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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0-01-20 19:08:41

조선중앙력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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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광장에서 사진 왼쪽 끝에 보이는 건물. 맞은편 오른쪽 끝에 있는 것은 조선미술박물관.

파일:external/static.panoramio.com.storage.googleapis.com/64104913.jpg

朝鮮中央歷史博物館[1]

1. 개요2. 상세3. 구성4. 통일 이후에는?

1. 개요

북한평양직할시 중구역 대동문동 김일성광장에 있는 북한 최대의 역사 박물관. 1945년 12월 1일에 개관.

2. 상세

유홍준이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4권(평양의 날은 개었습니다)[2]에 따르면, 조선중앙력사박물관의 전신은 1935년 모란봉 을밀대 가는 길에 세워진 일제 시대의 평양부립박물관(平壤府立博物館)으로[3] 해방 직후인 1945년 12월 1일에 평양박물관으로 개관한 뒤,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이 북진하면서 엄청난 폭격을 맞은 평양이 그야말로 석기시대 수준으로 박살(...)이 난 뒤에 시가지를 마개조 복구하면서 지금의 위치인 김일성광장으로 옮겨 1954년 9월에 완공했다.

소장 유물의 질과 양은 남한의 주요 박물관에 비해서도 매우 초라한 수준이였다고 한다. 원래 이 박물관에 있었던 유물은 고구려 와당과 낙랑 시대 유물 등 평양 지역에서 나온 출토품 및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화가 다였고, 1945년 12월 1일 개관 당시 소장 유물의 수는 2천 점 정도였다. 이는 원래 이 박물관이 평양부립, 즉 요즘말로 지역 시립박물관 정도에 그치는 작은 박물관이었기 때문이다. 해방과 남북분단까지 한반도의 주요 유물은 거의 경성부조선총독부 박물관이왕가 미술관에 있었으니. 게다가 평양 이외에 일제강점기부터 박물관이 있었던 또다른 역사도시인 개성은 해방 직후에는 38선에서 살짝 남쪽에 있어 남한의 관할이었다.

유홍준에 따르면, 해방 직후 초대 국립박물관장이 된 김재원 관장이 개성부립박물관을 국립박물관 개성분관으로 승격시키고(38선 그어졌을 당시에 개성은 남한이었다) 38선 근처에 박물관이 있다는 것이 불안해서 개성분관에서 전시하고 있던 유물, 특히 고려청자 명품들을 모두 서울로 옮겼는데, 한국전쟁 터지고 휴전협정 맺고 나서는 개성분관도 북한 손에 넘어가기는 했지만, 알맹이는 거의 없다시피 했고 결국 평양에 남은 2천 점이 북한 문화재의 핵심이 되었다고. 서울과 부여 등에 있던 문화재도 전쟁이 일어나자 낙동강 전선 안쪽 부산으로 모두 피신시켜 북한이 손에 넣을 수는 없었다.[4]중국국공내전 직후 분단될 때 중화민국 정권이 대륙의 주요 유물을 대만으로 피신시킨 것과 비슷한 일이 한국이 분단될 때도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유홍준이 북한을 답사한 1997년에는 북한정권 수립 이후 북부지방 각지의 새로운 유물들이 모여 13만 점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덕분에 북한은 단순히 실물 문화재를 주욱 전시해놓는 고전적인 형태를 벗어나 남한보다 상당히 일찍 레플리카(정밀복제품)를 박물관에 적극적으로 도입하게 되었다.[5] 13만점이라는 것은 이 레플리카까지 포함시킨 수량. 2016년 현재는 어느 정도일지 불명.

비록 복제품이 다수이긴 하지만 이렇게 관람객이 한국사를 공부할 수 있도록 여러 조치를 했고, 북한정권 특성상 애국주의 배양을 위해 학생들이 박물관을 찾도록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비중있는 기관으로 받들었다고 한다. 이 박물관이 조선미술박물관, 민속박물관과 함께 평양의 명실상부한 중심인 김일성광장에 있다는 것으로도 북한 도시계획상 박물관을 얼마나 중요한 위상으로 두고 배치했는지 알 수 있다. 서울로 치면 국립중앙박물관이 광화문광장에 있는 셈이다.

