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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2 00:24:26

류성룡(징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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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작중 행보
2.1. 임진왜란 이전2.2. 임진왜란 이후
3. 연출력
3.1. 인물의 입체적 조명 문제
4. 여담5.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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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주인공. 김상중[1]이 연기한다.

2. 작중 행보

동인 온건파에 가까웠고 서인과도 두루 친분을 나눈 편이었지만, 이 작품에서는 원칙을 준수하는 원리주의자적인 모습을 보여준 한편 자신들만이 정의가 아니며 저 측에도 정의가 있다는 중도론 적인 면도 보여준다.[2] 또한 책임을 위해 권력을 가차없이 포기하는 면모도 보여준다.

하지만 감성적인 모습도 지니고 있어 기축옥사에서 죽은 수많은 선비들을 끝까지 마음에 두어 오히려 이산해가 중간에서 서인과 류성룡을 중재하는 중도파로 보일 정도로 기축옥사의 책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3] 한편으로 순진한 면도 있어 송익필이 기축옥사가 왕의 의지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자 선조를 의심하게 되고 선조에게 죽음을 각오하고 이를 직접 묻지만 되려 선조의 눈물어린 연기에 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4] 정철이 장차 서인의 정국 주도를 위한다는 속셈을 숨기고 대의를 명분으로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주장하며 동인과도 화해하는 제스처를 취할 때도, 이를 믿고 세자 책봉에도 동의했으나, 미심쩍어한 이산해가 송익필의 계략임을 확인하고 이를 알려주자 진심으로 화합이 가능하다고 믿었기에 더 실망한다. 윤두수가 "저승에서 율곡을 만나면 사람을 잘 못 봤다."며 말할 것이라고 하자 "그렇게 쉽게 당하진 않습니다."며 반박한다.

2.1. 임진왜란 이전

전란의 조짐이 일자 능력있는 무관을 추천하는데, 이 때 정읍현감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천거한다. 이에 7품계나 건너뛰는 파격적인 승진에 서인들이 반발하고, 이순신에게 뇌물을 받았다는 소문까지 돌아 윤두수가 대사헌 직권으로 류성룡의 집을 수색하지만 탈탈 털어봐도 값나가는 물건 하나 안 나오고 발견된 건 이순신의 어머니가 보낸 누비옷과 안부를 전하는 언문 서찰 뿐이라, 류성룡의 청렴함이 입증되는 결과로 끝났다. 7화에서 왜변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말한 김성일의 진심을 듣고 선조의 지시도 받아서 직접 남해안 일대의 민심을 살피러 간다. 그 결과 왜변이 실제로 일어날지는 알 수 없으나 만에 하나 일어날 왜변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민심의 수습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8회에서 군제를 제승방략 체제에서 진관 체제로 개편할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신립과 선조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군역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한다고 선조에게 건의했지만 "하삼도의 민심을 다시 살피고 오는게 어떻겠냐"라는 대답을 들었다.

10화에선 왜란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동인들 틈에서 홀로 일어날 수도 있는 왜변을 대비해야 한다며 비격진천뢰와 거북선 제작을 지원해달라고 하지만 오히려 선조에게 "경의 말대로 했더니 민심만 나빠지고 명나라와 사이도 나빠지지 않았느냐"라며 잔소리만 듣고 쫓겨난다. 여담으로 비격진천뢰 실험으로 다친 이장손을 치료해주는데 실제로 류성룡은 의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11화에서 이산해의 도움으로 수군 폐지를 막아낸다. 이후 선조가 거북선 건조에 대한 장계를 받고 류성룡에게 추궁하자 자신이 시킨 일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12화에서는 선조에게 이순신 관련한 일로 추궁받지만 류성룡이 나라를 위해서 한 일이라는 걸 알기에 선조도 처벌하지 못한다. 이순신에게 군량미를 보낸 일을 선조가 명해서 했다는 식으로 하는 바람에 선조에게 거의 만고의 충신 소리를 듣게 된다.[5] 이후 소 요시토시가 올린 장계로 인해 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을 직감하게 되고 매우 근심어린 모습으로 이순신에게 장계를 보내고, 선조에게 도망가지 말라고 간언하는데 칼로 죽임을 당하게 되는 악몽을 꾸게 되면서 더욱 더 걱정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2.2. 임진왜란 이후

