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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6 16:46:32

메타 샌디포드아테스트

론 아테스트에서 넘어옴
메타 샌디포드아테스트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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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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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샌디포드아테스트
Metta Sandiford-Artest
[1][2]
전 이름 로널드 윌리엄 아테스트 주니어
Ronald William Artest Jr.
출생 1979년 11월 13일 ([age(1979-11-13)]세)
뉴욕 주 뉴욕시 퀸스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출신학교 세인트 존스 대학교
포지션 스몰 포워드
201cm (6' 7")
체중 118kg (260 lbs)
프로입단 1999 NBA 드래프트 1라운드 16순위
시카고 불스 지명
소속팀 시카고 불스 (1999~2002)
인디애나 페이서스 (2002~2006)
새크라멘토 킹스 (2006~2008)
휴스턴 로키츠 (2008~2009)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2009~2010)
뉴욕 닉스 (2009~2013)
쓰촨 블루 웨일즈 (2014)
팔라카네스트로 칸투 (2015)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2015~2017)
지도자 사우스베이 레이커스 선수 육성코치 (2017~)
등번호 15번 - 시카고 / 인디애나[3] / 레이커스[4]
23번 - 인디애나[5]
91번 - 인디애나[6]
93번 - 새크라멘토
96번 - 휴스턴
37번 - 레이커스[7]
51번 - 뉴욕

1. 개요2. 일생3. 수상 내역4. 플레이 스타일5. 사건사고
5.1. 사소한 기행5.2. 대형 사고5.3. 초대형 사고
6. 기타

[clearfix]

1. 개요

미국의 농구인. 선수 시절 포지션은 스몰 포워드였다.

2. 일생

1979년 11월 13일 뉴욕 퀸스에서 3남 중 첫째로 태어나 라살 아카데미 시절에는 빌 에이버러 감독에게 농구 수업을 받고 실력을 일취월장시켜 엘튼 브랜드(픽스킬 고교), 라마 오돔(세인트 토마스 아퀴나스 고교)과 함께 미국 아마추어 체육협회(AAU) 팀으로 선발됐으며, 1997년 맥도날드 올 아메리칸 팀에 뽑혔다.

이때의 공적을 인정받아 세인트 존스 대학교로 스카웃된 뒤에는 프랜 프레실라 및 마이크 자비스 감독의 지도 아래 1999년 NCAA 전국대회 때 8강까지 올리는 쾌거를 선보였고, 뒤이어 NBA 드래프트를 신청하여 시카고 불스에 16번으로 뽑혀 입단했다. 이후 인디애나 페이서스, 새크라멘토 킹스, 휴스턴 로키츠,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뉴욕 닉스를 거치고 2014년에 중국 리그로 떠났다. 레이커스에서는 우승도 경험했다.

메타 월드 피스로 개명한 이후 맞이한 2011-12 시즌은 처참했다. NBA에 대한 대비가 되지 않은 몸상태로 리그를 맞이했고 전혀 경기를 뛸 상태가 되지 않았던 메타 월드 피스의 경기력은 최악이었다. 살이 잔뜩 쪄서 몸은 굼뜨고 대놓고 레이커스팬들조차 데릭 피셔와 함께 당장 쫓아내야 된다고 열을 올렸을 정도. 그래도 클래스가 있는 선수라 점점 컨디션을 끌어올리면서 정규 리그 후반이 될수록 자기 폼을 어느정도 찾기 시작했다. 득점력은 기대하기 힘들지만 스피드가 올라오고 수비력을 거의 되찾은 상태다.

2012-13 시즌이 끝나고 레이커스가 사치세를 줄이기 위해 월피를 사면시켰고, 이후 중국 리그에서 뛸거라고 언플을 하다 뉴욕 닉스와 계약합의를 봤다는 뉴스가 떴다. 하지만 출전이 그다지 많지 않았고 결국 이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가 2014년 2월 25일 팀 동료 비노 우드리와 함께 웨이버 공시당하면서 방출되었다. 본인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팀이면 어디든 달려가겠다고는 하지만 기행이 많았던 데다가 뉴욕에서 보여준 모습이 별로 좋지 않아서 그를 불러준 팀은 일주일 넘게 없다.

이후 CBA의 쓰촨 블루 웨일즈와 계약하면서 '판다 프렌드'란 이름을 썼고, 2015년 3월 25일 이탈리아 리그 세리에 A2 소속팀 팔라카네스트로 칸투(Pallacanestro Cantù)와 계약하는 등 타 리그를 전전하다가 7월에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 계약했다. 기량면에선 큰 기대는 할 수 없고 플레잉 코치같은 역할을 맡게 될 듯.

2017년 10월 23일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산하 G 리그 팀 사우스베이 레이커스와 선수 육성코치 계약을 맺었다.

