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 캐나다 | 멕시코 |
1. 개요
미국, 캐나다, 멕시코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3국은 지리적으로 북미에 속하며 교류와 협력이 많은 편이다.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 이른바 파이브 아이즈라고 해서 사실상 혈맹으로 분류되는 반면, 멕시코는 경제적으로는 미국에 완전히 예속되어 있으나,#1#2 파이브 아이즈에 끼지는 못한다.2. 역사적 관계
2.1. 18세기
간단하게 말해서 각각 캐나다는 프랑스, 미국은 영국, 그리고 멕시코는 스페인의 식민지에서 출발하였다. 프랑스 입장에서 캐나다는 그렇게까지 중요한 식민지는 아니었고,[1] 프랑스가 개척했던 식민지는 18세기 중반 영국으로 넘어가버렸고, 미국은 18세기 말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본격적으로 영토를 확장하며 성장하였다면, 멕시코의 경우 일찍이 스페인의 알짜배기 식민지로 성장했기 때문에 외부에 종속된(자립이 불가능한) 형태의 경제구조가 자리잡게 되었다.미국과 캐나다 문화의 특징은 인종(영국계/독일계/프랑스계), 종교(개신교)[2] 같은 요인 외에도 유럽/아시아와 다르게 전통 기득권층(토지귀족, 관료화된 성직자 계급)이 없었던 사회적 요인, 이용 가능한 토지가 사실상 무한대였던 지리적/경제적 요인이 더 컸다. 미국에서 자유지상주의, 개인주의 문화가 발전할 수 있었던 반면, 멕시코는 토지가 남아돌았다는 점은 똑같았지만, 페닌술라르 우대 정책으로 대표되는 스페인의 순혈주의, 관료화된 원주민 선교단체 등등의 영향에 힘입어 유럽의 전통 기득권층 위주의 사회 구조가 이식되었고, 소수 백인과 다수 원주민 사이의 혼혈이 발생하면서 복잡한 카스트 제도로 발전하여 외려 유럽보다 더 경직된 계급 구조로 고착되기 이르렀다. 멕시코로 이동한 유럽인들은 비교적 소수에다[3] 거의 다 남성이었고 대개 현지 원주민 여성들과 결혼하여 오늘날 멕시코 인구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메스티소의 조상이 되었다.
오늘날 멕시코의 전신이 되는 누에바에스파냐나 여러 남미 국가들의 기원이 되는 페루 부왕령에서는 스페인 본토 안달루시아의 지주들의 생계 기반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이유로 포도주 양조 및 올리브 재배가 제한되었다. 대신 이런 식민지들의 역할은 따로 있었다.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채굴된 은은 태평양 건너 필리핀 도독령을 통해 마카오로 가서 중국산 물산을 구입하는데 사용되었고, 이렇게 구입된 중국산 물산은 다시 멕시코로 건너가 노새들이 육로로 수송한 후 다시 대서양을 건너 스페인 본토로 이송되었다. 아메리카 식민지에서는 엄청난 양의 은이 채굴되어 중국이나 스페인으로 향했으나, 라틴 아메리카 각국이 독립할 시점에는 은광 상당수가 고갈 상태였다. 이는 후일 멕시코가 독립 이후에도 자립하지 못하고 영국/미국 등 외국 자본에 종속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19세기) 라틴아메리카에 유입된 유럽 자본이 실질적으로 현지의 금융시장이나 금융기관을 구축하는데 투자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현지의 금융시장과 금융기관이 형성되었다면 그곳에서 동원할 수 있는 자본들이 그들 스스로 좀 더 광범위하고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경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사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라틴아메리카는 이런 금융기관들이 없었기 때문에 산업 기반의 구축이 어려웠고, 멕시코 사례가 보여주듯이 심각한 기업 집중 현상이 초래되었다. 오직 소수의 부자만이 공장을 건설할 자금을 모을 수 있었기 대문이다. (기업 집중 현상은 심지어 비교적 적은 투자자금만 필요한 경공업 분야에서도 일어났다.) 기업 집중 현상은 심지어 미국과 유럽이 이미 앞서 나가던 제2차 산업혁명에 속한 산업 분야보다 훨씬 더 적은 자금이 필요했던 면직물 공장에서조차 발견되었다.
