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맹꽁이 서당/에피소드
맹꽁이 서당 | |
에피소드 | |
조선편 | 1권 · 2권 · 3권 · 4권 · 5권 · 6권 · 7권 · 8권 · 9권 · 10권 |
고려편/기타 | 11권 · 12권 · 13권 · 14권 · 15권 · 기타 |
등장인물 |
1. 능참봉과 정조 임금
마당쇠가 노루 사냥을 나가겠답시고 강아지와 함께 호랑이가 사는 산에 올라가 동물들의 씨를 말리겠다고 떠들다가 산군님을 우습게 안다며 괘씸히 여긴 호랑이가 잡아먹으러 갑툭튀하자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다행히 밀양 박씨라는 호랑이들에게는 저승사자로 통하는 사냥꾼이 때마침 나타나서 목숨은 건졌다. 이후 반쯤 정신이 나간 채 내려와서, 이를 본 훈장님이 노루 고기는 안 주냐고 묻자 화가 난 마당쇠가 "노루 고기 먹고 싶으면 잡아서 잡수!"라고 막말을 내뱉었다. 당연히 훈장님은 넌 예의도 모르냐고 꾸짖었지만 마당쇠는 "몰라요 몰라-"라고 더 큰 소리를 치고 가버렸다.
훈장님은 몹시 괘씸하게 여겼지만 나중에 학동들에게서 마당쇠가 호랑이를 만나 죽다 살았다는 말을 듣고 이해했다. 2년 전에도 마을 주민 한 명이 호랑이를 만났다가 호되게 정신이 나가 보름을 못 넘기고 죽은 데다, 마당쇠가 그 호환으로 인해 옷에다 실금과 탈분을 마구 하고 제정신을 못 차려서 첨지까지 깜짝 놀라 서둘러 의원을 불러 약을 먹이고 침까지 놓으며 정신을 돌리려 하는 중이라고 한다.
사태를 파악한 훈장님이 학동들에게 너희는 함부로 산에 올라가지 마라고 하니까 자기들은 호랑이가 온 걸 알고 안 간지가 두 달도 더 됐다고 한다. 어떻게 알았냐는 말에 뭔가 꺼내서 보여주는데 바로 호랑이 똥. 더럽게 그런 걸 왜 들고 다니냐니까 누가 약으로 쓸까 해서 갖고 다닌단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데 이건 더욱 약이라고 한다.
선대왕 이야기는 사도세자묘를 지키는 능참봉 왕성의 이야기. 왕성이 용하기로 유명한 점쟁이에게 찾아가 점을 보는데, 며칠 후 목이 달아날 것이라는 흉한 점괘가 나온다. 어떻게 살 방도는 없는지 물으니, 초닷새날 저녁부터 비가 올 테니 관복을 갖춰입고 사도세자묘 앞에 축시(새벽 1시~3시)까지 엎드려있으라고 했다.
며칠 후 초닷새날이 되자 정조가 사도세자묘로 행차하고 수원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는데, 과연 점쟁이 말대로 비가 오자 왕성은 관복을 갖춰입고 사도세자묘 앞에 엎드려있었다.
한편 정조는 비가 오자 더욱 아버지 생각이 났고, 아버님은 찬비 맞으며 땅속에 누워계신데 참봉놈은 더운 구들장에서 누워잘 거라는 생각에 괘씸히 여겨, 선전관을 불러 칼을 주며 능참봉이 편히 자고 있으면 불문곡직하고 목을 베어오라고 했다.
선전관이 말을 타고 가보지만 왕성의 집에는 왕성이 없었고, 묘에 올랐다는 말을 듣고 가보니 왕성은 비를 철철 맞으며 묘 앞에 엎드려있는 게 아닌가? 이때가 축시였다.
선전관은 정조에게 능참봉 왕성의 젖은 의복을 바치며 그 사실을 말했고, 정조는 기특히 여겨 새 의복과 상금을 내리고 벼슬도 올려줘 왕성은 목숨을 건지고 지방 수령관(원님)이 되었다고 한다.
그 뒤 학동들이 "정말 임금이 무섭구나! 죽이고 살리는 게 마음대로니..."라고 했더니 한 학동이 "나도 여름에 마음대로 개미를 죽이고 살리고 하니까 나도 개미들에게 대왕이지"라고 하여 다들 뒤집어졌다.