3. 수상 내역

수상 내역
파일:NBA-Champion.pngNBA 챔피언 (2010)
파일:NBA 로고.svg 올-NBA 서드 팀 (2004)
파일:NBA 로고.svg NBA 올해의 수비수상 (2004)
파일:NBA 로고.svg NBA 올-디펜시브 퍼스트 팀 2회 (2004, 2006)
파일:NBA 로고.svg NBA 올-디펜시브 세컨드 팀 2회 (2003, 2009)
파일:NBA-Allstar2021.png NBA 올스타 (2004)
파일:NBA 로고.svg NBA 올-루키 세컨드 팀 (2000)

4. 플레이 스타일


카멜로 앤서니를 쩔쩔매게 만드는 영상.

역대 스몰 포워드르브론 제임스와 함께 대표적인 피지컬 깡패로 거론되는 선수. 키는 스몰 포워드로서 딱 평균 정도였지만 몸이 어지간한 빅맨들보다도 근육질이라 체중은 118kg에 달했으며, 육중한 체구와 달리 기동성과 민첩성이 있고 스텝도 부지런했다. 쉽게 말하면 체급과 똥파워는 사실상 빅맨이나 다름없는데 주력이나 사이드 스텝은 스윙맨의 그것이었다.

전성기 때는 이 막강한 피지컬을 앞세워 크고 강한 5번부터 작고 빠른 1번까지 모든 포지션을 막을 수 있는 전천후 수비수, 당대 최고의 에이스 스토퍼로 활약하며 DPOY까지 거머쥐었다. 빠른 손놀림을 이용한 스틸이나 오펜스 파울 유도에도 능한데다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으면서 상대의 짜증을 유발하는데도 능숙했으며, 나이를 먹고 발이 느려진 레이커스 시절에도 수비력만큼은 인정받았다.

받아먹기 3점이 주무기였던 브루스 보웬이나 셰인 배티에 등 다른 스윙맨 수비수들하고는 달리 공격에서도 묵직한 몸을 이용한 돌파 및 포스트업, 점퍼로 경기당 20득점 정도는 심심치않게 올려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신중하지 않은 슛셀렉션과 심한 기복 때문에 에이스로 내세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5. 사건사고

5.1. 사소한 기행

파일:ron11.jpg
이게 예술가선생의 음반자켓이다.

5.2. 대형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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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와의 경기 전반 종료전 덩크를 성공시킨뒤 돌아가다가 썬더의 가드인 제임스 하든에게 UFC에서나 볼 법한 초강력 엘보 어택을 정통으로 날린 적이 있다.[10] 물론 플래그런트 2를 먹고 즉시 퇴장당했지만, 하든은 그 자리에서 쓰러진 뒤 실려나갔고 뇌진탕 증세까지 보였다. 세레모니 도중에 자기도 모르게 그랬다면서 억울하다고 했으나 그 장면을 본 시청자들은 레이커스 팬들조차 한 목소리로 중징계를 넘어 영구 퇴출시키라는 반응도 나왔다.[11]

실질적으로는 2010-11 시즌 댈러스 매버릭스와의 플레이오프 마지막 경기에서 앤드류 바이넘이 후안 호세 바레아에게 범한 악질적인 엘보우 어택과 동급인 5경기 징계를 예상했으나, 그때보다 더 악질적인(한마디로 플레이와는 아무 상관없이 가다가 사람때린거다. 그것도 급소를.) 폭행을 가한 것이라 이것도 부족하다는 주장이 대세. 최종 징계는 7경기 출장정지이다.

5.3. 초대형 사고


가장 큰 사건은 2004-05 시즌에 관중을 폭행한 사건이었다. 2004년 11월 19일, 더 팰리스 오브 어번 힐스에서 열린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와의 경기에서 경기 종료까지 45.9초가 남았고, 스코어는 97:82로 인디애나가 이기고 있었다. 이때쯤이라면 남은 시간을 물리적으로 고려해도 경기 결과가 뒤집힐 일은 없기 때문에 관행적으로 타임아웃이나 파울을 해 불필요하게 시간을 끌지 않는다.

