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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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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Motown Records
모타운 레코드
파일:Motown logo.svg
설립일 1958년 6월 7일
설립자 베리 골디
장르 다양
본사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모기업 유니버설 뮤직 그룹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공식)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클래식)

1. 개요2. 역사3. 음악 스타일4. 영향력5. 출신 뮤지션6. 빌보드 핫 100 탑 10 히트곡 목록7. 여담

[clearfix]

1. 개요

"나는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모타운 레코드를 세우는 꿈을 생각했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 부품들이 조립된 후 완성된 새 차로 공장 문을 나가듯이, 모타운 레코드의 문을 들어선 누군가가 비록 길 가던 꼬마 아이더라도 결국 문을 나갈 때는 스타가 되는 것이다."
— 모타운의 창립자, 베리 골디

모타운(영어: Motown)은 원래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 기반을 두었던 레코드 레이블이다. 탐라 레코드로서 1958년 6월 7일에 베리 골디 주니어에 의해 창립된, 회사는 1960년 4월 14일에 모타운 레코드 법인이 되었다. 단어 모터와 타운에서 비롯된 혼성어인 회사 이름은 또한 디트로이트의 별명이기도 하다. 훗날 이곳에서 음악 활동을 했었던 마이클 잭슨은 백인과 흑인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며 국제적인 슈퍼스타로 자리잡는다.[1]

모타운은 대중 음악의 인종적 결합에 기여했다. 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예술가들을 특징으로 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소유한 최초의 레코드 레이블이었다. 대표적으로는 슈프림즈, 잭슨 5, 포 탑스, 템테이션스, 마빈 게이, 스티비 원더, 메리 웰스, 라이오넬 리치, 코모도스 등이 소속돼 있었다. 2005년에 유니버셜 뮤직 엔터테인먼트에 인수되어 '유니버설 모타운 레코드'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2011년 다시 모타운 레코드로 바꾸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참고로 디트로이트에 기반을 두고 있어서인지 칼하트 WIP와 협업을 한 적이 있다.

2. 역사

50년대부터 알앤비 밴드에서 활동하던 베리 골디재즈 음반을 주로 취급하는 레코드 가게를 열지만, 금세 빚만 남기고 사업을 접어야 했다. 부채 상환을 위해 디트로이트의 제너럴 모터스의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며 작곡 활동을 병행하던 그는 58년 알앤비 가수 재키 윌슨에게 "Lonely Teardrops"라는 로큰롤 곡을 제공하게 되는데 이 곡이 1958년 밀리언셀러를 기록, 그의 음악 인생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된다. 뜻을 굳힌 그는 백인들에게 장사가 되는 알앤비를 시도해 보자는 생각으로 단돈 8백 달러로 레코드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2] 그는 자신의 회사명을 모타운이라 명명하게 되는데, 모타운이란 모터 타운 즉,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인 디트로이트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초기에는 Motown과 Tamla 두 개의 조그마한 산하 레이블을 운영했지만, 1959년부터 회사의 첫 아티스트로 있다가 1961년 "Shop Around"로 전국적인 히트를 거두며 모타운 시대의 시작을 알린 스모키 로빈슨 앤 더 미라클스와 Money (That's What I Want)로 모타운 최초 히트곡을 거둔 바렛 스트롱, 뒤이은 메리 웰스, 마빈 게이, 스티비 원더, 마샤 리브스 앤 더 벤델라스, 슈프림즈, 템테이션스, 포 탑스 등의 대박 행진으로 점차 대형 레이블로 성장해 간다. 소규모의 인디펜던트 레이블을 단 십 년 만에 명실 공히 대기업의 위치로 이끈 베리 고디의 탁월한 사업 수완은 히츠빌리 USA라 불리던 레이블 사옥의 효과적인 운용에서 잘 드러난다. 그곳은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구조였다. 1층에는 작곡가들이 포진하고 있었으며, 2층엔 펑크 브라더스라 명명된 백업 밴드가, 3층엔 안무가들이, 그리고 지하엔 레코딩 스튜디오와 휴게실이 있었다. 소속 가수들은 각 층을 오가며 하드 트레이닝을 했으며, 연주가와 작곡가들은 대량으로 악곡을 생산, 그것을 가장 잘 소화하는 가수에게 주는 식이었다. 따라서 모타운 레이블의 곡들은 가수가 다른 동일 곡이 여럿 존재한다.