2. 세손의 목숨을 구한 홍국영
6권에서 말썽 피워서 혼날 때마다 '훈장님도 어릴 때 장난이 심했잖아요' 드립을 쳐서 훈장님을 벙찌게 한 후 붓장수 공서방이 그랬다면서 떠넘긴 일 때문에 공서방이 찾아오자 훈장님이 공서방에게 왜 그런 말을 하냐며 따졌다가 학동들한테 낚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역관광 후 데꿀멍해 공서방을 달래고 달래서 보냈다.사실 학동들은 그냥 떠 본 말이었는데, 훈장님께서 알아서 확인사살. 그 뒤 훈장님이 자기를 망신시켰다고 화내자 학동들은 고개를 숙이면서 선대왕 공부나 하자고 얘기했다.
3. 홍국영의 말로
입춘을 맞이하여 훈장님이 입춘방[1]을 붙이는데 그 중에서 '우순풍조 시화연풍(雨順風調 時和年豊)'[2]이라는 글귀를 내밀며 무슨 뜻이냐고 묻자 학동들은 "비, 바람이 부는 날에는 서당을 쉬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가 혼났다.훈장님이 뜻을 말해주면서 그게 왜 그런 뜻이냐고 하니까 "우리한테 좋은 건 서당을 쉬는 거니까"라고 답하여 훈장님의 말문을 막아버린다. 그러던 중 마당쇠가 나타나 귀를 잡아당기며 끙끙대자 훈장님이 못 알아먹겠으니 그냥 말로 얘기하라고 혼내자,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며 생일잔치에 왜 안 오냐고 말했더니 학동들이 모르게 말해야 하지 않냐며 또 혼냈다.
마당쇠는 그래서 몸짓으로 첨지님 귀 빠진 날(생일)이라며 내 귀를 늘게 했는데 못 알아듣냐며 가는 내내 불평했고 건망증이 드는데 어떻게 가르치냐고 훈장님에게 얘기했다. 그 와중에 한 학동은 훈장님에게 '술을 좋아하니까 많이 마시세요'라고 했다가 훈장님에게 혼났다.
그 뒤 훈장님이 생일잔치에 간 사이에 학동들은 훈장님이 쓰신 글을 바탕으로 짜깁기해서 별의별 몹쓸 글을 서당 전체에다가 덕지덕지 써서 붙여놨다.
호반창힐 (虎飯蒼頡): 호랑이 밥 창힐.[3]
입춘대휴 (立春大休): 봄을 맞아 푹 쉬자.
소불근유노후회 (少不勤遊 老後悔): 젊어서 부지런히 놀지 않으면 늙어서 후회한다.[4]
침문유복래 (寢門遊福來): (훈장님) 잠들면 놀 복이 온다.[5]
무문요세 (無文樂世): 글없는 세상 좋은 세상.
사면동주 (師眠童走): 스승이 졸면 우리는 도망가고.
자속세출 (字速世出): 글아 속히 세상을 떠나거라.
거기다 이걸 마침 지나가던 훈장님 친구가 보고 이야기하는 바람에 잔치는 웃음판이 되었고 훈장님은 개망신당했다.입춘대휴 (立春大休): 봄을 맞아 푹 쉬자.
소불근유노후회 (少不勤遊 老後悔): 젊어서 부지런히 놀지 않으면 늙어서 후회한다.[4]
침문유복래 (寢門遊福來): (훈장님) 잠들면 놀 복이 온다.[5]
무문요세 (無文樂世): 글없는 세상 좋은 세상.
사면동주 (師眠童走): 스승이 졸면 우리는 도망가고.
자속세출 (字速世出): 글아 속히 세상을 떠나거라.
그 뒤 훈장이 생일잔치에서 돌아와서 "스승을 동네 망신 시키다니... 누가 먼저 그랬어"라고 나무라자 학동들은 "훈장님이잖아요, 우린 흉내낸 것뿐이에요"라고 말하자 훈장님은 '숭늉도 못 마신다니까'라고 하면서 선대왕 공부를 가르쳤다.
