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바 모란디 교량 붕괴 사고 Crollo del Viadotto Polcevera Ponte Morandi collapse | |
발생일 | 2018년 8월 14일 |
유형 | 교량 붕괴 |
발생 위치 | 이탈리아 리구리아 주 제노바 아우토스트라다 10호선(A10/E25·E80) 모란디 다리 |
사망자 | 43명 |
실종자 | 5명(추정) |
부상자 | 16명(9명 중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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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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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사고현장 근처의 CCTV 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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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 채널 다큐멘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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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현장과 가장 가까운 CCTV, 교량이 무너지는 모습과 떨어지는 승용차, 트럭들이 선명하게 보인다.[1] |
2018년 8월 14일(현지시각) 이탈리아 제노바에 위치한 제노바 아우토스트라다 A10(E80)의 모란디교(Ponte Morandi)의 200m 구간이 붕괴된 사고. 이 사고로 인해 35대가 넘는 차량이 아래로 추락하여 40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그야말로 이탈리아판 성수대교 붕괴 사고라고 봐도 무방하다.#
2. 모란디 교
1958년 이탈리아 경제는 부흥하기 시작했으나 도로는 아직 평탄하지 않아 곳곳에 이동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 제노바 지역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꽤 큰 다리가 필요했다. 모란디교는 1962년에 이탈리아의 전설로 불리는 건축가 리카르도 모란디(Riccardo Morandi)가 다리를 디자인한 이탈리아의 첫 사장교이며 1963년부터 1967년까지 건설해 1.1km 길이로 완공했다. 밑에 아파트와 공장, 재활용 센터 등 건물들이 많았기 때문에 다리를 높이 지을 필요가 있어서 땅에서 45m 떨어진 높이에 지었다. 잘 보면 맨 끝 케이블만 색이 좀 다른데 이는 후술할 보수공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3. 사고 경위
2018년 8월 14일 오전 11시 36분 이탈리아의 A10 고속도로 상에 있는 모란디 다리가 무너졌다. 한쪽 케이블이 무너지면서 기둥이 다리를 지탱하지 못하게 됐고 결국 다리가 무너져내렸다. 모란디 다리에서 무너진 부분의 길이는 200m 정도였는데 이 위에 있던 차량 35대가 한꺼번에 추락하였다. 사고 당일은 휴일인 성모 승천 대축일을 하루 앞두고 휴가, 여행을 떠난 가족 여행객들이 많았고 비가 와서 차를 타고 이동한 사람들이 많아 고속도로도 평소보다 차들이 몰렸다. 붕괴된 구간이 길거나 크고 무거운 잔해더미가 많아 구조 및 수습이 어려워 사망자 수를 정확히 집계하기 힘들었다. 소방관들은 구조견까지 동원해 며칠에 걸쳐 부상자들을 구조하고 시신을 수습했다. 희생자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실종 신고를 한 가족들의 유전자와 시신에서 나온 DNA를 대조하면서 비교해 신원을 파악했다.정확한 사상자 수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대규모 구조대와 소방차가 출동해 사고 현장에서 구조작업을 진행했다. 현장 사진과 영상 속에서는 무너진 콘크리트 잔햇더미 아래 깔려 찌그러진 차들도 보인다. 이탈리아 ANSA 통신은 사건 당일 오후 2시 현재 사망자 11명이 확인됐고 5명이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출처 기적처럼 생존한 사람들의 소식이 하나둘씩 알려졌다. # 추락하다 20m 높이 잔해에 낀 차량…기적의 생존 현장
현지시간 18일 오전 잔햇더미에 파묻힌 승용차[2]안에서 일가족 3명의 시신을 수습하면서 참사의 사망자가 총 41명으로 늘었다. 제노바 교량참사 현장서 일가족 시신 수습…"사망자 41명으로" 밑의 건물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도 희생자가 나왔다.
이 사고로 43명이 사망하고 16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간 다리 붕괴 사고로 남았다.