모타운 사운드는 "The Sound of Young America"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정교하게 설계된 것으로서, '최대한 넓은 수용층'을 겨냥한 '양질의' 상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가수들은 사장의 방침에 따라, 기품 있는 의상을 입고 우아하게 행동해야 했으며(정확히 말해 백인 관점에서의 흑인다운 행동은 일절 금지였다), 에드 설리번 쇼 등 많은 TV 음악 프로그램에 활발하게 출연, 레이블 전반적으로 동시대의 비틀즈에 버금가는 인기를 얻었고, 대중음악의 흐름을 선도했다. [3]

모타운 사운드의 음악적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작곡 트리오 H-D-H와 연주자 집단 펑크 브라더스는 1965년에서 1972년 사이에 모타운 레이블에서 발표된 빌보드 탑 텐 히트곡 79곡 중 28곡을 썼다. 또한 넘버원에 랭크된 21곡 중 무려 12곡이 바로 그들의 작품이었다. H-D-H란 홀랜드, 다져, 홀랜드의 약자로 에디 홀랜드 브라이언 홀랜드의 홀랜드 형제와 라몬트 도지어 등 세 명의 멤버로 구성된 작곡가 팀이었다. 그중 에디 홀랜드가 작사를, 브라이언 홀랜드가 작곡을 주로 담당하고, 라몬트 도지어가 작사, 작곡, 양쪽에 모두 참가하는 형태로 곡을 완성했다. 이 세 명이 한 팀을 이루어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62년경의 일이었고, 바로 그 무렵부터 디트로이트의 작은 레이블에 불과했던 모타운은 기적의 대약진을 시작했다.

재즈에 일가견이 있던 피아니스트 알 반 다이크, 수많은 명 프레이즈를 만들어 낸 베이시스트 제임스 재머슨, 그리고 모타운 사운드 특유의 경쾌한 리듬을 만들어낸(모타운 비트 라고도 한다. 슈프림스의 〈You Can't Hurry Love〉가 대표적) 베니 벤자민, 〈My Girl〉의 저 유명한 기타 리프를 완성시킨 기타리스트 로버트 화이트를 중심으로 한 펑크 브라더스는 H-D-H가 가져온 노래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양념을 치며 1일 3곡이라는 엄청난 스피드로 무수한 히트를 쳤다.

펑크 브라더스는 히트곡 제조 공장의 생산 라인에서 가장 숙련된 근로자였고, 그들의 부재는 생산 라인의 마비를 초래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에게 모타운의 해외 공연 등에 동참하는 것은 꿈조차 꿀 수 없는 일이었으며, 언제나 녹음을 위해 컴컴한 스튜디오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그들에 대한 댓가는 몇 푼 안 되는 시급이 전부였다. 게다가 모타운이 로스앤젤레스로 본거지를 옮기며 그들은 결국 활동의 장마저도 빼앗겨 버리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모타운의 설립자 베리 골디의 1인 독재 체제하에서 H-D-H에게 주어진 보상 역시 그들의 공로에 비하면 한없이 미미한 것이었다. 과도한 업무와 부당한 대우에 화가 날대로 난 H-D-H는 1968년 10만 달러의 보너스를 주겠다는 회유에도 불구, 모타운의 문을 박차고 나가 버린다. 우여곡절 끝에 모타운으로부터 독립한 그들은 곧장 자신들의 레이블을 설립한다. 그것은 인빅터스와 핫 왁스라는 두 개의 레이블로써, 거기에서 곧장 자신들의 작품을 제작, 캐피틀 레코드와 붓다 레코드를 통해 발매하기에 이른다.

그들이 그렇게 자신들의 레이블을 세우는 동안, 모타운에서는 본사를 디트로이트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이전한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한다. H-D-H라는 기둥을 잃은 모타운은 자신의 뿌리인 동시에 정체성이기도 했던 지역의 흑인 커뮤니티와도 완전히 결별하며 느닷없는 노선 변경을 감행한 것이다.

