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방탑 解放塔 Liberation Monumen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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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f5f5f5,#2d2f34> 다른 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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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공 | 1947년 |
| 규격 | 높이 30m |
| 주소 | |
해방탑 (평양시 중구역 경상동) | |
1. 개요
러시아어: Монумент «Освобождение»[1]북한의 기념탑. 평양시 중구역 경상동에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소련군의 북한 지역 해방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오벨리스크 모양의 탑이다. 신의주 같은 곳에도 해방탑이 있으나 평양 해방탑이 가장 유명하다.# 그래서 '해방탑' 하면 보통 북한 평양의 해방탑을 말한다. 평양 해방탑 주변에는 당시 북한에 주둔하다가 사망한 소련군 묘지도 같이 있다.
8.15 광복 당시 미군이 발행한 지도를 보면 해방탑 자리에는 관우를 모신 관제묘(關帝廟)[2]가 있었으나 철거하고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은 여러모로 중국과의 우호친선관계를 상징하는 조중우의탑과 유사한 의미를 가진다.
근처에 칠성문, 모란봉극장, 천리마동상, 평양시청년공원야외극장, 조선혁명박물관 등이 있다.
2. 특징
Великий советский народ разгромил японских империалистов и освободил корейский народ. Кровью, пролитой советскими воинами при освобождении Кореи, еще больше укрепились узы дружбы между корейским и советским народами. В знак всенародной благодарности воздвигнут этот памятник. 15 августа 1945 года.
위대한 쏘련인민은 일본제국주의를 쳐부시고 조선인민을 해방하였다. 조선의 해방을 위하여 흘린 피로 조선인민과 쏘련인민의 친선은 더욱 굳게 맺어졌나니. 여기에 탑을 세워 전체 인민의 감사를 표하노라. 1945년 8월 15일.
해방탑 전면 비문##
위대한 쏘련인민은 일본제국주의를 쳐부시고 조선인민을 해방하였다. 조선의 해방을 위하여 흘린 피로 조선인민과 쏘련인민의 친선은 더욱 굳게 맺어졌나니. 여기에 탑을 세워 전체 인민의 감사를 표하노라. 1945년 8월 15일.
해방탑 전면 비문##
Вечная слава великой Советской Армии, освободившей корейский народ от ига японских империалистов и открывшей ему путь к свободе и независимости! 15 августа 1945 г.
조선인민을 일제의 압박에서 해방하고 조선에 자유와 독립의 길을 열어준 위대한 쏘련군대의 영웅적공훈은 천주만대에 길이 빛나리라! 1945년 8월 15일.
해방탑 후면 비문#
상부 사진은 소련에서 발행한 해방탑 기념 우표다. 평양시 중구역 모란봉에 위치해 있으며 탑 위에 오각성이 박혀 있다. 소련군이 북한을 해방시킨 것을 기념하는 탑이라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적인 느낌이 강하며 탑 아래에는 아예 소련 국기가 금속으로 장식되어 있다. 러시아 입장에서 보면 소련군 전사자 위령탑이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이곳에 주북한 러시아대사관 직원들과 러시아 외무부의 직원들이 헌화를 하러 오지만 이런 모습은 철저히 대외적인 모습으로, 대내적인 모습은 아주 다르다. 이 탑은 북한 정권의 겉과 속이 다른 가장 대표적인 행태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조선인민을 일제의 압박에서 해방하고 조선에 자유와 독립의 길을 열어준 위대한 쏘련군대의 영웅적공훈은 천주만대에 길이 빛나리라! 1945년 8월 15일.
해방탑 후면 비문#
1950년대 후반까지 북한은 소련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으므로 1959년까지 북한은 광복절을 위대한 쏘베트 군대에 의한 8.15 조선 해방으로 불렀다. 당장 준공 이듬해인 1948년 2월 조선인민군 창건 당시 촬영된 해방탑 영상을 보면 소련 국기 장식만 있는 현재의 하단부와는 달리 태극기와 소련 국기를 배경으로 소련군의 악수를 북한 사람이 두 손으로 받는 장면을 그린 조각이 있었다. 당시는 북한 정권 수립 이전인 북조선인민위원회 시절로, 북조선인민위원회도 태극기와 올드 랭 사인 음정의 애국가를 사용하고 있었다. 태극기의 존재 때문에 해당 장식은 1948년 9월 북한 정권 수립 직후 교체되었다.
