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의주군 미송리에서 발견된 토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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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美松里式土器청동기 시대 한반도 북부 지방에서 사용되던 민무늬 토기의 일종. 1959년 평안북도 의주군 미송리[1]에서 발견된 새로운 형태의 토기라서 '미송리식 토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북한 학계에서는 '미송리형 단지'라고 부른다.
기원전 6~5세기경 청천강 유역에 살던 주민들이 사용한 것으로 추측되며, 비단 청천강 주변 뿐 만 아니라 요령 지역에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 현재까지 평안북도 용천군 신암리, 압록강 상류의 자강도 중강군 장성리 및 토성리, 청천강 유역의 세죽리 및 구룡리, 대동강·재령강 유역에서도 발견되고 있고, 심지어 요동 지방과 요서에서도 출토된다.
2. 내용
위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미송리식 토기는 밑바닥이 평평하고 몸은 뚱뚱하고 목 부분이 V자로 들어가 있으며 손잡이가 2개 달린 모양이다.비파형 동검과 함께 고조선의 영역을 가늠해주는 유물 중 하나라고 교과서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고대 국가가 영역 국가도 아닐 뿐더러) 단순히 미송리식 토기의 '영역'은 동아시아 전역에 광범위하게 분포하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 이런 상고시대 역사는 사서가 없어서 오직 고고학에만 의존하는데, 고고학에서는 토기만이 아니라 사용한 도구나 집터 등 많은 요소를 복합해서 문화 유형을 구분한다. 막말로 선사시대 부족들도 서로 교류해서 옆 동네 토기 보고 따라했거나 사서 쓸 수도 있다는 거다. 비파형 동검도 마찬가지.
그래서 고고학계에서는 미송리 토기만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표지 유물)은 요동 일대의 많은 문화권 중 하나인 이도하자 문화(혹은 신성자 문화) 정도만으로 보고 있다.
다만 아예 고조선이랑 관련이 없는 건 아니고, 근래 학설에서 고조선으로 많이 비정하는 십이대영자 문화 정가와자 유형은 이도하자 문화와 영역이 겹치며, 유물들이 상호작용해서 이도하자 문화가 분포하던 지역이 점점 고조선의 표지 유물들로 전환되는 경향을 보인다. 요서에서 시작된 고조선인들은 자신들의 고유토기인 이중구연토기와 점토대토기를 철기시대까지 계속 만들어서 원삼국시대에 한반도로 남하해서 유물을 계속 남긴다. 이도하자 문화의 부족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사서에 기록으로 남아 있는 부족이기는 한지는 오리무중[2]이나 하여간 미송리식 토기를 고조선이 발명한 고유의 유물이라고 하기보다는 고조선과 밀접한 관계에 있던 부족 중 하나가 많이 사용하던 물건이라고 볼 수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