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by(前座, ruby=まえ ざ)]の[ruby(力道山, ruby=りきどうざん)] / Rikidozan of Undercard> ドン[ruby(荒川, ruby=あらかわ)] / Don Arakawa |
링네임 | <colbgcolor=#ffffff,#2d2f34> 아라카와 마코토 돈 아라카와 (ドン荒川) | |
본명 | [ruby(荒川 真, ruby=あらかわ まこと)] 아라카와 마코토 | |
생년월일 | 1946. 3. 6 | |
사망 | 2017. 11. 5 (향년 71세) | |
신장 | 175cm | |
체중 | 100kg | |
학력 | 이즈미중앙고교 (졸업) | |
유형 | 쇼맨 + 올라운더 | |
피니쉬 무브 | 저먼 수플렉스 치킨윙 페이스락 백슬라이드 파일 드라이버 | |
출생지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카고시마현 이즈미시 | |
별명 | 마에자의 역도산 ([ruby(前座, ruby=まえ ざ)]の[ruby(力道山, ruby=りきどうざん)])[1] | |
테마곡 | Love Theme From "The Godfather"[2] | |
데뷔 | 1972년 9월 19일 (26세) 니이가타현 니이가타시 체육관 신일본 프로레슬링 vs 리틀 하마다[3] | |
마지막 경기 | 2009년 11월 1일 (62세, 커리어 36년) 오사카부 오사카시 오사카부립 체육회관 제 2경기장 드라디션 vs 그란 하마다 & 초슈 리키 & 후지나미 타츠미 & 울티모 드래곤 (w/초대 타이거 마스크 & 히로 사이토 & 아오야기 마사시) | |
주요 커리어 | WWC 캐리비안 태그팀 챔피언 1회 |
1. 개요
일본의 전 프로레슬러.2. 커리어
2.1. 프로레슬링에 입문하기 이전
학생시절에 유도를 배운 아라카와 마코토는 레슬링 대회에 출전하면서 마츠나미 켄시로[4]를 상대로 경기 중 드롭킥을 날려 반칙패를 당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상경하게 된다.2.2. 신일본 프로레슬링
1972년에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문하면서 리틀 하마다(그란 하마다)를 상대로 데뷔전을 갖지만 패했고, 이후로 카이 쇼지, 후지나미 타츠미와도 각각 경기를 갖지만 패했지만 사토 카즈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연패에서 탈출한다. 계속 싱글 경기만 갖다가 리틀 하마다와 팀을 이뤄 후지와라 요시아키 & 후지나미 타츠미를 상대로 첫 태그팀 매치에서도 승리를 거두고 이후로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싱글 및 태그팀 경기를 번걸아가며 출전하게 된다.신일본에서 매일 경기를 가지다가 1979년에 푸에르토리코에 있는 WWC에 출전해 기무라 켄고와 같이 WWC 캐리비안 태그팀 챔피언에 등극하며 챔피언 경력을 만들며 무관왕에서 탈출했다.
신일본에서 계속 활동하며 80년대에 넘어와서도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던 중 1985년에 링네임을 돈 아라카와로 변경하게 된다. 익살 프로레슬링으로 소유의 유머와 밝기를 풀로 발휘한 시합으로 인기를 얻어 의표를 찌른 강초공격 등으로 상대를 농락해 개성 넘치는 필살기로 이긴다는 통호의 스타일이 신일본의 명물이 되면서 신일본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으나 1989년에 블랙 캣과의 경기를 끝으로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의 16년 반 활동을 마무리하며 퇴단했다.
2.3. 각 단체를 거치며 FA 활동
퇴단 후 Super World Sports에 소속되어 활동하며 입성 첫 경기에서 카타야마 아키라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여기서도 싱글 및 태그팀 경기를 번갈아가며 출전하지만 1992년에 Super World Sports가 망하면서 FA가 되고, 1993년부터 PWFG(Pro Wrestling Fujiwara Gumi)에서 레귤러로 활동하며 출전경기마다 승리를 거뒀다.1996년에는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도 경기를 가지며 혼다 타몬 & 후지와라 요시아키와 팀을 이뤄 자이언트 바바 & 후치 마사노부 & 이노우에 마사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자이언트 바바 & 러셔 기무라와 팀을 이뤄 오가와 요시나리 & 마이티 이노우에 & 하루카 에이겐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자이언트 바바 & 하루카 에이겐와 팀을 이뤄 후치 마사노부 & 이즈미다 쥰 & 러셔 기무라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Battlarts에선 겐진 츠보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2002년에는 ZERO1에서 레귤러로 출전하며 뜨는 쪽이 더 많았고, 여러단체를 돌아다니며 경기를 갖던 중 2007년에 오랜만에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출연해 히라사와 미츠히데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나이토 테츠야와의 경기에서도 승리를 거둔다.
2009년부터 후지나미 타츠미의 단체인 드라디션에 출전하고 다녔고, 2009년에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벌인 마지막 경기에서 13인 배틀로얄 참가자로 나서 탈락하면서 오랫만에 신일본에 얼굴을 비춘다. 이후 드라디션에서 간혹 활동했으나 2010년에 갑작스럽게 프로레슬링 활동을 휴업한 후 프로레슬링계에서 사라졌다.
프로레슬링계에서 모습을 감춘 후로는 휴대폰 게임 회사에서 영업부장직으로 활동하고 다녔지만....
2.4. 사망
2017년 11월 5일에 71세 나이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사인은 불명.3. 여담
- 야마모토 코테츠의 제자이다.
- 밝은 성격의 소유자로 다른사람들과도 잘 어울리게 지냈다고 한다.
- 경기 운영에 관해서는 다른 선수로부터도 한눈에 띄는 존재로, 대부분의 선수가 대기실에서 자리를 떠나 관전하고 있었다.
- 프로레슬링 스타 아즈텍카이저에도 여러번 게스트로 출연한 적이 있고, 이케나카 겐타 80km(池中玄太80キロ)에서도 배우로 출연한 적이 있다.
- 호놀룰루 마라톤에 참가하여 완주한 실적을 가지고 있다.
- 젊은 시절 중성지방 평균 정상치가 통상 150 이내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무려 3250이나 돼 보통 사람과는 매우 동떨어진 수치가 자랑거리 중 하나이기도 했다.
- 하시모토 신야를 굉장히 아껴 현역 시절부터 옆에 끼고 다니다시피 했으며, 하시모토가 사망하기 전 하시모토의 단체 ZERO-1이 자금난에 시달리자 훨씬 선배임에도 적극적으로 모금을 위해 노력했다.
4. 둘러보기
NJPW 그레이트 레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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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노력상 | ||||
소노다 카즈하루 코바야시 쿠니아키 스네이크 아사미 이시카와 타카시 (1978) | → | 아라카와 마코토 타카스기 마사히코 오니타 아츠시 (1979) | → | 프린스 통가 죠지 타카노 마하 하야토 (19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