그러나 디트로이트의 센터 벤 월러스가 레이업 슛을 시도하다가 아테스트가 좀 거친 파울을 범했다. 그러자 화가 난 벤 월러스는 아테스트의 가슴을 강하게 밀쳤다. 이때 아테스트는 전혀 대응을 하지 않았는데, 2003-04 시즌을 앞두고 어린 딸이 "아빠가 싸우는 것 보기 싫다"고 한 것에 자극받아 2003-04 시즌 내내 싸움으로 인한 징계를 한번도 받지 않았다. 실제로 이 당시에도 하드 파울을 하긴 했지만 월러스나 다른 선수들과 몸싸움을 하진 않았다. 오히려 스티븐 잭슨 등 다른 인디애나의 선수들과 디트로이트 선수들이 단체로 실랑이를 벌였다. 그럼에도 악동으로 유명했던 라쉬드 월러스는 제일 열심히 말렸다.[12]

이때까지만 해도 빌 월튼을 포함한 당시 해설진은 아테스트가 의외로 침착하게 대응한 것을 칭찬하며 벤 월러스의 과잉반응을 비판했다. 아테스트가 다소 더티한 플레이를 했지만 월러스가 한 건 대놓고 싸우자는 것이었기에.[13]

이후 아테스트는 다른 선수들이 벤 월라스를 말리는 와중에 중계진 앞 테이블 누워 있었고[14] 옆에서 코치가 그를 달래고 있었는데, 디트로이트 관중 중 존 그린이라는 사람이 들고있던 컵[15]을 그에게 던졌고 갑자기 봉변을 당하자 화가 나 관중석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엉뚱하게 진범인 존 그린[16]이 아닌 마이클 라이언[17]이 던졌다고 착각해 그에게 달려든 뒤 멱살을 잡고 "네가 그랬어?(Did you do it?)"이라고 묻자 라이언은 "아니야, 아니라고!(No, man. No!)"라고 항변했으며 이후 아테스트는 진범을 찾기 위해 나섰으나 갑자기 윌리엄 폴슨이란 관중이 그에게 음료수를 집어던졌다가 직후 난입한 동료 스티븐 잭슨에게 죽빵을 제대로 맞았다. 웃긴 건 이 난리가 일어나는 동안 진범인 존 그린은 아테스트를 뒤에서 붙잡고 가격하려고 하고 있었다. 마이클 라이언이 맞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라이언은 아테스트가 자신을 두들겨 팼다(pummel)고 주장했으나, 지역지 인디애나 스타의 기자 마크 몬티스(Mark Montieth)는 라이언이 맞지는 않았다고 회고했다. 이때 아테스트가 라이언을 쓰려뜨리고 그 위에 있었기 때문에 중계화면상으론 실제로 맞았는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

파일:external/clatl.com/1277133205-artest.jpg
스포츠일러스트레이트 표지에 실린 당시 사건. 저기 놀라는 관중은 아테스트에게 콜라가 든 컵을 던진 존 그린이 아니고 존 그린 옆에 옆에 있던 관중이다. 아테스트가 컵에 맞자 빡쳐서 컵이 날라온 쪽으로 달려가서 무쌍을 펼친 것이다. 저 관중은 가만히 서있다가[18] 아테스트가 자신에게 달려들거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근데 여기서 또 끝난게 아니었다. 코트로 난입했던 다른 관중인 Alvin "A.J." Shackleford 와 Charlie Haddad라는 사람과 또 다시 주먹다짐을 한것. 여기에 저메인 오닐까지 나서서 Charlie Haddad에게 강펀치를 날렸다. 경기는 더 이상 속개될수 없을 정도로 난장판이 되었고[19], 인디애나 선수들은 각종 오물을 맞으며,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론 아테스트의 행동은 프로선수로서는 물론, 한 사람으로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그의 행동은 모든 프로 스포츠계에 대단한 위협이 되었다. 관중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경기는 외면받을 것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 중징계를 내렸다.

- 데이비드 스턴 당시 NBA 총재의 발표

여파는 컸다. 경기가 끝난 바로 다음날에 징계가 내려졌다. 아테스트에게는 시즌 잔여경기 출전정지가 내려졌고, 덤으로 플레이오프 경기 13경기 출전정지라는 중징계가 내려졌다. 저 기간동안 아테스트는 자신의 급료를 지급받지 못했다. 그 돈이 무려 500만 달러였다. 팀 동료인 스티븐 잭슨은 30경기 출전정지에 170만 달러의 급료를 받지 못했고, 저메인 오닐도 15경기 출전정지를 먹었다.[20]

거기에 디트로이트 선수 일부도 징계를 먹었다. 최대한 싸움이 커지지 않도록 말린 벤 월라스는 6경기 출전정지. 천시 빌럽스와 앨든 캠벨, 데릭 콜맨등은 한경기 출전정지를 당했는데, 여기에 레지 밀러도 1경기 출전정지를 당했다. 어처구니없이 밀러는 폭력에 전혀 가담하지 않고 싸움을 열심히 말렸음에도 "분쟁 도중 벤치에 앉아있던 선수는 벤치를 뜨면 안된다"는 규정을 어겨 징계를 당했다.[21] 이때 격분한 디트로이트 관중은 인디애나 선수들에게 맥주를 포함한 음료수, 음식을 던졌는데 아무 잘못도 없는 밀러와 코치진 역시 이걸 그대로 맞았다. 물론 밀러가 엄연히 존재하는 규정을 어긴건 사실이지만 이 때는 팀의 리더로서 도저히 벤치에 얌전히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실제로 양 팀 선수중 벤치를 뜨지 않은 선수는 디트로이트의 테이션 프린스 뿐이었다. 그 외 벤치를 뜬 디트로이트 측 선수들도 3만 5천 달러의 벌금을 물었다.

