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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8 16:44:34

조선혁명박물관

만수대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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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선혁명박물관.jpg
▲ 조선혁명박물관의 모습
<colbgcolor=#e40001,#222222><colcolor=white> 설립 1948년 8월 1일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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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해방투쟁기념관 (1948~1952)
국립중앙해방투쟁박물관 (1952~1961)
조선혁명박물관 (1961~ )
주소

조선혁명박물관
(평양시 중구역 만수동)
1. 개요2. 만수대(萬壽臺)3. 구성
3.1. 만수대대기념비
4. 교통5. 남북통일 이후

[clearfix]

1. 개요

북한박물관. 평양시 중구역 만수동에 있다.

근처에 칠성문, 모란봉극장, 해방탑, 천리마동상, 평양시청년공원야외극장 등이 있다.

2. 만수대(萬壽臺)

만수대(萬壽臺)는 광복 당시 행정구역상 평양시 창전리에 있는 언덕이다. 1946년 미군이 발행한 평양 지도를 보면 높이 60.7m이다. 본래 1930년대 초반만 해도 1909년 2월 1일 순종황제가 만수대에 오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행행기념비(幸行紀念碑)와 소나무 몇 그루만이 전부였다. # 1935년 일제 당국이 만수대를 개발하여, 평남도청, 소방서, 측후소가 하나 둘 들어섰고, 그 외에 평양제2중학교를 비롯하여 만수소학교·상수소학교 등이 몰려 있던 학교촌이 되었다. 1938년이 되면 평양 어디서나 잘 보였던 행행기념비는 눈에 잘 뜨이지 않게 되었고, 멸실 시점은 분명하지 않으나 6.25 도중의 폭격이 아니라면 소련군정이나 북한 정권이 파괴했을 것이다.

1946년 미군이 발행한 평양 지도와 현재의 지도를 대조하면, 과거의 저 시설들 자리에 들어선 것은 언덕 아랫단의 만수대의사당이 아닌 바로 이 '조선혁명박물관'이다.

3. 구성

파일:attachment/우상숭배/buk.jpg

1948년 8월 1일에 개관하였는데, 아마 창립 당시에는 그리 크지 않은 규모였을 것이라 짐작되나, 김일성에 대한 우상화가 진행되면서 언덕 하나를 통째로 깔고 차지할 만큼 거대해졌다.
1973년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박물관 입구는 작은 문이고, 박물관 앞에 커다란 백두산 벽화를 배치해놨다. 자세히 보면 북한 국장에 있는 백두산과 모습이 대충 들어맞는다. 명칭에서 느낄 수 있듯이 김일성과 김정일의 공산주의 치적을 자랑하는 곳이다.

그러다가 2022년 김정은 집권 10주기 부터는 김정은관도 추가되어 3부자 전시관이 되었다. #

3.1. 만수대대기념비

파일:Mansudae_Grand_Monument_02-1024x621.jpg
대군상조각탑의 모습.
본디 김일성 동상만 있었으나 김정일 사후 김정일 동상 또한 김일성 동상 옆에 설립 되었다.

박물관 앞에 세워진 기념비로 현지에서는 '대군상조각탑'이라고 불리는 김일성김정일동상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 등이 위치해 있다. 일반 여행객들 또한 방문이 허락되며, 더나아가 권장된다. 북한 측에서는 대체로 외국인 방문객이든 개인이든 단체든지 간에 가급적 평양에 도착한 첫 날, 가장 먼저 만수대대기념비를 찾아 동상을 참관하도록 일정을 주선하며 권유한다고 한다. 심지어 꽃을 준비하지 않은 외국인 방문객들 또한 헌화할 수 있게 들어가는 길에 꽃을 파는 매대도 위치해있다.

동상의 촬영은 허락되지만 주의사항으로는 김일성 김정일 동상을 비롯해 사진을 촬영할 때 동상의 신체일부가 잘려서 촬영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굉장히 불경한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 반드시 전신이 한 프레임에 담기도록 촬영해야 한다. 또한 동상의 뒷부분을 촬영하는 것 역시 금지된다. 이처럼 평양 방문객들이 만수대대기념비를 방문하기를 바라는 북한 당국이 이상하게도 중국인 관광객들만은 만수대대기념비 방문을 막아놓았다고 한다. 참고 중국 관광객들은 만수대대기념비에서 마땅히 따라야 할 가이드의 지시를 따르지도 않고 무례하게 행동하기 때문이라는 듯하다.

