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국환 明國煥 | Myung Kook Hwa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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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78787><colcolor=#fff> 출생 | 1927년 1월 9일[1] |
황해도 연백군 연안읍 (現 황해남도 연안군 연안읍) | |
사망 | 2023년 8월 19일 (향년 97세) |
인천광역시 남동구 요양 병원 | |
본관 | 서촉 명씨 (西蜀 明氏)[2] |
부모 | 아버지 명상기(明相汽)[3], 어머니 충주 지씨(忠州 池氏)[4] |
형제 | 3형제 중 차남 [5] |
배우자 | 아내 한을애(韓乙愛)[6] |
자녀 | 딸 명경은(明敬恩)[7] |
친인척 | 조카 조경선[8], 외손녀 리라[9] |
종교 | 불교 |
데뷔 | 1953년 서울중앙방송국 전속 가수 1기 |
경력 | 제10대 대한불자가수회장 |
수상 | 제39회 가수의 날 공로상 제5회 대중문화예술상 보관문화훈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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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원로 가수이며, 실향민/대한민국이다.2. 출생년도에 관하여
그의 출생일이 1월 9일이라는 것은 확실하지만, 우선 양력으로 1927년 1월 9일, 음력으로 1926년 12월 6일인데 네이버 프로필 상으로는 1933년 1월 9일 생이다.- 1927년생이라는 의견
- 1930년생이라는 의견
- 1932~1933년생이라는 의견
3. 생애
1927년 1월 9일 황해도 연백군 연안읍에서 아버지 명상기, 어머니 충주 지씨 슬하에서 3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 명주황(明周煌)[12], 동생 명철환(明喆煥)[13][14]이다. 고조부는 명제혁(明濟赫)[15] 증조부는 명이석(明利錫)[16], 조부는 명해윤(明海潤)[17]이다. 고향 땅에서 거주하다가 중학생 때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가족을 따라 남한으로 월남하여 이후로는 대한민국에서 거주하게 되었다.1951년 해병특공대에 자원 입대하여 여러 전투에서 무공을 세우고 미군 극동사령부 위문공작대로 전출되어 위문병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후 1954년 대한민국 해병 병장으로 전역한 뒤 동년 데뷔곡인 백마야 울지마라으로 정식 데뷔하였다.
1956년에 가수선발대회에서 입상하고 나서, '백마야 울지마라'라는 곡을 발표해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고, 그 이후에 발표한 '방랑시인 김삿갓[18]', '아리조나 카우보이'[19] 등이 그야말로 대히트를 치면서 유명 가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 뒤에는 원로 가수 격으로 가요무대 등에 간간히 출연하며 모습을 비추었다.
2022년에 방영된 현장르포 특종세상을 통해 안타까운 근황이 전해졌는데, 파킨슨병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이며 경기도 부천시에 위치해 있는 반지하 월세방에서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방송이 나간 후 대한가수협회에서 그에게 격려금을 전달했다.
백마야 울지마라 (1955) |
방랑시인 김삿갓 (1955)[20] |
4. 사망
2023년 8월 19일 오전 11시 50분 인천광역시 남동구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발인은 9월 4일 오전 5시 30분이며, 장지는 국립 괴산호국원이다. #별세 사실이 9월 2일에서야 알려진 이유를 이자연 대한가수협회장이 언급했는데, 인천광역시 남동구 측에서 사망 이후 2주 동안 가족을 수소문 하였고, 여동생의 손녀에게 연락을 했지만 명국환에 대해 잘 몰랐기에 무연고 처리 과정까지 갔다가 요양병원 측에서 뒤늦게 가수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9월 1일에 대한가수협회에 연락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망 사실이 다소 늦게 알려진 것이며 이자연 역시도 몇 달 전까지 연락을 하기는 했지만 명국환이 언제 요양병원에 입원했는 지는 모른다고 한다. #
5. 대표곡
- 백마야 울지마라
- 내 고향으로 마차는 간다
- 아리조나 카우보이
- 방랑시인 김삿갓 - 전두환의 평소 애창곡인데, 12.12 군사반란 40일 뒤인 1980년 1월 23일 신군부가 벌인 파티에서 전두환이 이 노래를 부른 영상도 남아있다. 명국환이 가요무대에 출연해서 힘겹게 부른, 그의 인생 마지막 공연곡이기도 하다. #
6. 기타
- 결혼을 3번이나 했는데 자녀가 없다. 21세에 첫 결혼을 했지만 자궁 외 임신을 비롯해서 전부 유산이 된 탓에 자식을 가지지 못했다고 한다.
[1] 음력 1926년 12월 6일[2] 시랑공파(侍郞公派) 연안(延安)계 21세, 濟(제)○ 항렬이나 사용하지 않았고, ○煥(환)자 돌림이다.[3] 자는 원표(元杓). 1904년 3월 16일~남북 분단으로 인해 몰년 미상[4] 진사시에 합격한 지영호(池永鎬)의 딸이다. 1900년 7월 1일~남북 분단으로 인해 몰년 미상[5] 형 명주황(明周煌), 동생 명철환(明喆煥)[6] 청주 한씨 한원일(韓元逸)[22]의 딸이다. 1948년 11월 28일~[7] 1983년 10월 8일~[8] 1963년생[9] 1996년생.[10] 1930년생인 안다성은 선생님 칭호와 씨 칭호를 번갈아 가며 쓰고 있었다. 또한 자기보다 2~3살 많은 최희준, 박경원, 남백송 등은 씨라고 칭하고 있었으며 똑같이 1930년생인 고대원의 경우에는 선생이라고 칭하고 있다.[11] 당시 중학교는 현재의 고등학교를 포함한 것이다.[12] 자는 동희(東熙). 1920년 11월 20일~[13] 1937년 12월 10일~2024년 11월 3일 (향년 87세)[14] https://m.cafe.daum.net/nchesingo/Zoaq/297?q=%EB%AA%85%EC%B2%A0%ED%99%98&[15] 자는 기현(琦現), 1822년 5월 1일~1903년 윤5월 26일 (향년 82세), 행 영회릉 참봉을 지냈고, 통정대부, 돈녕부 도정(승진)하여 고종 때 기사(耆社)에 들어가 가선대부 품계를 제수받았다.[16] 1859년 9월 17일~1890년 8월 28일 (향년 32세)[17] 1884년 3월 12일~1930년 7월 8일 (향년 47세)[18]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애창곡으로 알려져 있다.[19] 김구라가 라디오스타에서 부른 적 있다.[20] 사망을 얼마 앞두고 출연한 가요무대에서 부른 영상. 건강이 쇠약해진 것을 동작과 소리에서 알아볼 수 있다. 그래도 가수답게 고령의 나이와 악화된 건강 상태에서도 잘 부른다.[21] 현재 생존하고 있는 한국의 최고령 가수는 故 손목인의 아내로 1927년생인 오정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