더군다나 2004-05 시즌은 레지 밀러의 은퇴전 마지막 시즌으로, 은퇴 전에 밀러에게 챔피언 반지를 안기기 위해 의욕적으로 라인업을 꾸렸던 시즌이었다.

당시 인디애나는 정말 좋은 팀이었다. 2004-05 시즌 당시 에이스 저메인 오닐은 넘사벽이었던 팀 던컨과 케빈 가넷에 이은 올-NBA 세컨드 팀 포워드 자리에 올랐으며 MVP 투표에서도 3위에 올랐다. 1위 가넷이 워낙 압도적이라 큰 의미는 없었지만[22] 게다가 인디애나는 2003-04 시즌 양 컨퍼런스를 통틀어 유일하게 60승을 넘겼고(61승), 우승팀 디트로이트와도 치열한 승부 끝에 패했다. 또한 아테스트는 당시 처음으로 올-NBA 서드 팀/올스타/올해의 수비수상을 수상하면서 성장을 쭉쭉 하고 있었고 2004-05 시즌 초반엔 득점력까지 한 층 오르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2004-05 시즌에 인디애나는 디트로이트전까지 7승 2패를 기록하고 있었는데, 결과보다 중요한 것이 그 과정이었다. 시즌 초 인디애나는 부상에 시달렸다. 전 시즌에 주전 슈팅 가드였던 레지 밀러는 손이 부러져 한달 넘게 결장을 했으며, 에이스 저메인 오닐도 부상 때문에 개막전에 결장하고 이후 두 경기를 벤치에서 출장해야했다. 그러나 릭 칼라일 감독은 그 공백을 훌륭히 메웠다. 전 시즌에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벤치롤에 불만을 품은 알 해링턴을 보내고 데려온 스티븐 잭슨은 화려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에너지 넘치는 플레이로 알토란같은 활약을 했다. 여기에 스캇 폴라드, 오스틴 크로셔 등 주축에서 밀려난 베테랑 롤플레이어들의 활약, 무엇보다 사실상의 에이스 역할을 맡으며 득점력까지 크게 오른 (당시 이름) 론 아테스트의 역할이 컸다.

아테스트는 클리블랜드와의 개박전에서 31점 9리바운드를 올리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싸움 이전에 7경기동안 평균 24.6점 6.4어시스트 5.3리바운드를 올리며 슈퍼스타의 면모를 보였다. 당시 NBA는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느린 페이스 농구가 계속되던 시점이었다. NBA 전체 페이스 (48분당 팀들의 평균 공격권)은 90.9에 불과했는데, 이는 2019-20 시즌 100.3에 비해 10 가까이 낮은 수치였다. 당시는 40분 이상 뛰는 선수가 6명, 38분 이상 뛰는 선수가 23명이나 될 정도로 전체적으로 출장시간이 많았는데(로드 매니지먼트란 개념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평균 25점 이상 넣은 선수는 7명에 불과했다. (2019-20 시즌은 25점 이상 넣은 선수가 12명이었다. 2004-05 시즌 기준으로 24.6점은 NBA에서 손꼽히는 수치였는데, 아테스트의 주특기는 수비였으니 시즌 극초반 한정으로 아테스트는 요새로 따지면 카와이 레너드같은 모습을 보인 것이다.

게다가 아테스트가 랩앨범 홍보한다고 휴가 요청했다가 2경기 징계받은 이후 저메인 오닐이 복귀했을 때도 그 기세는 여전했다. 아테스트와 오닐이 시즌 처음으로 동반 주전출장한 필리전에 아테스트는 29점, 저메인 오닐은 39점을 기록했으며, 다음 뉴욕전에선 아테스트 22점/오닐 33점, 애틀랜타전은 24점/25점, 디트로이트전에선 아테스트가 24점 오닐은 20점을 넣고 있었다. 즉, 오닐/아테스트는 NBA 최강의 원투펀치가 될 기세를 보이고 있었으며, 디펜딩 챔피언이자 전 시즌 이들을 플레이오프에서 탈락시킨 디트로이트를 (심지어 주전들이 모두 건강히 출전했는데도) 디트로이트 원정경기에서 경기 내내 앞서가며 15점차로 여유있게 꺾은 걸 보면 알 수 있다.

