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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26 22:55:24

리에드송

포르투갈의 前 축구선수
파일:Liedson Portugal.jpg
<colbgcolor=#eeeeee,#222222><colcolor=#000000,#e5e5e5> 이름 리에드송
Liédson
본명 리에드송 다실바 무니스
Liédson da Silva Muniz
출생 1977년 12월 17일 ([age(1977-12-17)]세)
브라질 바이아 주 카이루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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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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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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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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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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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175cm
직업 축구 선수 (중앙 공격수 / 은퇴)
소속 <colbgcolor=#eeeeee,#222222><colcolor=#000000,#e5e5e5> 유스 EC 포송이스 (1996~1999)
프루징토폴리스 EC (2000)
선수 코리치바 FC (2001~2002)
CR 플라멩구 (2002)
SC 코린치안스 (2003)
스포르팅 CP (2003~2011)
SC 코린치안스 (2011~2012)
CR 플라멩구 (2012~2013)
FC 포르투 (2013 / 임대)
국가대표 15경기 4골 (포르투갈 / 2009~2010)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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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222222><colcolor=#000000,#e5e5e5> 등번호 <colbgcolor=#fff,#191919><colcolor=#000000>스포르팅 CP - 31번
SC 코린치안스 - 9번
CR 플라멩구 - 31번
FC 포르투 - 19번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 9번
}}}}}}}}} ||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수상 경력
4.1. 대회 우승4.2. 개인 수상
5. 여담6.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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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르투갈의 前 축구 선수. 현역 시절 포지션은 중앙 공격수였다.

전성기 시절 스포르팅 CP의 주포로 활약하며 프리메이라 리가 최고 수준의 공격수로 이름을 날린 선수로, 스포르팅 구단 역대 최다 득점 6위(172골)에 올라 있다.#

2. 클럽 경력

브라질 태생으로 유스 구단을 거쳐 2001년 코리치바 FC 소속으로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2002년 CR 플라멩구로 이적하며 조금씩 경험을 쌓아나갔고, 2003년 SC 코린치안스에 입단한 뒤 전반기에만 모든 대회를 합쳐 28경기 16골 1도움을 기록하는 맹활약으로 유럽 구단들의 관심을 받았다.
파일:Liedson Sporting.jpg

이를 바탕으로 2003년 여름 이적시장 때 스포르팅 CP에 입단하며 유럽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입단 직후부터 적응기는 없다는 듯 맹활약하며 2003-04시즌을 전 대회 합산 34경기 18골의 준수한 성적으로 마감하더니, 이어진 2004-05시즌에는 리그에서만 31경기 24골 1도움을 기록하는 맹활약으로 득점왕 자리를 거머쥐었다. UEFA컵에서도 해트트릭 한 차례를 비롯해 맹활약해 팀의 준우승에 힘을 보태는 등 모든 대회를 합쳐 46경기 34골 1도움이라는 빼어난 기록을 남겼다.

이어진 2005-06시즌에도 파괴력은 조금 줄었으나 35경기 17골 7도움의 좋은 성적으로 도움 부문에서 커리어 하이를 찍었고, 2006-07시즌에는 리그 28경기 15골 3도움으로 다시 득점왕에 오르는 등 총 36경기 16골 4도움을 기록해 팀의 타사 드 포르투갈 우승을 함께 하며 팀 올해의 선수로도 뽑혔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러한 활약에도 스포르팅 CP는 리그에서만큼은 3연속 준우승으로 눈물을 삼켜야 했다는 것.

2007-08시즌에는 리그에서 26경기 11골 6도움을 기록하는 등 총 45경기 22골 8도움으로 여전한 활약을 이어가며 팀도 타사 드 포르투갈 2연패에 성공했으나 리그에서는 준우승에 머물렀고, 설상가상으로 시즌 막바지에 무릎 십자인대 부상까지 입으며 장기간 이탈했다. 그럼에도 2008-09시즌 초반에 복귀해 리그 26경기 17골 5도움을 비롯, 총 35경기 25골 6도움으로 맹활약하며 건재함을 알리고 2년 만에 다시금 팀 올해의 선수로도 선정됐으나 스포르팅은 또 또 리그 준우승에 그쳐 5연준이라는 조금 다른 의미의 대기록을 함께 하고 말았다.