4. 희생자
생존자는 나탈리야 옐리나(44세 여성, Nataliya Yelina)와 그녀의 약혼자 에우제니우 바빈(44세 남성, Eugeniu Babin), 다비데 카펠로(34세 남성, Davide Capello)[3], 리타 잔크리스토파로(41세 여성, Rita Giancristofaro)와 그녀의 남자친구 페데리코 체르네(34세 남성, Federico Cerne), 잔루카 아르디니(29세 남성, Gianluca Ardini), 마리나 괄리아타(Marina Guagliata)와 그녀의 딸 카밀라(Camilla)[4] 등 16명이다.뉴스를 통해 희생자들의 신원이 공개되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사망자는 남성 32명, 여성 11명이다.
* 로베르토 로비아노(44세 남성, Roberto Robbiano), 에르실리아 피치니노(41세 여성, Ersilia Piccinino ), 사무엘 로비아노(9세 남성, Samuel Robbiano) - 일가족. 사르데냐로 휴양을 가던 길이었다. 아들 사무엘 로비아노는 가장 먼저 발견된 사망자였다.
- 알베르토 판파니(32세 남성, Alberto Fanfani)와 마르타 다니시(29세 여성, Marta Danisi) - 마취과 의사, 간호사 부부로 사건 얼마전에 약혼을 했다고 전해졌다.
- 루이지 마티(35세 남성, Luigi Matti) - 회사원. 고향에서 표창도 받을 만큼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마티의 신원은 한동안 확인되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가족들이 직접 페이스북에 계정을 만들어 도움을 요청해야만 했다.
- 이탈리아인 스텔라 보차(24세 여성, Stella Boccia)와 그녀의 남자친구 페루인 카를로스 헤수스 에라소 트루히요(27세 남성, Carlos Jesus Erazo Trujillo)
- 멜리사 아르튀(22세 여성, Melissa Artu), 그녀의 남자친구 나탕 구스만(20세 남성, Nathan Gusman), 친구 악셀 플라스(19세 여성, Axelle Place), 윌리암 푸자두(21세 남성, William Pouzadoux) - 모두 프랑스 출신의 친구 사이로, 당일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음악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가던 길이었다.
- 안드레아 체룰리(47세 남성, Andrea Cerulli) - 제노아의 회사에서 근무하던 부두 직원. 어린 아들이 있었으며 아마추어 축구선수이기도 했다. 당일에 좋아하던 축구 팀 경기를 보러 향하던 길이었다.
- 조르조 도나조(61세 남성, Giorgio Donaggio) - 아내와 세 자녀를 둔 가장. 그의 죽음은 이탈리아의 유명 사이클리스트이자 TV 진행자인 그의 친구 비토리오 브루모티(Vittorio Brumotti)에 의해 확인되었다.
- 젠나로 사르나타로(43세 남성, Gennaro Sarnataro) - 나폴리 출신 트럭 기사
- 마리안 로스카(36세 남성, Marian Rosca) - 루마니아 출신 트럭 기사. 중상을 입고 치료를 받던 중 병원에서 사망했다.
- 안드레아 비토네(49세 남성, Andrea Vittone), 클라우디아 포세티(47세 여성, Claudia Possetti), 마누엘레 벨라시오(16세 남성, Manuele Bellasio), 카밀라 벨라시오(12세 여성, Camilla Bellasio) - 일가족. 비토니와 포세티는 지난 7월에 결혼한 사이였으며 검은색 폭스바겐 골프 차량을 타고 휴가를 가던 길이었다.
- 빈센초 리카타(57세 남성, Vincenzo Licata)
- 후안 루벤 피게로아(58세 남성, Juan Ruben Figueroa), 후안 파스테나스(64세 남성, Juan Pastenas), 노라 리베라(47세 여성, Nora Rivera) - 칠레 출신으로, 1970년대부터 이탈리아에 거주해왔다. 파스테나스와 베라는 부부사이였다.