즉, 시즌 초반에 부상 때문에 주춤했음에도 7승 2패에 디펜딩 챔피언을 이기고, 아테스트는 계속 성장해 이젠 득점력까지 갖춘 모습을 보였기에 밀러까지 복귀해 풀전력이 가동되면 도대체 얼마나 좋은 모습을 보일까 기대감이 크던 시점이었다. 이대로 가면 2004-05 시즌 역시 가장 강한 우승후보 중 하나가 될 게 유력했다. 근데 이 모든게 물거품이 된 것. 정규 시즌을 말아먹은 것도 크지만, 팀 내 주축 중 하나이자 최고의 수비수였던 아테스트 없이 우승 도전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런 마당에 이 사건으로 레지 밀러의 마지막 시즌이 초라해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난투극의 여파는 처참했다. 징계선수가 너무 많아 NBA에서 경기를 치르기 위해 요구하는 최소 선수 수인 8명을 채우기 급급할 정도였으니. 당장 다음 경기이던 올랜도 매직전에 인디애나는 딱 8명만 명단에 올렸고, 이 중 6명만 뛰었다. 주전 중 프레드 존스와 에디길은 1초도 쉬지 않고 딱 48분을 뛰었으며, 데이비드 해리슨와 제임스 존스는 43분, 오스틴 크로셔는 42분을 뛰었다. 당연히 이들은 모두 원래 벤치멤버였으며, 그나마 주요 식스맨으로 돌릴만한 선수는 존스와 크로셔 뿐, 심지어 해리슨은 신인이었다. 한동안 인디애나는 주전들을 한 명도 못 쓰는 처참한 상태로 뛰었으며, 심지어 머리수를 채우기 위해 NBA G 리그에서 세 명을 불러오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그 와중에 보스턴, 미네소타, 샬럿을 상대로 3연승을 달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후 7연패를 당하는 등 한계에 부딫힐 수 밖에 없었다.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불사른 밀러의 활약, 주전들의 자리를 메운 롤플레이어들의 분전 등으로 결국 44승 38패, 동부 6위로 플레이오프에는 나갈 수 있었지만, 결국 2라운드에서 디트로이트에게 패배, 레지 밀러의 챔피언 반지의 꿈은 미완으로 종료된다.

이 사태의 원인 제공자, 음료수 투척범 존 그린은 법원으로부터 2년간 보호관찰을 선고받았고, 30일간의 구치소 행. 그리고 앞으로 영원히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홈경기 및 관련행사에 영구적 참가금지가 내려졌다. 당연하게 본보기를 보여준 셈이다.

관중 폭행이라는 대형사고를 쳤지만 아테스트만 까일거리는 아니다. 음료수 투척이야 말할 필요도 없고, 월러스에게도 엄연히 잘못이 있다. 아테스트가 비매너 플레이를 하긴 했지만, 그는 대놓고 싸우자는 듯 아테스트 밀쳤으며 나중에 덤벼든 스티븐 잭슨과도 붙으려고 했다. 적극적으로 말린 라쉬드 월러스가 아니었다면 선수들끼리 크게 한판 했을 것이다.

사실 주범이 아테스트이고 가장 큰 잘못을 저지르긴 했지만, 전대미문의 대사건이 일어난 데는 일을 키운 인디애나 선수들과 일부 디트로이트 관중들에게 골고루 잘못이 있다. 선수의 관객석 난입은 이때만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지 1년 좀 더 지난 2006년 1월에 뉴욕 닉스시카고 불스의 경기에선 뉴욕 선수인 안토니오 데이비스가 자신의 아내와 한 팬이 시비가 붙은 것을 보고 걱정이 되어 이를 만류하기 위해 관중석에 난입했으며[23], 1995년에는 휴스턴 로키츠의 버논 맥스웰이란 똘끼로 유명한 선수가 관중석에 난입해 팬의 죽빵을 갈긴 적도 있다.

그러나 맥스웰의 사건에서는 동료의 돌발행위에 휴스턴 동료들과 관계자들이 바로 달려들어 말린반면, 아테스트 사건에서는 (말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스티븐 잭슨과 저메인 오닐이 오히려 같이 폭발해 사람들을 패고 다녔으며, 거기에 성질이 불같은 디트로이트의 관중들도 같이 대응해 사건이 점점 커진 것이다. 맥스웰의 경우처럼 주변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대응했으면 또라이 한 명의 돌발행위로 끝날 수도 있었던 사건을[24] 주변 사람들이 덩달아 흥분해 엄청난 사건으로 키운 것. 이런 면에서 동료가 미친 짓을 하고 있는데 말리긴 커녕 같이 난입해 펀치를 날린 잭슨, 사태가 간신히 진정되어 가는데 또 주먹을 쓴 오닐의 잘못도 엄청나게 크다. 개념없는 행동을 한 팬들도 마찬가지다.[25]