원래 이 자리에는 김일성의 동상만이 있었으나, 김정일의 사후이자 김일성의 탄생 100주년인 2012년 4월 13일에 김정일 동상의 제막식이 거행되었다.[1] 옆에 있는 김일성 동상은 높이만 23m[2]에 달하며, 이 역시 1972년 4월에 김일성의 환갑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다. 참고로 1977년 잠깐 동상에 37kg의 금박을 입힌[3] 당시 실제 사진 적이 있지만 1978년 9월에 북한을 방문한 덩샤오핑이 '돈이 없다고 우리에게 지원을 요구하는데 왜 이런 데에 쓸 금은 있나?'고 지적하자 '금색은 햇빛에 너무 번쩍이므로 좋지 않다'며 금박을 모두 떼어냈다고 한다.[4] 이후 30년 넘게 김일성 동상은 그대로 있다가 김정일이 사망한 거의 직후인 2012년 4월 김일성과 김정일이 나란히 선 채 웃는 동상으로 교체되었고, 심지어 이듬해에는 김정일이 생전에 코트를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코트 차림이던 김정일 동상을 잠바 차림으로 교체했다.

2024년 4월 26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5] 92주년부터 중앙당의 지시로 만수대창작사 1호 동상 수복실에서 80여 명을 동원해 동상 보수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실제로 위성 사진에서 기존에는 보이지 않던 흰색 가림막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유사시 동상을 지하 갱도에 보호할 수 있는 자동화 체계와 갱도 기계 장치를 현대적으로 정비 하는 공사도 함께 진행 중이라고 한다.[6] #

아이러니하게도 이 자리는 1907년 평양 대부흥의 시점인 장대현교회라는 큰 교회가 들어선 곳이었다. # 한국 개신교가 세력을 확장하는데 가장 핵심이 되던 성지와도 다름 없기에 신도들은 무슨 우상숭배가 이루어지냐며 충격을 금치 못하기도 한다.
파일:조선혁명박물관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jpg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

또 하나 유명한 시설물에는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이 있다. 북한 매체에서 자주 보이는 기념탑으로 이 역시 김일성 김정일 동상과 함께 만수대대기념비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4. 교통

평양 지하철 모란봉역이 박물관 근처에 위치한다.

5. 남북통일 이후

남한 주도 아래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당분간 박물관 건물 자체는 리모델링되어 사용될 가능성이 높으나, 워낙 매머드급 건물이라 용도를 찾지 못해 장기적으로는 철거될 가능성도 있다. 물론 박물관으로 사용된다면 당연히 명칭도 변경될 것이고, 안내문들도 변경될 것이고, 우상화 선전물은 반드시 철거될 것이다. 아니면 소장 유물 가운데 일부만 남겨서 북한 체제가 어떤 식으로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프로파간다를 펼쳤는지를 보여주는 자료관으로써 재활용되거나.


[1] 이때 김정은은 동상이 제작되는 만수대창작사와 만수대대기념비를 여러 차례 찾아 세부적인 형상부터 동상 조명효과에 이르기까지 동상 건립과정을 구체적으로 지도했다.[2] 기단 3m+본체 20m[3] 대략적으로 환산하면 무려 29억 2천만 원 상당의 금이 들어간 셈이다.[4] 또는 금박을 그대로 두고 동색을 칠했다는 말도 있다. 참고로 북한은 이 동상의 무게를 '남북한 8000만 명의 몸무게'라고 두루뭉술하게 말하며 정확하게 공개하지 않는데, 의미심장하게도 그 이유가 동상의 성분 분석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 있다.[5] 참고로 조선인민혁명군은 실존하지 않은 날조된 군대다.[6] 참고로 만수대 동상은 비상시에 단추를 누르면 동상이 바로 수직으로 하강할 수 있는 자동승강기 체계로 설비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