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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22 09:45:08

메리 불린

<colbgcolor=#B0E0E6><colcolor=#000000> 메리 불린
Mary Boleyn
파일:Mary_Boleyn.jpg
이름 메리 불린
(Mary Boleyn)
출생 1499년 / 1500년
노퍽 블리클링 홀
사망 1543년 7월 19일 (향년 43~44세)
배우자 알덴햄의 윌리엄 캐리 (1520년 결혼 / 1528년 사망)
쳅시의 윌리엄 스태포드 (1534년 결혼)
자녀 캐서린, 헨리, 앤, 에드워드[1]
아버지 제1대 윌트셔 백작 토머스 불린
어머니 레이디 엘리자베스 하워드
형제 , 조지
1. 개요2. 생애3. 대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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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의 국왕 헨리 8세의 2번째 왕비 앤 불린의 언니이자 한때 프랑수아 1세헨리 8세정부(情婦).

2. 생애

파란만장한 여동생 앤 불린의 삶에 가려져 있었지만, 최근에는 필리파 그레고리의 역사소설 《천일의 스캔들》(The Other Boleyn Girl)의 주인공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불린 가문의 히버 성(Hever Castle)에서 유능한 외교관 토머스 불린과 잉글랜드의 명문 귀족 하워드 가문의 영애인 엘리자베스 하워드의 딸로 태어났다. 여동생 앤 불린과 남동생 조지 불린이 있다. 정확하게 누가 첫째, 둘째, 셋째인지를 명시한 기록은 없으나 여러 증거로 미루어 메리가 장녀, 앤이 차녀, 조지가 막내라고 보는 설이 대세이다. 하지만 메리가 차녀라고 하는 설도 남아 있다.

정확한 출생 시기에 관한 기록이 없다. 메리가 첫째인 경우 생년은 1499-1500년으로, 차녀인 경우 생년을 1508년 정도로 추정한다. 메리를 장녀로 보는 경우, 메리의 아들이 외조부 토머스의 상속권을 주장한 것을 증거로 보기도 한다. 메리가 차녀였다면, 당시 귀족 사회의 특성상 토머스의 상속권은 당시 여왕인 엘리자베스 1세에게 돌아가고, 메리의 자손이 상속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2]

메리는 금발에 흰 피부로, 이국적인 타입의 외모인 검은 머리 검은 눈의 동생 앤 불린과 달리 당시 미인의 기준에 부합하는 외모로 인기가 많았다.

1514년, 헨리 8세의 여동생 메리 튜더가 프랑스 왕 루이 12세와 결혼하여 프랑스로 시집갔다. 토머스 불린은 딸 메리 불린을 메리 튜더의 시녀로 딸려 보내 프랑스에 유학시켰다. 1515년 루이 12세가 승하하자 메리 튜더는 친정 잉글랜드에 돌아갔지만, 메리 불린은 새로 즉위한 프랑수아 1세의 클로드 왕비의 시녀로서 프랑스에 남았다.

이 때 10대였던 메리가 프랑수아 1세의 정부가 되었고, 한편으론 상당히 난잡한 성생활을 했다는 소문이 있다. 프랑수아 1세는 그녀를 두고 "가장 수치스런 창녀(a great slag, infamous above all)", "나의 전용마차(my hackney)"라고 하기도 하고, 프랑스 궁정에서는 메리를 "누구나 올라탈 수 있는 잉글랜드산 암말(The English Mare)"이었다고 하기도.

어쨌거나 이런 추문으로 인해 1519년에 아버지에 의해 잉글랜드로 귀환한 메리는, 1520년에 24세의 청년이자 헨리 8세를 가까이서 모시던 윌리엄 캐리와 결혼했다. 캐리는 땅이 있는 귀족은 아니었지만 왕을 가까이서 수행했으므로 전도유망한 젊은이였다. 궁정에서 근무하는 캐리와의 결혼으로 메리 또한 왕궁에서 거주하게 되었다.

1522년에는 프랑스에서 돌아온 자매 앤 불린과 함께 헨리 8세의 오른팔 토머스 울지 추기경의 저택 요크 플레이스에서 열린 무도회에 참가한다. 궁정의 여성 중 아름답고 젊은 여성을 뽑아 여러 미덕 중 하나의 역할을 시키는 행사였는데, 여기서 앤은 "인내(Perseverence)"였고 메리는 "상냥함(Kindness)" 역할을 맡았다.