13화에서 부산진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선조가 대노하여 조정 대신들을 불러모으자, 그토록 대비해야한다고 했건만이라고 탄식한다. 북인들이 왜군이 아닌 왜적의 노략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아직 속단하긴 이르다고 주장한다. 이원익이 간언한대로 중앙군을 파견할 것이 결정되지만 유생들이 과거 시험 준비 등의 이유를 대면서 이를 따르지 않고 미적거리자 대노하며 너희같은 놈들 때문에 나라꼴이 이모양이라며 일갈한다. 이후 유생들이 병판 홍여순같은 인간 밑에서 일하기 싫은 것도 있다고 주장하자 그를 받아들여 선조에게 그를 파직하고 김응남을 병조판서로 천거한다. 이 때 마침 왜군이 동래를 점령하고 죽령으로 향하고 있다는 장계가 올라오자 놀라며 이건 왜변이 아닌 전쟁이라고 외친다.

14화에서는 도체찰사로서 군사를 이끌고 왜군을 막으려 자원하지만 신립이 자원함으로써 무산된다. 대신 신립에게 왜군을 조령에서 막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한 경상도 지역의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안집사와 초유사를 임명해야 한다고 하면서 김성일을 초유사로 임명하자고 선조에게 청한다. 선조는 물론 김성일이 잘못 보고하는 바람에 전쟁에 대한 대비를 제대로 못했다면서 김성일은 안된다고 하지만 경상도의 민심을 얻고있는 김성일이야말로 초유사에 적합하다고 설득하는데 성공한다.

15회에서는 신립이 탄금대에서 패배한 후 자결했다는 장계를 받은 선조가 반격의 기회를 도모한다는 명분으로 파천을 제시하자, 극구 반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는 선조의 분노에 막히고, 결국 비변사에서 파천을 준비하란 명을 받는다. 끝까지 파천을 반대하는 이들에게 찬동하는 이산해가 류성룡에게 주상이 왜군에 잡혀야 속이 시원하겠냐고 고함치자, 이에 지지 않고 반격을 명분으로 어디까지 파천을 갈 것이냐며 되려 이산해에게 호통치는 모습을 보인다.[6]
아무리 나라가 위기인 장면이라지만, 작가들이 드라마의 전개 흐름도 고려하며 썼을 것인데 이제껏 이산해와 그의 추종자들 때문에 일이 뜻대로 안 되니 혼자 끙끙 앓다가 갑자기 이산해에게 호통을 치는 장면이 나온다는 것에다 대고 이를 성장형 캐릭터라고는 보기 어렵다. 어느 성장형 캐릭터가 갑자기, 그것도 드라마 초반에 성장을 거의 완성해가겠는가. 따라서 그 당시 정국상 그냥 힘들어하긴 했지만 자기 소신은 분명한 캐릭터라고 생각하는 쪽이 나은 듯하다.

16화에서는 드디어 선조와 척을 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실제 역사의 기록으로 선조의 파천에 암묵적으로 동의했거나 오히려 파천을 주장했다고 볼 수 있는데, 극중에선 선조의 파천을 결사반대하는 모습으로 한결같이 묘사된다. 특히 광해군이 세자로 책봉된 후 장면에서 선조를 찾아가 말 그대로 눈물 콧물 다 쏟으면서[7] 절규하는 모습은 선조와의 감정대립이 절정에 이른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또한 자신을 유도대장에 임명해 선조가 도망가는 사이 시간끌기용 미끼로 삼은 것을 받아들이면서 백성을 내치고 도망가는 왕이 어디에 있단 말이냐!라고 분노하는 모습은 아예 두 사람의 관계를 철천지 원수처럼 보이게 할 정도. 하지만 곧이어 하늘을 원망하면서 현실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는 등 이성적인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파천을 말리느라 정신줄 놓은 사람처럼 보여진다. 개성에 도착한 이후 선조가 전쟁의 책임을 물어 이산해와 함께 류성룡을 파직하려 하자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로 대답, 선조를 당황시킨다.

17화에서는 선조의 행보에 반쯤 자포자기한듯 "전하께서 적을 맞아 끝까지 항전하고 만일 유고가 생기면 세자에게 나라의 후사를 잇게 하고자 세자를 세운 것 아니냐"는 등의 수위가 엄청난 발언들을 거리낌없이 투척하신다. 그래도 파직된 상태라도 종계변무의 공으로 얻은 정 1품 풍원부원군의 신분을 이용해 신명철과 이천리를 이광에게 보내는 등 어떻게든 전란을 극복하려 노력을 하고 함께 피난을 온 이장손이 제작하던 비격진천뢰와 부품들이 든 짐을 들어준다.