비록 북한 박물관의 소장 유물이 남한에 비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절차에 따라 유물을 확보하고 소장하였다. 그 결과 소장유물이 2010년 기준(『북한의 박물관』, 장경희) 약 150,000점으로 북한의 국립박물관치고는 많은 유물을 보유하고 있으며, 가장 늦은 소속박물관인 평성 력사박물관의 소장 유물도 1만점이 넘는다. 나머지 지방소속박물관도 3000~60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어 그 숫자가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참고로 조선중앙력사박물관도 남한의 국립중앙박물관처럼 '중앙'이라는 말이 산하에 소속박물관들을 두는 것을 의미하며, 청진력사박물관, 함흥력사박물관, 강계력사박물관, 원산력사박물관, 신의주력사박물관, 향산력사박물관, 평성력사박물관, 사리원력사박물관, 해주력사박물관, 개성고려박물관, 그리고 계획 중인 혜산력사박물관이 있다. 사족으로 우리나라의 국립민속박물관과 비슷한 조선민속박물관도 있다. 지방소속박물관에 대한 내용은 알고 계신 분이 있다면 추가 바람.

한국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해 인민군이 쫓겨가고 평양이 한미연합군에게 점령되자 평양박물관 건물은 어느 미군부대가 접수했는데, 박물관 건물 지하실에 권총사격장을 만들고 사격 연습을 하던 한 미군 병사가 표적으로 쓰던 시멘트 벽이 허술한 것을 알아챘고, 벽을 조사하다가 벽이 이중벽으로 되어 있으며 그 안에 평양박물관에서 소장했던 유물들이 숨겨져 있는 것이 드러났다. 인민군이 평양에서 퇴각하기 전 숨겨놓은 것으로 유물 가운데는 채협총(1916년 발굴조사)에서 나온 낙랑 시대의 채협칠기 유물도 있었는데, 당시 학자들이 이 유물들을 수습해 서울로 옮기려고 했지만 당시에는 국군이 압록강에 도달하는 등 곧 북진통일이 성사될 것 같은 낙관적 분위기여서 서두르지 않던 사이 중국군이 참전하고 1.4 후퇴가 벌어져 서둘러 퇴각하는 바람에 실현되지는 못했다고.[6]

3. 구성

박물관 내부는 모두 19호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다음과 같다.국가지식포털 북한지역정보넷

햇볕정책이 시행돼 남북교류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던것 같던 2006년 까지 조선중앙력사박물관 유물 가운데 일부가 6월 13일부터 8월 16일까지 '북녘의 문화유산-평양에서 온 국보들'이라는 표제로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대여 전시되었다.[8] 8월 28일부터 10월 26일까지는 대구에서도 국립대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전시가 이루어졌다. 특히 서울 전시 당시 고려 태조 왕건의 청동상이 함께 전시되었는데, 전시 4년 전인 2002년에 방영된 사극 태조 왕건에서 주인공 왕건 역할을 맡았던 최수종이 개관 전날 특별초청되어 왕건의 청동상을 관람했고, "혼신을 다해 연기했던 분을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생각을 가져왔는데 서울의 한복판에서 북한의 최고문화유산을 보게 돼 영광이다. 이번 기회로 통일에 한 발짝 더 다가간 느낌이다"라고 소감을 밝히기도.조이뉴스24 보도

박물관의 입지는 김일성광장의 한복판으로 일단은 좋은 편이다.[9] 북한 정부에서 주체사상에 입각한 역사교육의 학습장, 문화유산을 통한 애국주의 그리고 김씨 일가의 독재에 대한 합리화 배양의 장으로써 중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당장 제1관에 김일성이 어디어디에 있는 유적지를 찾아가 찍은 기념사진을 전시해 놓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위키백과에 따르면 북한의 경제난 악화에 따라 관람객이 없을 때는 전기를 꺼놓고 있다고 하는데 안습 이게 문제가 큰 것이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 가운데 실제 진품도 만만치 않은데[10] 시대가 오래된 유물인 이상 내부에서 습도온도가 일정하게 유지, 관리되지 못하면 유물 자체가 자칫 손상될 수도 있기 때문.[11][12]

4. 통일 이후에는?

