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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9-09-28 18:45:30

미셰우 테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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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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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el Miguel Elias Temer Lulia, 1940.9.23 ~

브라질의 정치인으로 24대 부통령이자 37대 대통령이다. 민주화가 확립된 1988년 체제 이후 두 번째로 대통령직을 승계한 부통령이기도 하다.[1][2] 부패 혐의로 기소되었음에도 같이 뇌물 받은 의원 덕택에 여전히 살아남은 오뚝이

1. 민주운동당의 당수로서 부통령이 되기까지2. 지우마와의 갈등과 대통령 직위 승계3. 대통령으로서의 업무와 논란4. 퇴임 이후

1. 민주운동당의 당수로서 부통령이 되기까지

포괄정당을 자처하는 중도 성향의 민주운동당(PMDB) 소속이며, 남미에서 아르헨티나의 카를로스 메넴과 더불어 아랍계 출신으로써(정확하게는 레바논 아랍인의 후손이다) 정계 거물로 성장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래서 종교도 아랍의 가톨릭 종파인 마론파 가톨릭[3]이다. 브라질이 민주화되기 직전에 정계에 진출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1995년에 민주운동당의 당수로 선출됨으로 정계 거물이 되었으며 1997년부터 2001년까지 하원의장을 역임하게 되었다. 이 시절에 우파 사회민주당과 연정하면서 같이 우파적인 스탠스를 걷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룰라가 아닌 우파 후보인 호세 세라를 밀어주었다.

룰라는 4번째 출마 도전 과정에서 여러 우파와 중도정당들을 포섭하기는 했어도 테메르의 민주운동당을 협력대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브라질 선거제도의 특성상 대선에서 압승했다고 해도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서는 연립정권 구성이 필수였기 때문에 결국에는 협상을 거쳐서 연립 정권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연정내에서 우파적인 스탠스를 유지하면서도 룰라가 국정운영을 잘한 덕택에 같이 승승장구하였다. 2006년 대선을 앞두고 대형 비리사건이 폭로되며 당내에서 연립정권에서 탈퇴하자는 의견이 분출되기도 했지만 어찌어찌 연정을 유지하였으며 임기말에 지지율 80%대를 넘나드는 룰라 정권의 인기를 등에 업고 민주운동당도 선거에서 지속적으로 세를 넓혀갔기에 괜찮은 선택이 되었다.

민주운동당은 연정 내에서도 노동자당(PT) 다음으로 세력이 컸기 때문에 보은차원에서 지우마 호세프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하게 되었고,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우마 호셰프의 임기 초까지만 해도 호세프와 관계가 그리 나쁘기는 커녕 오히려 상부상조하는 관계에 가까웠다.

2. 지우마와의 갈등과 대통령 직위 승계

그러나 월드컵을 앞둔 시기부터 부동산 투기열풍으로 빈민촌이 강제철거 당하는 일이 대거 발생했다. 더구나 월드컵과 올림픽을 기회삼아 한 몫 챙길려는 건설회사들이 정치인들에게 대거 로비를 하고 정치인들도 뒷돈을 챙기려고 경기장 건설 예산을 의도적으로 과다하게 책정하여 사회복지부문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4] 때문에 월드컵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는 등의 일로 호셰프 정권의 지지율이 급속히 떨어졌고, 월드컵에서도 브라질이 4강전에서 독일에게 7-1로 참패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지며 재선가도에 먹구름이 끼었다.

그러나 테메르는 2차 선거에서 사회당 시우바가 뒷심부족과 토론회에서의 부진으로 탈락하고 우파 사회민주당의 네베스가 2차 선거에 진출한 덕택에 지우마 호세프와 함께 겨우 재선에 성공을 하기는 했다. [5] 막상 재선에 성공한 뒤로 2014년 말부터 브라질 검찰 주도로 국영석유회사와 주요 건설회사들을 대상으로 부패수사가 진행되었는데 지우마 호셰프는 부패수사 자체를 막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 때를 시점으로 해서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우마 호셰프의 인기가 유가폭락으로 인한 경기침체와 부패수사의 여파로 연정내의 비리가 드러나며 바닥을 기자, 테메르는 태도를 바꾸며 사회민주당 등 우파야당들과 연합하며 지우마 호셰프의 탄핵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고, 호세프가 탄핵됨에 따라 대통령직을 승계하여 2018년 12월 31일까지 재직하게 된다.