1972년 로스앤젤레스로 본거지를 옮긴 모타운은 예전의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잭슨 파이브, 다이애나 로스, 스티비 원더, 마빈 게이 같은 간판급 스타들은 여전히 레이블에 남아 있었지만[4] 갬블 앤 허프가 설립한 필라델피아 인터내셔널 레코드라는 경쟁자가 나타났고 알 그린, 로버타 플랙과 같은 새로운 소울 음악 스타들과, 아이즐리 브라더스, WarFunk 밴드들이 전성기를 맞게 되어 씬에 변화가 일어났고, 레이블의 최전성기였던 1960년대에 비해 미국 대중음악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줄어들게 되었다. 그나마 기존의 모타운 소속 스타들이 1970년대 중후반에 커리어적으로 최전성기를 맞게 되면서 회사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 다이애나 로스는 1973년부터 1980년까지 Touch Me in the Morning, Love Hangover, Theme from Mahogany (Do You Know Where You're Going To), Upside Down 등의 대히트곡들을 발매했고 스티비 원더는 Talking Book, Innervisions, Songs in the Key of Life 등 상업적으로, 평론적으로 모두 성공을 거둔 앨범들과 수많은 히트곡들을 만들었다. 특히 Songs in the Key of Life는 빌보드 200에서 14주 비연속 1위, 1977년 빌보드 200 연말 차트 2위에 오르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마빈 게이 역시 Let's Get It On으로 1973년에, Got to Give It Up으로 1977년에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템테이션스, 에디 켄드릭스, 코모도스, 셀마 휴스턴 등의 소속 아티스트들도 히트곡들을 내놓았다.

1980년대가 되자 지독한 경영난에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이따금 코모도스나 드바지, 라이오넬 리치, 릭 제임스 같은 재능 있는 신예들과 스모키 로빈슨, 스티비 원더와 같은 기존 모타운 스타들이 레이블을 위기에서 구하는 듯했으나 결국 거기까지였다. 80년대에 접어들자 음악 산업은 점점 다국적 기업에[5] 의해 주도되기 시작하며 경영은 날로 어려워져 갔다. 1988년 모타운은 결국 소규모 독립 레이블의 처지로 MCA에 매각되어 버리고 만다.

MCA에 매각된 이후에도 모타운의 이름 자체는 유지되었는데, 매각 이후의 모타운을 대표하는 아티스트가 바로 보이즈 투 멘이다.

3. 음악 스타일

나는 백인, 흑인, 유대인, 이방인들을 위한 노래를 원했다. 나는 모두가 내 음악을 즐기길 원했다.
베리 골디 #

R&B소울, Funk, 디스코 등이 주력 장르였다. 기본적인 모토는 흑인과 백인 모두에게 먹히는 흑인 음악. R&B의 형식 위에 클래식이나 스탠더드 팝 같은 백인 음악의 화성을 사용한다거나 하는 시도를 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쉽고 친숙하게 다가올 음악을 연구했었다. 이에 연장선상으로 특정 코드나 멜로디 등을 반복하는 후크송의 기법을 선호하기도 했다.

4. 영향력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흑인 소유 사업 중 하나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독립 음반 회사 중 하나.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 #
1959년 1월 12일, 미국과 그 너머의 세계를 변화시킨 음악 센세이션이 시작되었다. (중략) 모타운 레코드는 진정한 아이콘적인 지위를 확고히 할 독립 제국으로 잭슨 파이브, 다이애나 로스슈프림즈, 스티비 원더, 스모키 로빈슨, 마빈 게이, 마샤 앤 반델라스를 포함한 전설들을 소개했다. (중략)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모타운의 클래식 카탈로그들은 어디에나 있고 영향력 있다. 걸그룹에서 히트 싱어송라이터에 이르기까지 현대 소울과 팝의 성공을 위한 청사진을 형성하고, 수많은 힙합과 댄스 앤섬이 샘플링하고 모든 장르의 활동에 의해 커버된다.
BBC, 모타운: 미국을 바꾼 음악

모타운은 전세계 대중음악의 역사를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전설적인 레이블이다.