18화에서는 파천을 가며 이산해에게 선조에 대한 믿음에 의문을 품고 있음을 말한다. 이후에 이장손으로부터 사복을 받아 그것을 갈아입고 파천길을 따라간다. 평양에 도착하여 관아에서 잠시 쉬다가 사야가의 투항소식을 듣고 파직된 상태에서 회의장에 들어가 사야가 투항을 이용해 조총생산 및 보급을 주장한다. 이후 이항복으로부터 신각의 소식을 듣고 신각을 두둔하며 선조에게 가서 명을 거두어달라 청하자고 하나 처형을 위해 선전관이 벌써 파격되었다는 말에 당황해한다. 곧 이덕형이 신각의 승전소식을 가지고 오자 이항복과 함께 넋이 나가면서 신각의 억울한 죽음을 예견하고는 탄식한다. 그 후 백성들에게 식량을 나눠주면서 흐뭇해하는 선조 앞에 나타나서 백성들에게 헛된 희망을 심어줘선 안된다고 말해 초를친다.

19화에서 류성룡 말대로 임진강 패배 소식을 접한 선조에게 이제 속이 풀리냐는 비난을 들었지만 이내 이순신의 옥포 해전 승전보를 듣고 기뻐하자 류성룡도 다시 신뢰를 얻고 복직한다. 그리고 요동태수를 찾아가 왜의 정황을 듣고 이천리, 신명철과 함께 한밤에 첩보 액션을 벌인다. 당연히 이것도 실제에 없던 내용이다. 20화에서는 의주로 파천하려는 선조를 가로막는 백성들이 왕이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친다고 하자 류성룡은 어찌 나라의 근본을 망각하려 드는가며 설득하였다. 이후 요동태수가 원군을 데리고 당도한것에 잠시 기뻐할 새도 없이 윤두수의 평양성 전투 패배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진다.

21화에서 선조가 의주로 몽진한 직후 정주로 이동하였는데, 의주 몽진 소식에 민심과 치안이 악회되어 일부 난민들이 관아를 습격하여 군량미를 약탈하였고, 이를 진압하려다가 이들에게 얻어맞는다. 직후 22화에서 이들의 주범을 인질로 잡아 난민들에 대한 설득과 회유를 통해 군량미를 조달하도록 지휘하였다.

25화, 이제야 정객+애국재상으로써의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게 논란이 일 수도 있는 설정이란 거. 곽재우가 관아의 무기를 털었다는 보고를 받고 의병을 관군의 편제에 넣으려는 선조에게 저들을 그대로 두고 곽재우에게 벼슬을 내리면[8] 의병의 사기도 올리고 선조 자신의 실리도 지킬 수 있다고 간언하는 장면이다. 시기상 이미 곽재우에게 벼슬을 내리고 그와 김수의 갈등이 중재국면에 접어든 시점이다. 의병을 관군에 포함시키라는 당연한 조치에 광해와 신하들이 논박을 한다. 즉 의병 사기가 떨어진다, 관군에 소속되는걸 원치않는다고 진언한다. 드라마 상에서는 의병이 자발적으로 일어났고, 관군이 아니기 때문에 더 과감하고 신속히 일본군을 곳곳서 공격할 수 있는 효용성 때문에 그리 한 것으로 나온다.

26화에서는 비격진천뢰를 실전에 투입해 성과를 낸다. 그리고 광해군에게 우키타 히데이에를 잡는 작전을 건의한다. 다만 작전은 실패한다.

29화에서는 평안도 도제찰사로 관직에 복귀한다. 그러면서 선조에게 평안도에 한해 편의종사권[9]을 얻었다. 28화에서 진주대첩에도 개입한데 이어 31화에선 권율에게 행주산성으로 이동할 것을 지시하고 전투 발발후 물자를 모아 이빈에게 전달케 해 행주대첩에도 개입한다. 실제 도체찰사로 전란 총책임자였고 극의 주인공이다보니 임진왜란 주된 사건에 거의 개입하고 있다. 류성룡 말을 들으면 모든게 잘 풀리고 류성룡 말을 듣지 않으면 실패하거나 어렵워지는 식이다. 31화에선 벽제관 전투에서 패한 후 명군이 말리는 이일을 구타하면서까지 임진강 이북으로 후퇴해 진격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음에도 명군과의 합동작전을 전제로 권율을 행주산성으로 보내는 행동을 하고[10] 32화에서 명군이 평양으로 물러나자 패닉에 빠진다. 명군이 아군 장수를 구타하면서까지 물러나는데 그런 명군을 설득은 못했지만 권율을 북상시킨건 무슨 복심일까?

