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OB 베어스
1994년 드래프트를 앞두고 OB 베어스는 1차지명자로 동국대학교 좌완 투수 류택현과 한양대학교 유격수 유지현을 저울질하며 고심을 거듭한 끝에, 팀에 좌완 투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류택현을 지명하였고, 류지현은 같은 서울팀인 LG 트윈스로 지명되었다.[1]
여담이지만 당시 OB의 스카우터였던 양승호 전 롯데 감독은 유지현 지명을 강하게 주장했었다고 한다. 류택현의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했고, 정 좌완 투수가 부족하다면 일단 유지현을 지명한 후에 트레이드 하는 게 어떻겠냐는 건의까지 했다고 하는데, 좌완투수에 대한 구단 상층부의 의지 역시 완강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2] 이후 이광용의 옐로우카드 시즌2 53회에서 이재국 기자가 밝히길 당시 양승호 스카우터는 상층부로터 '차후 류지현이 성공하고, 류택현이 실패해도 절대 스카우터들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는 약속(각서)까지 받고서야 류택현 지명에 동의했다고 한다.
어쨌든 좋은 체격을 가졌고,[3] 140km 중반까지 나오는 속구를 던질 수 있는 매력적인 좌완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기대한 만큼 성장하지 못했는데, 스프링 캠프 때나 연습투구에서는 좋은 공을 뿌리다가도 정작 본 경기에 등판해서는 심각한 제구 난조를 보이는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런 모습 때문에 '새가슴' 이라는 낙인이 찍혔고, 그저 그런 불펜 투수로 뛰다가 1999년 시즌을 앞두고 같은 팀 김상호와 함께 현금 트레이드로 LG 트윈스 유니폼을 입었다.[4]
OB에서 5년간 거둔 성적은 고작 5패 2세이브. 류택현은 단 1승도 올리지 못한 채 OB를 떠났다.[5]
2. LG 트윈스
LG 트윈스 No.14 |
류택현 柳澤鉉 | Ryu Taekhyun 1999~2010 2012~2014 |
2.1. 1999 시즌~2010 시즌
김성근 감독이 부임하였을 때 최동수와 함께 뒤늦게 프로에서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LG에서 그는 좌타자 전문 원 포인트 릴리프 보직을 받는다. 이적 첫 해인 1999년 현대 유니콘스전에서 데뷔 6시즌(181경기) 만에 첫 승을 따내기도 했으나, 여전히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크게 신임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2001년 김성근 감독대행이 부임할 무렵 커브라는 신무기를 장착하면서 비로소 피칭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그 해 첫 두 자릿수 홀드(13개)를 따낸 것을 시작으로 이후 4년 연속 두 자릿수 홀드와 3년 연속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LG의 주축 불펜으로 자리매김한다. 특히 2004년 기록한 85경기 등판은 한국프로야구 역대 한 시즌 최다경기 등판 기록[7]이다. 그렇게 입지를 굳히던 와중에 2006년 시즌 팔꿈치 부상으로 시즌을 통째로 말아먹고 우려를 사기도 했지만, 그 다음 해인 2007년, 보란 듯이 23홀드(리그 1위)와 2.7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데뷔 이후 최고의 시즌을 보낸다. 이 해의 활약 덕에 베이징올림픽 아시아예선 국가대표에 뽑히며 잠시 태극마크를 달기도 했다.
그 다음 해인 2008년, 팔꿈치 부상이 재발하며 일찌감치 시즌 아웃. 이때 류택현은 수술 판정을 받았으나 재활을 선택했고, 2009년 시즌에 복귀하여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통산 100홀드를 돌파하는 등 2.96의 평균자책점과 12개의 홀드를 따내며 건재를 과시한다.
2009년 쌍꺼풀 수술을 받았다. 속눈썹이 길어 눈을 자꾸 찌르게 되자 집중력이 저하되는 것 같아서 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2010년 시즌에 또다시 팔꿈치가 탈을 일으키며 결국 수술대에 올랐고, 그의 선수 복귀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본 LG에서는 그를 방출 명단에 올렸다.
사실 고질적인 어깨와 팔꿈치 부상을 선수생활 내내 달고 다녔던 선수로, 입단 첫 해인 1994년 에는 비빔밥을 못 비빌 정도의 심한 통증으로 고생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이후 방위복무 중 자주 하던 제초작업 덕에 팔의 근력이 많이 붙었고, 그 다음부터는 통증이 있어도 어떻게든 참고 던질 수 있었지만, 끝내 팔이 버텨주지 못하며 수술까지 받게 된 것이다. 류택현 본인도 일찌감치 수술을 받지 않고 재활훈련으로만 버텨온 것을 후회한다고 하였다.
