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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2 12:34:14

마이크 새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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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초기2.2. 제2차 세계 대전
2.2.1. 주요 전공
2.3. 종전 후2.4. 사망
3. 사생활4. 대중매체

1. 개요

영국의 군인.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활약했던 LRDG와 원조 SAS[1] 대원들 중 마지막 생존자였다.

2. 생애

2.1. 초기

1920년 2월 22일 켄싱턴에서 태어났고, 햄프셔 피터스필드의 비데일스 스쿨에서 초중등 과정을 이수했다. 1937년 중등 과정을 마친 후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로디지아(현 짐바브웨)의 담배 농장에서 근무했다.

2.2. 제2차 세계 대전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로디지아 연대에 입대했고, 인도 북서부 국경 곡사포부대를 거쳐 북아프리카 전역으로 파병됐다. 이후 분대장으로 임명되며 하사로 진급했으나 일반적인 군 생활은 그의 성격에 잘 맞지 않았다.[2] 1941년 군화를 벗지 말고 침낭에 들라는 지휘관의 명령을 무시하고 분대원들에게 간편화를 신게 했다가 병장으로 강등된 그는 군 생활에 흥미를 잃었고, 같은 해 9월 카이로의 한 술집에서 LRDG 대원들을 만나 자원했다.[3]

그는 이집트 쿠프라의 LRDG 본부에서 약 2주 간 나침반 사용법, 태양빛과 별빛으로 방위와 거리를 관측하는 법 등을 익힌 후 실전에 투입됐다.[4] 1942년 6월 영국 육군 공수특전단(SAS)의 길 안내인으로 차출되었고, 여러 작전에 참여해 다수의 훈장을 받았다.

1943년 5월, 북아프리카 전역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난 후에는 이탈리아 전역에 참전했고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앞두고 영국으로 복귀해 상륙부대원 교육을 담당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에는 프랑스 전역에서 활약했다.

2.2.1. 주요 전공

2.3. 종전 후

종전 후 영국 정부의 남극 탐사대에 자원해 본토에서 스토닝턴 섬까지 빙하 횡단 루트를 개척함으로써 연구기지 건설에 기여한 공로로 극지훈장을 받았다. 그가 개척한 경로는 지금도 ‘새들러 루트’라 불린다. 2021년 이 기지는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폐쇄됐지만 이후 이 지역 전체에 그의 이름이 붙게 되었다.

1947년 소령으로 예편한 후 미국 대사관에서 2년간 근무했고, 1980년대 중반까지 영국 MI6에서 일했다. 이 시기의 활동에 대해서는 자세히 밝히지 않았지만 포클랜드 전쟁 당시 첩보원으로 활동했다는 것 정도가 알려져 있다.

은퇴 후 평생 취미로 즐기던 요트 항해로 소일하며 1990년 항해 가이드북 ‘대서양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공동 집필했고, 여러 행사에서 강연하며 자신의 경험을 전했다. 한때 전쟁터 한복판에서 특전사 요원들에게 길을 안내했던 그는 말년에는 거의 시력을 잃고 앞을 보지 못했다.

2018년, 프랑스 정부는 그에게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했다.

2.4. 사망

2024년 1월 4일, 향년 103세로 사망했다. 그의 죽음으로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활약했던 LRDG와 원조 SAS 대원들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3. 사생활

1947년 군에서 만난 앤 헤더링턴과 결혼했다가 1949년 이혼했고, 1958년 외무부 동료로 만난 패트리샤 벤슨[5]과 재혼해 딸 하나를 두었다.

4. 대중매체



[1] 1941년 7월 창설되어 1945년 8월 해산되었다. 1947년 재창설된 현재의 SAS와 구분해 ‘원조 SAS’라고 부른다.[2] 훗날 역사학자 개빈 모티머와의 인터뷰에서 “군사주의의 극단적인 면들, 예컨대 명령에 따라 영문도 모른 채 위아래로 행군하는 건 내게 전혀 흥미가 없었다”고 말했다.[3] LRDG(Long Range desert Group)는 1940년 7월 창설된 장거리 사막 정찰부대로, 사막 지형이 많은 북아프리카 전역에 특화된 부대였다.[4] 훗날 인터뷰에서 밝히길 “별빛으로 길을 찾으며 칠흑의 사막을 누빈다”는 말에 매료됐다(...)고 한다.[5] 2001년 사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