전술했듯 박물관의 입지는 일단 괜찮은 편이라서, 이름은 국립평양박물관(고려역사박물관은 국립개성박물관)으로 바뀌겠지만 건물과 최신식 장비와 수장고 시설을 완비해야 될것이다. (북한의 지방 국립박물관들 중 정말 열악한 박물관이 대다수이다.)

[1] 한국어로 읽으면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어야 하지만, 북한은 두음법칙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歷史'를 '력사'로 발음한다.[2] 옛날에는 나의 북한 문화유산 답사기 상권이었다.[3] 해방 직후 우리나라의 박물관 사정은 우선 서울에 조선총독부 박물관이왕가 미술관이 있었고 나중에 이 두 곳이 국립박물관으로 합쳐지며, 서울 이외에는 옛 수도로서 유물이 많은 경주시부여군에 국립박물관의 분관이 있었다. 그리고 공주시에 공주고적현창회 진열실, 개성평양에 각각 부립박물관이 있었다.[4] 이 때 부산에 피신시킨 유물 중 일부가 부산 용두산 대화재 때 소실되기도 했다.[5] 유홍준에 따르면 아예 북한은 문화보존총국(우리나라의 문화재청) 산하에 문화유물창작사가 독립기관으로 존재하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왠지 창작이라는 말이 신경쓰이는 것은 기분 탓이겠지 물론 그 복제품이라는 것도 호모 에렉투스 시절의 검은모루동굴 풍경 상상도라던가 고인돌 끌고 가는 청동기인 모형이라던가, 대성산성 배치도나 안학궁 모형도, 안악 3호분 실물대(말 그대로 실물 크기로 박물관 안에 재현되어 있다!) 복원, 발해 상경용천부 석등 모조품이나 남한에 있는 다보탑 같은 것들. 남한의 박물관에서도 으레 전시되어 있는 상상모형(디오라마)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6] 경향신문 1975년 6월 21일자 기사.[7] 박물관에 전시된 리플리카 가운데 상원검은모루 동굴에 살았을 호모 에렉투스의 모습을 그린 상상도가 있는데, 유홍준은 똑바로 서지 못해 꾸부정하게 걸으면서 두개골은 작고 몸에는 털이 많고 입술은 아직 생기지 않은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호모 에렉투스의 모습 그대로라고 평했다. (외국에서도 박물관에 원시인의 상상도를 설치할 때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를 혼동해 그냥 털 없는 원숭이를 그려 놓은 경우가 많다고.) 영남대학교 이청규 교수(당시 고고학, 현재는 문화인류학)도 영남대 박물관 대학에서 강의할 때 이 상상도를 보여주면서 "호모 에렉투스를 비교적 정확히 그렸다"고 평가했다고.(출처: 유홍준 나의 북한문화유산 답사기)[8] 이때 유물들은 평양에서 원산을 거쳐 금강산을 통해 남쪽으로 전달되었다.미국의소리[9] 일본의 고고학자인 도쿄대 사이토 다다시 교수는 평양을 방문하고 쓴 북조선 고고학의 신발견(1996년)에서 "평양시의 중심지인 김일성광장의 양측에 조선중앙력사박물관과 조선미술박물관이 마주하고 있다는 것은 이 나라가 박물관과 미술관을 얼마나 중요시하고 있는가를 무언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이런 자리설정은 세계의 박물관에서도 유례가 드물다"고 평가했다. 유홍준도 평양을 방문하기 전까지 방송에 나오던 김일성광장의 양 옆 건물이 로동당 당사나 의사장 정도인 줄 짐작했었다고.(출처: 유홍준, 나의 북한문화유산답사기)[10] 대표적인 것이 상원 검은모루동굴에서 나온 뗀석기나 신의주에서 발굴된 청동기 시대의 미송리식 토기.[11] 박물관에서는 유물 보존을 위해 내부에 자체적으로 온도와 습도 조절(그리고 충해蟲害 방지)을 적절히 해 주어야 한다.[12] 우리나라에서도 대구에 있는 화폐박물관의 경우 관람객이 없을 때 불을 꺼놓고는 있기도 하지만 유물 보존을 위한 일부 동력은 상시 돌리고 있기에, 북한의 경우 유물을 보존 관리할 박물관 내 자체적 동력을 남겨놓기는 하는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실제로도 돌리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