34화에서는 도성에서 왜군들에게 살해당한 백성들의 시신을 보고 졸도했다가 정신을 다시 차린 이후 한반도 남부의 군진영을 둘러 보겠다는 이유로 남쪽으로 내려가 이순신과 재회한다. 당시 실제 강화회담 중인데도 제2차 진주성 전투가 일어나거나 웅포 해전 같은 크고 작은 국지전이 일어났다. 그런 전시에 조선 전군을 이끄는 총사령관인 도제찰사가 중앙을 비우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함대 사령관인 이순신을 만나는 것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극중에서 류성룡이 이순신을 만나 재조산하라는 글귀를 얻은 후에 삶의 이유를 찾고, 국가재건의 의지를 다지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므로 재조산하를 통해 전란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인 극중장치로 설정한 것으로 봐야한다. 실제로 전란 중에 류성룡과 이순신은 서로 만나 회포를 나눌 짬조차 되지 않았다. 이 둘이 서로 만나는 것은 정유년 4월 2일 이순신장군이 선조에 의해 옥에 갇혔다가 풀려난 후에 만난게 전부이다. 하지만 이순신장군이 류성룡을 많이 그리워했는지 난중일기를 보면 꿈에 류성룡이 여러번 나오기도 한다.

35화에서 드디어 전시재상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노비면천법과 훈련도감 설치를 선조에게 건의했던 것이다. 하지만 공론을 이끄는 삼사에서 성리학의 신분질서를 무너뜨릴 것이라며 반대한다.

36화에서 비변사 도제조가 되어서 윤두수와 류조인을 제외한 비변사 당상들의 대다수 찬성을 이끌어내며 노비면천법과 훈련도감 설치를 이끌어낸다.

37화에서 류성룡은 송응창의 분조계략을 분쇄할 비책으로 광해군의 칭병을 내세우고, 광해군에게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다.

38화에서는 류성룡은 드디어 영의정에 자리에 오르게 되었으나 바로 명나라 황제의 칙서로 인해 선조와 조정은 격랑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던 중 선조가 선위를 결정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 류성룡은 선조에게 선위의 뜻이 광해군의 석고대죄를 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좋은 계책이라며 말하고 선조는 이에 웃음으로 답변을 대신한다. 그리고 선위를 받아들이려는 광해군을 찾아가 선위를 절대 받지 말라며 강하게 말린다.

39화에서는 광해군에게 폐세자를 주청하라고 은밀하 고한 사실이 드러난다. 그렇게 하면 명나라는 분할역치를 밀어붙이기 힘들고, 선조도 진짜 폐세자를 받아들일 수는 없으므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 송응창이 명으로 소환되고 광해군이 무군사를 이끌게 되자, 이것으로 남해의 왜적을 당장 쳐야한다는 윤두수의 의견에 지금은 힘을 기르는 게 먼저라 시기상조라며 반대한다. 그리고 윤두수의 의견을 따르면 세자의 위상아 강해질 거라 반대하는 선조의 의중까지 눈치채면서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는 한편 윤두수와 그에게 찬성한 이항복을 무군사로 보내 조정에서 내보내라고 건의한다. 그리고 그가 재조산하에 찬동하는 낌새를 보이고 있다.

40화에서는 무군사로 가게 된 윤두수가 이런 식으로 하면 정적이 늘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 하자 자신은 이 나라를 망쳐 두려움이 없다며 살아남기 위한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 또한 시산혈해인 조선을 다시 사람 사는 나라로 만들고자 한다 하고 자신의 독선을 인정하고,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그렇게 윤두수와 이항복을 내려보낸 류성룡은 작미법을 선조에게 건의하고, 선조가 내색하자 자신도 두렵지만 왜적보다는 덜하다며 선조를 독려한다.

47화에서 이순신이 선조의 명을 어기고 압송되자 그를 풀어주려고 사력을 다했다. 다행히 이순신이 백의종군형에 처하자 그의 가는 길을 배웅하면서 전란 후에도 두 사람이 다시 만났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류성룡과 이순신의 마지막 만남이다. 이순신은 임진왜란 마지막 전투에서 죽기 때문이다.

최종화인 50화에서 자신을 탄핵하라는 이이첨의 주청이 있었고 이에 선조는 류성룡을 떠나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11][12] 류성룡은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스스로 사직하고 이후 고향으로 내려가 징비록을 집필하면서 먼저 간 이순신에게 독백을 남기며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여담으로 류성룡의 사망 내레이션 때 보이는 곳이 실제 안동 하회마을이고 류성룡이 서 있는 곳이 옥연정사 주변이다. 드라마가 처음 제작되기 전의 홍보영상 때는 이 장면에서 류성룡이 사람들을 돌아보며 대사를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본방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이는 그 장면이 정형수 작가가 아니라 백운철 작가가 집필했던 각본을 바탕으로 촬영한 장면이라서 본방 때 잘려버린 것.

