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패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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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fff><colcolor=#000000> 미야시타 타카히로 宮下貴裕 | Takahiro Miyashita | |
TAKAHIROMIYASHITA TheSoloist. | |
출생 | 1973년 2월 5일 ([age(1973-12-31)]세) |
일본 도쿄도 분쿄구 혼고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패션 디자이너, 디렉터 |
링크 | 개인 TheSoloist. TheSoloi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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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야시타 타카히로는 일본의 패션 디자이너이다. 1997년부터 2009년까지 ’NUMBER (N)INE‘을 전개했었고 2010년부터는 ’TAKAHIROMIYASHITA TheSoloist.‘ 를 이끌고 있다.2. 생애
1973년 도쿄의 혼고에서 태어난 미야시타 타카히로는 작곡가인 아버지와 콜라주 아티스트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나 음악을 쉬이 접하며 자랐다. 비틀즈를 즐겨 들었으며 특히 존 레논을 매우 좋아했다고. 인터뷰에선 넉넉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어릴적 살던 곳 가까이에 긴자 거리가 있어 옷과 패션을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었고,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가 옷을 사주실 때면 직접 고르게 했다며, 그런 배경에서 자신의 감각이 길러진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학창시절엔 음악과 옷에 빠져 비행[1]을 일삼기 일쑤였고, 결국 고등학교를 자퇴하게 된다.이후 이런저런 알바 생활을 거쳐 한 출판사에서 일하게 되고, 이 즈음에 큰 인기를 끈 너바나 에 빠져 커트 코베인의 팬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하던 출판사 근처에 시미즈 케이조와 스즈키 타이키의 네펜데스 매장이 생기게 되는데, 미국 옷을 들여오던 매장의 매력에 빠져 자주 드나들며 시미즈 케이조와의 인연을 쌓게 된다. 그 후 뉴욕에서 활동하던 스즈키 타이키[2]의 도움으로 동경하던 미국에 다녀온 타카히로는 네펜데스 매장에서 일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주체적인 활동을 원했던 그는 네펜데스에서 나오게 되고, 미야모토 마사루라는 사업가를 만나 그의 가게[3]에서 자신의 옷을 만들고 판매하게 된다. 옷들이 잘 팔리게 되자, 1997년, 23세의 나이에 NUMBER (N)INE, 넘버 나인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게 된다.
3. NUMBER (N)INE
1997년 세워진 넘버 나인은 도쿄 에비스에 매장을 연다. 당시 매장은 이런 분위기였다.
'넘버 나인' 이라는 브랜드의 이름은 비틀즈의 Revolution 9 이라는 곡의 가사에서 따왔고,[4], 자신이 몸담았던 네펜데스('N'epenthes)의 이니셜을 따 'NINE'의 첫글자 ‘N'에 괄호를 붙여 나타냈다고 한다. 넘버 나인은 런웨이와 제품 발매를 거듭하며 큰 인기를 끌게 된다.
음악, 특히 미야시타가 가장 사랑하고 뮤즈로써 존경했던 커트 코베인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락 음악과 그런지 패션, 웨스턴 스타일, 밀리터리 스타일까지 다양한 장르 의복들을 두루 선보이며 네펜데스를 비롯해 그동안의 다양한 영감과 옷에 대한 지식을 그만의 스타일로 나타낸 넘버나인은 성공적이었다. 미야시타가 이전 세대의 디자이너들과 자신의 차이점은 음악과 유스 컬쳐, 반항적인 태도에서 영감을 받는 점이라고 말한 것처럼 음악 그 자체를 옷에 녹여냈는데, 목과 소매 부분 마감에는 음표 무늬가 들어간 천으로 마감하고, 각종 밴드의 로고를 오마주 한 티셔츠를 선보였다. 또 욕설이 큼지막하게 적힌 티셔츠를 발매하는 등, 반항적인 유스 컬쳐의 정신도 드러났다.
또한 비틀즈와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처럼 그에게 있어서 가장 큰 ‘뮤즈’ 가 되었던 이들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과 영감을 여과없이 나타낸 넘버 나인은 스트리트 패션에서 하이 패션으로 나아갔다.