3. 대통령으로서의 업무와 논란

그러나 막상 대통령 대행이 된 후에는 내각을 백인 남성들로만 채운데다 극우 성향의 인물을 임명하는 등 급격한 우향우를 강행했다. 소속된 당처럼 중도가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미셰우 테메르는 대통령직을 승계하여 취임하였기에 '이론적으로는' 2022년 3선까지 도전할 수는 있다. 그러나 성공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부패 인사들을 대놓고 내각에 기용한데다 그 자신도 부패 혐의에 연관되어 있는 사실이 드러났고, 경제난을 해결하지 못하며[6] 노동자당 정권 시절부터 시행되어 왔던 복지정책 등의 개혁안을 후퇴시킨 탓에 브라질 내에서 평가는 최악이다. 현재 베네수엘라니콜라스 마두로와 더불어 지지율 면에서나 평가도에서 있어서 중남미 전체에서 최악을 달린다.[7]

2017년 5월에는 뇌물 수수 혐의로 복역 중인 에두아르두 쿠냐 전 하원의장에게 입막음을 위해 금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호세프 탄핵 이후 1년 여 만에 다시 탄핵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 그리고 선거 관련 소송도 같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자칫하면 파면될 위기에 처했다. 다행히 브라질 선거재판소에서 4:3으로 부결되며 겨우 위기를 넘겼지만, 브라질 검찰이 미셰우 테메르를 기소하겠다고 밝히면서 안 그래도 없었던 인기는 더더욱 추락했다.

더군다나 브라질군과 경찰 충원이 전면적으로 취소된데다가 물가 상승률은 낮지만 실업률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국공립학교들이 잇따라 전기나 가스 요금을 연체하고, 빈민층들에게 필요한 복지예산도 줄어드는 등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등 상황이 너무 좋지 않고 이 와중에 재정 적자를 줄이겠다고 휘발유값을 대폭 올리는 조치를 취하면서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자산값 상승과 비리수사 방해, 노동법 통과 입법 등의 요인으로 그간 테메르를 지지해오던 재계로부터도 비토를 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2017년 8월 들어서 검찰 수사 관련 표결이 이뤄졌는데 이 표결에서도 찬성표가 반대표를 압도하지는 못했다. 물론 국민들 반응은 반대표를 던지면 재선은 꿈도 꿀 수 없게 된다는 여론에도 기꺼이 검찰 수사 표결에서 반대표를 내던진 의원들을 향해서 분노하거나 스스로 재선을 포기하면서까지 쓰레기임을 인증함으로써 자폭했다며 풍자하는 반응이 대세이다. 대법원에서도 미셰우 테메르에게 수사를 미루는 것이 정당하다고 판결하기까지 하면서 이게 뭐 베네수엘라냐라는 식의 반응도 나오는 중이고 우익 정치인들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대한 판결을 내리는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 나날이 추락하고 있다. 2017년 9월 기준으로 지지율은 더욱 더 떨어져서 3%대로 추락했으며 지지율이 하도 바닥이다 보니 더 떨어질 것도 없어 보인다는 식의 조롱도 듣고 있다.

결국 여론이 너무 나빠 2018년 대선에 출마한다 해도 탈락이 확실하기 때문에 재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본인도 출마하지 않는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후로도 경제 사정은 생각되었다고 얘기하고는 있지만 이는 지표상 경제에만 해당될 뿐 실물경기는 지속해서 침체 중인데다가 치안이나 부패 문제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아 지지율은 말 그대로 바닥을 헤메고 있다. 2017년 하반기부터 2018년에 들어서면서 지지율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지만 여전히 10%를 밑도는 수준으로 그냥 땅밑에서 밑바닥으로 약간 올라온 수준에 불과하다.