3. 연출력

작가의 캐릭터 묘사 관련해서 지적이 있는 캐릭터. 실존 인물은 인간관계가 무난하고, 할 말 하고 사는 소신 있는 정치인이긴 하나, 그렇다고 당파간 이해 관계에서 초탈한 인물은 결코 아니었으며 나름의 과오도 저지른 인물인데 본작에선 태조 왕건이래 정립된 전형적인 절대선역 캐릭터이다. 전작이자 역시 정치권이 주무대였던 정도전이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도 없다는 기치 아래, 악역 캐릭터들의 긍정적인 모습과 주인공 캐릭터들의 부정적인 모습들을 가감없이 드러내며 입체적으로 묘사하려 노력했던 것과는 대비되어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불멸의 이순신에서 묘사된 류성룡의 캐릭터가 훨씬 더 다채로웠다는 말[13]도 나올 정도,

이 때문에 캐릭터도 심심하고 작품의 몰입감이 떨어지는데 한 몫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단 논란이 되는 부분은 민초들의 관아습격이나 사화동의 행동이다. 하지만 이것은 오해인 점이, 민초들이 관아를 습격한 것은 군역을 수행하려면 모든 병장구를 자신의 손으로 마련해야 했다. 그런데 이에 따른 조정의 지원이 열악한 재정으로 되지 않아 병장구를 마련할 수 없던 민초들이 군역을 수행 못하고 생활도 어려워 이를 관아로 호소하려 갔는데 묵살되자 이를 폭발시킨 것으로 나온 것이다. 사화동의 매국도 전적으로 정당화한 것도 아니고 상황에 몰려 불가피한 면도 있었음을 류성룡과의 대화에서 보여 주었다.

그리고 류성룡의 인격 형성에 대한 당위성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이는 류성룡 위인전이나 일대기를 그리는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류성룡을 중심으로 한 조정의 임진왜란 극복기가 중심인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보다 집단으로 조정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 것이다. 물론 정도전과 비교해 성공한 사극들의 경우 주인공의 어린 시절이든 사회 초년병이든 그 캐릭터가 이러한 성격을 가지게 된 배경을 짧든 길든 다뤄서 시청자를 납득시킨다. 이는 정도전이 정도전의 생애를 중심으로 혁명가로서 세상을 바꾸는 의지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수행했기 때문이다. 반면 징비록의 류성룡은 시작 시점이 종계변무고 캐릭터의 변동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 중점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도전처럼 역동적이고 입체적으로 그렸으면 하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틀린 것은 아니다. 특히 류성룡이 실제로도 올곧기만 한 인물이니 극적 구도에서 정도전처럼 펼칠 수 없는 점이 있기도 하다. 그래도 실존인물 류성룡과도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받는다. 전작 정도전도 방영 초기 주인공 정도전 캐릭터를 놓고 말이 많았지만 그쪽은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말단 관리로 시작해 성장의 여지를 충분히 남겨두었고 실제로 혈기방장하던 젊은이가 혁명의 기수로 변해가는 모습을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하지만 류성룡은 처음부터 정승 반열에 올라 있는 50대 정치인으로 등장한다. 더 이상 어떻게 변화를 주기도 쉽지 않다.

그리고 이야기가 슬슬 중반에 들어서는 시점에서 이랬다가 저랬다가 당최 앞뒤가 안맞는 캐릭터가 되간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선조와 조정 중신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조율하며 선조를 설득하기 위해 일전일퇴를 보이며 조정해가는 모습으로 작가가 그린 것이다.

