는 국호를 사용하는 탓도 있지만 2002년 응원단이 16강 이탈리아전 당시 걸개로 ‘Again 1966' 걸개를 내건 탓도 있다. 당시 남북관계가 상대적으로 해빙기에 접어들던 추세였기에 이런 구호가 나오는 것이 가능했다. 다만 이탈리아전 이후 제2연평해전이 발발하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문구 선정을 경솔하게 했다는 의견이 남아있다.[39] 실제로 2010년 월드컵 32강 조별리그 추첨단계에서 주장 칸나바로가 이미 2006월드컵에서 한국을 넘고 우승했음에도, 한국과 같은 조가 되어서 한국을 맞대결 복수하고 싶다고 언급하는 등 당시 선수들 사이에서 한국을 의식하는 발언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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