아마도 이 무렵에 메리가 헨리 8세의 눈에 들어 정부가 된 듯하다. 1528년 왕이 추진하던 앤 불린과의 결혼이 반대에 부딪혔을 때 의회의 의원이 왕에게 앤의 어머니 엘리자베스 하워드와 자매 메리 불린과도 정을 통하지 않았느냐고 비난하자, 왕은 얼굴을 붉히면서 "한 번도 어머니랑은 자지 않았다"라고 부인했다. 1532년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 1세는 칼레에 방문한 헨리 8세와 앤을 따라온 메리에게 "헨리 8세와 동침하지 않았느냐"고 발언했다. 정확하게 헨리 8세가 메리에게 관심을 잃은 시기를 알 수는 없지만, 1525년 중반 정도로 추정한다.

1524년에는 장녀인 캐서린을 낳았고, 왕의 정부가 정비의 이름을 딸에게 붙이다니 근데 캐서린의 딸 이름도 메리잖아?[3] 1526년에는 아들 헨리를 낳는다. 헨리는 헨리 8세의 사생아가 아닌가 하는 소문이 파다했는데, 왕과 상당히 닮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헨리 8세는 다른 정부 엘리자베스 블런트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헨리는 왕의 사생아에게 하사하는 성 "피츠로이"를 붙여 주고 공식적으로 서자라 인정했지만, 헨리 캐리에게는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아마도 1526년에는 이미 헨리가 메리의 여동생 앤에게 빠져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1528년 메리의 남편 윌리엄 캐리가 전염병으로 죽었다. 그 직후 헨리 8세는 메리의 2살배기 아들 헨리 캐리의 양육권을 앤 불린에게 주었다.[4] 1532년 헨리 8세와 앤 불린이 왕과 (사실상) 왕비로서 프랑스의 칼레에 방문하였을 때 메리는 앤을 수행했다. 칼레에서 메리는 윌리엄 스태포드라는 병사를 만나게 된다.

1533년 헨리 8세는 드디어 앤 불린과 결혼했다. 그로부터 1년 후, 메리는 윌리엄 스태포드와 비밀리에 결혼했고, 스태포드와의 사이에서 딸과 아들을 출산했다. 윌리엄 스태포드는 돈도, 명예도 없고 귀족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아 연애결혼으로 보인다. 왕비의 친정이 된 불린 가문에서는 가문의 명예에 손상을 입힌 메리의 비밀 결혼에 분노했으며, 메리와 윌리엄 스태포드는 궁정에서 쫓겨나 불린 가문의 영지인 에섹스의 로치포드 홀에서 조용히 살아갔다.

1536년 여동생 앤 불린과 남동생 조지 불린이 처형당하였으나 궁정에서 떨어져 살고 있었던 메리에게는 불똥이 튀지 않았다. 그로부터 8년 후, 메리는 숨을 거두었다.

이후 메리의 자녀들의 삶은 순조롭게 풀렸다. 메리의 장녀 캐서린 캐리는 헨리 8세의 4번째 왕비 클레베의 앤시녀로 입궁했고 유망한 젊은이 프란시스 놀리스 경과 결혼했으며, 이후 엘리자베스 1세로 즉위하는 엘리자베스 공주의 이복 자매 겸 사촌이자 친한 친구가 되었다.[5] 아들 헨리 캐리도 엘리자베스 1세로부터 남작 작위를 수여 받았다.

3. 대중문화

3.1. <천일의 스캔들>

2008년 영화인 <천일의 스캔들>에서는 스칼렛 요한슨이 이 역할을 맡았다. 앤 불린 역은 나탈리 포트만.

필리파 그레고리의 동명 역사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이 영화는, 헨리 8세의 정부로서 메리 불린에 주목해 헨리 8세를 유혹하려는 두 자매 간의 미묘한 질투와 경쟁을 그려냈다. 원제인 <The Other Boleyn Girl>이 메리를 말한다.[6] 실제 역사와는 달리 메리가 앤의 언니가 아닌 동생으로 나온다. 앤은 강하고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이고 어딜 가나 주인공이 되기를 즐기며 실제로 관심을 사로잡는 재주도 있는 반면, 메리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존재감이 밀린다. 그래서 앤은 어디서나 '불린 가문의 딸(Boleyn Girl)'이라며 주목받고, 메리는 "아 맞다, 그 집에 딸이 하나 더 있지? 앤 말고 다른 애" 하는 의미에서 The Other Boleyn Girl인 것이다.