- 루이지 알타돈나(34세 남성, Luigi Altadonna) - 네 자녀의 아버지.
- 미르코 비치니(31세 남성, Mirko Vicini), 브루노 카사그란데(57세 남성, Bruno Casagrande) - 유지보수 회사 동료 사이. 붕괴 당시 다리 아래에서 작업중이었다. 알레산드로 캄포라(46세 남성, Alessandro Campora) 역시 제노아에 위치한 회사에서 유지보수 작업을 위해 비치니, 카사그란데와 함께 다리아래에서 작업중이었다.
- 엘리사 보초(33세 여성, Elisa Bozzo) - 그녀의 검은색 오펠 차량으로 신원이 확인되었다.
- 제라르도 에스포시토(26세 남성, Gerardo Esposito), 마테오 벤토르나티(26세 남성, Matteo Bentornati), 조반니 바틸로로(29세 남성, Giovanni Battiloro), 안토니오 스탄초네(29세 남성, Antonio Stanzone) - 나폴리 출신의 친구 사이로, 스페인으로 휴가를 가던 길이었다. 원래 이들은 비행기를 타고 갈 예정이었다.
- 프란체스코 벨로(41세 남성, Francesco Bello).
- 산드로 캄포라(53세 남성, Sandro Campora).
- 헨리 디아스(30세 남성, Henry Díaz) - 콜롬비아인.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콜롬비아 팬클럽 회장으로 이 사고의 유일한 콜롬비아인 희생자.그를 기리는 인테르 이 사고로 인해 일부 세리에 A 경기가 연기되기도 했다.
* 알레산드로 로보티(50세 남성, Alessandro Robotti), 조반나 보타로(43세 여성, Giovanna Bottaro) - 남편 로보티는 약국의 관리자였으며 천문학 애호가 그룹의 창립자 중 한 명이었다. 아내 보타로는 마지막에 발견된 희생자 중 한명이었다.
5. 사고 여파
A10 구간의 핵심 부분인 모란디 다리가 붕괴되어 제노바 시내도로에 심각한 교통정체가 일어났다. 도시 서쪽 프랑스 니스에서 남동쪽 리보르노그런데 붕괴한 지점이 철도 노선을 횡단하는 지점이기도 했던지라 떨어진 잔해로 인해 밀라노, 로마, 리보르노를 오가는 철도교통 운행마저 중단되었고 다리 인근에 아파트가 밀집해 있어서 주민 600여명이 대피해 한동안 이재민으로 지내야 했다.
6. 사고 원인
6.1. 건축가에 의한 부실공사와 부실관리
특이사항으로 이러한 다리는 보통 기둥에 케이블이 여러개 달려서 케이블 여러개가 다리를 잡아주는 구조다 일례로 금문교에 쓰인 케이블 길이는 지구를 3바퀴 돌고도 남는 양이다. 하지만 모란디는 기둥 하나당 4개씩, 굵은 줄 안에 케이블 여러개만 달아 놓는 식으로 디자인했는데 이러면 깔끔해 보일진 몰라도, 케이블 하나만 끊어져도 다른 케이블이 버티지 못해 무너진다는 단점이 있다.[6] 리카르도 모란디가 베네수엘라에 만들었던 제너럴 라파엘 우다네타 브릿지도 다리 하나당 4개의 대형 케이블만 달았다가 1964년 4월에 다리가 무너지면서 7명이 사망한 사례가 있었다.# 그럼에도 리카르도 모란디는 자신의 다리 디자인에 결함이 없다고 생각해 디자인을 밀어붙였으며 당시로선 신기술이었던 프리스트레스 콘크리트를 사용해 다리를 지탱하는 케이블을 세웠다. 다만 프리스트레스 콘크리트는 아직까지 다리에 쓰인 적은 없는 공법이었다.모란디교는 사고 시점에는 완공된 지 50년이나 지나 매우 노후화되었으며 근처에 바다가 있어서 소금기가 가득한 공기가 계속해서 불어와 다리가 조금씩 부식됐고 다리 바로 밑의 공장에서 나오는 매연 속 화학물질도 조금씩 다리를 부식시켰는데 이미 1979년부터 금이 조금씩 가기 시작했다. 