임진왜란 도입부에서는 앞뒤가 안 맞고 오락가락하는 행보로 보이기도 한다는 지적도 있다. 예를 들어 15화에서 대신들이 파천을 논의할 때 류성룡은 자신도 정말로 한양 사수를 고집하려는 게 아니라 선조가 한양을 사수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은 지키고 싶은데 선조가 영 지킬 생각이 없어 보이니까 백성들의 사수 결집 의지를 위해서 그렇다며 이를 강하게 밀어붙인다. 다음 씬에서 진지하게 병력 4천 5백으로 3만은 되어야 지킬 수 있는 성을 사수하려 들더니 16화에선 현실적으로 소수로 대군인 일본을 맞설 수 없는데 왕에게 한양을 버리고 어디로 가냐고 울부짖는다. 17화에선 한양 함락 소식에 한양과 가까운 개성을 떠나 평양으로 가려는 선조를 제지하며 전라감사 이광과 임진강 유역의 북병을 합치면 왜적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근데 18화에서는 반드시 평양을 지키겠다며 백성들을 위무하는 선조에게 다가가 임진강 방어선이 무너지면 어쩔 거냐며 헛된 희망을 주지 말라 일침을 놓는다. 선조가 평양 사수를 자신한 이유는 전라도군 5만과 북병, 김명원 휘하의 군사를 합쳐 7만에 달하고 군량도 충분해 임진강에서 적을 막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으로 이는 바로 전화에서 류성룡이 주장한 내용이다. 이 와중에 류성룡이 해야 할 역할은 윤두수가 하고 있다.

또한 조정 대신들이 뭔가 논의를 하고 있을 때 훈계를 하며 정적이 감돌게 하는 전개가 많이 나온다. 조정대신들이 사안을 잘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일 때 중심을 잡아준 것이다. 쟁쟁한 조정 대신들을 다 침묵하게 한 것은 류성룡이 사안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있고 행동으로 과감히 옮기며 정국의 중심을 끌고 간다는 의도도 있다. 그래도 작중 류성룡이 보여주는 논리나 수준에서 더 설득력 있는 논거와 에피소드를 제시했다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니 아쉬운 부분.

3.1. 인물의 입체적 조명 문제

불멸의 이순신과 비교해 봤을 때 조선조정대신 들 모습을 묘사에서 각 인물들간 당위성을 제시했다.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서인들이 이해타산적이고 당파의 이익만 생각하며 정치공작만 일삼던 모습으로 나온다. 하지만 여기서는 서인들도 성리학적인 이상사회를 꿈구고, 정당한 이유를 지닌 집단들로 나온다. 서인의 수장인 윤두수가 류성룡의 축성과 군비증강에서 반대편에 선것도 대응방식이 달랐던 것이지, 당파의 이해가 앞서 대의를 그르치는 것으로 나오지 않는다. 불멸의 이순신이 류성룡과 반대파인 서인들을 악의 집단으로 묘사한 반면, 여기서는 서로 반목하면서도 협조하기도 하고 이해를 하기도 한다. 특히 45회 에피소드에서 김덕령 옥사에 연루되어 제거 될 뻔한 류성룡을 나라에 필요한 거목이라며 윤두수가 구해준다.

실제 류성룡은 선에 가까운 인물이지만 동시에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고 필요에 따라 물러설 줄도 아는 냉정한 현실의 정치가였다. 흔히 말하는 류성룡은 속일 수가 없고, 이원익은 속일 수는 있는데 인간적으로 차마 속이지를 못하겠다는 말에서도 보듯이 유능한 전시 재상이지만 절대선은 아니고 정치적으로 냉철한 면모도 보였다. 그런데 캐릭터의 입체성 문제에서 계속 정도전과 비교되며 많은 지적을 받은 것이 큰 문제였다. 이런 다양한 면모가 에피소드에 다 반영되었어야 하는 데 말이다. 물론 후반부인 40회~41회에서 노선이 다른 이항복과 윤두수를 과감하고 냉혹히 조정에서 내쳐, 일사불란히 정책과 작전을 수행한다. 윤두수와 이항복을 무군사로 강등해 내려 보내 총지휘책임이 있는 재상으로서 비정함을 보이며 입체성을 강화한 노력은 긍정적이다.

