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서(梁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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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북조시대 양나라의 관료로 자는 무연(茂㳂). 팽성군(彭城郡) 무원현(武原縣) 출신으로 유송의 장수 도언지의 증손이며, 도개의 동생이다. 도중거의 아버지.2. 생애
도흡은 18살의 나이에 남서주(南徐州) 영서조행사(迎西曹行事)를 지냈다. 도흡은 어린 시절부터 이름을 알렸으며, 기지가 예민하고 총명했으며, 재주와 학식은 물론 사대부의 태도를 지녔었다. 당시 사조가 문장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는데, 도흡을 보고 매우 칭찬하여 날마다 도흡과 담론을 나눴다. 이때 사조는 도흡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그대는 걸출한 인물이기만 한 게 아니라 문무의 재간도 갖췄구나!
사조는 이부랑(吏部郞)으로 부임한 뒤 조정에 도흡을 천거하려고 했으나 도흡은 난세가 벌어질 것을 예견하여 사조의 천거를 거절하였다. 도흡은 뒤에 진안왕(晉安王)의 좌상시(左常侍)로 제수되었으나 여기에 응하지 않고 험준한 산속에 집을 지어서 속세와 단절된 삶을 살았다.
임방은 재능과 품행을 알아보는 눈썰미를 갖고 있었는데, 도흡을 찾았을 때 그를 보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아이는 천하에 둘도 없는 인재로다!
502년, 소연이 양나라를 건국하고 제위에 오르니 이가 초대 황제인 무제였다. 당시 도흡의 형제인 도소(到沼)와 도개가 모두 소연에게 등용되었는데, 도흡은 특히 소연의 눈에 들었고 사촌동생인 도항(到沆)과 함께 이름을 날렸다. 다음은 무제와 대조(待詔) 구지(丘遲)가 나눈 문답이다.
무제: 도흡은 도항, 도개와 비교한다면 어떠한가?
구지: 정직하고 청렴한 것은 도항보다 뛰어나고 문장은 도개에게 뒤지지 않으며, 더불어 청담을 지녔으니 거의 따라잡기 어려울 것입니다.
구지: 정직하고 청렴한 것은 도항보다 뛰어나고 문장은 도개에게 뒤지지 않으며, 더불어 청담을 지녔으니 거의 따라잡기 어려울 것입니다.
구지의 말을 들은 무제는 곧바로 도흡을 태자사인(太子舍人)으로 임명하였다. 이후 화광전(華光殿)에서 연회가 열렸을 때 도흡가 도항, 소침, 임방이 배석하여 이십운 시를 읊었는데, 도흡의 시가 가장 뛰어나서 도흡에게 명주 20필을 하사하였다. 다음은 무제와 임방이 나눈 문답이다.
503년, 도흡은 사도부 주부(主簿)로 옮겼고 직대조성(直待詔省)을 맡았으며, 칙서에 따라 갑부(甲部)의 서적들을 베껴썼다.
506년, 상서전중랑(尙書殿中郞)으로 전임되었는데, 도흡의 형제들이 모두 이 직무에 임명되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이를 영예롭게 여겼다.
508년, 태자중사인(太子中舍人)으로 전임되어 태자중서자(太子中庶子) 육수와 함께 동궁의 기록을 담당했다. 이후 도흡은 시독(侍讀)으로 임명되고 시독성(侍讀省)에서 학사 2명을 둘 때 도흡은 학사를 맡았다.
510년, 국자박사(國子博士)로 전임되고 칙령을 받들어 《태학비(太學碑)》의 비문을 지었다.
513년, 임천(臨川) 내사로 전출되어 직무에 적합하다는 칭송을 받았다.
515년, 입조하여 태자가령(太子家令)이 되고 급사황문시랑(給事黃門侍郞)에 전임되었으며, 국자박사(國子博士)를 겸임하였다.
517년, 태자중서자를 맡았다.
도흡은 527년 심양군에서 죽었다. 사후 시중(侍中)으로 추증되고 이(理)라는 시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