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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02 14:52:26

되놈

1. 개요2. 상세3. 기타

1. 개요

중국인을 비하하는 멸칭. 역사적으로는 만주족을 비하하는 용어였지만, 만주족의 청나라가 중국을 정복하고 19세기 이후 한족이 만주족의 권역에서도 주도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중국인 비하 용어로 의미가 바뀌었다.

2. 상세

원래 되놈이란 중국 한족에 대한 욕은 아니고 청나라를 세운 여진족(만주족)에 대한 멸칭이다. 한자 가차로 刀夷, 刀伊라고 쓰기도 하며, 말갈-여진족 시절부터 사용했던 말이다. 삼국시대부터 살을 맞대고 지낼 수밖에 없는 터라 비교적 미개하다고 생각한 그들을 이렇게 일컬었다.

한국어 '도이'는 북(北)을 가리키는 우리말로 중세 국어에서 '되'로 쓰였는데 같은 어원과 뜻을 가졌다 여기는 ''와 함께 쓰였다. 이는 남쪽을 가리키는 고유어인 ''과도 짝을 이룬다. 곧 '되놈'이란 지금 어휘로도 '북방 오랑캐' 정도에 대응되는, 다른 방향으로부터의 외적의 침입은 비교적 덜했으나 북방으로부터의 침입은 늘 대비해야 했던 옛 우리민족 활동영역 거주민의 역사적 정서를 잘 반영한 말인 셈이다.

한편 음이 같지만 본래부터 한자 단어였던 '도이(島夷)'와 표기가 혼용되기도 했는데, '조이(鳥夷)'라고도 하며 본래 산둥 반도 남쪽에서부터 화이허양쯔강에 이르는 해안가에[1] 거주하던 이방 세력이었다. 곧 이들은 중원 남쪽의 비한인(非漢人) 세력으로 본래 한국어 '도이'와는 가리키는 방위가 반대에 가까웠다. 그러므로 한국어 '도이'와는 기원이 다르며 상고한어에서도 발음이 같지 않았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진나라, 한나라를 거치며 이전의 조이(도이)의 거주 지역에는 군현제를 비롯한 중국식 질서가 이식되고 현지인들이 중국인과 동화되면서 그들의 존재가 사라지고, '오랑캐'를 점차 먼 곳에서 찾게 되면서 이 표현은 타이완하이난 섬 등을 가리키다가 아예 인도, 페르시아를 지칭하는 단어로까지 뜻이 옮겨가는 등 어휘의 뜻이 자유분방하게 바뀌게 되었다. 더 나아가 동이가 구이(九夷)로 구성되어 있다는 관념에 입각해 그 구이의 하나로 도이가 언급되면서 등주자사 위준 묘지명이나 장건장 묘지명에서 발해를 도이(島夷)라고 부르는 등 이 표현은 점차 방위를 가리지 않고 비한인 세력을 비하하는 용어로서 용례가 확장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한국은 한자 문화권으로 중국의 문헌을 수용하였고 특히 주변의 여러 세력 가운데서도 가장 치밀하게 중국의 문헌을 파고드는 국가였으며, 자연스럽게 중국의 '도이(島夷)' 개념도 수입하였다. 또한 한국 한자음은 대체로 중고한어 시대 이후의 한자 발음을 기원으로 갖고 있으며, 그 발음이 수입된 뒤 한자어 발음이 현지화되면서 우연히도 기원이 다른 두 단어를 같은 음으로 발음하게 되었다. 그 결과 고유어 '도이'와 한자어 '도이(島夷)'의 용례 또한 뒤섞이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아래 《열하일기》에서도 기원을 잊은 채 둘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2]

한편 11세기에 일본 규슈에 여진족 해적들이 쳐들어온 일이 있었는데, 이 사건을 일본에선 '도이(刀伊)의 입구(入寇:적이 쳐들어옴)'라고 부른다. 여기서 쓰인 '도이' 또한 한국어 어휘이며, 포로로 잡혔다 구출된 고려 사람이 당시 여진족 해적들을 '도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알려진 것이라고 한다.

이후에도 역사적 용례는 적지 않다.

여진인이 만주인으로 이어지고 만주인이 청나라를 건국한 이후에도 이러한 표현이 계속 쓰이다가, 19세기 이후 봉금지대에 압도적인 수의 한족이 쏟아져 들어오고 청나라가 멸망한 뒤 한족이 국가의 주도권을 잡게 되어 한반도의 북쪽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민족이 한족으로 바뀌자 이 표현은 아이러니하게도 절대 다수의 한족을 포함한 중국인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5] 특히 바다와 요령 지역을 사이에 두고 전통적인 생활권이 아주 얇게만 이어져 있거나 만주 지역 국가의 동향에 따라 아예 서로를 직접 접하기도 어려웠던 과거와 달리 19세기 후반 이후에는 간도 문제와 같이 국경을 접하며 겪는 갈등이 더욱 커졌기 때문에, 근대에 들어 짱깨, 짱꼴라와 같은 비하어가 형성되고 확산되는 것과 궤를 같이 하여 이 역사적으로는 기묘한 용례가 더욱 널리 쓰이게 된 감이 있다.