원래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바치는 기념패도 있었으나, 1959년 니키타 흐루쇼프의 방북을 명분으로 철거했다. 이후 1960년 무렵부터 북한은 '위대한 쏘베트 군대에 의한'이라는 수식어를 점차 제거하기 시작했고, 적어도 2차례 보수해 비문의 그림과 내용을 바꾸었다. 탑 하단 우측에는 러시아와 북한을 상징하는 두 남성이 나란히 서서 각각 한 손을 들고 만세를 부르는 장면이 동판에 부조되었는데, 마치 소련군이 북한의 해방을 도와주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구도로 모호하게 연출되었다.[3] 탑 하단 좌측에는 소련군이 돌격하는 모습을 새긴 동판 부조가 있으나 어째서인지 촬영된 사진이 거의 없다. 소련-일본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진상을 암시하는 작품으로 여겨서 주민들이 여기에 관심 가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듯하다.[4]
이때부터 북한인들은 "김일성이 조선인민혁명군을 이끌고 한반도로 진공하여 일본을 몰아내고 한반도를 해방했다"는 가공의 군대를 동원한 역사 왜곡을 배우며 진실을 알면서도 왜곡된 역사를 진실로 받아들여야 하게 되었다. 또 북한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이 강했던 60년대 초까지 해방탑은 북한 주민들이 즐겨 찾는 명소였으나 60년대 후반부터 출입이 통제되었다고 한다. 당시부터 이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소련은 북한을 배은망덕한 국가로 여기고 매우 경멸하였으나 대외적으로는 문제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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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년 2월 촬영된 해방탑 하단부의 조각 |
flickr 사용자인 Kernbeisser라는 독일인에 따르면 이러한 해방탑이 북한 전역의 도시에 있었으나 헐리거나 접근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5] 또 북한 전역에 있던 소련군 참전 및 추모 기념탑 13기를 철거하거나 빨치산 기념비로 바꾸었다.# 김일성이 조선인민혁명군으로 일본군을 물리치고 북한을 해방시켰다는 역사 왜곡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다만 해방탑은 북러관계 악화를 고려하여 차마 철거하지는 못했다. 북한에서는 현재 해방 과정에서 소련군의 참전을 아예 부정하지는 않지만, 김일성 부대와 북한 주민들의 자체적인 항쟁의 역할이 더 컸고[6] 소련군은 도움을 주었다고만 주장한다. 1980년대 이후의 문헌 중 김일성이 조국해방전투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유일한 문헌은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뿐이다. 시대가 지날수록 소련군의 역할은 축소되는 추세다. pdf 2005년 발간된 평양 과학백과사전출판사의《항일무장투쟁사》같은 전문서적의 135페이지가 김일성이 웅기에 상륙하고 배후에서 반란이 일어나 일본군을 물리쳤다는 내용이며 소련군에 대한 언급은 단 한 줄밖에 없을 정도이다.
이런 역사 왜곡은 김일성을 나라를 해방시킨 영웅으로 만들려는 목적이 가장 크다. 북한인들이 해방탑의 유래를 안다면 세뇌된 사람도 그 내용을 의심할 가능성이 높다. 당장 해방탑이 있는 평양의 중구역은 조선로동당 간부들이 사는 북한 정치의 중심지이다. 조선로동당 간부를 위시한 북한 주민들이 해방탑의 진실을 알면 그동안 배워 왔던 것들이 모두 거짓이라 충격을 받아 충성심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으니, 북한 입장에서는 애써 주민들이 해방탑에 접근하는 것을 막고자 한다.
북한에서 세뇌된 사람도 김일성이 일본군을 거의 독자적으로 물리쳐서 위대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특히 평양 해방탑에는 소련군이 해방을 시켰다는 내용이 조선어 명문으로 새겨져 있다.# 물론 김정은은 2021년에도 화환을 보내고 러시아 대사관이 자신의 SNS에 해방탑을 북한 당국이 수리하는 사진을 올리기도 하지만, 이는 북러관계를 의식한 행보지[7] 대내적으로는 이런 것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 로동신문은 이 탑에 대해 소련군이 해방에 도움을 준 것을 기념하는 내용까지만 보도할 뿐이다. 대외선전매체에서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이 열린다는 사실을 언급하기도 하지만 대내적으로는 한글을 아예 모자이크한 경우와 마찬가지다. 경향신문이 아예 한국에서 아시안 게임이 열린다는 사실 자체를 은폐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과 유사하다.#
북한 내 여러 해방탑의 사진
3. 남북통일 이후에는?
두 시나리오가 존재한다.첫번째로는 독일의 선례와 같이 남길 가능성도 있다. 독일 재통일 이후에도 구 서독 및 동독 영토에 남아 있는 소련군 묘지와 기념탑은 철거되지 않았다. 심지어 구 서베를린에 있었던 소련군 전승기념탑도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야 전체 철거가 아닌 대포와 전차의 철거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통일 한국과 러시아 사이에 직접적인 전쟁이 터지거나 한러관계가 급변하지 않는 이상 일부 해방탑, 특히 소련군 묘지를 겸하는 해방탑은 이장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유지될 수 있다. 물론 이 경우에도 김씨 일가가 직접 쓴 문구는 다른 것으로 교체될 것이다.
하지만 독일과 한국에 소련군이 진주하게 된 역사적 맥락에는 차이가 있고, 이 소련군의 북한 해방이 남북분단과 한국전쟁으로 이어졌기에 해방탑이 완전히 철거될 수도 있다. 소련에 원죄가 있는 독일과 달리 소련군 진주의 피해자인 대한민국 입장에서 김씨 정권 옹립의 원죄가 있는 소련군 진주 기념비를 남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4. 관련 문서
[1] 기념물 《해방》[2] 1918년 일본인이 발행한 지도를 보면 일명 '서묘(西廟)'라고도 했다.[3] # #[4] # #[5] 물론 이는 북한 주민에 한한 조치로 보인다. 러시아 관광객들은 해방탑에 잘도 방문한다. 영상의 1:36 부분[6] 북한은 김일성의 부대가 소련군과 함께 북한으로 들어오면서 대일전에 참전했다고 주장하지만 김일성 부대가 소련군과 함께 대일전에 참전했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만약 실제로 참전했다고 해도 불과 100여 명 내외에 불과했던 김일성 부대보다는 소련군의 역할이 훨씬 더 컸을 수밖에 없다.[7] 주북 러시아 대사관은 아예 김일성 소속 부대인 "붉은군대원동전선군 제88독립련대"의 존재와 그 부대원에게 김정은이 러시아 대사관과 공동으로 수여한 메달까지 언급하였다.# 하지만 북한 사이트 검색까지 가능한 구글에서 "88독립련대"는 러시아 사이트에서만 검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