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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30 00:08:52

동구(국가)


국호 동구(東甌)
동해(東海)
존속기간 기원전 192년 ~ 기원전 138년
이칭 동월(東越)
위치 저장성, 복건성
수도 동구(東甌)[1]
국성 추(騶)
국가원수
주요 군주 요(搖)
망(望)
언어 고대 월어, 상고 중국어(?)
종족 월족
멸망 후 전한
현재 국가 중국

1. 개요2. 역사
2.1. 건국 이전2.2. 전한 시기
3. 역대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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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춘추전국시대 월나라의 후계국가이자 전한의 제후국. 오초칠국의 난 때 기록에서는 동월(東越)로도 불렸으며,[2]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민월과 함께 동월열전에 수록했다.

왕족은 민월과 함께 월왕 구천의 후예였다고 한다. 전한 한무제 때 민월의 침공을 받아 멸망했다.

2. 역사

2.1. 건국 이전

기원전 333년, 월왕 무강초위왕에게 패배한 후 월나라는 오나라의 옛 땅과 서주 일대를 각각 초나라, 제나라에게 뜯기면서 크게 약화되어 분열하게 되었고 기원전 306년 초나라에 멸망당하게 되었다. 월나라의 왕족들은 왕이나 군(君)을 자처하면서 강남 바닷가 일대에서 살거나 초(춘추전국시대)의 신하가 되었다고 한다.[3]

초대 동구왕 요(搖)는 민군(閩君)[4]으로 불렸는데, 민월의 초대국왕 무제(無諸)와 함께 지역에서 왕노릇을 하고 있었다. 진(통일왕조)가 들어선 후 진시황은 복건성 일대에 민중군(閩中郡)을 설치하면서 요와 무제는 왕위에서 폐위당하고 군장에 임명되었다.

반진전쟁이 발발하자, 요와 무제는 제후들을 이끌고 파양령 오예에게 합세해 진나라에 맞섰다. 그러나 항우의 18제후왕 분봉에서 요와 무제는 왕에 임명되지 못하면서 초한전쟁 때는 유방의 편을 들었다. 초한전쟁이 종결된 이듬해인 기원전 201년, 요는 해양후에 봉해졌다.

기원전 192년 5월(음력), 유방의 아들 혜제(전한)로부터 ‘민군(閩君) 요(搖)의 공이 크다.’면서 요를 동해왕(東海王)으로 봉했다.

요는 동구(東甌)[5]를 수도로 삼았고, 세간에서 요는 동구왕(東甌王)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2.2. 전한 시기

오초칠국의 난 당시 동구는 민월과 달리 유비(오왕)의 편을 들었다. 유비가 패배하면서 전세가 기울자 동구는 한나라에게 뇌물을 받고 유비를 단도(丹徒)로 유인해서 살해했고, 이 덕분에 봉국이 폐지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오왕 유비의 아들 자구(子駒)는 민월로 망명했는데, 동구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것을 원망하면서 민월왕을 부추겨 동구를 공격하도록 했다. 기원전 138년, 마침내 민월이 군사를 일으켜 동구를 공격해 수도를 포위했다. 동구는 한나라에게 구원을 요청했고, 한나라는 중대부 장조에게 군사를 주어 동구를 구원하도록 했다. 한나라군이 동구에 도착했을 때, 민월군은 본국으로 돌아가버렸다.

민월군은 물러났지만, 동구는 민월의 압박을 못버텼는지 온나라를 바치고 중국으로 옮겨가 살 수 있도록 한나라에 요청했다. 그렇게 동구왕 망이 이끄는 무리 4만명이 여강군에 거처하게 되었다.[6]

공교롭게도 약 28년 후 전한에게 멸망당한 민월의 백성들도 장강과 회수 사이의 지역으로 강제이주를 당했다.

3. 역대 국왕

대수 이름 재위기간 비교
초대 (搖) 기원전 192년 ~ ? 초대 국왕.
말대 (望) ? ~ 기원전 138년 말대 국왕. 한나라에 투항해 여강군으로 이주.

초대, 말대를 제외한 동구왕은 알려지지 않았다. 오초칠국의 난 당시 동조한 동구왕의 이름도 불명이며, 요나 망과 동일인인지 아님 별개인물인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사기 효무본기에는 남월이 멸망한 후, 남월(南越) 사람 용지(勇之)가 옛날 월나라는 귀신을 믿는 풍습이 있어 제사 때마다 귀신을 볼 수 있고 효험도 자주 있었고, 동구왕이 귀신을 공경해 160세까지 살 수 있었다고 무제에게 고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물론 비현실적인 수명이라 실제 나이였을 가능성은 없으나, 동구의 왕들 중 하나가 장수하면서 저런 소문이 퍼졌던 걸로 보인다.
[1] 오늘날 원저우로 추정.[2] 사기열전 권106 오왕 비 열전 참조.[3] 진나라가 초나라를 멸망시킨게 기원전 223년이므로, 진나라가 민중군을 설치한 시기는 기원전 222년 ~ 기원전 214년 백월 정벌 사이에 벌어진 사이로 추정할 수 있다.[4] 전한서 혜제기에는 민월군(閩越君)으로 등장한다.[5] 오늘날 원저우 일대다.[6] 동구왕 망에 대한 기록은 사기 권22 한흥이래장상명신연표(漢興以來將相名臣年表)에서만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