발단이 어찌되었든 간에 프로 스포츠 입장에서 최대의 고객은 관중일 수밖에 없다. 스턴 총재가 분노한 것도 당연지사. 이에 빌리 헌터와 알론조 모닝이 이끌던 선수노조는 "사무국의 결정이 너무 가혹하다. 팬들에게도 잘못이 크다."며 반발했지만 사무국은 이번만큼은 인정사정 봐 주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고, 언론 역시 사무국의 편을 들어주었다.[26]

스턴 총재가 분노한 것은 이 때문만이 아니었다. 사고가 터지는 동안 장내 보안까지도 허술했다. 당시 그 어떤 경호원들도 적극적으로 이들을 말리지 못했고 이에 대한 책임 또한 디트로이트 역시 피할 수 없었다. 결국 2001년 9.11 테러로 강화되었던 경기장 보안은 더욱 강화되었다. 이로 인해 디트로이트 구단은 매 경기를 플레이오프 수준의 보안상태를 유지하며 치러야 했고, 장내에는 무장 경관이 두 배로 늘었다.

시즌 중에는 자숙하는가 싶더니 2005년 12월에 펜트하우스와 인터뷰에서 "벤 월라스와 링에서 붙고 싶다."며 맞짱을 신청했다. 물론 월라스가 이걸 들을 리가 없었다.

2021년 이 사건에 대한 다큐멘터리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다. 출연은 메타 샌디포드아테스트와 제메인 오닐, 잭슨 등 3인방과 레지 밀러, 벤 월라스, 당시 감독, 수사한 경찰, 검찰, 경비원, 싸움에 관여한 관중[27][28] 등 당시 관련된 사람들이며, 이들의 인터뷰에서 더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다. 은퇴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인디애나의 왕이었던 밀러의 모습도 비추어진다.