2.2. 방출 이후
불혹의 나이에 구단의 지원 없이 자비로 팔꿈치 수술까지 받고 방출당한 중간계투 투수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아 보였다. LG에서는 그에게 스카우트 내지는 전력분석원으로 새롭게 출발할 것을 제안했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의 은퇴를 예상했지만, 선수 생활 지속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그는 이런 제안을 거절하고 타 팀 입단 테스트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LG의 2군 훈련장에서 끊임없이 재활 훈련을 했다. 물론 이걸 본 구단에서도 그의 재활을 도와주었다. 실제로 이 시기에 LG 유니폼을 입고 재활 훈련하는 류택현을 본 사람들이 많았다고한다.2.3. 재입단
2012년 시즌을 앞두고 플레잉 코치로 LG에 재입단을 확정지었다. 기사플레잉 코치로 현역에 복귀하면서 1971년생으로 2012년 KBO 선수 중 최고령 투수이자 최고령 노총각이 되었었다. 박재홍(1973년생), 강동우(1975년생)보다 나이가 많다. 게다가 이종범의 은퇴로 동갑내기인 최동수와 함께 최고령 선수에 등극했다.
엄밀히 따지면 최동수는 1971년 9월 11일 생이고 류택현은 1971년 10월 23일 생이기 때문에 2012년의 최고령 선수는 최동수였지만, 1971년 3월 28일 생인 최향남이 2012년 시즌 도중 KIA 타이거즈로 복귀하면서 최향남에게 현역 최고령 선수이자 최고령 투수 자리를 빼앗겼다.
2.4. 2012 시즌
2012년 4월 8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스코어 0:0인 7회말 2사 2루에 등판하여 최형우를 상대로 삼진을 잡는 등 1이닝 16투구수 1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LG 타자들이 8회 3점을 냈고 레다메스 리즈가 9회말에 2점만 실점하면서 팀이 3:2로 승리하여 960일 만에 승리 투수가 됐다.2012년 4월 12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팀이 0:4로 이기던 9회초에 등판하여 813경기로 조웅천과 함께 한국프로야구 투수 최다 경기수 출장 기록 공동 1위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3타자를 상대하여 1이닝을 7투구수 1탈삼진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막아 팀의 승리를 지켜냈다.
그리고 이튿날인 4월 13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스코어 5:5 동점이던 9회초에 등판하여 814경기째 출장으로 KBO 투수 출장기록 단독 1위를 달성했다! 게다가 9회를 고작 공 9개로 삼자범퇴로 막으면서 평균자책점 0을 유지하였다. 이날 팀은 리즈의 난조로 인해 8:6으로 패하고 말았다.
4월 15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2:2 동점이던 1사 1, 2루의 위기에서 등판하여 최희섭을 병살타로 잡아내고 이닝을 끝냈다. 6회말 LG가 3점을 내서 스코어 2:5가 된 7회초에도 등판하여 2사 2루의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왔는데 우규민이 분식회계를 하는 바람에 평균자책점 0이 깨지고 말았다. 류택현은 이날 1⅓이닝 18투구수 1피안타 1탈삼진 1실점 1자책점을 기록하고 승리투수가 되었고 팀은 3:5로 승리하였다.
이후에 갈비뼈에 실금이 가는 부상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지만, 6월 6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를 앞두고 1군에 복귀하였다. 류택현은 복귀 후 처음으로 이날 경기에 등판하였지만 스코어 3:3인던 7회말에 등판하여 ⅔이닝 1피안타 1볼넷 1실점 1자책점을 기록했고 팀이 스코어 3:5로 패하여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6월 10일 두산전에서는 팀이 스코어 3:14로 무려 11점을 앞선 9회초에 등판했는데 팀의 승리가 거의 확실시된 상황에서 편하게 던졌는지 1이닝 2피안타 1실점 1자책점을 기록했다.
6월 14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SK전에서 팀이 스코어 2:0으로 지던 8회초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등판하여 1⅓이닝 1볼넷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팀은 2:0으로 패했다.
6월 15일 월명 야구장에서 열린 KIA전에서 팀이 스코어 3:0으로 지던 6회초 2사 만루 상황에서 등판하여 이용규를 3구만에 2루 땅볼로 잡은 뒤 1이닝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팀은 이날 3:3으로 비겼다.
