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먼드 머리 Raymond Murray | |
본명 | 레이먼드 리로이 머리 Raymond Leroy Murray |
출생 | 1913년 1월 30일 |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 |
사망 | 2004년 11월 11일 (향년 91세) |
미국 캘리포니아주 엔시니터스 | |
복무 | 미합중국 해병대 |
최종 계급 | 미국 해병 소장 |
복무 기간 | 1935~1968 |
학력 | 텍사스 농공업 칼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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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고 1935년 텍사스 A&M 칼리지를 졸업하고 OCS과정을 수료하고 해병 소위로 임관했다. 샌디에이고의 제2해병여단에서 복무했고 상하이에 있는 제2해병대대에서 복무하다가 베이징 대사관 해병호위대 소속이 되었으며 중위로 진급했다.1941년 대위로 진급했고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영국을 잇는 항로인 아이슬란드의 제1해병임시여단 제6해병증편연대 소속으로 있다가 소령으로 진급했고 제2해병사단 6연대 2대대장으로 과달카날 전역에서 공을 세워 은성훈장을 받았다. 1943년 중령으로 진급했고 타라와, 사이판 전투에도 참가했다. 특히 사이판에서 총상을 입었음에도 대대를 지휘하며 해군십자장도 수여받았다.
1944년부터 본토 후방에서 지휘참모학교를 수료하고 제1특수해병여단 참모장, 해병대교육단장으로 복무했다. 1949년 제1해병사단 5연대 부연대장으로 임명되었다.
6.25 전쟁당시 증편시킨 제1해병사단으로 한국으로 건너와 낙동강 전선에서 북한군과 전투를 치렀고 인천 상륙 작전당시 한국해병대와 함께 제5상륙부대장으로 영종도에 상륙해 적의 저항을 격파하고 영종도를 장악하고 인천을 너머 서울로 진격했다. 이 공으로 육군의 수훈십자장을 수여받았다. 북진 당시 원산방향으로 북진했으며 중공군의 기습침공으로 전황을 뒤집기 위한 장진호 전투에 참가했다. 전투 후 두번째 해군십자장을 받고 대령으로 진급했다.
1951년 8월 귀국해 해병대사령부에서 복무하다가 해군전쟁대학을 수료하고 제1해병연대장으로 있다가 1958년 준장으로 진급했고 오키나와에 있는 제3해병사단장이 되었다. 1964년 소장으로 진급해 감찰관으로 복무하다가 베트남 전쟁 당시 제3상륙군단장으로 남베트남에 상륙하다가 건강문제로 인해 1년 후 사임했다. 결국 그해 소장으로 퇴역했다.
2004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