4. 채 정승의 소년 시절
훈장님이 봄에 취해있을 때 마당쇠가 씨부렁거리며 가자 인사 안 하냐고 하는데, 마당쇠는 세 번이나 했는데도 왜 모른 척하냐고 화냈다.훈장님은 미안하다며 잠시 봄 기운에 취했다고 하는데 마당쇠는 술 취한 건 줄 알고 꾸짖고, 훈장님은 술이 아니라 봄에 취한 거라고 정정했다. 그 때 술에 취한 배 서방이 와서 마당쇠는 "배 서방도 봄에 취했구랴" 하고, 배 서방이 서당에 드러누워서 코를 골며 자자 훈장님은 마당쇠더러 집에 데려다주라고 했지만 그러면 학동들에게 욕 먹는다며 줄행랑치고, 학동들은 이야기를 듣고 다들 기뻐서 서당으로 달려왔다가 배 서방을 보고 공부 못하게 돼서 슬픈 척했다.
결국 훈장님은 봄도 됐으니 밖에서 공부하기로 했고 학동들도 "이제 자주 올 거야"라고 하며 따라갔다.
5. 단오절
단오절에 동네 종들이 학동들에게 엿값 받고 오늘은 대신 공부한다면서 수작 부렸다가 훈장님에게 크게 혼났다. 그러자 종들이 오늘은 단오라서 다 노는 날인데 왜 그러냐고 항의하자 훈장이 홀수 달은 양기, 짝수 달은 음기가 강한데 특히 5월 5일은 양기가 강해서 단오 때 여러 놀이를 하는 거라고 얘기했더니 머슴들도 수긍하고 돌아갔다.그 사이 학동들은 서당 솥을 훔쳐서 창포물을 삶아 거기에서 머리 감고 목욕을 하질 않나, 색시들 그네 타는 거 구경가서 서로 자기들한테 시집 오라고 소리치다가 하녀가 나타나 주접들 떤다고 학동들을 패고는 "세상 처녀들이 맹꽁이 서당 학동이 신랑이면 그냥 늙울망정 시집을 안 간다고 한다는 걸 알아야지."라면서 갔다. 그 뒤엔 훈장님께 고기반찬[6] 해드린답시고 씨름판에 뛰어들었다가... 다 쳐발렸다.
훈장님도 애들이 다쳐서 꾸중만 했으며 애들이 누워있는 상태로 선대왕 공부를 하는 사이 학동 모두 꿈나라로 갔다. 그걸 보고 훈장님이 '에그~ 녀석들... 누워서 잘도 공부한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6. 돈의동의 유래
학동들이 다들 놀자 장쇠가 슬퍼하며 집에 계신 스승께 어떻게 할지 여쭈어본다고 하는데 그 스승이란 자기 색시인 갑순이. 그러면서 공자의 제자 안자(안회) 이야기를 꺼내며 "우리 모두 안자를 본받자"라고 하니 친구들이 열 뻗쳐서 또 린치한다. 장쇠는 맞아서 다친 걸 자기가 넘어진 거라고 했으나 어차피 금방 들켰다. 그러고 나서 훈장님한테 둘러대기를 "안자는 30살에 죽었으니[7] 우리더러 30살에 죽으라는 말인데 그건 더없이 큰 욕"이라고 한다.그런데 장쇠는 아직도 머리가 안 돌아가는 건지, 지나치게 너그러워진 건지, '아, 그게 욕이었구나'라고 받아들였고, 훈장님도 둘러대는 데는 천재라며 아무 말도 못 했다. 훈장님은 장쇠야말로 우리 서당의 안자라고 칭찬하자 다른 학동이 자기도 안자라고 했는데, 그 이유인즉슨 "훈장님은 늘 낮잠 주무셨지만 자기는 안 자기 때문"이란다. 그러자 훈장님이 "그래, 안자다"라며 한 대 때렸다.
그 뒤 돈의동의 유래 이야기를 한다. 당시 떠돌아다니던 채제민이란 젊은이가 평양에서 장가를 들어 처가살이를 하는데, 벼슬은커녕 나무조차 못해오고 빈둥빈둥 노는 신세라 장인, 장모의 구박이 심했고, 채제민은 눈칫밥 먹으며 처량하게 사는 신세였다.
때마침 채제공이 감사로 부임해오자, 장인은 사위 이름과 비슷한지라 그 어른을 아느냐 물었고 채제민은 얼떨결에 그 분은 사촌 형님이라고 거짓말을 해버렸다. 장인은 그럼 나하고 사돈이니 인사 안 가볼 수 있냐고 했고, 제민은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할 수도 없어 자꾸 날짜를 미루고, 장인이 밖에 나가 떠들고 다니자 겁도 났다.
