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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춘추전국시대에 존재하던 국가. 서로 다른 한자를 쓰는 2개국이 있어 구분할때 주의를 요한다. 춘추시대에는 한국어 독음이 동일한 국가들이 꽤 많아 혼란스러운데, 이쪽은 그러한 사례들인 진(晉, 陳, 秦), 위(衛, 魏), 조(趙, 曹), 노(魯, 潞)[1] 등과 달리 모두 듣보잡이라 헷갈릴 일 자체가 없다.2. 등(鄧)
2.1. 개요
국성은 만(曼)인 이성제후국. 특이하게도 이 나라는 주나라 무왕에게 분봉된게 아니라 상나라의 왕 무정에게 분봉되었다 한다[2]. 역사가 기원전 10~11세기까지 올라간다. 목야대전 당시 제신에게 합세한 세력 목록에서 등나라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데, 아마 중립을 지키거나 소극적이나마 주나라의 편을 들었던 모양. 그래서 상나라의 제후국이었음에도 멸망당하지 않고 국체를 그대로 인정받은게 아닌가 싶다. 등나라의 위치는 오늘날 허난성(河南省) 뤄허시(漯河市)였는데, 이곳은 조조가 도읍으로 삼았던 허창(許昌)의 바로 남쪽이다. 다시 말해 주나라에게 밉보였다면 바로 쓸려나갔을 위치였다는 말. 다만 당연하게도 환대받은 것 역시 아니었는지, 서주 초기에 나라 위치가 옮겨지기는 했다.이후로는 합스부르크 가문 마냥 결혼 동맹으로 국가를 유지했던 듯. 주 왕실이나 다른 희성 제후국들과 혼인 기록이 좀 남아있다. 심지어 등나라를 멸망시킨 초문왕은 등나라 최후의 군주인 기후(祁侯)의 외조카[3]였다. 초문왕이 이웃한 신나라를 쳐서 멸하고 돌아오며 등나라에 방문하자 등 기후는 외조카가 왔다며 연회를 베풀었다. 등나라의 신하들은 이때 초문왕에게 등나라를 공격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붙잡아 억류하자고 군주에게 간언했으나 무산되었는데, 과연 본국으로 돌아간 초문왕은 재차 군사를 일으켜 등나라를 쳤다. 이에 등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기원전 678년).
2.2. 역대 군주
- 등만숙(鄧蔓叔) - 상나라 왕 무정에게 분봉.
- 등공(鄧公) - 상나라 말기의 군주.
- 등백(鄧伯) - 서주 초기의 군주.
- 등공(鄧公) - 서주 초기의 군주.
- 등공(鄧公) - 서주 중기의 군주.
- 등공(鄧公) - 서주 중후반기의 군주.
- 등공(鄧公) - 서주 말기의 군주.
- 등공 오리(鄧公 午離) - 춘추시대 초기 군주.
- 등공 목(鄧公 牧) - 춘추시대 초기 군주.
- 등공 승(鄧公乘) - 춘추시대 중기 군주.
- 등 기후(鄧祁侯) - 등나라의 마지막 군주.
3. 등(滕)
3.1. 개요
국성이 희(姬)인 동성 제후국. 국조는 착숙 수(錯叔繡)로 문왕의 14번째 아들이다. 존속기간 내내 약소국을 벗어나지 못하여[4] 이웃한 노나라의 속국 취급이었으며, 기원전 414년에 월왕 구천의 공격으로 한 번 망했다가 곧 복국된 사례도 있다.그나마 이 나라가 유명세를 얻게된 것은 맹자의 한 장을 차지하는 등문공편 덕분. 등문공은 태자 시절에 송나라에서 맹자를 만나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이 때문이었는지 아버지 등정공이 죽고 공위를 계승하자 맹자에게 사람을 보내 상례와 나라 다스리는 법, 이웃한 강대국 제와 초를 대처하는 법 등에 대해 질문을 구한다[5]. 맹자는 등문공의 이러한 자세를 매우 훌륭하다 칭찬하고 있으며, 덕분에 등문공은 후세에도 명군으로 알려졌다. 이후 등문공이 맹자의 가르침을 잘 따라 국가를 운영했는지에 대한 후일담은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원체 재위기간이 짧기도 했고[6], 워낙 체급이 작은 나라가 되다보니 한계가 있었던 모양. 등문공 사망 이후 30년을 못 넘기고, 마지막 군주인 등원공 때에 송강왕에게 멸망당했다. 정확한 멸망 년도도 기록에 남아있지 않을 정도[7]로 듣보잡 취급이다.
묵자와 공수반이 이 나라 출생이라고 전해진다.
3.2. 역대 군주
- 1. 착숙 수(錯叔繡)
- 2. 등공(滕公)
- 3. 등후(滕侯)
- 4. 명중(命仲)
- 5. 등후 호(滕侯虎)
- 6. 등백 문(滕伯文)
- (군주 불명)
- 등중(滕仲)
- 등후 소(滕侯𩵦)
- 등후 곡(滕侯轂)
- (군주 불명)
- 18. 선공(宣公) 영제(嬰齊)
- 19. 효공(孝公) 정(鄭)
- 20. 소공(昭公) 모백(毛伯)
- 21. 문공(文公) 수(繡)
- 22. 성공(成公) 원(原)
- 23. 도공(悼公) 녕(寧)
- 24. 경공(頃公) 결(結)
- 25. 은공(隱公) 우무(虞母)
- 26. (군주 불명)
- 27. 등후 측(滕侯昃)
- 28. 고공(考公) 균(麇)
- 29. 정공(定公)
- 30. 문공(文公)
- 31. 원공(元公) 굉(宏)
[1] 이 경우는 전자는 유명한 반면 후자는 듣보잡이라 혼란스러운 경우는 거의 없다.[2] 출처는 호후선(胡厚宣), 『은대봉건제도고(殷代封建制度考)』[3] 혹은 사위라는 설도 있다.[4] 오죽하면 후작으로 분봉받았으나 후에 동성 제후국임에도 불구하고 자작으로 강등당했다.[5] 맹자 등문공편은 고대 국가의 토지 제도인 정전법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6] 기원전 324년에 즉위해서 316년에 죽었다. 즉 재위기간 8년.[7] 기원전 296년경에 등나라가 멸망했으나 정확한 시점은 불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