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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3 05:32:05

드라젠 페트로비치

드라젠 페트로비치의 수상 이력
{{{#!folding ▼
파일:오륜기(여백X).svg
1984 1988 1992

파일:FIBA 농구 월드컵 로고.svg
1986 1990

파일:FIBA_EUROPE.png
1987 1989

베스트팀
파일:NBA 로고.svg
3rd : 199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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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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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ccac00> No. 3 No. 5 No. 23 No. 25 No. 32
<rowcolor=#000000> 드라젠 페트로비치
(Dražen Petrović)
제이슨 키드
(Jason Kidd)
존 윌리엄슨
(John Williamson)
빌 멜키오니
(Bill Melchionni)
줄리어스 어빙
(Julius Erving)
<rowcolor=#ccac00> No. 52
<rowcolor=#000000> 벅 윌리엄스
(Buck Willi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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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external/www.hoophall.com/29d78a8162e5673e29db7be008dadcaa_f266.jpg
드라젠 페트로비치
헌액 연도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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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드라젠페트로비치.jpg
<colbgcolor=#000> 브루클린 네츠 No. 3
<colcolor=#fff> 드라젠 페트로비치
Dražen Petrović
출생 1964년 10월 22일
유고슬라비아 SFR 크로아티아 SR 시베니크
사망 1993년 6월 7일 (향년 28세)
독일 덴켄도르프
국적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유고슬라비아 SFR
]][[틀:국기|
행정구
유고슬라비아 SFR
]][[틀:국기|
속령
유고슬라비아 SFR
]] (1964~1992)

[[크로아티아|]][[틀:국기|]][[틀:국기|]] (1992~1993 / 사망)
신장 196cm (6' 5")
체중 88kg (195 lbs)
포지션 슈팅 가드
드래프트 1986 NBA 드래프트 3라운드 60순위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지명
소속 팀 KK 시베니크 (1979~1983)
KK 시보나 (1984~1988)
레알 마드리드 (1988~1989)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1989~1991)
뉴저지 네츠 (1991~1993)
등번호 44번 - 포틀랜드
3번 - 뉴저지

1. 개요2. 선수 시절3. 수상 내역4. 사망5. 대표6. 기타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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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NBA에서 활약했던 크로아티아 국적의 농구 선수. 포지션은 슈팅 가드. 교통사고로 요절해 아쉬움을 남겼던, 동유럽 출신 최고의 농구 선수 중 하나였다.

2. 선수 시절

경찰관 출신의 아버지와 도서관 사서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드라젠 페트로비치는 13세 때 시베니크 유스 팀에서 활약하다가 2년 뒤 성인 팀으로 올라갔으며 1982년과 1983년에 코라치 컵에서 우승하지 못했지만, 유고슬라비아 선수권 대회 플레이오프 결승전 KK 보스나와의 경기에서 종료 직전 자유투 2개를 넣으며 우승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다음날 심판의 부정 휘슬 때문에 노비사드에서 다시 경기를 진행하겠다는 유고슬라비아 농구 협회로부터 결정이 내려졌으나 그 거부로 결국 우승은 박탈되었다.

군복무를 마치고 1984년 자그레브의 KK 시보나로 이적하여 유고슬라비아 선수권 대회와 내셔널 컵에서 우승했고, 유럽 챔피언쉽 결승전 레알 마드리드 발론세스토전에서 36득점을 넣으며 우승, 다음 시즌 결승에서도 아비다스 사보니스가 이끈 리투아니아의 BC잘기리스전에서 22득점을 넣으며 2연패를 달성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게다가 같은 해 내셔널 컵에서 오랜 시절부터 라이벌이었던 KK 보스나와의 경기에서 46득점을 넣으며 우승 그리고 1987년 유로피언 대회 결승전에서 28득점을 기록하며 이탈리아의 빅토리아 리베르타스 페사로를 누르고 본인의 3번째 우승을 경험했다.

한편 1986년 NBA 드래프트에서 60순위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져스에 지명을 받았지만, 2년 뒤인 1988년에 스페인 리그 소속의 레알 마드리드와 400만달러 계약으로 입단한 페트로비치는 고작 1년을 보내고도 리그 컵과 유로피언 컵에서 우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한층 더 높은 단계에 도전하기로 결심한 그는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져스가 레알 마드리드 구단측에게 150만달러의 계약 위약금을 지불하면서 마침내 NBA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클라이드 드렉슬러에게 밀려 출전 시간을 많이 받지 못했으나 뉴저지로 이적한 1991-92 시즌 82경기를 모두 주전으로 소화하며 평균 20득점[1] 이상을 기록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도 크로아티아를 결승으로 이끌었고 결승전에서는 조던을 포함한 미국 드림팀을 상대로 24득점을 기록했다. 물론 팀은 관광당했지만.. 그의 마지막 시즌이 된 92-93 시즌에는 평균득점을 23점으로 끌어올리며 All-NBA 서드 팀에 선정[2]되는 등 만개하는 모습을 보였다. 현재까지도 역대 3점 슛 성공률 4위(43.74%)를 마크중이며 92-93 시즌에는 자유투 성공률이 3% 모자라 180 클럽 가입이 무산되었을 정도로[3] 빼어난 슈터였다.