원작 소설에 비하면 영화는 서사의 갈등 구조가 좀 단순화 됐지만, 메리의 캐릭터성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작위도 없는 상인의 아들 윌리엄 캐리[7]와의 결혼도 "나를 사랑해 줄 남편이면 된다"며 만족하는 소박한 성품의 여인이나, 헨리 8세의 방문에 팔자가 꼬여버린다. 자매의 외숙부인 노포크 공작 토머스 하워드가 불린 일가를 방문해 앤 불린에게 헨리 8세를 유혹하라고 지시하고 야심만만한 앤도 적극적으로 헨리 8세를 자극하고 도발하려 했으나 그 수위가 지나쳐 헨리 8세가 부상을 입고 자존심도 다치는 상황이 발생하자 노포크 공작은 헨리 8세의 간호를 메리에게 맡기고, 조용하고 차분한 메리는 헨리 8세의 눈에 들어 왕비 아라곤의 카탈리나시녀로 입궁하라는 명을 받는다. 남편 윌리엄 캐리도 덩달아 궁정의 높은 직위를 받았지만 분한 표정으로 보아 전혀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고, 왕이 유부녀인 자기를 노리는 속셈을 뻔히 알기에 가고 싶어하지 않지만, 왕명이니 어쩔 수 없는 일. 게다가 헨리 8세를 노렸던 앤 불린과의 우애 좋던 자매 사이도 틀어지고 만다.

그러나 일단 궁에 와 헨리 8세의 침실에까지 들고 보니 막상 헨리 8세가 점잖고 다정하게 대해주는 지라 메리는 그에게 사랑을 느낀다. 곧 왕의 아이를 갖고 저택을 하사받는 등 잠시 짧은 행복을 누렸으나 어느 날 하혈을 하고,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는 침대에서 꼼짝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자, 아버지와 외숙부는 헨리 퍼시와의 비밀결혼을 들키고 프랑스로 쫓겨나있던 앤 불린을 불러들인다. 이들은 그저 앤을 헨리 8세의 곁에 붙여 그가 메리에 대해 잊지 않도록 계속 이야기를 꺼내며 메리를 상기시키는 역할 정도만 맡기려는 의도였지만 앤은 프랑스에서 배워온 유혹의 기술로 헨리 8세를 사로잡아 메리를 만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상심한 메리는 시골로 쫓겨나다시피 내려갔다가 헨리 퍼시가 "나는 앤 불린과 결혼했다"고 주장하자 다급해진 앤이 다시 메리를 궁정으로 불러들여 자신의 결백을 헨리 8세에게 증언하도록 부탁하고, 메리는 결국 앤을 용서하고 부탁대로 헨리 8세에게 앤이 결백함을 거짓으로 고하고 왕비가 된 앤의 시녀가 된다.

왕비가 되긴 했으나 헨리 8세와 사이가 냉랭해지자 히스테리컬해진 앤 불린을 위로하다가, 유산을 하고 절박해진 앤이 남동생을 침대에 끌어들여 아이를 가질 생각까지 하자, 더 이상 같이 있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고향으로 도망친다. 그리고 앤이 사형을 당하게 생기자 다시 올라와 어떻게든 형제들의 목숨만은 살려보려 왕에게 직접 찾아가 애원하지만 막지는 못하고[8], 앤이 처형당하기 전에 포옹을 하고는 처형당할때 이를 지켜보며 크게 슬퍼한다. 나중에 앤의 딸인 조카 엘리자베스를 데리고 궁에서 나와 고향으로 돌아가 스태포드와 결혼해서 엘리자베스를 자식처럼 대해주고 키운다(…)는 결말.

3.2. <울프 홀>

파일:c5cfa3918810.jpg
배우는 채리티 웨이크필드.

한때 왕의 정부였지만 여동생 앤 불린에게 밀려 팽당했고, 집에서도 천덕꾸러기인 퍽 딱한 신세로 묘사된다. 자신 말마따나 "악명 높은 처녀"인 여동생 앤과 달리 남자관계가 상당히 복잡한 편. 자신을 무시하는 불린 가문에 대한 복수를 할 겸 토머스 크롬웰에게 자기와 결혼하지 않겠냐는 은근한 유혹을 흘리기도 한다. 어안이 벙벙한 크롬웰의 표정이 압권. 이 결혼이 성사되었다면 지옥의 처가가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에는 신분도 낮고 가난한 윌리엄 스태포드와 결혼을 한 것이 발각되어 궁정에서 쫓겨나게 되는데, 그녀의 선택을 비웃는 사람들에게 "내 남편은 적어도 나를 사랑해!"라고 받아치고 나간다.[9]

3.3. <천일의 앤>

앤 이전에 총애를 받고 있었던 앤의 언니 역할로 등장한다. 실제 역사와는 달리 검은 머리를 가진 배우 발레리 게아론이 분했다.