금이 간 다리에 녹을 제거하고 소금기를 막는 에폭시를 칠한 후 콘크리트를 다시 발랐지만 더 큰 문제는 콘크리트가 아닌 내부 케이블이었다. 케이블은 이미 70%가 녹이 슬어 있었다. 단순히 콘크리트를 덧 바르는 것 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았고 다리를 아예 철거했다가 다시 지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1989년 리카르도 모란디가 사망한 후 한동안 콘크리트를 덧대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1992년에 11번 기둥 콘크리트가 아예 다 떨어져나가 내부 케이블이 보이는 지경에 이르면서 아예 케이블을 덧대고 다시 콘크리트를 덧발라 보수공사를 했다. 이 때문에 다리 사진을 자세히 보면 11번 기둥은 케이블들로 아예 둘러 쌓인 걸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11번 기둥 외에 다른 기둥에도 있었는데 이를 무시하고 다른 다리는 사고 당일인 2018년 8월 14일까지도 단 한번의 보수공사도 없었다.
6.2. 마피아에 의한 부실공사
건설 당시부터 마피아가 개입해 저질 시멘트를 쓰면서 처음부터 예견된 인재였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이를 감시해야 할 공사 감독관도 무용지물이었고 이 교량뿐만 아니라 마피아가 건축에 개입한 수많은 건물들의 부실의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1960년 이후 은드랑게타가 건설 붐에 편승해 건축 공공 사업에 깊숙히 관여하면서 저질 자재로 건축하고 차익을 챙겨 왔기 때문에 비단 이 사건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한심하고도 위험천만한 작태가 만연하였다.# 부실공사로 의심되는 사고가 줄을 잇고 있었다고 한다. 놀라운 건 이탈리아에서 교량 붕괴 사고가 이 사고가 처음도 아니고 12번째, 시칠리아에서만 무려 4번째 붕괴 사고라고 한다.
부실공사로 건축물이 일찍 노후화되기 시작하면 건설사는 이미 한탕 하고 사라진 뒤...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나올 보수공사에 건설사가 또다시 입찰하는 식으로 계속해서 돈을 뽑아먹을 속셈이라는 말이 이탈리아 네티즌들로부터 나왔다. 다리가 무너져 버린 것도 본래(?)대로라면 정부가 보수공사를 진행했어야 하는데 이탈리아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그 보수공사마저 차일피일 미뤄지다 사단이 났다고 한다.
7. 사고 이후
이 사고로 패션 브랜드 회사 베네통은 큰 비난을 받았는데 모란디 다리를 유지, 보수하는 업체의 최대 주주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유지보수 문제 이전에 처음부터 마피아, 은드랑게타가 개입하여 부실공사로 지어졌다는 외신보도가 나왔다.희생자 합동 장례식에 오성운동의 루이지 디마이오 노동산업부 장관과 살비니 장관이 도착했을 때 환호성이 울려퍼진 반면 민주당 인사들이 왔을 때는 욕설과 고성이 나왔다.#
더 샤드로 유명한 건축 디자이너 렌초 피아노가 복구안을 내놓았다.
