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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8 00:55:10

멕시코-페루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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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페루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근세2.2. 19세기2.3. 21세기
3. 교통 교류4.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멕시코페루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양국은 스페인의 지배를 받다가 독립했지만, 스페인의 지배를 받기 이전에 톨텍, 아즈텍, 타라스칸, 마야, 잉카, 나스카 등 여러 아메리카 원주민 문명이 존재했다.

2. 역사적 관계

스페인의 정복 이전에 멕시코 일대에는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이 존재했고 안데스산맥 일대에는 잉카 문명이 존재했다. 하지만 거리상으로 멀었기 때문에 양 문명은 서로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아즈텍 문명과 마야 문명간에는 교류가 나름 있었지만,[1] 잉카 문명과 아즈텍 문명과의 교류는 없었다.

비교하자면 고대 로마와 중국 사이에서 같은 곡물(밀, 보리 등등)을 재배하고 가축(소, 닭, 돼지, 양)을 사육하고 로마에서 중국산 비단을 수입하는 등 나름 교류 관련 기록이 남아있었던 점과 다르게 아즈텍 제국에서는 잉카 문명의 알파카라마. 기니피그 같은 가축이나 퀴노아 같은 작물에 대한 지식이 없었고 잉카 역시 아즈텍의 카카오 같은 화폐 대용 작물 관련해서 완전히 무지한 입장이었다.

2.1. 근세

16세기에 아즈텍 문명과 잉카 문명, 마야 문명이 스페인 제국에 의해 정복되면서, , 당나귀 같은 이동용 가축과 범선 등이 들어오면서 지리적으로 서로 고립되어 있었던 라틴아메리카 각지의 교류와 소통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오늘날 멕시코를 중심으로 지역과 중앙아메리카 일대에는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이 들어섰고, 페루와 볼리비아 일대에는 페루 부왕령이 들어섰다. 포토시 은광에서 채굴된 은은 리마의 항구를 통해 누에바에스파냐의 오늘날 멕시코의 도시에 해당하는 아카풀코 항구를 거쳐서 중국으로 수출되었으며, 중국에서 수입한 물산은 다시 아카풀코 항구를 거쳐 리마로 재수입되곤 했다.

2.2. 19세기

19세기 초반 라틴아메리카 각국에서 스페인의 종주권에 대항하는 반란이 일어날 당시 멕시코 일대와 페루 일대의 크리오요 기득권층은 스페인 식민 지배에 충성하던 입장을 고수하고, 독립 운동 세력을 직접 진압하곤 했다. 라틴아메리카 여타 지역과 다르게 멕시코와 페루 일대에서 스페인 지배에 충성했던 이유는, 당시 해당 두 지역이 스페인의 아메리카 식민지 중 가장 개발이 많이 되었던 지역이었고,[2] 그만큼 기득권층의 사회 기반이 안정적이어서 굳이 일부러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독립 운동을 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디스 쿠데타로 스페인 왕실이 자유주의적 헌법을 받아들이자 여기에 실망한 멕시코와 페루의 기득권층은 총구를 바꾸어 스페인 지배에 대항하는 반란에 합류하였다.

멕시코는 1821년에 멕시코 제국으로 독립했고 중앙아메리카의 여러 국가들을 지배하다가 1823년에 왕정이 무너지면서 공화정으로 바뀌었다. 페루 부왕령에서는 호세 데 산 마르틴이 스페인 왕당파 군대를 패배시키고, 페루 부왕령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페루라는 국명으로 독립했다.

멕시코와 페루는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난 뒤에 1823년부로 수교했다.

2.3. 21세기

양국은 미주기구,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 국가공동체, 이베로-아메리카 공동체, 라틴 연합, 태평양동맹, TPP의 회원국들이다. 양국은 스페인의 지배와 영향을 많이 받아서 스페인어가 공용어이고 천주교가 퍼져 있다. 단, 멕시코와 페루에선 천주교가 토착화됐다. 그리고 멕시코와 페루에서 쓰이는 스페인어는 중남미식 스페인어에 속해 있고 스페인 본토와는 어휘사용과 발음에서 차이점이 존재한다.

양국은 교류가 활발하며 스페인과도 교류, 협력이 활발한 편이다. 그리고 TPP, 태평양동맹의 회원국이기 때문에 양국간에는 협력하고 있다.

2022년 8월 13일, 멕시코,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볼리비아 정부가 공동성명에서 페루의 페드로 카스티요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2022년 12월 20일, 멕시코가 탄핵된 카스티요 페루 전 대통령의 망명을 받아들이자 페루가 반발하며 멕시코 대사를 추방했다. #

2023년 5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을 외교적 기피 인물(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했다.#

3. 교통 교류

양국을 잇는 항공노선이 존재한다. 그리고 아에로멕시코가 페루를 잇는 항공노선을 통해 왕래하고 있다.

4. 관련 문서



[1] 대표적으로 마야 문명에서 재배하던 카카오가 아즈텍에서도 광범위하게 재배되었던 사례를 들 수 있다.[2] 이미 원주민들이 개발해놓았던 쿠스코멕시코 시티를 재개발하면 되었기 때문에, 스페인 제국 입장에서 투자 및 회수가 용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