2009-10시즌에는 어느덧 33세의 나이에 접어드는 데다 처음으로 국가대표팀 활동을 병행하는 등 체력적으로 리스크가 있었음에도 리그 28경기 13골 6도움 등 총 46경기 22골 10도움으로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다. 그러나 스포르팅은 리그에서 고작 4위에 그치며 우승은 또 다시 저 멀리로... 이어진 2010-11시즌에는 유럽 무대 통산 200번째 공격 포인트와 스포르팅 구단의 유럽 대항전 역사상 200번째 골을 기록하는 등 전반기에만 25경기 10골 7도움으로 활약했으나 리에드송은 브라질 복귀를 타진했고, 결국 2011년 겨울 이적시장 종료 직전에 친정팀 SC 코린치안스와 2년 계약을 맺고 이적했다.

코린치안스 복귀 후에도 폼은 녹슬지 않아서 2011시즌 전 대회 합산 44경기 23골 4도움이라는 맹활약을 펼치며 팀의 세리 A 우승을 견인했고, 2012시즌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함께 했다. 그러나 십자인대 부상 이후 잔부상이 점점 늘어나고 있던 데다, 30대 중반에 접어드는 나이의 영향도 피하지 못했는지 이 시점부터 하락세가 시작됐다. 결국 전반기 코린치안스에서 28경기 4골 3도움을 기록하는 데 그친 뒤 여름 이적시장 때 계약 만료로 팀을 나왔고, CR 플라멩구와 반 시즌 짜리 단기 계약을 맺었으나 후반기에도 16골 4도움으로 크게 반등하진 못했다.

결국 그대로 플라멩구와의 계약도 만료되며 팀을 나오는 듯했지만, 이후 플라멩구와 1년짜리 재계약을 맺은 후 2013년 1월 24일에 FC 포르투로 반 시즌 간 임대되며 유럽 무대를 다시 밟게 됐다. 당시 포르투는 잭슨 마르티네스라는 확고한 주전 스트라이커가 있었지만, 백업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리그와 리그컵 우승에 도전하고 챔스까지 병행해야 했던 포르투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검증된 자원인 리에드송을 영입해 선수단 뎁스를 보강하고자 한 것. 그런데 포르투가 챔스 16강에서 말라가 CF에게 일격을 맞으며 그만 탈락해버리고, 리그 컵에서도 결승에서 SC 브라가에게 지더니 리그에서조차 몇 차례 뼈아픈 무승부로 승점을 드랍하면서 2위로 처져 순식간에 상황이 꼬여버리고 말았다. 리에드송도 전성기의 폼은 사라진 지 오래라 거의 활약을 하지 못하면서 실패한 임대가 되는 듯했지만...

선두 자리를 두고 홈에서 열린 리그 29라운드 SL 벤피카와의 우 클라시쿠에서 1:1로 맞선 후반 막판에 다닐루 대신 교체투입돼 90+1분에 나온 케우빙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면서 팀의 승리에 힘을 보탰다. 사실 리플레이를 보면 리에드송의 평범한 패스를 케우빙이 기가 막힌 슛으로 강제 어시로 만들어 준 느낌이긴 하지만, 아무튼 중요한 순간에 포르투 유니폼을 입고 만들어낸 첫 공격 포인트 덕분에 포르투는 벤피카를 제치고 리그 선두로 올라섰다. 결국 이어진 30라운드 FC 파수스 드 페헤이라전에서 포르투가 완승을 거두며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리에드송도 기록은 7경기 68분 출전 1도움으로 별볼일 없었을 지언정 전성기 시절 스포르팅에서 끝내 이뤄내지 못했던 프리메이라 리가 우승을 말년에 기어코 이뤄내게 됐다.

임대 종료 후 플라멩구로 복귀했으나 B팀 소속으로 이름만 올린 채 출전은 없었고, 계약 만료 후 조용히 은퇴하며 선수 생활을 마쳤다.