결국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이 3%까지 떨어졌고, 부정적 평가는 82%에 달했다. # 이는 브라질에서 군사정권 이후 가장 불명예라고 한다.

대선에서는 아예 출마도 하지 못했고, 자신이 속한 PMDB의 엔히키 메이레리스 후보는 1.2%라는 군소 정당(...)급의 득표율을 보였다.[8]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우파유권자들의 표를 죄다 흡수하며 1위로 올라섰고, 이는 테메르에게 최악의 불명예가 되었다. PMDB도 참패를 면치 못했는데 하원에서 의석이 거의 반토막이 나면서 원내 4당으로 밀려났으며 상원 선거에서도 패배를 면치 못했다. 그나마 경제정책 자체는 보우소나루가 계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는 점이 위안(?)이다.[9]

4. 퇴임 이후

3개월 만에 원전 건설공사 수주 알선 대가로 돈 받은 혐의로 체포되었다.# 하지만 룰라와는 다르게 단 며칠만에 석방되면서 테메르의 감옥행을 기대했던 여론이 실망했다. 다만 그 대신에 자산은 압류처리 되었기는 했다.

하지만 5월에 다시 수감되었다.#
[1] 사실 민주화 정권의 첫 대통령인 호세 사르네이도 원래 부통령직에 오를 예정이었다가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그러나 이 경우는 '대통령 승계 예정자'인 탕크레두 네베스가 취임 전에 사망하여 '부통령 승계 예정자'가 대통령이 된 것이므로, 호세 사르네이는 엄밀히 말하면 정식 부통령이었던 적은 없다. 때문에 최초로 대통령직을 승계한 부통령은 이타마르 프랑쿠로 간주한다.[2] 이건 약간 논란이 있다. 네베스가 사망한 건 임기가 시작된 지 한달여가 지난 다음이었다. 그러나 취임식 전에 쓰러져서 취임 선서를 하지 못해 정식 대통령인지 논란이 생기는 것.[3] 다만, 마론파는 항목에서도 알 수 있듯 전례만 다르지 별개의 그리스도교 종파가 아니므로 테메르 자신도 로마 가톨릭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4] 사건의 진상이 제대로 드러나게 된것은 2017년도의 일이다. 그렇지만 진상이 제대로 드러나기 이전부터 경기장 지을예산이 상상이상으로 과다했기 때문에 건설회사들과 정치인들이 월드컵과 올림픽을 기회삼아 한 몫 챙길려고 하는거 아니냐는 소문이 많이 돌았다.[5] 네베스는 그래도 48.9%라는 만만치 않은 득표율을 올렸다. 그래서 대선에서 낙선한 이후로도 유력 대권주자로 꼽혔지만, 검찰수사 과정에서 그 역시 부패한 인사라는것이 드러나게 되며 대권주자 대열에서 사실상 탈락했다.[6] 물가 상승률은 외부 자본 유입으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실업률이 사상 최고 수준을 달리는데다 복지예산 삭감으로 빈곤율이 늘었고, 재정난이 해결되지 않았다.[7] 사실 지지율로만 본다면 니콜라스 마두로의 3분의 1에서 4분의 1 수준이다. http://rpp.pe/mundo/latinoamerica/infografia-pulso-peru-asi-esta-la-aprobacion-de-los-presidentes-de-latinoamerica-noticia-1069713 이유는 니콜라스 마두로는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여전히 극빈층에게 어떻게든 지원을 유지하는데 애쓰는데 반해서 물론 자기를 지지할 리 없는 중산층을 그대로 버려서 문제지만 미세우 테메르는 그런 지지층조차 없기 때문. 참고로 해당 조사 모음에서 지지율 상위권에 드는 대통령은 에콰도르의 레닌 모레노와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다.[8] 그나마 성향상 가까운 브라질 사회민주당 후보도 보우소나루에게 표를 빼앗기며 5%에도 못 미치는 처참한 성적표를 보였다.[9] 사실 미셰우 테메르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 자체는 극악이었지만 보우소나루가 가짜 뉴스 살포 전략을 잘 활용해서 노동자당을 뒤엎은 덕택에 그런 부분이 가려질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