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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 문서: 독재자가 된 영웅/실제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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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웅으로 죽거나, 오래 살아서 악당이 된 자신을 보거나."
"You either die a hero, or you live long enough to see yourself become the villain."
하비 덴트
처음에는 영웅으로 추앙받았지만 끝내 독재자로 바뀐 사례를 다루는 문서. 독립을 이끌어내거나 다른 독재자를 몰아내거나 국가의 위기를 극복해 영웅으로 추앙받았지만, 집권한 뒤 독재자가 된 사례를 일컫는다. 이러면 이전의 좋던 평가는 사그라들고 독재자의 인상만 남는다."You either die a hero, or you live long enough to see yourself become the villain."
하비 덴트
현실에서는 시민 사회와 제반 체제가 미숙한 상황에서, 초창기의 영웅적인 행동으로 집권한 권력자가 타락하고 폭주하면 견제할 장치나 세력이 없어 일어나곤 한다. 제2차 세계 대전 뒤 신생 독립국의 독립영웅 대다수가 독재자가 되어버린 것이 좋은 예. 또 민주화운동가가 독재자 내지 권위주의 성향 지도자로 변하는 경우도 은근히 많다.
반대로 독재자가 될 수도 있었지만 되지 않은 영웅으로는 초대 미국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같은 이도 있다. 모두가 계속 대통령으로 남길 원하고 아예 조지 워싱턴을 황제로 모시자는 의견조차 있을 정도였다. 당시 사람들은 '근대 민주주의 공화국의 국가원수'이자 '대통령'이란 직위는 조지 워싱턴이 최초였기에 이것이 기존의 황제/왕과 같은 군주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 당장 조지 워싱턴 본인과 그를 대하는 사람들조차도 대통령을 임기제 황제 정도로 생각해서 호칭이나 세부적인 예법 등에서는 여전히 '폐하'란 호칭이나 군주식 3인칭화 화법을 쓴 사례가 있을 정도. 그럼에도 조지 워싱턴은 8년이라는 두 임기를 마치고는 깨끗하게 내려옴으로써 현대 민주주의 지도자의 시작이자 기틀이 되었고 이는 미국은 물론 타 국가에게도 귀감이 되었다. 또 인도, 보츠와나, 동티모르도 독립영웅이 독재자가 되지 않았다.[1]
2. 원인
- 권력에 대한 도취와 집착권력을 쥐면 사람의 뇌가 바뀝니다. 도파민과 테스토스테론이 분출되는데, 이로 인해 공감 능력이 약화되고, 목표 달성이나 자기만족에만 집중하게 됩니다.2014.07.05. <조선일보>에서 진행한 이안 로버트슨 교수 인터뷰의 요약본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권좌에 오른 뒤 그 권력 자체에 취해서 본래의 이상을 잊어버리고 이전의 압제자와 다를 바 없는 자로 변질하는 예가 있다. 처음에는 순수하고 도덕적인 인물이라고 해도, 피흘려 가면서 탈취한 정권인 만큼 어느 정도의 애착심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또한 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뒤에는 민심 달래기+화근 제거하기를 목적으로 전 정권에 대한 숙청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아, 우리도 정권을 놓으면 똑같은 꼴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인식을 갖게 되며, 결국 권력을 놓지 않겠다고 발버둥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독재로 변질된다. 특히 정권이 안정화되기 전의 초기에는 반대파들을 더더욱 무자비하게 탄압하려는 경향이 있다.
- 독선과 아집훌륭한 리더가 있었습니다. 구성원들의 먹거리를 책임졌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오로지 자신만이 완벽한 리더라고 생각했고 영원한 리더가 되고 싶어했습니다.그리고 역사는 그를 독재자라고 불렀습니다.소사이어티 게임/6화 클로징 나레이션
집권한 뒤에도 여전히 이상의 실현을 꿈꾸지만, 그 실현을 자신만이 이룰 수 있다고 여기고, 반대자뿐만 아니라 부작용을 지적하거나 혹은 온건책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자신을 방해하는 악으로 치부하는 독선과 아집에 빠져서 결국 독재자가 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본인이 청렴하거나 어느 정도 유능하면 오히려 더 위험하다. 그러한 장점들이 자신의 독선과 아집을 더욱 합리화시키기 때문이다. 여기에 부합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가 있다.