6월 16일 월명 야구장에서 열린 KIA전에서 팀이 스코어 5:1로 앞선 8회말에 등판하여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고 이로써 류택현은 3일 연속으로 등판하여 3⅓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팀은 이날 5:1로 이겼다.
2.5. 2013 시즌
2012년의 활약으로 플레잉코치에서 다시 선수로 돌아왔다. 등번호도 2012년에 달았던 90번에서 자신이 가장 애착을 지닌 14번으로 돌아왔다. 관련기사 그리고 탈모가 진행되기 시작했다.[8] 하긴 김기태 감독보다 겨우 2살 아래.3월 30일 문학 SK전에 6회말 1사 1, 2루 상황에서 레다메스 리즈에 이어 구원등판, 박정권을 뜬공으로 잡아내는 적절한 원포인트 릴리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신정락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통산 842번째 등판경기였다.
4월 3일 넥센전에서 이미 14:7로 팀이 크게 리드하고 있었기도 해서 9회 1이닝동안 마운드를 소화했다. 이성열에게 솔로홈런을 허용하긴 했지만 그 이후 차분히 경기를 마무리하며 통산 843번째 경기를 마쳤다.
6월 6일 두산전 8회초에 등판, 2타자를 처리한 후 7번 이종욱에게 안타를 맞고 교체. 통산 859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올해 원 포인트 릴리프로 출장하면서 이동현, 봉중근과 함께 LG의 계투가 탄탄해지는데 한 몫을 했다.
6월 30일 117 홀드를 기록, 통산 홀드 부문에서 정우람과 함께 공동 1위에 올랐다.
그리고 7월 13일. 문학 SK전 경기가 시작하기 전 류택현의 오래 된 여성팬이 통산 최다 홀드 타이 기록을 기념해 케이크를 보내 주었다. 이날 경기에는 팀이 스코어 8:0으로 크게 앞서고 있는 8회말에 등판했기에 홀드는 추가하지 못했지만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케이크의 1000-130 은 통산 1,000경기 출장까지 130경기 남았다는 의미.
드디어 7월 16일, 사직 롯데전에서 연장 11회말에 나와서 손아섭에게 안타를 맞았지만, 후속타자 2명을 삼진과 2루 땅볼로 잡아 내면서, 118번째 홀드를 따내며 통산 최다 홀드 기록을 기록하였다. 참고로, 경쟁 관계에 있는 정우람 선수가 2014년까지 군복무로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당분간은 통산기록을 계속 보유하게 되었다.
시리즈 전적 1승 1패인 10월 19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3년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3:4로 지던 6회말 1사 1루에서 3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3번타자 정수빈을 상대로 공 2개를 던져 번트 안타를 맞고 유원상으로 교체되었다. 유원상이 이날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한 임정우의 주자만 홈으로 불러들였기에 류택현은 이날 실점을 기록하지 않았고, 팀은 이날 스코어 4:5로 패했다.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탈락했고, 10월 19일 경기가 류택현의 2013년 포스트시즌 처음이자 마지막 경기였다.
2013년 시즌 종료 이후, 최향남이 고양 원더스에 입단하면서 프로야구 최고령 선수가 됐다.
2.6. 2014 시즌
3월 29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4년 개막전에서, 팀이 스코어 3:4로 지던 4회말 1사 2, 3루 상황에서 선발 투수인 김선우에 이어 등판하여 대망의 900경기 등판을 달성하였다. 첫 타자이자 9번타자인 정수빈을 몸에 맞는 볼로 출루시켰지만 다음 타자 민병헌을 2구만에 5-2-3 병살타로 처리하여 위기를 넘겼다. 그리고 여전히 스코어 3:4이던 5회말에도 등판했지만, 선두 타자 오재원에게 홈런을 맞았다. 스코어 3:5를 만든 류택현은 다음 타자 김현수를 2구만에 중견수 플라이로 아웃시킨 뒤 신승현으로 교체되며 이날 1이닝 7투구수 1피안타 1홈런 1몸에 맞는 볼 1실점 1자책점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4:5로 졌다.4월 3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조윤준 때문에 흔들린 선발 투수 코리 리오단에 이어 팀이 스코어 5:3으로 지던 6회초에 등판하여 시즌 2번째 경기를 치렀다. 선두 타자인 4번타자 겸 좌타자 루크 스캇에게 초구 홈런을 맞더니 다음 타자 박정권에게도 안타를 맞고 강판되었다. 다음 투수 유원상이 승계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인 것도 모자라 자기도 실점하면서 류택현의 실점과 자책점이 늘어나서 류택현은 이날 0이닝 7투구수 2피안타 1피홈런 2실점 2자책점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9:5로 패했다.