결국 채제민은 채제공을 찾아가서 내막을 털어놓았다. 이에 채제공은 자기도 친척이 없으니 내가 진짜로 사촌 형님이 되면 될 게 아니냐고 하며 의형제를 맺는다.
다음날 제민은 장인을 모시고 인사를 갔다. 채제공은 사돈을 맞아 잘 대접하며 아우를 잘 보살펴달라고 했고, 그 뒤로 장인, 장모는 사위를 아꼈다. 제민은 형님의 집에 자주 인사를 갔고 조카들과도 잘 어울렸으며, 나중에 채제공이 서울로 이사를 가자 제민도 따라와 이웃에 살았다. 그 뒤 그 동네 이름은 형제 의리가 두텁다는 뜻의 돈의동이 되었다고 한다.
이야기가 끝나자 한 학동이 다른 학동을 보고 "훈장님, 얘는 만날 동생과 싸움만 하니까 얘가 사는 동네를 싸움골로 부르면 어떨까요?"라고 얘기했다.
7. 연암 박지원
훈장님이 밤글을 가르친다고 했을 때 학동들이 통곡하고 장쇠 혼자만 기뻐하며 큰 절 올리고 집 가는 길에 친구들에게 몰매를 맞았는데, 이번에는 부인이 추궁했으나 자기가 넘어진 거라고 또 둘러대서 넘어갔다. 그리고 밤글을 가르쳐준다는 말에 둘다 기뻐하고,[8] 이후 장쇠가 아내가 만든 훈장님께 드릴 밤참을 들고 기분 좋게 서당에 가면서 아내는 매우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하는 게 포인트.[9]한편 다른 학동이 울면서 들어오는 걸 이상하게 생각한 아버지는 아들을 추궁하다 밤글이란 비보를 듣자 안타까워하며 자기도 밤글 읽느라 고생했으며 밤마다 늘 졸아서 공동묘지를 갔다오다보니까 이력이 생겨서 겁이 안 나더라는 얘기를 하며 아들을 위로했다. 그 학동 어머니는 "어휴... 저 양반 소싯적도 알 만 하다니까"라고 했다. 어느 학동은 졸음을 쫓는다고 허벅지를 꼬집다가 장쇠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이후 장쇠가 "제 아내가 훈장님의 밤참을 만들었습니다. 나중에 출출하실 때 드세요."라고 얘기하며 아내가 만들어준 밤참을 훈장에게 전해주고, 훈장은 "오, 정말 고맙다. 네 집사람에게 잘 먹었다고 얘기 전해다오."라고 흐뭇해하며 갑순이 만든 밤참을 맛있게 먹는다. 학동들 왈, "맛있겠다... "북어채 조림도 있네...", "장쇠 너, 다음엔 우리 것도 만들어달라 부탁해줘라."[10]
그렇게 다들 밤글을 읽으면서 밤을 새는 바람에, 다음날에 학동과 훈장 모두 기진맥진한 상태로 눕게 되었다.[11] 마당쇠는 그 광경을 보고 놀라서 "어젯밤 훈장님과 학동들이 모두 도둑질하러 다녀왔나요?"라고 했다.