3. 국가대표 경력

브라질 태생이나 워낙 선수단이 화려한 브라질 대표팀이라 대표팀에 선발된 적은 없었다. 여기에 리에드송도 포르투갈에서의 생활에 만족감을 느끼며 포르투갈 대표팀 합류를 원하며 국적 취득이 추진됐고, 거주 조건을 만족한 2009년에 포르투갈 시민권을 획득했다.

시민권을 얻은 직후인 2009년 9월 A매치 주간 때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에 의해 처음 대표팀 명단에 뽑혔고, 9월 5일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 유럽 지역예선 덴마크와의 원정 경기에서 후반 시작과 함께 시망 사브로자와 교체 투입되며 31세의 나이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다. 그리고 0:1로 밀리던 86분에 나니의 어시스트를 받아 동점 헤더 골을 작렬해 1:1 무승부를 만들며 팀을 구해냈다. 당시 포르투갈은 예선전 초반에 홈에서 덴마크에게 2:3으로 지는 등 승점을 많이 드랍한 터라 스웨덴헝가리에게 승점이 밀리던 상황이었는데, 여기서 덴마크에게 또 지면 팀 사기가 심각하게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리에드송의 동점골로 포르투갈이 그나마 승점을 한 점이라도 더 따내며 한 숨을 돌릴 수 있었던 것.

이를 바탕으로 포르투갈은 이어진 헝가리와의 원정 경기를 잡아내며 분위기를 바꿀 수 있었고, 곧이어 10월에 열린 헝가리-몰타와의 2연전에서 각각 3:0, 4:0으로 대승을 거두며 3위 스웨덴을 단 승점 1점 차로 제치고 2위에 올라 플레이오프행 티켓을 따냈다. 리에드송도 10월 헝가리전에서 승부에 쐐기를 박는 팀의 2번째 골을 기록했고, 몰타전에서도 어시스트를 추가하며 힘을 보탰다.

이어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의 플레이오프에서는 2경기 모두 선발 출전 했고, 무득점에 그쳤으나 팀은 2경기를 모두 잡고 월드컵 본선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리에드송은 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친선경기에서도 들쭉날쭉한 경기력을 보이며 입지를 위협받았고,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1차전 코트디부아르전에서 풀 타임 출전했으나 득점 없이 침묵하며 팀의 0:0 무승부를 지켜봐야 했다. 결국 2차전 북한과의 경기에서는 우구 알메이다에게 선발 자리를 내주고 벤치로 밀려났다. 그나마 후반전에 교체투입돼 완전히 붕괴된 북한 수비진을 상대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월드컵 무대에서 득점까지 성공하는 등 나름 의미 있는 기록은 남겼다. 팀도 7:0으로 대승.

조별리그 3차전 상대는 고국 브라질이었으나 리에드송은 벤치를 지켰고, 스페인과의 16강전에서는 후반에 교체로 들어갔으나 별다른 활약은 남기지 못하며 0:1 패배를 지켜봐야 했다. 물론 리에드송의 폼 하락도 아쉬웠으나 카를로스 케이로스의 답답한 전술에 피해를 입은 면도 있다.

이어진 9월 A매치 주간에 열린 UEFA 유로 2012 예선전에서는 2경기 모두 교체 출전했으나 팀은 키프로스와 4:4로 비기고 노르웨이에 0:1로 지는 등 졸전을 거듭했고, 여기에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이 도핑 검시관에게 폭언을 날린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경질 크리를 맞았다. 이후 부임한 파울루 벤투 체제에서는 대표팀에 선발되지 않았다.

4. 수상 경력

4.1. 대회 우승

4.2. 개인 수상

5. 여담

6. 같이 보기


[1]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진행된 브라질 남동부 지방 구단 들의 소규모 대회.[2] 5회 수상은 당시 기준 최다 수상 기록이었다. 이후 헐크가 2012년 4월에 누적 6회 수상을 기록하며 신기록을 세웠고, 조나스 올리베이라가 2016년 3월에 5회 수상을 기록해 리에드송과 타이 기록을 만들었다. 2015-16시즌을 끝으로 시상이 중단되면서 시상이 재개되기 전까지는 이 기록들의 순위는 그대로 변동 없이 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