역사 속의 류성룡은 임진왜란이란 초유의 겁화 속에서 정무와 군무 겸직의 전시수상(영의정)과 4도 도체찰사(都體察使)직을 동시에 맡아 조선의 전쟁을 총괄하여 망국의 늪으로 떨어지기 일보직전이던 나라를 기적적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크게 공헌한 인물이다. 일찍이 천거한 권율, 송상현, 이순신은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제몫을 충실히 해냈고 원군으로 온 명의 장수들과 일일이 대면하고 전쟁 상황에 대해 논의하여 명의 힘을 조선에 유리한 방향으로 적용시키는데 최선을 다했다. 급료병인 훈련도감을 설치하고 신분에 개의치 않는 병력 인선을 실시해 허술했던 중앙군 체제를 재정비 했으며 강화조약으로 전쟁에서 발을 빼려는 명의 의중을 눈치채고 이를 사전에 차단하고[14] 명 내에서 조선을 식민하자는 여론이 일자 모든 외교력을 동원하여 이를 방지해낸 업적을 보면 고단수의 정치력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세력싸움에 무관심한 사람도 아니어서[15] 전쟁이 없을것이라는 김성일을 주장을 같은 동인이란 이유로 끝까지 옹호해줬고(사실 류성룡 본인도 예측못했으니까), 전쟁 중에도 5년의 영의정 직무 동안 550여번의 상소문(평균 3-4일에 한번)을 올릴 정도로 당파의 여론과 기세싸움에 적극적이었다. 정응태 무고사건으로 파직되자 바로 다음날 행장을 꾸려 궁을 뛰쳐나가고 그 후 임금이 불러도 한사코 응하지 않은 채 왕의 잘못까지 가감없이 적어내려간 징비록 저술에 몰두하는 소신도 있었으며 한편으로는 정유재란 초반 선조가 이순신을 죽이려고 하자 오랜 지기였음에도 앞장서서 이순신을 폄하하며 왕의 비위를 맞춰 주는 등 피눈물 없는 냉혹한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도 있는 매우 복잡한 인물이었다.(그리고 구명할 방도가 없을까해서 찾아온 이순신의 조카 쌩깐 일화를 징비록에서 슬쩍 빼는 졸렬함도.)

드라마에서는 이렇게 치열하게 살다 간 현실의 정치인이자 유능한 전시 재상을 당론이나 세력싸움에는 관심 없고 오직 백성만 생각하는 초탈한 이상주의자로 만들었다. 하지만 당대 조선 지배층이 전정, 군정, 환곡에서 비리와 착취를 일삼는 층도 아니었던 것을 작가가 그려낸 것은 역사성에 맞는 것이다. 당시의 열악한 재정 ,느슨해진 제도를 임란의 배경과 연결지어 에피소드로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정도전과 비교되어 실제 역사성에서 선한 면이 절대적인 캐릭터라 선한면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도, 캐릭터입체성에 지적을 받았던 것이다.[16] 자세한 사항은 징비록(드라마)/역사적 사실과의 비교 참조.

4. 여담

5. 어록

"백성이 근본이다."
再造山河(재조산하)[18]
"~를 모시려면 똑바로 모시세요!"[19]
"이곳이 정녕 이승이더냐, 아니면 지옥이더냐... 누구 살아있는 자 없소! 살아있는 자 없소! 이보게들! 살아있는 자 있으면 대답을 해보란 말이오! 살아있는 사람들은 대답을 좀 해주시오! 살아있는 자! 대답...![20]"
"천리야. 이번에도 네가 나서줘야겠다."
"아니되옵니다 전하! 아니되옵니다!"
"전하, 전하께옵서는 그 어느 것도 인정치 않으시니 더 이상 신이 말해 무엇하겠사옵니까. 단지, 간곡한 청 하나만 드리고자 하옵니다. (선조에게 재조산하가 적힌 종이를 건넨 후.) 전하, 시산혈해로 물든 이 땅을 백성들이 다시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주셔야 하옵니다. 정녕 그 일만 이루신다면은 전하께서는 신뿐만이 아니라 이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운 성군으로 백성들에게 대대손손 추앙을 받게 될 것이옵니다. 부디 성업을 이루시옵소서."[21]
"여해, 참 멀고도 험한 길이었네. 우리 백성들, 그 불어터진 발로 피 흘리며 겨우 살아서 여기까지 왔네 그려. 이제는 후학들이 그 상처 난 발을 닦아주고 감싸줘야 할 텐데, 또 다시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는 듯 자신의 길만 보고 걸어갈까 봐 걱정일세.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어찌 오늘만의 길이겠는가? 내일의 백성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기도 한데... 가다 보면 거친 산길도 깊은 물길도 마주쳐야 할 텐데... 오늘의 길 위에서 겪은 일들을 잊지는 않을까 걱정일세.
여해, 먼 훗날 우리의 백성들이 우리가 고단하게 걸었던 이 길을 걷게 되면,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무슨 생각을 하며 걸을까..."[22]