8. 담력이 큰 아이
밤글 시간 도중 한 학동이 존 벌로 공동묘지까지 혼자 가서 넋바위에 검은 콩 3개를 깔아놓고 오게 되었는데, 마침 지나가던 강쇠라는 이름의 소금장수 청년[12]을 만나 공동묘지까지 같이 가주면서 공포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이 청년이 어지간히 강심장이라 공동묘지에서 무덤 파던 여우를 때려잡았고, 거기서 하룻밤 자려다 비좁아서 그냥 내려왔단다.학동이 고마움에 자기 집에 빈 방이 있으니 가서 자라고 했지만 "내 걱정은 마라"며 거절하고 그냥 가는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이후 공동묘지에 갔다온 걸 안 믿는 학동들에게 직접 확인시켜주러 다같이 공동묘지까지 다시 갔고, 죽어있는 여우를 무덤 파길래 자기가 때려잡았노라고 뻥을 치자 훈장님이 감탄하며 공부를 못해도 담력이 커서 너는 됐다며 직접 업어서 서당으로 데리고 왔다.[13]
9. 훈련대장 이주국
어느 무더운 날 학동들이 또다시 글공부하기 싫어서 불평하는데, 장쇠가 먼저 천렵을 하자고 제안한다. 그것도 마누라 몰래 된장, 고추장단지까지 들고 오면서... 7권에선 완전 새사람이 된 녀석이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분위기로 봐서는 더위 먹고 살짝 맛이 간 듯 하지만... 어쨌든 학동들은 역시 장쇠는 의리의 사나이라며 적극적으로 동조해서 같이 천렵하러 간다.[14]가마솥을 몰래 서당에서 빼오고, 솥에 땐 불이 약애져서 장작 가져오라 하라는 학동에 이말에 즉시 마당쇠가 해논 나무를 빼앗아 불을 땐다... 이후 계곡에서 실컷 놀고 매운탕을 끓여먹으려던 찰나, 별안간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친다. 학동들은 "저건 어딘가 죄 지은 놈이 있어서 치는 거래." 하고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그 죄 지은 놈은 바로 학동들이었으니... 학동들 바로 위에서 날벼락이 치고, 솥은 물론 옷까지 모조리 증발해버렸다. 이후 알몸인 채로 서당으로 돌아왔지만, 훈장님은 아직 불행이 끝나려면 멀었다고 담담히 말하는데, 서당 바깥에서 장쇠 마누라가 곤장 치려고 벼르고 있었다.
학동들은 "우리가 장쇠를 꾀어낸 게 아니라 우리가 도리어 장쇠 꾐에 빠진 거예요"라고 항변하고, 그 와중에 한 놈은 "세상에 아녀자가 남편 친구를 곤장질하는 법도가 어딨습니까? 세상이 말세란 말입니까?"라고 딱 보아도 성차별적인 발언에 분노한 갑순이가 매를 두 곱으로 늘려 친구들에게 눈치 없는 새끼로 찍혔다. 다행히 학동들이 다신 말썽 안 부리겠다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자 갑순이는 그냥 돌아갔다.
이 에피소드는 장쇠가 출연한 마지막 에피소드로, 어째서인지 이후로 장쇠가 아무 언급도 없이 갑자기 등장하지 않는다. 자세한 건 맹꽁이 서당/등장인물 문서의 장쇠 항목 참조.
10. 근검절약 정홍순 판서
과거령이 내려지자 3권에 이어 또다시 학동들이 몽땅 과거 보러 떠나버렸다. 훈장님이 이놈들을 어떻게 잡아올지 골골대던 차에 마당쇠가 엿값 주는 대가로 학동들을 돌아오게 만들겠다고 했다.엿값을 주자 마당쇠는 엿이라면 물불 안 가린다며 별의별 수단을 써서 학동들을 추월한 다음 점쟁이로 위장해서[15] 학동들의 관심을 끌어 과거 보러 가는 길이라는 것을 맞혀서 학동들이 자길 믿게 만들고, 너희는 오늘 중으로 모두 죽을 운세[16]라고 하여 겁을 준 뒤, 한 가닥 살 길도 있다면서 복채를 있는 대로 뜯어내 한달 엿값을 마련하고는 "맹꽁이 뱃속에 들어가있으면 산다"고 말했다. 즉, 맹꽁이 서당에 있으면 산다는 것. 이에 학동들은 겁먹고 철석같이 믿어서 몽땅 제발로 돌아갔고 훈장님은 그 녀석 재주가 참 용하다고 감탄했다.
11. 결혼식은 간소하게
학동들이 부모님이 농사가 바빠서 쉰다는 가짜 편지를 만든다. 평소에는 한자를 창시했다는 이유로 창힐을 싫어하면서 이때는 글이 있어서 거짓 편지를 쓸 수 있기 때문인지 창힐이 고마운 사람이라고 한다.이 편지를 마당쇠를 꼬드겨서 전해주게 했을 때 훈장님은 그대로 속아 넘어가 하루 푹 쉬는... 척 하면서 다 눈치챈 다음 마당쇠를 미행해 학동들을 찾아냈고, 학동들이 도망치자 마당쇠를 혼내서 찾아오게 했다.