21세기에도 이 표현을 쓰는 사람들이 있지만, 짱깨라는 표현에 비하면 어감상 멸칭이라는 느낌이 약한 편이기도 하고, 짱깨라는 표현에 익숙한 사람들한테는 좀 생소한 단어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처럼 잊힌 표현이다보니 '뙤놈', '뛔놈', '떼놈', '대놈', '때놈' 등의 바리에이션이 생겨났는데, '되놈'의 경음화로 볼 수 있는 '뙤놈'이나 '뒤엣놈' 정도로 풀 수 있는 '뛔놈'과는 달리 나머지는 현대의 변형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는 상황. 아예 때가 많아서 더럽다고 하여 때놈, 큰나라(大國) 놈이라고 하여 대놈, 인구수가 많아 떼로 몰려다니니 떼놈과 같은 민간어원설까지 생겨나곤 한다. 그러나 '되' 또는 '뒤'라는 음을 갖는 한자어가 없어 수시로 '되' 또는 '뒤'를 '도이'·'두이'로 풀어쓰고 또 둘 사이의 음이 통함을 알고 있던 전통 한문 향유자에게는 그다지 익숙치 않은 용례일 것이다.

3. 기타

중국에서 북방 세력을 비하하던 대표적인 표현으로는 삭로(索虜)가 있는데, '새끼줄 같이 머리를 땋는 놈들' 정도의 의미로 변발을 비하한 표현이다.

어쩌다 보니 여진-만주에 대한 비하 표현을 혹으로 달고 간 셈이 된 한인(漢人)에 대한 전통적 비하 표현은 사실 보편적으로 썼다고 할 만한 것이 뚜렷이 보이지는 않는다. 앞서 언급했듯 바다와 요령 지역을 사이에 두고 교통이 상시적이지 않았고 왜구와 같은 침공 사례 또한 간헐적이었던 한반도와 중국 대륙의 상황 때문일 것이다. 물론 개별 상황에서 갈등이 없지는 않았겠으나 중화사상이 강한 영향을 미치던 세계이던 동아시아 정주 세력 사이에서 중국에 대해 비하의 대상으로 민족을 찾기보다는 갈등을 일으킨 개인, 집안, 직업, 국가를 찾는 것이 전통적인 정서에 가까웠다.[6]

다만 주어를 바꾸어 북방 세력의 용례를 살펴보면 남북조시대에는 앞서 언급한 중국어 계통의 '도이(島夷)'가 남조에 대한 비하어로 쓰였는데, 이 또한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 한편 '한(漢)'이 '괴한', '치한', '무뢰한' 등으로 쓰일 때와 같이 '한(漢)'이 '비도덕적인 남성'을 가리킬 때 쓰이기도 했는데, 이 쪽은 민족적 의미가 없지는 않았으나[7] 현대에도 아무도 이런 단어를 쓰면서 한족을 연상하지 않듯 민족적 의미는 되놈 이상으로 약한 상태이다.


[1] 이곳은 수로가 복잡하게 얽혀 육로가 드물지 않게 끊기곤 했던 지형에서 거주했으므로, '섬 오랑캐'라는 비하 표현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다만 치수와 개간이 일찍이 완성 단계에 이르면서 그런 경향이 약해졌을 뿐 이런 지형은 황하라는 변화무쌍한 강이 흐르던 북중국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며, 이 흔적이 남아 있는 한자가 강물() 사이의 점과 같이 형성되었던 토지를 가리키는 한자였던 고을 주()이다. 본래의 한자가 점차 일반명사화되면서 뜻을 잃어가자 물 수 변을 붙여 분화된 한자인 섬 주()는 그런 원래의 뜻을 현재도 보전하고 있다.[2] 이병도가 한자 '서(西)'가 실은 동쪽을 가리키는 고유어 '새'를 음차한 것과 뒤섞인 것이 아니냐며 《삼국사기》의 일부 난해한 구절들을 해석해 보려 한 적이 있는데, 적용할 수 있는 사례가 있다면 흥미롭게도 서로 비슷한 사례로 볼 수 있겠으나 오늘날에는 사실상 담론을 계승하는 사람이 없다. 물론 아쉽다기보다는 한국 사학계의 학문적 역량이 축적되면서 방향을 정반대로 뒤집는 무리한 가설까지는 필요 없어진 탓.[3] 소인 도이노음이오(島夷老音伊吾, 되놈이오).[4] 현대로 치면 중국에 간 특사의 수행원 역할을 맡은 외교관들이 경호를 맡은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 또는 국가안전부 직원들을 대놓고 짱깨라고 부르다가 밤이 되어 숙소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던 중 호텔 객실문 밖에서 낯선 발걸음이 들려서 "누구세요"라고 물으니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 또는 국가안전부 직원이 "아 저, 짱깨인데요."라고 말한 셈이다.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진지하겠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깜짝 놀랄 만한 일이다.[5] 반면 한족이 아닌 북방민족을 까는 데는 오랑캐란 말이 대신 쓰인다. 이쪽도 원판이었던 와르카는 흔적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인 것이 희극이자 비극.[6] 예컨대 왕서방은 중국인 가운데 가장 많은 '성씨'에서 기원한 단어이며, 짱깨는 중국인의 '직업'에서 기원한 비하 표현이고, 짱꼴라는 일본어의 차용으로 여겨지지만 '청국노(淸國奴)'라는 '국가'에서 기원한 비하 표현이라는 추측이 유력하다.[7] 대략 중국 대륙에서 널리고 깔린 것이 한인(漢人)이다 보니(...) 별 특징 없고 하잘것없는 장삼이사 남성을 가리킬 때 '한(漢)'이라는 표현을 쓴 게 아니냐고 추측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