6. 기타


[1]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인명을 표기할 때 줄표(-)를 무시한다. 줄표의 앞뒤를 별개의 단어로 보아 띄어 쓰지는 않되, 연음 등은 고려하지 않고 표기한다.[2] 2011-12 시즌을 앞두고 Ron Artest에서 Metta World-Peace로 개명했고 중국 리그와 유럽 리그에서 The Panda's Friend로 또 개명한 뒤 2020년 5월 Metta Sandiford-Artest로 또또 개명했다.[3] 2001-02 시즌, 2005-06 시즌.[4] 2010-11 시즌 ~ 2012-13 시즌.[5] 2002-03 시즌 ~ 2003-04 시즌.[6] 2004-05 시즌.[7] 2009-10 시즌, 2015-16 시즌 ~ 2016-17 시즌.[8] 미국의 전자제품 종합 체인점으로 2008년 이후 같은 전자제품 종합 체인점인 베스트바이와의 경쟁에서 경영악화로 미국 전역 대다수의 점포가 문을 닫았다.[9] 정확히는 Panda Friend가 아니라 The Panda's Friend라고 트위터에 올렸다. 한국 팬들은 팬다 친구가 아니라 친구 팬다 라며 드립을 날려댔다.[10] 마치 존 존스 vs 스테판 보너전에서 나온 백스핀 엘보와 동급 수준이다.[11] 칼 말론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팔꿈치는 농구에서 가장 위험한 부위 중 하나이기 때문에 현재 NBA규정으론 컨택이 있을시 고의성 여부와 상관없이 징계를 내리고 있다. 굉장히 단단한 신체부위인데다가 이걸 휘두르면 이 사건에서처럼 높은 확률로 머리를 다치기 때문. 그런데 루스볼을 잡거나 리바운드 도중 한 것도 아니고 세러모니 도중 저랬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심지어 당시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컨택이 일어난 직후 하든이 쓰러져있는데도 신경도 쓰지 않고 백코트를 하다가 썬더 선수들이 분노해 덤벼드는 그제서야 반응을 보였다. (그것도 험악한 표정으로 싸우려는 반응) 애초에 엘보우를 휘두르기 전 하든과 몸이 닿아있는상태였기 때문에 그 위치에 하든이 있었다는 걸 모를리가 없다. 진짜로 세러모니하다가 실수로 누굴 쳤으면 이런 반응이 나와야 정상이다. 여기서 카를로스 부저는 심판을 실수로 때리자 바로 깜짝 놀라 그를 살폈으며, 다행히 심판이 다치진 않았기에(얼핏 급소를 맞은 듯 보이지만 실제론 허벅지 안쪽에 맞았다) 심판도 웃으며 넘겼다.[12] 월러스는 큰 키와 엄청난 운동능력, 기술을 겸비했음에도 불성실한 태도와 다혈질인 성격(한 시즌 41개 테크니컬 파울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갖고 있다.)으로 대성하지 못했던 대표적인 선수였는데, 2003-04 시즌에 끈끈한 팀워크를 자랑하는 디트로이트로 우승을 맛 본 이후 사고치는 빈도수가 거의 없어지다시피했다. 원래 성격좋기로 유명한 선수라 셀틱스 시절에도 베테랑으로 사고 안 치고 라커룸 리더 역할을 했다. 당연히 갱생을 하게 만들어준 디트로이트 멤버들과 사이가 좋았고 골밑 콤비였던 벤 월러스와 동료시절 팔꿈치를 교차시키는 세러모니가 있었는데, 적이 된 시카고 시절에도 두 팀이 붙으면 경기 전에 자연스럽게 이 세러모니를 했다. 두 월러스가 고작 2시즌 반같이 뛰었다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유대관계.[13] 승패가 결정된 경기에서 하드파울은 농구에서 불문율을 어긴 정도다. 크게 이기고 있는 팀이 속공에서 화려한 덩크를 하거나, 승패가 결정난 경기에서 종료 직전에 아무도 수비 안하는 틈을 타 득점을 하는 등, 저지르면 "저 놈 왜 저래"란 시선을 받을 지언정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날 정도의 비행이라고 보긴 힘들다. 이 때문에 월러스의 급발진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 것. 다만 월러스와 아테스트는 상당히 피지컬하게 농구를 하는 스타일로, 경기 내내 서로 밀고당기고 하면서 서로에 대한 스트레스가 쌓인 것이 폭발한 것. 여기서 마무리됐다면 경기 중 몸싸움이 조금 과열된 정도로, (아테스트가 대응하지 않았으므로) 월러스만 끽해야 경기 후 한 경기 정도 징계 받고 끝날 일이었다. 사실 싸움이 크게 번지지 않았고, 경기가 사실상 종료되었기 때문에 징계가 아예 없이 현장에서 월러스에게 테크니컬 파울 한개로 끝났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14] 이걸 두고 국내 팬들은 도발이라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당시 영문으로 된 중계를 들어보면 알 수 있듯이 현장에 있던 중계진은 누구도 이를 도발이라고 해석하지 않았다. 중계진 앞 테이블은 관중석 난입처럼 선수들이 절대 못 가는 공간이 아니며, 실제로 홈경기에서 맹활약을 한 선수들이 테이블 위에 올라가 홈팬들의 환호를 유도하는 팬서비스를 할 때 주로 여기 올라가서 환호를 유도한다. 게다가 중계석은 그 뒷줄에 기록담당관석이 한줄 놓여있고 그 사이 카메라 등 무거운 장비 이동을 위한 공간이 있기 때문에 관객석과는 꽤 거리가 있으며, 오히려 관객석 바로 앞에 있는 벤치보다 관객들과 거리가 훨씬 멀다. 실제로 아테스트가 맥주를 맞은 직후에 벌떡 일어나서 기록담당관 테이블을 뛰어넘은 다음 관객석까지 도달하는 데는 5초 정도가 걸렸다[15] 플라스틱 컵이었다. 당시 맥주가 들려있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위키백과에 따르면 다이어트 코카콜라였다고 한다.[16] 당시 화면에서 파란 셔츠를 입고 흰 모자를 쓰고 있던 남자 [17] 마르고 안경을 낀 백인. 영상을 보면 라이언은 당시 하필 아테스트의 정면에서 뭔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 때 분위기를 생각하면 당연히 호의적인 내용은 아니었을 것이고, 이미 흥분한 아테스트가 도발이라고 착각하기 충분했다. 