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word-break: keep-all; 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민족 | 야마토 민족 |
언어 | 일본어 (일본어족) | |
국가 | 일본 | |
신화 | 일본 신화 | |
재외동포 | 일본계 브라질인 · 일본계 한국인 · 일본계 중국인 · 일본계 러시아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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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야마토 민족 혹은 대화민족(大和民族)은 일본인을 구성하는 민족 중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일본의 주류 민족이다.2. 상세
일본에 대략 1억 2000만 명 정도가 살고 있으며, 그 밖의 주된 거주지로는 미국과 브라질이 있는데 각각 100만 명 이상이 산다. 사실 '야마토'는 왜를 뜻하는 '왜'(倭)의 훈독이었는데, 일본인이 숭상하는 사상이 '화'(和)라는 데서 和도 야마토로 읽게 되었으며, '대'를 붙인 '대화'(大和)도 역시 같은 뜻이기에 야마토를 가리키는 표현이 되었다. '왜'(倭)라는 글자는 고대 일본어의 1인칭 대명사인 '와'의 음차로 추정된다. '키가 작다'는 뜻의 矮와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3] '일본'(日本)이란 표현도 야마토를 표기하는 방법들 중 하나였는데 야마토라 읽는 식은 사라지고, '니혼'이나 '닛폰'으로 읽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 예로 일본 전설에 등장하는 야마토타케루 황자의 한자 표기 중 '日本武尊'이 있는데 '야마토' 부분을 일본으로 썼다.일본은 중세부터 지방별로 다이묘가 다스리고, 지방분권적으로 발달한 곳이라 오늘날의 국민국가와 같은 단일한 민족 관념은 희박했다. 그러나 비록 명목상이긴 해도 천황이라는 군주가 엄연히 계속 존재했고, 구심점은 있었으므로 동질감은 분명 있었다.
야마토 정권은 5세기부터 11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대대적인 확장을 단행했다. 이 기간 동안 규슈(구주)의 하야토와 구마소, 츠치구모 등의 군장국가들을 복속시켰고, 간토(관동)와 도호쿠(동북) 일대의 에조(아이누) 계통의 부족국가들을 차례차례로 복속시키거나 밀어내면서 야마토는 일본 열도에서 완전한 주류 세력이 되었다. 그러나 헤이안 시대 후반기에 장원제도가 발전되었고, 이는 지방 각지에서 다이묘들이 각자의 세력을 떨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여 이로 인해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이루지는 못했다. 그러던 것이 19세기에 이르러 메이지 유신과 국가신토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일본인이라는 거대한 국가적 일체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타난 관념이 야마토 민족이었다.
도래인 계통의 야요이인은 현대 일본인의 혈통 비율 중에서 87~96.7%를 차지한다고 한다.[4] 이때 도래인들 중에는 야요이인 뿐만 아니라 백제 및 신라의 초창기부터 말기에 이르기까지의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5]
오늘날엔 재일 한국인이나 재일 중국인 같은 일본의 다른 인구 집단과 자신들을 구분하기 위해 야마토 민족이라는 개념이 다소 쓰이지만 제2차 세계 대전 때 겪은 일에 대한 반작용인지 예전만큼 강하게 쓰이지는 않는다. 일본인엔 야마토 민족 말고도 아이누족이나 류큐인, 한민족[6], 한족 등이 있다.
와진(和人, 화인)라고 하기도 한다.
3. 역사
역사적으로 야마토 민족은 규슈 북부와 혼슈 서부에서 기원했으며, 점차 일본 열도 전체로 세력을 확장했다.일본의 건국신화에 따르면 기원전 7세기, 초대 천황인 진무 덴노가 규슈의 타카치호(高千穂, 오늘날의 미야자키현 타카치호정)에서 출발하여 세토 내해를 항해해 야마토 지역(오늘날의 나라현)을 정복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라를 세웠고, 지명에서 따와 나라 이름도 '야마토'로 불렸는데 이것이 민족명의 기원이었다. 또한 신화를 역사적으로 해석한다면 야마토 민족이 규슈에서 기원하여 이후 긴키 지역을 본거지로 하게 된 역사를 설명해준다고 할 수 있다.
4세기 무렵부터 야마토가 본격적으로 세력을 떨치기 시작하여, 규슈와 간토 지방에 산재한 군장국가들을 정복했다. 헤이안 시대에 들어서는 도호쿠 일대의 아이누 계통의 종족들을 복속시키며 야마토 민족에 동화시켰다. 이들을 '에조'(蝦夷) 혹은 '에미시'라고 했는데 둘 다 '오랑캐'라는 뜻이었다. 야마토족은 19세기 말에 이르면 홋카이도까지 정복했으며, 그후 제국주의를 내세워 일본 열도를 벗어나 대외로 팽창하다가 제2차 세계 대전의 패전 이후 다시 일본 열도로 위축되었다.
4. 신앙
야마토 민족은 고대부터 일본 신화의 신들을 숭상했는데, 이 신들을 모시는 일련의 제례·예배 체계를 신토라고 한다. 야마토족은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를 주신으로 모시는 것을 자부심으로 삼았으며, 과거부터 태양을 민족의 상징으로 여겼다. 이 태양 신앙은 외국과의 교류를 통해 지리적인 지식이 덧붙여져 본인들은 아시아의 최동단(당시에는 캄차카 반도 등이 알려지지 않았으므로)에 사는 민족으로서 해 뜨는 땅의 민족이라는 관념이 생겼고, 이는 나라 시대 즈음부터 국호를 '일본'(日本)으로 한 이유가 되었다.신토의 신에는 야마토 민족이 원래부터 믿어온 신들인 아마츠카미 신족뿐만이 아니라, 야마토 민족이 흡수한 이민족의 신들인 쿠니츠카미 신족 또한 포함된다. 약의 신 오오쿠니누시 등은 그 기원이 이즈모 지역의 '이즈모 신화'(出雲神話)를 기원으로 하는 이민족의 신이었다. 고대 이즈모에는 야마토 정권과 대립하던 별다른 민족 혹은 나라가 있었는데, 이런 지방의 소왕국들을 동화시키면서 이들이 믿던 신들을 자기들 신화에 포섭했다고 볼 수 있다.
신토 외에도 아시아 대륙에서 들여온 불교 또한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래서 불교의 부처나 신격들이 신토의 신들과 융합하는 신불습합(神仏習合)이 일어나기도 했다.
[1] 야마토 사람이란 뜻이다.[2] 이웃사람이라는 뜻에서 온 단어이다.[3] 물론 실제로 키가 작았을 수도 있지만, 그에 관계 없이 당시 중국에서는 다른 민족에게 모욕적인 호칭을 붙이곤 했다.[4] 조몬인 혈통 비율 3.3% 3.3% (2020) 8% ~ 9.8% (2019) 9% ~ 13% (2019) (조몬인과 야요이인을 염두에 두고, 연구 모델을 설계했다.)[5] 《삼국사기》에서는 신라인이 먼저 왔다고 주장한다.[6] 도래인을 제외하고, 2013년 기준으로 생존해있는 귀화자는 320,000명 수준이다. 대부분은 재일 한국인의 귀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