올라올 때마다 실점한 탓에, 결국 4월 3일 경기가 끝나고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그리고 2군에서는 6월부터 경기에 출장하지 않고 임지섭과 함께 3군으로 내려가 임지섭에게 원 포인트 레슨을 했다. 구단과 양상문 감독에게 9월 확대 엔트리에서 자신이 필요해지면 불러 달라고 했으며, 이 도전이 실패하면 선수 생활을 마치겠다고 밝혔다.[9] 다만 확대엔트리에 포함되지 않은 것을 보면 2014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것으로 보였다. 다만 마무리캠프에, 코치가 아닌 선수자격으로 동행하는 것을 보아, 내년에는 플레잉 코치로 선수 생활을 이어갈지도 모른다.
2014 시즌 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으며, 현재 일부 코칭스태프가 빠져나간지라 내년에 2, 3군에서 코치를 할 가능성이 커졌다. 본인도 “이제 때가 온 것 같다”고 언급하였다.
류택현은 21년간의 선수 생활 동안 901경기에 등판하여 통산 15승 29패, 6세이브 122홀드를 올렸다. 그의 홀드 기록인 122개는 그가 꾸준히 선수 생활을 했기에 도달한 숫자이며, 투수로서 통산 901경기 출장은 아직 깨지지 못한 대단한 기록이다.[10]
그런데 2014년 12월 2일 신문기사에 의하면 양상문 감독이 마운드 문제를 이유로 류택현을 다시 선수로 복귀시킬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치면서 잘하면 2015년에도 그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몸까지 만들어 놓으라고 할 것이라고 했으니 말 다했을 정도. 류택현 본인도 준비해 놓겠다고 했다.
현역 마지막 시즌을 마친 후 베이스볼 아카데미의 마스터 코스에서 지도자 교육을 받고 검정시험을 거쳐 2015년에 지도자 자격을 취득했는데, 자격 취득 후 그가 하는 이야기가 "서울대생처럼 공부했다"고.
[1] 이 지명은 베어스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로 실패한 1차지명 사례로 남아있다. 류지현의 활약은 차치하더라도 류택현이 OB에서 거둔 성적과 이후 LG 이적 후 활약한 점을 비교해 보았을 때 꽤나 뼈아픈 실책이었던 셈이다.[2] 이는 작년에 OB가 LG한테 이상훈을 뺏긴 게 한에 남아서 그런 것도 있고 두산은 의외로 좌투수에 대해 좋은 역사가 없다. 어느 정도냐면 1988년 윤석환이 구원승으로 13승을 기록한 이후 2013년 유희관이 10승을 기록할 때까지 25년동안 한 시즌 10승 이상을 기록한 토종 좌완 투수가 없다. 괜히 장원준에게 84억(2014년), 이혜천한테 11억을 준다던지(2010년) 이현승을 10억+금민철에 트레이드(2009년) 해온 것이 아니다.[3] 이것 또한 지명의 이유이다. 보기와 달리 키도 크고 근육질이라 투수로써 정말 좋은 체격이었다.[4] 사실 비슷한 시기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될 뻔했다. 당시 OB 감독인 김인식이 현대의 장정석을 데려오려고 류택현을 트레이드 카드로 제시했으나, 현대 쪽에서 거절하는 바람에 최종적으로는 무산됐다.[5] OB에서도 잠시나마 중간계투로서의 역할을 쏠쏠하게 수행하긴 했다. 다만 2000년 이전에는 홀드 기록을 집계하지 않았기 때문에 OB에서의 기록은 패전과 세이브만 남아있는 것이다.[6] 통산은 901경기(2위) 15승 29패 122홀드(5위) 6세이브[7] 이후 2008년 SK 와이번스의 정우람도 85경기에 등판하며 공동 1위에 올랐다. 2015 권혁은 중간계투치고는 많은 112이닝을 소화했지만 출장 경기수는 78경기에 불과했다. 류택현은 출장 경기수는 많았지만, 총 이닝 수는 50이닝 내외로 투구수 관리가 잘 된 편.[8] 본 항목의 두번째 사진이 바로 택옹의 탈모가 진행중인 상황을 표현한 것.[9] 2014년 7월 28일 라디오볼 1pm 내용.[10] 높은 확률로 2021년에 정우람에 의해 깨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도 대단한 것은 변하지 않는다. 2021년 6월 30일 정우람이 902경기째에 출장하면서 기록이 깨졌으며, 정우람은 아직 현역이기 때문에 매 경기마다 자신의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