헨리 8세가 동생 앤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는 가운데 아버지 토마스 불린으로부터 물러나라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분노한다. 아버지가 이 재산과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건 자신이 왕의 침대에 들었기 때문이라며 항의하지만, 무미건조하게 딸의 가치를 평가하는 냉정한 아버지에게 크게 실망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후 동생 앤에게 왕을 믿지 말라며 조언하는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이때 임신한 모습이었다. 메리 왈, 쓸모가 있을 때는 울며불며 잡다가 볼일 끝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고. 앤은 언니의 꼴을 보고 절대 왕을 믿지 않겠다며 선언하지만 결국 그렇게 되지 못했고... 동생 앤의 말로마저 결국 언니 메리의 말대로 되고 만다.

3.4. <튜더스>

페디타 윅스가 분했다. 앤에 앞서 헨리 8세의 총애를 받는 앤의 언니 역할로 등장한다. 갈색머리의 출중한 외모를 지닌 여성으로 굉장히 자유분방한데,[10] 그 때문인지 헨리 8세의 눈에 먼저 들어 그의 정부가 된다. 이는 토마스 불린이나 불린 자매도 짐작했던 바로, 토마스 불린이 대놓고 "잘하면 너희 둘 중 하나가 왕의 눈에 들 수 있겠다" 고 말한 바가 있었다.

그러나 헨리 8세는 곧 그녀에게 흥미를 잃고, 침대 위에서 왕에게 키스하며 애무를 해보지만 나가라는 말을 듣고 그대로 나오는 굴욕을 맛본다. 이에 토마스 불린은 앤을 불러 이 소식을 전하고 왕의 관심을 가로챌 타겟을 앤으로 바꾸는데 이 대화가 참 골때린다.[11]

뒤이어 등장이 없다가 프랑스 궁정에서 차기 잉글랜드 왕비의 시녀로서 모습을 보인다. 헨리를 두고 자매 사이에 응어리는 없는지 어렸을 때가 기억나냐며 화기애애하게 떠들고,[12] 어렸을 때부터 네가 한탕칠 줄 알았다고 웃는 모습. 나중에 앤이 임신했을 때도 '후작부인' 이라고 장난스럽게 부르며 친근하게 대하고, 앤 역시 "아니, 그냥 동생이지!" 라고 활기차게 응수한다. 엘리자베스를 웃으며 어르고 옷을 입히는 등 조카에게도 친절했고, 엘리자베스의 세례식에서도 웃는 얼굴로 아기를 안고 서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얼굴을 찡그린 앤의 대관식 때에도 그녀와 얼싸안으며 순수하게 기쁨을 나눈 유일한 사람도 다름아닌 메리였다.

그러나 엘리자베스의 출생 이후 메리가 임신해 궁정에 나타나면서 자매 사이는 꼬이기 시작한다. 메리의 임신은커녕 결혼 소식도 몰랐던 앤은 어안이 벙벙해서 메리에게 자초지종을 캐묻는데, 형부 된 남자가 직위도 토지도 없는 평민이라는 이야기에 분노해 메리의 궁정 출입을 금지해 버린다.[13]