마당쇠는 산으로 도망쳤으니 어차피 못 찾고 동네에서 쫓겨날 거 절에 가서 받아달라고 사정했는데, 자기가 마을에 시주만 갔다 하면 땡초, 땡초 하면서 놀려대던 놈이 이제 와서 받아달라니까 열받은 스님은 마구 패서 쫓아냈고, 마당쇠는 "부처님이 그렇게 가르쳤소? 스님은 지옥 갈 거요"라며 온갖 욕 다 하면서 가고는 어떻게든 학동들을 찾으려고 하는데 학동들이 단체로 입구 막은 동굴 안으로 들어가 호랑이 꼬리를 붙들고 있는 걸 보게 되었다.
마당쇠는 기겁해서 서당으로 급히 돌아와서는 문 열 새도 없이 창호지를 뚫고 들어왔고 훈장님도 처음엔 창호지를 뚫고 들어온 마당쇠를 꾸짖다가 전후사정을 듣고 기겁해서 장정들을 모아서 구하러 가려고 하는 찰나, 학동들이 무사히 돌아왔는데, 무려 호랑이 꼬리를 붙들다가 아예 뽑아버린 것. 호랑이 꼬리는 훈장님 목도리 하라고 가져오자, 훈장님과 마당쇠 모두 할 말을 잃어버렸다... 한편 꼬리 뽑힌 호랑이는 이제 왕 노릇하긴 글렀다고 서럽게 운다.
12. 숯장수 이석 1부
학동들이 청백리가 모함을 쓰고 귀양살이하러 가는 것을 보고 죽기 싫다고 글공부를 때려쳤다. 거기다 붓장수 공서방이 이걸 보고 학동들의 꼬드김을 듣고, 금부도사가 추격해서 사약을 받았다는 소식에 오열하며 더 이상 붓장사 못해먹겠다고 팔던 지필묵을 전부 버리고 훈장님과 언쟁을 벌였다.그러다 이를 기막혀한 훈장님의 말에 후회하고 다시 지필묵을 찾으려고 했지만 그새 그걸 마당쇠가 가져다가 목판째 엿 바꿔 먹었다. 물론 공서방이 버린 걸 주운 거니 딱히 죄라고 하긴 힘들고 마당쇠도 "관가 가봐야 사또가 '이놈아 버릴 땐 언제고 귀찮게 구느냐'면서 찾긴커녕 볼기짝 맞지"라고 당당하게 나왔다.
여기서 소개한 이석은 본래 세종대왕의 자녀들 중 한 명인 광평대군의 후예로 현 왕족과 방계손이나 과거 누군가의 모함으로 역모 누명을 쓴 채 일족 전부가 멸망한 뒤 유모의 도움으로 살아남아 숯장수 부부의 양자로 자랐다고 한다.
정조대왕이 꿈에서 숭례문을 지나가는 용 한 마리를 보고 무예별감 하나를 시켜 파루가 울리는 시각에 처음 들어오는 사람을 데려오도록 하고 금부도사가 파루가 울릴 때까지 기다리다 파루가 울린 뒤 들어오는 숯장수 총각인 이석이 그 사람인 걸로 판단하고 정조에게 데리고 왔다.
정조는 무감의 말을 듣고 그 총각의 비범함을 눈치채고 그를 과거장으로 들여보내고 이석은 영문을 모른 채 과거장에 복잡한 심정으로 오게 되었는데, 이때 친 아버지와 절친한 친구였던 한 노선비를 만나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노선비의 말에 따르면 이석은 본래 세종의 자녀들 중 한 명인 광평대군의 후예인 방계 왕족출신이지만 역모 누명으로 인해 4살 무렵 일족이 멸망할 당시 유모의 도움으로 숯장수 노부부가 그를 양아들로 입양했다고 한다.
그 뒤 노선비가 이번 시험은 자신의 죽은 친구인 이석의 친부가 즐겨 쓰던 시구에서 나왔다고 하며 자신이 쓴 답안지를 이석의 이름으로 바꿔준 뒤 이석이 장원급제를 하게 도와줬다.
정조의 앞에 독대하게 된 이석은 정조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과거장에 있던 진실을 밝히고 정조는 이석을 용서함과 동시에 그를 도와준 착한 노선비에게 참봉 벼슬을 주며 이석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노선비에게 교육을 받은 이석은 특유의 총명함을 바탕으로 훗날 판서직에 올라 집안을 다시 일으켰다고 한다.