하버드 C.H. 베크 세계사 1750~1870
하버드 C.H. 베크 세계사 1750~1870
2.2. 19세기
18세기 말 영국에서 증기기관이 개발되고, 많은 노동자들이 실업자가 되고 자본이 일부 자본가들에게로 집중된 결과 19세기 유럽에서는 노동자 계급에게 저임금 중노동이 강요되었다. 한 편 의학의 발전과 농산물을 수출하고 수입하는 국제 무역 네트워크가 성장하면서, 유럽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특히 프로이센 왕국과 러시아 제국에서 인구 증가에 따른 빈곤 문제가 심각해졌다. 당시 유럽에서는 중산층 가정에서도 일주일에 고기 한 번 먹는 정도였다면 미국에서만 군인들이 맨날 똑같은 고기만 먹는다고 지겨워하는 수준으로 미국과 캐나다의 소득 및 생활 수준이 월등하게 높았고, 상술한 의학의 발달로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이민하는 사람들의 사망률도 감소하면서 이민 리스크 및 비용도 감소하였다. 이를 이유로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유럽 각지에서 엄청난 수의 인구가 미국과 캐나다로 이민하기 시작하였다.[4]미국이 19세기까지 태평양 서해안 일대까지 영토를 넓히자 영국과는 영토갈등이 생겨났다. 이에 미국은 영국과 국경협정을 체결했고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해안지역은 영국령으로 유지되었다. 러시아령 아메리카였던 알래스카는 러시아 제국이 미국과 협정을 체결해 미국의 영토가 되었다.
한편, 캐나다는 영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당시 인종주의가 만연하던 시대 영국에서 식민지의 백인 인구를 대놓고 착취해지는 못했고 영국은 캐나다를 자국에 밀이나 고기 등 농축산물을 공급하는 기지로 자본을 대거 투자하기 이른다. 캐나다는 19세기 후반에는 영국의 자치령이 되었다. 19세기 말에 미국은 스페인과 미국-스페인 전쟁을 치르며 아메리카 대륙에 마지막 남은 스페인 식민지들을 장악하였다.
미국에서 19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캘리포니아를 개발하며 철도를 부설할 당시 캘리포니아는 동부와 다르게 노동력이 부족한 상황이었고 이를 계기로 미국은 캘리포니아에 중국계 이민자들을 비롯한 아시아계 이민자들을 대거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캐나다 역시 브리티시 컬럼비아를 개발하면서 상당수의 중국계, 인도계 이민자들을 받았다. 멕시코 역시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유입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으나 멕시코 혁명 당시 화교 학살이 발생하였고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멕시코 이민 대신 차별이 그나마 덜하고 경제 활동이 더 편한 미국 이민을 선호한 것을 계기로 20세기 이민해서 자리잡은 멕시코 내 아시아계 이민자 인구는 소수에 불과하다.
19세기를 거치며 미국은 유럽에서 이민을 받아들이며 부강해진 반면 멕시코는 국수주의 정책을 취하면서 마치 오늘날의 미얀마와 마찬가지로 빈곤 문제가 심화되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기준 멕시코의 1인당 국민 소득은 미국이나 영국과 비교해 형편없는 수준이 되었다. 멕시코의 포르피리오 디아스는 멕시코 사회에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하다 오히려 빈부격차를 심화시켰고 이는 20세기 초반 멕시코 혁명으로 이어진다.