삭제된 장면에서는 궁정에서 추방되어 출궁하기 전 토마스 크롬웰을 찾아간다. 저 애는 너무 막나가고 있으며 이러다간 파멸할 거라고 동생 앤에 대해 충고를 하는데, 이때의 모습은 그간 보여주던 늘상 생글생글 웃던 모습과는 달리 강단있고 또렷한 모습. 앤과 벽을 쌓고 있던 크롬웰조차 놀랄 만한 모습을 보여주고서 그대로 퇴장하여 그 뒤로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1] 캐서린과 헨리는 첫 남편 캐리와의 결혼 생활 중에 태어났는데, 마침 이 때는 메리가 헨리 8세의 정부로 있던 시기였기도 해서 헨리는 왕의 사생아가 아니었나 하는 의혹이 있다. 천일의 스캔들에서는 캐서린과 헨리 모두 왕의 사생아로 나온다. 앤과 에드워드는 정황상 두 번째 남편 스태포드의 아이들인 듯.[2] 또 사실이건 아니건 후일 프랑스 궁정에서의 추문이 나올 정도였고, 프랑수아 1세의 정부였다면 이를 고려해 봤을 때 적어도 당시 10대 중후반의 나이는 되었어야 하기도 할 것이다. 즉, 프랑스에 있던 1514~1519년에, 성적 추문을 일으킬 수 있고 누군가의 정부가 될 수 있을 법한 나이여야 말이 된다. 둘째면 프랑스에 있었던 때 6살~11살이었단건데...철컹철컹 첫째면 19~20세 정도까지 프랑스에 있었단 거니 가능한 나이.[3] 소설 천일의 스캔들에서는 메리 불린이 정치적 입장 때문에 캐서린 왕비를 몇 번이고 배신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그를 깊이 경애하는 것으로 그려내어, 왕비에 대한 경애를 나타내기 위해 딸에게 왕비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고 설정했다. 캐서린 왕비의 딸의 이름이 메리인 것은, 헨리 8세가 자신과 사이가 좋았던 여동생의 이름을 딸에게 붙였기 때문.[4] 이 또한 헨리 캐리가 실은 헨리 8세의 아들이라는 설에 신빙성을 더한다. 사실상 왕자 격인 자신의 아들을 왕비이자 아직 아들이 없던 그 이모에게 맡긴 것[5] 캐서린 캐리와 프란시스 놀리스의 딸 레티스는 훗날 엘리자베스 1세의 연인으로 알려진 레스터 백작 로버트 더들리와 결혼했다가 여왕의 분노를 사서 궁정에서 쫓겨났고, 훗날 장남인 에식스 백작 로버트 데버루가 말년의 엘리자베스 1세에게 총애를 받았으나 반란을 일으켰다가 처형되는 것을 보는 등 풍파 많은 삶을 살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본인은 무려 91세까지 장수하며 부유하게 잘 살다 갔다.[6] 포스터에 헨리 8세앤 불린을 양옆에 거느리고 정가운데 있는 걸 보면 주인공이긴 한데… 후반부로 가면 앤의 몰락이 이야기의 중심에 올 수밖에 없는지라 좀 밀려나는 감이 있다.[7] 위에 나와있듯 캐리는 작위는 없었지만 궁정에서 전도유망했다. 애초에 메리는 프랑스에 간 적도 없이 시골에서 자유롭게 뛰놀고 자란 유년 시절을 보낸 것으로 묘사되니 뭐… 따지지 말자. 여담으로 여기서 캐리 역을 맡은 배우가 다름아닌 베네딕트 컴버배치.[8] 헨리 8세는 차갑게 거절하고는 다시는 궁전으로 오지 말라는 편지를 보내서 메리 불린이 충격을 받게 만든다.[9] 프랑스 궁정에서 문란했던 과거 성생활을 조롱하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은데다 자매인 앤과 과거 정부였던 헨리 8세와의 사연도 그렇고, 메리는 영국 궁정에서 지체 높은 귀족 남성과의 번듯한 재혼과 순탄한 결혼 생활을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 와중에 아예 아무 것도 없는 평민인 남자와 연애결혼을 해버린 것. 그래도 잘 생각해 보면 메리의 선택을 비웃는 궁정 귀부인들의 남편들은 하나같이 정략결혼한 아내를 제쳐두고 정부와 놀아나고 있을 텐데, 그에 비해 윌리엄 스태포드는 전쟁터에서 만나 부담스러운 처가의 격렬한 반대도 각오하고 일편단심으로 메리와 결혼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10] 프랑수아 왕이 헨리에게 "내 영국산 암말이다" 라고 소개할 정도.[11] "네 언니가 왕의 관심을 잃었다는구나. 더는 침실로 부르지 않으신다는군." "언니가 안됐네요." "안된 건 우리야!"(...)[12] 앤과 메리는 유년시절을 프랑스 궁정에서 보냈다.[13] 이는 앤의 개인사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앤은 딸인 엘리자베스를 낳고 유산을 반복하고 있었던 데다, 남편의 사랑이 다른 여자에게 갈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던 처지였다. 그런 와중에 메리가 자신만을 사랑해 주는 남자와 연애결혼을 하여 건강한 태아를 품고 왔으니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던 점도 있는 듯. 메리는 "난 날 사랑해 주는 지금 남편을 만난 걸 큰 행운으로 생각한다. 위대한 창부로 불리던 내가 이것보다 나은 결혼을 할 수 있겠느냐" 고 울며 앤의 선처를 구하지만 당시 앤의 속이 속이 아닌지라 얄짤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