2019년 2월에 모란디 다리의 철거가 시작되었다. 상판을 분해해서 지상으로 내리는 작업으로 시작했으며 2019년 말까지 모두 철거되며 새로운 다리는 2020년에 건설 예정으로 전해졌다. #
2019년 6월 28일 오전 9시 37분(현지시간) 경 교량의 남은 부분을 폭파시켜 철거했다.#
2019년 8월 2일 이탈리아·스위스 합동 조사단이 '교량이 (붕괴 전) 수분과 황화·염화물 같은 성분 탓에 장기간 전반적인 부식 상태에 있었지만 사고 전까지 무려 25년간이나 이를 시정하기 위한 의미 있는 유지 보수 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내용으로 보고서를 내놓았다.#
새로운 모란디 다리는 2020년 4월에 마지막 상판이 올려졌으며 도로 포장 및 마무리 공사를 진행해 2020년 8월에 새로운 모습으로 재개통했는데 기존의 사장교와는 달리 거더교 형태로 재건했다. #
다리 관리는 이탈리아 정부가 맡는다. # 2020년 8월 3일부로 재개통하였다.#
8. 유사 사례
- 성수대교 붕괴 사고(1994년, 한국)
- 미시시피 강 교량 붕괴 사고(2007년, 미국)
9. 둘러보기
역대 이탈리아의 대형 사고 및 참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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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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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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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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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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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 사건명 1979년 9월 14일31 아에로 트랜스포티 이탈리아니 12편 추락 사고 1978년 12월 23일108 알리타리아 4128편 추락 사고 1978년 4월 15일48 무라제 디 바도 열차 탈선 사고 1977년 3월 3일44 세라산 이탈리아 공군기 추락 사고 1976년 5월 2일44 카발레세 케이블카 추락사고 1974년 1월 1일38 이타비아 항공 897편 추락사고 1973년 12월 17일34 1973년 로마 공항 습격·납치 사건 1972년 10월 30일27 아에로 트랜스포티 이탈리아니 항공 327편 추락 사고 1972년 5월 5일115 알리탈리아 항공 112편 추락 사고 1971년 11월 9일52 영국 공군 허큘리스 추락사고 1971년 8월 28일25 헬레아나호 화재 1970년 4월 9일20 발러호 침몰 사고
- [ 196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 사건명 1964년 11월 23일50 트랜스 월드 항공 800편 이륙 사고 1964년 3월 28일45 알리탈리아 항공 045편 추락 사고 1963년 10월 9일1900 + 바이온트댐 붕괴 사고 1962년 5월 31일61 보게라 열차 충돌 사고 1961년 12월 23일71 피우마렐라 열차 탈선 사고
- [ 195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 사건명 1959년 9월 16일58 비아 카노사7 빌딩 붕괴사고 1959년 6월 26일68 트랜스 월드 항공 891편 추락 사고 1958년 10월 22일31 브리티시 유러피언 에어웨이즈 항공 142편 지상충돌 사고 1956년 12월 22일21 기너 산 C-47-DL 추락 사고 1956년 11월 24일34 LAI 항공 451편 추락 사고 1956년 8월 8일262 136 마르시넬 광산 사고 1956년 7월 25일51 안드레아 도리아호 침몰사고 1955년 3월 22일24 모르가노 광산 참사 1955년 2월 13일29 사베나 항공 503편 추락 사고 1954년 4월 8일21 남아프리카 항공 201편 공중분해 사고 1954년 1월 10일35 영국해외항공 781편 공중분해 사고 1952년 2월 17일31 헌팅 에어 트랜스포트 빅커스 614 추락 사고
- [ 194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 사건명 1949년 6월 23일33 KLM 록히드 L-749 추락 사고 1949년 5월 4일31 수페르가의 비극 1947년 11월 28일20 알프스 미 공군 C-47B 추락 사고 1947년 11월 18일21 산타마리아 딜 몬테 브리스톨 170 추락 사고 1947년 7월 16일48 알벵가 참사
[1] GIF파일이 아니라 CCTV영상 자체에 끊김이 있다.[2] 모델은 현대 i20.[3] 소방관이자 전직 축구선수로, 타고있던 폭스바겐 티구안 차량과 함께 30m 아래로 추락했으나 부상 하나 입지 않고 살아남았다#.[4] 주아글리아타 모녀는 다리 아래 위치한 폐기물 관리 건물 안에 있었다.[5] 밀라노 쪽은 A26를 이용하는 대안경로가 있어 큰 문제는 없었다.[6] 실버 브리지가 비슷한 이유로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