[1] 카리스마 연기로 매 작품마다 호평을 받는 중후한 연기의 대명사이다. 대표작으로 나쁜 녀석들오구탁 반장. KBS 대하드라마에는 제국의 아침 이후 무려 13년 만에 복귀.[2] 사실 중도론적인 면을 보면 기축옥사 때문에 관계가 비틀어진 것이지 그전까지는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3] 선조의 감성팔이와 세치의 혀에 넘어간 이후라 서인측에서 '왕명에 따른 것 뿐이다'라고 변명하자 왕에게 책임을 전가한다고 화를 내기도 한다.[4] 송익필은 류성룡에게 그대의 문제점은 보고싶은 것만 보는 것이다란 지적을 했다. 앞으로의 전개에도 영향을 미칠지 흥미로운 부분이었다.[5] 사실 문제가 있는 전개인데 왜냐하면 류성룡은 지금 왕명 사칭을 저지른 것이기 때문이다. 이거 역적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는 죄다. 물론 당연히 류성룡도 그것이 중대한 죄임을 잘 알기에 처벌해달라 하였지만, 선조가 왕명 사칭을 저지른 류성룡에게 되려 고맙다는 태도를 보인다. 아무래도 선조가 자신의 공으로 돌렸기도 하고 류성룡과 선조만이 이 사실을 알기에 눈감아준듯 하다. 사실 국익도 마찬가지로 권율이 탈영병을 즉결 처분했다고 일시 면직 처분되기도 할 정도로 엄격한 법치국가이자 중앙집권국가인 조선에서 국익을 우선시한답시고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6] 실제 류성룡은 파천에 동의했다. 일단 백성과 군사들에게 수성 의지를 보인 후에 파천을 가든지 말든지 해야한다고 한 말 그 다음에 한성 사수해야한다고 엉엉울고 성가퀴 3만개 짜리 성을 사기가 바닥에 떨어진 군사 4천 5백으로 사수하는 계획을 짜고있다.[7] 극중에서 김상중이 정말 눈물과 콧물을 걸쭉하게 쏟아냈다.[8] 자신이 나라를 지켰다는 명분을 얻고 싶은데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빼앗기기 싫은 선조의 속내를 알고 있었다.[9] 임금의 지시 없이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권한.[10] 실제론 권율이 자의로 이동한 것이니 그냥 두면 될걸 류성룡이 지시해서 이동한걸로 했다. 작전지휘권에 대한 분쟁은 육전 뿐 아니라 해전에서도 크게 부각되던 문제였다. 명군 내부에서도 진린과 유정이 정유재란기에 지휘권을 두고 심한 갈등을 했다. 명과 조선이 지휘권을 두고 분쟁을 한 것은 쇄미록과 징비록에도 자세히 나온다.[11] 윤두수, 정철, 이산해도 다 다녀온 거라며 한동안 내보냈다가 다시 부를 것임을 시사했다.[12] 파직 후 선조가 '내가 류성룡을 버린 것이 아니고 류성룡이 나를 버린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책임전가가 아닌, 정말 착잡해서 넋두리를 한 것에 가깝다.[13] 이순신이 주인공이었던 만큼 분량이 많을 수는 없었으나, 그 적은 분량 안에서 이순신의 친우로서의 모습은 물론 전시 재상으로서의 유능함도 충분히 묘사되었다. 또 이순신이 소신에 따라 출전하라는 왕명을 거역하자 왜 자꾸 그러냐고 우려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명량 해전 직전에는 수군을 폐지하고 육군에 합류시키려는 선조의 명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마냥 이순신의 편으로만 그려지지도 않았다.[14] 이때 명은 붕당, 세자선정 등 갖은 빌미로 선조를 끌어내리겠다며 압박하기도 하고 명군이 민간에 저지른 행패를 인정하며 조선에서 어떻게든 빠지려 했지만 류성룡은 조선은 명을 위하다 전쟁터가 되는것도 감수한 우방이며 선조는 그간 대명외교에서 명의 입장을 많이 이해해줬고 명군의 약탈은 없었다고 딱 잘라말해 빠져나갈 명분을 차단하고 조선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게 명에게도 좋은 일임을 각인시켰다.[15] 위에서 절대선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 명군 관련 논란과 더불어 이 때문이다. 엄연히 당파에 속한 인물이었다.[16] 일본파트도 고증은 전쟁을 입안하는 히데요시 주변을 주로 비추고 있어 조선파트보다 에피소드가 풍부하다.[17] 더 정확히는 난전이다. 굳이 말하자면 무식하게 덤빈다는 소리다.[18] 굳이 말하자면 이건 이순신이 제2차 진주성 전투 이후 다소 방황하던 류성룡에게 마음을 다잡으라고 해준 말이다. 이것이 이후 류성룡의 삶의 이유가 된다.[19] 귀인 김씨와 사재감정 류조인에게 주로 쓴다.[20] 33화 말미에서 폐허가 된 도성과 쌓여있는 시신들을 보고. 여기서 말을 채 마치지 못하고 실신한다.[21] 선조와의 마지막 대면에서.[22] 드라마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류성룡의 마지막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