1964년 시작된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시작으로 히피 문화의 주축이 된 싸이키델릭 락, 1970년대 히피 문화가 끝나고 전성기를 누리기 시작한 하드 락 음악 등 1960~70년대의 락 음악 전성 시대에 대항해 흑인 음악 전성 시대를 불어일으켰다. 최전성기인 1960년대에는 빌보드 핫 100 탑텐곡만 79곡을 배출했다. 1960년대 미국 음악은 말 그대로 모타운을 주축으로 한 흑인 음악과 영국 밴드와 히피 밴드를 주축으로 한 락 음악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또한 70년대에 펑크(Funk) 붐 등을 주도한 집단 중 하나이기도 하다. 슈프림즈는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비틀즈만큼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했다.[6]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1960~70년대의 발매된 R&B/소울 장르의 히트곡과 명반들은 대부분 이곳을 거쳐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수많은 히트작을 만들었다. 게다가 R&B와 소울을 넘어서 Funk와 디스코를 비롯한 전반적인 미국 흑인 음악 장르들이 모타운을 거쳐서 진화되고 세부 장르화되어 파생됐다고 평한다. 마빈 게이의 노력 덕분에 사회 문제를 다룬 음악을 시도해 성공하는 쾌거를 누리기도 했다. 혹자는 '현대 흑인 대중음악 뮤지션 중에서 이 레이블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라고 하기도 했다. 그만큼 모타운은 오늘날의 대중 음악과 흑인 음악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음악 외적으로도 오늘날의 음악 산업 시스템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 레이블 출신인 마이클 잭슨이 베리 골디의 프로듀싱 방식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으며, 나얼 역시 이 레이블에 많은 애착을 드러내기도 한다. 박진영은 JYP를 한국의 모타운으로 만들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모타운은 YG엔터테인먼트, JYP, SM엔터테인먼트 등 현대의 K-POP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회사 소속의 전속 작곡가 집단이 트렌드를 분석해 팔릴만한 곡을 만들고, 전속 밴드가 반주를 녹음하면, 체계적인 하드 트레이닝을 받은 전속 가수들이 파트를 나눠서 부르는 방식은 바로 모타운이 처음 선보인 것이다. 모타운은 당시 사무실 뿐만 아니라 음반 도서관이나 트레이닝 룸까지 회사에 마련하기도 하는 등 획기적인 시도들을 많이 했다.

5. 출신 뮤지션

6. 빌보드 핫 100 탑 10 히트곡 목록

7. 여담



[1] 마이클 잭슨은 잭슨 파이브 때는 모타운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1974년부터 모타운과 갈등을 겪고 1975년 잭슨스로 명칭이 변경된 후부터 CBS의 (현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의 Epic Records에 소속되어 있었다.[2] 이 돈은 자신의 동네 친구이자 훗날 모타운의 첫 스타 그룹이었던 Miracles의 리더 스모키 로빈슨이 빌려준 것이었다.[3] 당시 브리티시 인베이전에 점령당하고 있던 미국 음악계의 자존심을 세워 준 게 바로 모타운이다. 1964년 미국 음악계가 비틀즈에 의해 완전 침공당했던 시절 비틀즈의 유일한 대항마는 슈프림즈였다. 1964년 초중반 비틀즈의 1위 행진 및 차트 완전 정복을 슈프림즈가 막으면서 (그러니까 슈프림즈의 1위로 비틀즈의 1위가 저지되었다.) 슈프림즈는 미국 음악의 자존심을 되살려 줬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실제로 1960년대 비틀즈가 빌보드 1위곡을 20개 기록하는 동안 슈프림즈 역시 12개나 기록했다. 전성기 역시 비틀즈는 (1964~1970년) 슈프림즈 (1964~1970년)으로 같다! 참고로 빌보드 1위곡이 10개가 넘는 아티스트는 단 10명밖에 되지 않는다. 20개의 비틀즈, 19개의 머라이어 캐리, 18개의 엘비스 프레슬리, 14개의 리아나, 13개의 마이클 잭슨, 12개의 마돈나슈프림즈, 11개의 휘트니 휴스턴, 10개의 자넷 잭슨스티비 원더이다.[4] 잭슨 파이브는 1976년, 다이애나 로스는 1981년, 마빈 게이는 1982년에 모타운을 떠났다. 스티비 원더는 2000년대까지도 모타운에 머물러 있었다.[5] 소니, 유니버셜 등.[6] 둘 다 전성기가 1964년~1970년이고, 그 기간동안 비틀즈는 빌보드 핫 100 1위 20개, 슈프림즈는 빌보드 핫 100 1위 12개를 기록하였다.[7] 모타운 게임즈(Motown Games)라고도 함[8] 1992년 개봉한 동명의 애니메이션 영화가 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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