2002년부터 파리 런웨이에 서고, 상업적으로도 큰 액수를 벌며 성공한 브랜드는 점점 커져갔다. 하지만 이에 따라 넘버 나인을 같이 세운 미야모토 마사루와의 지분 갈등도 생기게 되고, '넘버 나인 스럽다' 와 같이 예측가능한 브랜드가 되는 것도 원치 않았으며, 결정적으로 커가는 브랜드에 투자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늘면서 타카히로는 정말 자신이 원하는 신선한 디자인을 할 수 없음을 느끼며 2009년 넘버 나인에서 나오게 된다. 미야시타가 없는 넘버 나인은 그가 남긴 디자인을 되풀이 할 뿐인, 그저 그런 브랜드가 되었다.
4. Levi's Lefty Jean by Takahiro Kuraishi
2009년 가을/겨울 패션쇼를 마지막으로 넘버 나인에서 나오게 된 그는 잠시동안의 휴식기를 갖는다. 이때 카즈키 쿠라이시와 일본 리바이스에서 ‘levi's lefty jeans by takahiro kuraishi‘ 라는 라인을 잠시 진행한다. 'Lefty’ 에서 알 수 있듯 왼손잡이용 의복을 컨셉으로, 청바지가 ‘반항’ 의 아이콘이었던 점에서 비롯해 기존의 오른손잡이 기준으로 만들어진 의복의 안티테제로서 라인을 전개했고, 리바이스의 방대한 아카이브 속 다양한 부자재나 디테일들을 다시 가져와 흥미로운 디테일의 옷들을 선보였다.5. TAKAHIROMIYASHITA TheSoloist.
이후에 어떻게 활동을 이어 나가야 할지 고민하던 그에게, 동료 디자이너인 타카하시 준은 브랜드는 밴드와 같은 것, 모이고 또 헤어질수도 있는 것이라는 말을 해 주었고, 타카히로는 밴드가 아닌 솔로로서 대중 앞에 나서게 된다. 이전의 넘버 나인과는 다르게,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내걸고 새 브랜드인 "TAKAHIROMIYASHITA TheSoloist."를 2010년 시작하게 된다.
넘버 나인이 자본이 유입되고 한 가지 색채가 짙어지며 점차 지루해진 것과는 달리, 솔로이스트는 어떠한 제약도 없이 미야시타 본인이 표현하고 싶은 바를 표현할 수 있는 장이 되었다. 솔로이스트로 등장한 그는 다시금 주목받는 디자이너가 되었고, 사카이, 언더커버에 이어 유럽 런웨이에 서는 브랜드로써 자리매김한다. 절제된 색감과 강조되는 포인트, 기존 일본 브랜드들을 잇는 아방가르드함, 웨스턴 디테일과 같은 그의 취향이 듬뿍 들어간 점까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6. 여담
가끔 올라오는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는 주로 자신이 듣는 음악을 애플 뮤직 화면을 캡쳐해 올린다.잘 알려진 프로필 사진 몇 개를 빼놓고는 그의 사진을 찾기 쉽지 않다.
왼쪽 눈 아래에 눈물 문신이 있다. 이외에도 양 발목과 팔에 문신이 여러 개 있다.
솔로이스트의 제품들에서 종종 보이는 “OSCAR"는 솔로이스트가 시작되던 해에 태어난 동료 디자이너의 아들 오스카 시라이시를 가리킨다. 오스카의 낙서나 글씨들을 옷에 집어넣는 경우가 많다.
[1] 음주를 하거나 거리에서 싸움을 벌이는 등 비행을 벌였다고. 다만 음악과 옷에는 진심이었는지, 이 시기 많은 것들을 몸소 배웠다고 말한다.[2] 스즈키 타이키는 이 시기부터 뉴욕에서 지낸 것으로 보인다. 이후 뉴욕에서 엔지니어드 가먼츠를 시작했다.[3] 빈티지 의류를 판매하는 샵이었다고 한다[4] 곡 중간중간에 연이어 '넘버 나인" 이라고 읊조린다.https://www.youtube.com/watch?v=SNdcFPjGsm8&t=285s&ab_channel=TheBeatles-Top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