물론 진짜 아테스트가 관중석으로 넘어오자 라이언의 표정은 경악으로 바뀐다.[18] 물론 당시 아테스트에게 야유를 하고 있긴 했지만 홈관중이 원정선수에게 야유를 날리는 건 사실 당연한 거고, 다른 정신나간 관중들처럼 물건을 던지거나 싸움을 건 것도 아니다. 애초에 저 상황에서 비매너 플레이를 한 아테스트를 야유하지 않을 피스톤즈 팬은 없었을테니 그냥 오지게 운이 없었던 것이다. 라이언은 이후 사건 관련 다큐나 영상 매체에서도 등장하지 않았고, 아테스트에게 맞았다고 인터뷰에서 주장한 거나 사건 관련해 아테스트를 고소했다는 소식 말고는 언론 노출이 없다. 여담으로 검색해보면 온라인 방송을 하는 마이클 라이언이란 사람이 "내가 그 마이클 라이언이 맞다. 아테스트한테 맞았다"라고 트윗을 한 흔적이 있는데, 2004년 당시 이미 성인이었던 사건의 피해자 라이언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젊은데다 외모도 체격도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어그로거나 그냥 개그성 드립인 것으로 보인다.[19] 어느 정도였냐면 종료 버저가 울리지 못했다.[20] 원래 25경기였으나 나중에 여차여차해서 감면되었다.[21]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밀러는 정장차림으로 게임에서 플레이 하지도 않았다.[22] 1위표 중 단 세 표를 제외하고 싹쓸이했다.두 표는 오닐, 나머지 한 표는 페자가 가져갔는데 워낙 가넷의 점수가 압도적이라 MVP 2위는 1위표를 단 하나도 못 받은 팀 던컨이었다. 어차피 1위표는 가넷이 거의 다 가져가서 2, 3위표를 많이 받은 던컨이 2위였던 것이다. 참고로 이때 파워 포워드 위상을 보면 가넷과 던컨이 동급이었으며, 그 다음에 오닐과 막 떠오르던 디르크 노비츠키가 비슷했다. 한때 던컨/가넷을 위협하던 웨버가 부상으로 기량저하가 시작되어 기량이 한층 죽었으며, 3년 뒤 MVP를 수상하는 노비츠키는 가넷과 던컨보다 아직 전성기가 아니었다. 어쨌든 NBA를 호령하는 파워 포워드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전성기가 갑자기 끝난 선수라 의외로 많이 간과되는 부분이다. 게다가 오닐은 고졸로 데뷔해 벤치를 달구다 인디애나로 이적한 이후 포텐이 폭발해 노비츠키와 비슷하게 한창 치고 올라가던 시점이었다. 오닐은 드래프트 직후인 포틀랜드 시절 출장시간을 거의 못 받을 때 성장을 거의 못했다는 점에서 보듯이 주변환경의 영향을 좀 크게 받는 편인데, 이때 본인 잘못으로 장기결장하고 이루 계속 기량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게 된다. 결국 그는 나이상 아직 전성기도 아닐(만 25세) 2003-04 시즌의 위상이나 기량을 다시 회복하지 못한다.[23] 데이비스는 이때 전혀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싸움을 말렸고, 관계자들이 말리자 얌전히 퇴장했기 때문에 여론이 우호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NBA는 그에게 5경기 징계를 내렸다.[24] 맥스웰은 10경기 징계와 2만 달러의 벌금을 받았다. 중징계지만 이 사건에 비할 바는 아니다.[25] 다큐멘터리에선 일부 몰지각한 팬들의 악행이 나오는데, 퇴장하는 인디애나 선수들에게 관중석 의자를 뜯어서 집어던지는 짓거리까지 했다.[26] 저메인 오닐은 이 일에 대해 분명 자신의 잘못이 있던건 사실이지만 자신을 순식간에 깡패같은 선수로 매도하는 언론에 매우 불만스러워 했다. 오닐은 그 일이 있기전 그리고 그 후에도 커리어에서 논란이 될만한 행동을 한적이 없고 성실하게 선수생활을 한 선수였다. 그때의 난투극도 동료인 론 아테스트가 존 그린이 던전 물체를 맞아 일어난 것이었고, 그게 만약 음료가 든 컵이 아닌 다른 위험한 무언가였다면 크게 다쳤을 것이 뻔했기에 본인도 젊은 나이에 흥분해 달려든것. 거기다가 아직 흥분도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찰리 하다드가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자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는것이라고 여겨 주먹이 날아간것이다.[27] 여기서 인터뷰한 관중은 맥주를 던져 싸움을 시작한데다가 나중에 샌디포드아테스트를 뒤에서 때리기까지 했던 존 그린과 코트로 뛰어내려가 선수들에게 덤벼들었다가 샌디포드아테스트와 저메인 오닐에게 맞은 A.J. 섀클포드와 찰리 하다드였다. 이들이 선수들에게 맞긴 했어도 애초에 코트 위로 내려가 선수들에게 덤벼든 것이 잘못이었으나 또 다른 가해자들이라고 볼 수 있으며, 실제로 이들은 모두 법적 처벌과 함께 디트로이트 경기 출입이 금지되었다. 순수한 피해자라고 볼 수 있는 마이클 라이언은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28] 여기서 팀 보안관계자는 찰리 하다드에 대해 그간 사고를 쳐왔기 때문에 안 그래도 그의 시즌티켓을 몰수하는 조치를 취할 예정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말의 진위여부와 별개로 하다드는 인터뷰 내내 책임회피를 하는 뻔뻔한 모습을 보였는데, 자신이 코트 위로 '뛰어내려가는" 모습이 카메라로 찍혔음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밀려 내려갔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섀클포드와 그린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태도를 반성하는 이는 없었다. 여담으로 사건 당시 팬들이 대규모로 모였던 선수입장로 근처에 실제로 한 노인이 인파에 깔렸다가 구출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