- 환경적인 한계봉건적 습속에서 자라난 인간의 인습으로 민주주의를 배우고 외국의 민주주의 실천을 듣고 본다 하더라도, 민주주의로 대체한다 해도, 봉건적 관념과 습속이 즉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독재 정권이나 식민 정권을 전복하고 권력자가 된 사람은 압제 이외를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무너뜨린 전대 지도자와 같은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것. 즉 압제 하에서 살다보니 점점 자신도 모르게 "국민들은 억눌러도 된다" 같은 생각이 무의식중에 새겨지게 되면서 아무 문제의식 없이 자신이 겪은 일들을 똑같이 수행하게 되는 경우이다. 또한 굳이 압제가 아니더라도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이행한 직후인 경우 '대통령은 왕의 연장선상'이라는 생각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이는 위의 권력에 대한 도취로도 연결된다. 나름대로는 이전 지도자와 달리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통치를 시작하지만 주변 환경부터 본인 경험까지 기존 체제하에서 오래 살았다보니, 이전 정권보단 살짝 관대한 정도밖에 발상을 못한다. 이전 정권이라면 죽였을 사안을 고문을 하거나 감옥에 가두고 목숨은 살려주는 정도이다. 그리고는 "이전 정권에 비해 난 정말 노력하고 잘해줬는데 왜 그러느냐"라고 말하며 잘해줘도 소용 없다라거나 "이 자리에 앉아보니 이전의 권력자가 이해가 된다. 이런 무식하고 배은망덕한 백성은 힘으로 이끌어야 한다."라는 소리를 한다.
김일성은 일제강점기 시절 만주에서 빨치산을 이끌고 항일 게릴라로 활동했고 특히 이 시기에 보천보 전투를 통해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쌓았다.[3] 하지만 소련에 의해서 북의 통치자로 내정된 이후에 숙청, 전쟁, 무력도발, 일인숭배, 인권탄압, 장기집권, 사치에 권력 세습까지 자행해 최악의 독재자로 전락했다. 또한 김일성은 봉건적 습속이 많이 남아 있었다. 가령 당시 북한 정권에서 남존여비를 비판하는 영화를 만들고 남녀평등권 법령을 발표했지만 정작 자기 부인인 김정숙을 자길 잘 받들어 모신 충신으로 규정하거나 남성은 한복을 입으면 봉건으로 보면서도 여성은 한복을 입어도 된다는 식의 이중적인 면모를 많이 보였다. 한편 이승만의 경우는 구한말(1875년)에 태어나서 청년 시절을 보내왔기 때문에 당시의 '봉건적 습속'이 남아 있었던 것이 독재의 원인이 되었다 보기도 한다.
- 대안과 견제의 부재
온건개혁파들이 급진적 혁명을 경계하는 것도 이것 때문이다. 덮어놓고 정부를 갈아엎으면 십중팔구는 붕괴 후 혼란기를 맞이하기 때문이다. 식민정권이나 독재정권을 무너뜨렸지만 정작 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거나, 대안이 있더라도 현실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독선과 아집에 빠져 독재자가 되는 것. 사실 전장에서의 영웅적 행동으로 훈장을 받는 정도를 넘어서 대다수 사람들이 영웅이라고 부를 만한 영웅이 나타난다면 십중팔구 이미 세상이 완전히 개판이 되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세상이라면 제대로 견제를 할 수 있는 법적 시스템과 보호가 작동하지 않으니 독재자로 타락하기 쉬울 수밖에 없다. 붕괴 후 혼란기는 이들에게는 기회가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위에 나온 것처럼 반대파들을 제거하면서 그 견제 세력이 자연스럽게 소멸하므로 더더욱 폭주의 가능성이 커진다.