13. 숯장수 이석 2부
설날에 학동들이 공부할까봐 밖에서 엿보다가 훈장님한테 혼났다. 오늘은 공부 안 한다는 말을 듣고서야 들어와서 제대로 세배하고, 덕담을 들을 때 학동들이 공부도 좋지만 '금년엔 꼭 예쁜 색시한테 장가도 들거라'라고 해야 하지 않냐고 한다.세뱃돈을 주려고 하자 또 한바탕 난리났다가 다들 어딘가 얻어터진 채로 줄을 서서 돈을 받았다. 중간에 어떤 애가 저는 세뱃돈 못 받았다고 하자 훈장님과 다른 학동들이 너는 받았는데 어디서 거짓말을 치냐고 했더니 그 학동이 '나는 작년 설날 세뱃돈까지 주는 줄 알았단 말야'라고 변명했다. 그 뒤 오늘이 설날이라 글공부는 쉬지만 선대왕 공부[17]는 한다고 하자 학동들도 좋아했다.
선대왕 공부가 끝난 후엔 한 학동이 제가 조사한 결과 태평성대 시절은 중국의 진시황이라고 하자 훈장님이 ‘분서갱유 등 여러 오점을 남긴 왕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호통쳤더니 학동이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글을 안 배웠으니 얼마나 태평성대입니까"라고 하자 학동들 모두가 동조했고 이에 훈장 曰 '크, 귀를 씻고 싶어라.'
14. 통제사 이윤경
겨울날 학동들이 불을 쬐고 있는데 창을 든 장정이 잠시 같이 불을 쬐고 가자, 산적이냐 곰 사냥꾼이냐로 언쟁하다가 따라붙어서 곰 사냥꾼임을 확인하고는 곰 사냥을 보겠다고 단체로 곰 사냥꾼을 따라가 행방불명되었다. 사냥꾼도 학동들을 쫓아내려고 산적인 척해서 쫓아내고 냅다 뛰었지만 워낙 찰거머리 같아서 결국 포기하고 동행했다.그날은 곰을 못 찾았고 밤이 됐을 때 학동들이 집에 안 가냐고 보챘지만, 곰 사냥꾼들은 애초에 집에 안 가고 산 속에서 모닥불 피우고 그냥 자는 생활을 한다고 하자 그때쯤 학동들이 후회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사냥꾼의 비상식량 미숫가루 한 줌씩 나눠먹고 잠도 못 이루던 차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사냥꾼을 깨웠더니 호랑이는 저 멀리 건너 산에 있다고 해서 사냥꾼이 어이없어 했다.
다시 날이 밝고 호식총(虎食塚)을 보면서 잠시 창귀(倀鬼)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드디어 곰이 사는 곳을 찾아내자, 학동들은 혼나더라도 곰 잡는 건 보겠다며 기어코 사냥꾼이 곰을 잡을 때까지 멀찍이서 구경한다. 굴 속에 불을 피워넣고, 열받은 곰이 사냥꾼을 덮치는 순간 자기들이 얻어터져서 곰이 자기들을 덮쳤나 했더니 뒤를 추격한 학부모들이 팬 거였다. 차라리 목숨을 건진 게 다행.[18] 그 곰은 사냥꾼이 무사히 잡았다.
훈장님은 학동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곰처럼 미련한 놈들! 산속에서 먹고 자고 하게 차라리 곰으로 태어나지 그랬냐?"라고 한다. 수업 끝난 후에 훈장님이 집에 가보라고 했더니 학동들은 혼날 게 두려워서 덜덜 떨고 있었다.
[1] 봄철을 맞아 문지방 등에 써 붙여놓는 글귀. 현재도 아주 가끔 민속촌이나 옛날 집 같은 곳에 가보면 드물게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 우순풍조 시화연풍(雨順風調 時和年豊), 국태민안 가급인족(國泰民安 家給人足).[2] 비와 바람이 순조롭게 조화를 이루니, 날마다 화목하고 해마다 풍요롭도다.[3] 중국 신화의 인물로 한자의 창시자로 알려진 사람.[4] 이 구절은 송나라 시대 유학자 주자가 제시한 열 가지 해서는 안 되는 후회 중 하나인 소불근학노후회(少不勤學老後悔: 젊어서 부지런히 공부하지 않으면 늙어서 후회한다)를 패러디한 것이다.[5] 초기 판본은 침문만복래(寢門萬福來)였다.[6] 우승 상품이 황소였다. 전통적으로 씨름대회의 우승자에게는 황소를 주었으며, 지금도 씨름 우승자에게 황소 조각의 트로피를 주고 있다.[7] 정확히는 32살에 죽었다.[8] 장쇠: 기쁜 소식이오. 오늘 밤에도 훈장님께서 글을 가르쳐준대요. 이제 실력이 두 배로 늘 거요.
