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의 前 외국인 선수 라몬 라미레즈에 대한 내용은 라몬 라미레즈(1982) 문서 참고하십시오.
이름 | 라몬 산토 라미레스 (Ramón Santo Ramírez) |
생년월일 | 1981년 8월 31일 ([age(1981-08-31)]세) |
국적 | 도미니카 공화국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6년 텍사스 레인저스 자유계약 |
소속팀 | 히로시마 도요 카프 (2002) 콜로라도 로키스 (2006~2007) 캔자스시티 로열스 (2008) 보스턴 레드삭스 (2009~2010)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2010~2011) 뉴욕 메츠 (2012)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2013) 볼티모어 오리올스 (2014) 티그레스 데 킨타나 로오 (2015) |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 |
2010 |
멕시코 시리즈 우승 반지 |
2015 |
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동하는 릴리버. 한국에서의 별명은 람람이2. 선수 생활
15살이라는 매우 어린 나이에 텍사스 레인저스에 입단하여 촉망받는 유망주로 손꼽혔으나, 부상으로 인해 1998년 방출되었고, 잠시 코카콜라 공장에서 일하면서 재기를 꿈꾸다가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도미니카 캠프에 들어간뒤 2002년 일본 프로야구에 히로시마 카프 선수로서 첫프로 데뷔를 했다.[1]그후 일본에서 별다른 기록을 남기진 못했지만 이때 뭔가를 본 뉴욕 양키스가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35만 달러의 이적료를 주고 마이너계약해 미국무대로 돌아온다.
하지만 현질을 야구의 꽃으로 생각하는 양키스답게 젊은 불펜 투수가 뛸 자리는 없었다. 메이저리그 콜업이 임박했던 2005년 이전 시즌 콜로라도 로키스의 마무리 투수였던 숀 샤콘[2]을 트레이드해오며 콜로라도로 라미레즈를 트레이드 시켰다.[3]
그러나 라미레즈가 콜로라도에서 불펜투수로 큰 활약을 펼치지 못하자,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호르헤 데 라 로사와 트레이드했다. 캔자스시티에서 제대로 된 활약을 보이지 못하던 데 라 로사는 콜로라도에서 포텐셜이 폭발하여 재계약까지 달성하며 로키스의 2선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라미레즈 또한 캔자스시티에서 대폭발하며 시즌 100패가 예상되던 캔자스시티에서 호아킴 소리아와 론 메헤이, 레오 누녜즈와 함께한 불펜진과 길 메시[4] 와 잭 그레인키가 활약하며 탈꼴찌에 성공했다.
덕분에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들어온 러브콜로 당시 잉여로 취급되던 코코 크리스프와 맞트레이드되었다. 그러나 보스턴에서는 이전의 평가에 비해 부족한 성적을 내며 박한 평가를 받았다. 팀내 적응에 문제가 있었다는 듯.
그래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달랑 유망주 하나 받고 팔려가는데 여기서 다시 회복, 샌프란시스코의 핵심 불펜으로 활약했다. 2010년 샌프란시스코 우승의 주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무기는 150km 전후의 패스트볼 140대의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아무래도 속구 구속이 딸리는 편이기 때문에 평균 이상의 슬라이더로 먹고 사는 스타일의 투수다.
처음 1982년생 라몬 라미레즈가 두산 베어스에 영입될 때 이 선수인 줄 알고 수많은 해야덕들이 설레었으나, 듣도보도 못한 라미레즈가 영입되자 모두 할말을 잃었다.
2011년 12월에 앙헬 파간 ↔ 안드레스 토레스 + 라미레즈 딜로 뉴욕 메츠로 트레이드되었다. 그러나 메츠에선 불만 지른 탓인지 시즌 종료 후 팀과 재계약을 하지 못했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3. 관련 문서
[1] 참고로 유일의 청정 40-40 알폰소 소리아노와 먹튀로 유명한 에스마일린 카리대 역시 이곳 히로시마 카프 출신이었다.[2] 여담이지만, 마무리일 때 방어율이 7점대라는 건 안 자랑. 당시 콜로라도의 대형 방화 불펜진에는 팀 하리칼라도 있었다.[3] 샤콘은 의외로 양키스에서 쏠쏠하게 활약을 하며 FA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이적했으나 당시 휴스턴의 맹렬한 빈타에 힘입어 9게임 연속 노디시전을 기록하면서 멘탈이 붕괴, 시즌 중 불펜 강등을 제안받자 휴스턴 단장이던 에드 웨이드에게 테이크 다운하며 장렬하게 방출, 메이저리그 커리어 아웃을 달성했다. 웨이드 단장의 업적은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에드 웨이드 항목 참조.[4] 어깨 부상으로 인한 부진이 길어지자 자신이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무려 1200만 달러의 연봉을 포기하고 과감히 은퇴를 선언한 그 성인군자분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