2.3. 20세기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유럽이 황폐화되는 동안 아메리카 대륙은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를 비껴갈 수 있었고,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모두 전쟁 와중에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미국은 초강대국으로 성장하였다. 캐나다의 경우 미국과 함께 세계 대전에 참전하는 등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으나, 멕시코의 경우 세계 대전을 공군 전력만 지원하는 선에 그쳤는데, 이는 후일 파이브 아이즈에서 멕시코가 끼고 싶어도 끼지 못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한 편 19세기 초반에 먼로 독트린을 발표하며 아메리카의 패권을 다진 미국은 냉전 시대가 되자 원교근공 외교정책을 바탕으로 유럽(소련 및 공산권 블록 제외) 및 동아시아의 우방국에 마셜 플랜을 통해 대대적인 지원을 펼친 반면,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친미 독재정권을 후원하는 방향으로 여러 국가들을 교란시키기 이른다. 멕시코의 경우 과테말라, 니카라과. 칠레처럼 미국에서 쿠데타를 사주하는 수준까지는 가지 않았으나, 디에고 리베라 같은 좌파 지식인들은 미국의 멕시코 예속화를 비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는데, 이는 오늘날 멕시코 사회 내 반미 감정과도 연계된다고 할 수 있다.미국에 대한 멕시코의 반감은 미멕전쟁 당시 상실한 영토(전쟁 이전 멕시코 영토의 55%에 해당)에 대한 집착과도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미국이 멕시코로부터 정복한 선벨트 지역은 19세기까지만 해도 농업과 광업 위주의 1차 산업 위주의 경제였으나,[5] 미국 자본에 의한 에어컨의 보급으로 2,3차 산업이 급격히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1980년대 멕시코 경제가 오일 쇼크로 인한 미국의 대출 금리 인상으로 큰 타격을 받으면서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불법 이민하는 인구가 폭증하기 시작했다.
2.4. 21세기
3국 모두 교류와 협력이 활발한 편이다. 3국간에도 경제적인 교류가 활발하다보니 자유무역협정인 USMCA도 체결되었다. 3국은 미주기구의 회원국에 속해 있다. 미국내에는 멕시코계 미국인을 포함한 히스패닉들이 많은 편이며 히스패닉들의 영향으로 스페인어가 사실상 미국의 제2언어가 되었다. 캐나다는 프랑스계 캐나다인과 퀘벡의 영향으로 영어와 프랑스어가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캐나다에서도 미국내 히스패닉들이 이주하면서 스페인어 화자가 늘고 있다.멕시코가 관광지로 유명한 곳들이 많다보니 미국, 캐나다에서 멕시코로 관광하러 오는 경우가 자주 있다.
2010년대 후반에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자 캐나다와 멕시코는 미국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멕시코와의 국경지역에 장벽을 세운다고 밝히자 멕시코측이 반발했다. 멕시코인들의 비자가 막히는 경우가 생가자 캐나다로도 이주하는 경우가 생겨났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2018년에 세 나라가 2026 FIFA 월드컵 공동 유치에 성공하기도 했다.
2021년에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뒤, 미국과 멕시코는 관계가 개선되었다. 그리고 미국과 멕시코는 트럼프 행정부때 중단되었던 경제회담을 5년만에 재개했다.#
2023년 1월 10일, 미국, 캐나다, 멕시코 3국의 정상회담에 개최됐다.#
1월 12일, 3국 정상회담에서 아시아 수입 반도체의 25%를 미국, 캐나다, 멕시코에서 생산하기로 합의했다.#
3. 경제 교류
자세한 내용은 USMCA 문서 참고하십시오.4. 문화 교류
문화적으로 3국은 교류가 많이 존재한다. 미국의 헐리우드 영화와 드라마가 멕시코, 캐나다에서 인기가 많이 있다. 그리고 미국으로 유학하는 멕시코인 유학생, 캐나다인 유학생들이 많이 있다. 미국인, 캐나다인들이 멕시코로 관광하러 가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3개국 모두 공휴일이 있는 달은 1월, 5월, 9월, 11월, 12월이다. 2월은 미국과 멕시코에만, 3월과 4월은 캐나다에만, 6월은 미국에만, 7월은 미국과 캐나다에만, 10월은 미국과 캐나다에만 공휴일이 있고 8월은 그 어느 나라에도 공휴일이 없다.