- 권력욕의 화신이자 위선자
영웅이라고 불린 사람이 사실 처음부터 단순히 권력 쟁취만을 원한 경우이다. 즉 기존의 외세, 독재자를 물리쳐서 진정한 독립을 이루거나 민주화를 달성하는 게 목표가 아니라 처음부터 권력만을 원했을 뿐이고, 희생적인 모습은 철저한 위장에 지나지 않았던 위선자인 것이다. 김일성의 경우에도 자신의 권력을 지켜주는데 큰 역할을 한 만주 항일 빨치산 출신은 요직에 기용하며 우대했으며 예술계에도 자기에게 충성을 맹세하면 심영처럼 빨치산을 비하하는 연극을 찍은 사람까지 우대했다. 단지 권력을 얻기 위해서 중국과 소련에도 도움을 주는 항일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해방 전 안도현장 정도가 될 '소박한' 꿈을 꾸면서 한계를 인정하기도 했지만, 그 안에서 권력을 추구하려는 성향이 강해서 소련의 88여단에서 그와 같이 일한 유성철 등은 김일성은 갑질이 심했고, 자기의 명령을 거부한 아랫 사람에게 10년 넘는 세월이 지나서 복수를 하는 인물이라고 하기도 했다. #
- 군사적 지도자라는 출신의 한계
혁명으로 독재 정권을 뒤엎기 위해서는 무력이 필수적으로 수반되기 마련이며, 이는 많은 혁명과 쿠데타가 군대 혹은 군사적 집단에서 출발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이렇다보니 그 군대 혹은 군사적 집단을 이끄는 군사적 지도자가 자연스럽게 새 정권의 지도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군대는 민주적인 논의보다 상명하복을 요구하는 조직이다. 이러한 조직에 장기적으로 몸을 담그고 있다 보면 나라의 지도자가 된 이후의 행정에서도 독선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가 쉽다. 특히 정권 수립 후에는 산더미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절차적 정의보다는 효율을 우선시하게 되므로 독단적인 행정이 진행된다. 왕당파의 복벽과 외세의 간섭이라는 위협에 노출된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로베스피에르가 벌인 일들을 생각해보자. 게다가 그동안 혁명의 진행에 필요했던 카리스마와 위신은 독재에 이용되기 딱 좋다. 괜히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어도 다스릴 수는 없다는 말이 나온 게 아니다.
- 무력이라는 방식의 한계
위와는 비슷한 문제로, 혁명은 어찌되었건 대개 무력으로 정치적 반대파를 탄압하는 과정이다. 설령 그 탄압당한 존재가 악이더라도 말이다. 결국 혁명가는 무력으로 정치적 반대파를 탄압할 마음가짐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며, 당장은 그 대상이 악한 독재자일 수도 있으나 그 다음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3. 관련 문서
[1] 물론 2차 대전 후 신흥독립국 중 이런 사례는 극히 소수다.[2] 1948년 제헌 헌법을 비판한 글로, 전문은 다음과 같다. '봉건적 습속에서 자라난 인간의 인습으로 민주주의를 배우고 외국의 민주주의 실천을 듣고 본다 하더라도, 민주주의로 대체한다 해도, 봉건적 관념과 습속이 즉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 사회의 각 부문에는 보수적이며 특권적인 봉건세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잠재적 활동이 아직도 맹렬한 바 있으니 법률의 앞에 평등한 인간의 권리는 그 신분과 연령에 의하여 지금도 무시되는 경우가 많고 관존민비의 사상이 이론상으로는 완전히 부정되나 실제면에 있어서는 유력히 자행되고 있다. 단체의 조직이나 운영에 있어서도 늘 편당적인 대립 양상을 가져오기 쉬우며 정당을 만들면 국민 전체의 복리를 무시하고 정책을 도외시하는 사당이 되어 공당적 성격을 상실함이 보통이다.'[3] 김일성의 본명은 김성주라는 사실, 일제강점기의 '중노년의 김일성 장군'의 활약에 대한 널리 퍼진 소문을 근거로 일제강점기의 김일성과 해방 이후 등장한 김일성이 다른 사람이라는 가짜설이 있지만, 이미 학계에서는 거짓으로 확정된지 오래다. 대한민국에서도 과장된 소문(나이 든 인물이 '아주 대단한' 업적을 쌓았다는 소문에서 노년만을 부정한)을 인용한 전공 부풀리기가 아주 많이 있었다고 보는 정도지 김일성의 항일 게릴라 활동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