3. 수상 내역

수상 내역
All-NBA Third Team 1회 (1993)
유로리그 우승 2회 (1985, 1986)
유로바스켓 우승 1회 (1989)
유고슬라브 리그 우승 1회 (1985)
유고슬라브 컵 우승 3회 (1985, 1986, 1988)
스페인 컵 우승 1회 (1992)
크로아티아 올해의 스포츠맨 2회 (1985, 1986)
FIBA 세계 남자 농구선수권 MVP (1986)
유로리그 파이널 MVP 1회 (1985)
미스터 유로파 올해의 선수상 2회 (1986, 1993)
유로스카 올해의 선수상 4회 (1986, 1989, 1992, 1993)
FIBA 유로바스켓 MVP (1989)
FIBA 선정 50인의 위대한 선수 (1991)

4. 사망

그러나 1993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게 패한 뒤, 구단과의 계약연장진행이 지지부진하자 유로리그로의 복귀할 마음도 있었던 차에 때마침 크로아티아 농구 국가대표팀 경기도 치르기 위해 독일에 방문했다 교통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향년 28세. 페트로비치의 생전 마지막 팀인 브루클린 네츠는 페트로비치의 3번을 영구결번시켜 그를 기리고 있다.

현재 그는 자그레브시의 미그로비 묘지에 크로아티아를 대표하는 수많은 인물들[4]과 함께 묻혀있다. 수많은 조문객들이 그의 묘지를 방문했으며, 그 중에 유고슬라비아 국가대표 시절 그의 친한 동료였던 블라디 디박이 조문을 온 장면이 다큐멘터리 Once Brother에서 방영되었다.[5][6]

5. 대표

아비다스 사보니스, 토니 쿠코치와 함께 동유럽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히며 유럽에서 뛰던 시절 유럽의 마이클 조던이라 불리며 맹활약했고 유고슬라비아, 크로아티아 대표팀으로 1986년 세계선수권 3위[7], 1990년 세계선수권 우승[8] 1988 서울 올림픽 은메달[9],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은메달[10]이라는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6. 기타

동시대의 슈팅가드였던 레지 밀러가 특히 높이 평가하던 선수였는데, Open Court란 토크쇼에서 자신이 상대했던 선수들 중 최고의 슈터라고 한 바 있다. 그런데 기묘한 평도 남겼는데 냄새가 너무 심해서 막기 힘들었다고도 평했다. 사실 치즈를 많이 먹는 백인들은 땀이 뻘뻘 나면 암내가 심하게 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페트로비치는 음식도 미국식과 다른 동유럽이라 더욱 냄새가 심했을 것이다.[11]

7. 관련 문서



[1] 조던을 상대로 23득점, 26득점을 기록했다.[2] 해당 시즌 퍼스트 팀 가드는 마이클 조던마크 프라이스였고, 세컨드 팀 가드는 존 스탁턴조 듀마스였다. 페트로비치는 팀 하더웨이와 함께 서드 팀에 선정되었다.[3] 필드 골 성공률 51.8%, 3점 슛 성공률 44.9%[4] 그중에서 한 명을 뽑는다면 초대 대통령인 프라뇨 투지만이 있다.[5] 이 다큐멘터리는 과거 형제처럼 지냈던 구유고 선수들이 유고슬라비아 전쟁과 국가분열을 거치며 어떻게 갈라서게 되었는지를 조명하고 있다. 디박과 페트로비치는 절친한 친구였으나 내전을 계기로 원수가 되었고, 페트로비치가 요절하며 관계 회복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2020년대의 NBA에도 많은 구유고 연방 출신 선수들이 뛰고 있으나 다행히 이들은 서로 자주 만나며 잘 지내는 듯.[6] 블라디 디박과 페야 스토야코비치는 세르비아, 토니 쿠코치와 디노 라쟈는 크로아티아 국적이다.[7] 팀은 3위였지만 대회 MVP로 선정되었다.[8] 이때는 대표팀 동료 토니 쿠코치가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9] 아비다스 사보니스가 뛰는 소련 대표팀이 금메달을 차지했다.[10] 상대가 드림팀 1기였으니 도저히 답이 없었다. 크로아티아 대표팀의 에이스였지만 팀이 처절하게 발려버렸으니.[11] 식습관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체취가 심하다고 느낄 수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인들 중 별로 체취가 심하지 않은 사람도 미국인들이 느끼기엔 마늘 냄새가 다소 나는 경우가 있으며, 반대로 미국인들에겐 치즈 냄새가 많이 난다. 다른 문화권 사람을 만났을 경우, 그 문화권에서 많이 먹는 음식을 본인 문화권에서 별로 먹지 않는 경우 그 사람에게 고약한 체취가 난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같은 아시아라도 (한국인 기준으로) 식습관 차이가 크지 않은 일본에 가면 냄새를 별로 느끼지 못하다가 동남아시아에 가면 식당 같은 데서 냄새가 많이 난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