4.1. 언어
멕시코는 지리적인 이유로 영어가 주요 외국어이다. 그리고 미국은 히스패닉들과 멕시코계 미국인들의 이주 및 인구 증가로 스페인어가 주요 외국어이고 널리 가르치고 있다. 캐나다는 퀘벡의 영향으로 프랑스어가 영어와 함께 공용어이다. 미국에서도 프랑스어 교육이 스페인어 교육 다음으로 실시되고 있다. 루이지애나주는 영어와 프랑스어가 널리 쓰이고 있고, 메인주 북부 등 일부 지역에 프랑스어 화자가 존재한다.5. 군사 교류
자세한 내용은 미군 문서 참고하십시오.자세한 내용은 캐나다군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멕시코군 문서 참고하십시오.
미국과 캐나다는 파이브 아이즈의 구성원으로서, 나토 회원국이기도 하다. 미군은 나토군의 중추 역할을 한다. 멕시코는 파이브 아이즈에 속하지 않으며 나토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다.
6. 관련 문서
- 미국/외교
- 캐나다/외교
- 멕시코/외교
- 미주기구
- 북극이사회[6]
- 미국-멕시코 국경 /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
- 미국/역사
- 캐나다/역사
- 멕시코/역사
- 영어권 / 앵글로아메리카[7]
- 미국/정치
- 캐나다/정치
- 멕시코/정치
- 미군 / 캐나다군 / 멕시코군
- 미국/경제
- 캐나다/경제
- 멕시코/경제
- USMCA
- 미국/문화 / 캐나다/문화
- 미국인 / 캐나다인 / 멕시코인 / 미국계 멕시코인 / 멕시코계 미국인 / 히스패닉 / 캐나다계 미국인
- 영어(미국 영어, 캐나다 영어) / 스페인어 / 프랑스어(퀘벡 프랑스어)
- 대국관계일람/아메리카 국가/북아메리카 국가
[1] 당시 프랑스가 알짜배기로 여겼던 식민지는 카리브 해의 생도맹그였다. 캐나다는 개척 초창기에는 모피 자원을 공급하는 지역 정도로 홀대받았었다.[2] 미국을 처음으로 개척한 집단은 청교도 필그림들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청교도 문서를 보면 알다시피 이 "미국의 청교도"라는 종교집단은 하나로 단순하게 구분할 수 있는 집단도 아니다. 초창기 미국으로 이주해온 종교적 소수자 집단 가운데 가장 먼저 온 교파가 청교도였기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다. 미국으로 이민한 청교도들이 과연 청교도가 맞는가 하는 논쟁도 있다.[3] 수백여 년에 걸쳐 50만여 명이 이주하였는데, 이는 현지 원주민 인구나 미국이나 캐나다로 이주한 유럽인 인구에 비해 매우 적은 편이다.[4] 미국이나 캐나다라고 해서 계층 이동이 마냥 쉬운것은 아니다만 적어도 이 지역은 중국계나 가톨릭 신도들, 동유럽에서 이민 온 유대인 인구들이 교육열을 바탕으로 빈곤 문제를 상당부분 극복한 사례에서 보듯 라틴 아메리카처럼 절망적인 수준은 아니었다.[5] 20세기 이후 내연기관의 발달로 석유의 수요가 폭증하기 시작했는데 멕시코가 미국에게 토해낸 그 텍사스에서 우수한 품질의 석유가 쏟아져나왔다.[6] 멕시코는 가입하지 않았다.[7] 라틴아메리카에 해당되는 멕시코는 예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