갑순: 어머나! 그래요? 힘드실 텐데... 정말 고마우신 분이십니다.
장쇠: 어서 저녁 먹고 일찍 가야하니 밥을 차려주오.
갑순: 네, 바로 서두르겠습니다.[9] 장쇠: 그럼 다녀오리다. 내일 아침에 조반 먹으러 잠깐 들를게요.
갑순: 아참, 나가기 전에 잠깐 기다리세요.(보따리를 챙겨주며) 고생하실 훈장님께 드릴 밤참을 만들었습니다. 이걸 훈장님께 전해주세요.
장쇠: 알겠소. 정말 고마워요. (아내가 준 훈장의 밤참을 챙기고 나서는 장쇠)
장쇠: 세상에 저렇게 훌륭한 부인은 어디에도 없을 거야.
외부인: 팔불출이닷![10] 물론 갑순이가 이들의 만행을 알고 있다보니 만들어주기는 요원할 것으로 보인다.[11] 장쇠조차 비몽사몽으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12] 작가의 또다른 작품 '날아다니는 바위의 전설'에 나오는 등장인물이다.[13] 훈장님이 학동을 업은 모습이 5권 초판본 표지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14] 학동들은 장쇠 만나기 전까지 덥다는 이유로 죄다 옷을 발가벗고 나체로 도로를 활보하던 중이였다(!) 그러다가 저 멀리서 갓 쓴 사람이 보이자 호되게 불호령을 들을까 겁이나 부리나케 옷을 입다가 장쇠인 것을 알자 불같이 화를 낸다.[15] 이때 내건 간판이 걸작인데, 개용사네서 시십녕강 독따끈 도사 좀쟁이(계룡산에서 수십 년간 도 닦은 도사 점쟁이)라고 써놨다(...). 마당쇠가 얼마나 무식한지 알 수 있는 장면.[16] 산으로 가면 범에게 먹히고 물로 가면 배가 뒤집힐 팔자라고 했다.[17] 위에서 나온 이석 이야기를 포함해서[18] 곰에게 공격당하면 만화에 나온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갑순: 어머나! 그래요? 힘드실 텐데... 정말 고마우신 분이십니다.
장쇠: 어서 저녁 먹고 일찍 가야하니 밥을 차려주오.
갑순: 네, 바로 서두르겠습니다.[9] 장쇠: 그럼 다녀오리다. 내일 아침에 조반 먹으러 잠깐 들를게요.
갑순: 아참, 나가기 전에 잠깐 기다리세요.(보따리를 챙겨주며) 고생하실 훈장님께 드릴 밤참을 만들었습니다. 이걸 훈장님께 전해주세요.
장쇠: 알겠소. 정말 고마워요. (아내가 준 훈장의 밤참을 챙기고 나서는 장쇠)
장쇠: 세상에 저렇게 훌륭한 부인은 어디에도 없을 거야.
외부인: 팔불출이닷![10] 물론 갑순이가 이들의 만행을 알고 있다보니 만들어주기는 요원할 것으로 보인다.[11] 장쇠조차 비몽사몽으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12] 작가의 또다른 작품 '날아다니는 바위의 전설'에 나오는 등장인물이다.[13] 훈장님이 학동을 업은 모습이 5권 초판본 표지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14] 학동들은 장쇠 만나기 전까지 덥다는 이유로 죄다 옷을 발가벗고 나체로 도로를 활보하던 중이였다(!) 그러다가 저 멀리서 갓 쓴 사람이 보이자 호되게 불호령을 들을까 겁이나 부리나케 옷을 입다가 장쇠인 것을 알자 불같이 화를 낸다.[15] 이때 내건 간판이 걸작인데, 개용사네서 시십녕강 독따끈 도사 좀쟁이(계룡산에서 수십 년간 도 닦은 도사 점쟁이)라고 써놨다(...). 마당쇠가 얼마나 무식한지 알 수 있는 장면.[16] 산으로 가면 범에게 먹히고 물로 가면 배가 뒤집힐 팔자라고 했다.[17] 위에서 나온 이석 이야기를 포함해서[18] 곰에게 공격당하면 만화에 나온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