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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25 18:13:08

미하엘 슈마허/논란 및 사건사고

1. 개요2. 논란
2.1. 비매너 플레이2.2. 독식 플레이2.3. 고의 충돌 의혹
2.3.1. 옹호론2.3.2. 비판론
3. 사건사고
3.1. 스키 사고3.2. 가짜 인터뷰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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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하엘 슈마허의 논란 및 사건사고를 정리한 문서다.

2. 논란

2.1. 비매너 플레이



다른 레이서들과 배틀이 붙을 때 굉장히 공격적이고, 2번의 고의적인 충돌 의혹과 수차례의 규정상의 허점 이용, 비매너 플레이가 있어 90년대까지는 실력은 있으나 인성면에서는 농담으로도 좋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2.2. 독식 플레이

최전성기에는 팀 동료인 루벤스 바리첼로를 팀오더로 지나치게 희생시켜 가며 혼자 독식했다는 비판도 있다. 물론 팀오더는 포뮬러 1에서 많이 사용되는 전략의 수단이며 페라리는 특히 팀오더를 많이 내리는 편이긴 하나, 이 시기의 페라리는 도가 너무 지나쳤다는 이야기가 많은 편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팀 오더 때문에 '바리첼로로부터' 슈마허가 득을 본 경기는 2001년, 2002년 오스트리아 GP 뿐이다. 하지만 두 해 모두 페라리 차량이 타 팀을 압도했기 때문에, 두 경기 모두 챔피언십 타이틀 경쟁엔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그런데도 왜 굳이 시즌 중반에 팀오더를 내렸냐는 의문이 들 수 있는데, 한 경기라도 빨리 챔피언 타이틀 획득을 확정지으려는 페라리의 절박함 때문이라 보는게 맞다(00년대 초반 페라리-슈마허의 르네상스를 생각하면 잘 와닿지 않겠지만, 79년 조디 쉑터 이후 페라리는 21년 동안 챔피언을 배출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드라이버 챔피언 배출에 대한 열망이 굉장히 강했었다). 오히려 바리첼로보다는 96~99년의 팀 메이트였던 에디 어바인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이득을 얻은 경우가 더 많은데, 대표적인 경기가 97년 일본 GP와 98년 오스트리아 GP이다. 97년 일본 GP에서는, 이미 프랙티스 기간에 당해 경기 포인트를 얻을 수 없다는 처분을 받은 빌르너브가 폴 포지션을 차지한 것을 기회로 경기 초반에 의도적으로 스피드를 낮췄는데, 연료를 적게 넣은 어바인이 선두를 꿰차면서 한동안 경기를 리드하다 슈마허에게 선두 자리를 넘겨줬었다. 98년 오스트리아 GP에서는, 슈마허가 선두인 하키넨과 선두 다툼을 하다 마지막 코너에서 실수로 그래블 트랩에 빠지면서 프론트 윙을 날려먹었고, 하필 프론트 윙을 날려먹은 지점이 피트 들어가는 지점을 넘어선 곳이라 1바퀴를 프론트 윙 없이 달려야만 해서 순위가 엄청 하락했는데, 경기 막판에 4위까지 올라가자 3위로 달리던 어바인이 의도적으로 속도를 낮추어 슈마허에게 3위 자리를 넘겨주었다.

반대로 99년 말레이시아 그랑프리에서는 오히려 슈마허가 어바인의 챔피언쉽 우승을 위해 퀄리파잉에서 어바인보다 1초나 빠른 랩을 기록하고도 어바인에게 1위 자리를 비켜준 경우도 있었다.

팀 내 넘버 1 드라이버였던 슈마허에게 진짜로 바리첼로가 피해를 입었다고 하려면 이 정도로 대놓고 순위를 양보한 사례가 있어야 하는데, 페라리 르네상스 시절인 00~04년을 보면, 01년에는 오히려 시즌 후반에 바리첼로에게 1경기라도 우승을 시켜주려고 대놓고 밀어주기도 했었으며, 02~04년에는 바리첼로의 스타일도 고려하여 머신을 만들면서 간간히 바리첼로도 폴을 따내고 우승도 했었고, '순위 양보 사례'는 위에 언급한 오스트리아 GP밖에 없다. 이런 것을 감안할 때, 팀 오더에 대해 불평을 크게 토로하지 않았던 어바인에 비하면 바리첼로의 불만 표시는 조금 크지 않을수 없다.

2.3. 고의 충돌 의혹

슈마허의 고의 충돌 의혹은 총 2번 생겼는데, 첫 번째는 1994년 최종전 애들레이드 시가지 서킷에서 열린 호주 GP의 당시 챔피언십 경쟁자였던 데이먼 힐과의 충돌이다.

사고가 일어나기 직전 슈마허는 컨트롤을 잃으며 코스아웃 했고, 슈마허와 차이가 갑자기 줄어든 힐은 다음 코너에서 추월을 시도하였으나, 코스아웃에서 복귀한 슈마허가 실속한 차로 블록, 제동 공간이 충분치 않아 충돌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슈마허는 힐보다 1포인트를 앞서는 상황이었고, 둘 다 리타이어를 한다면 슈마허가 챔피언이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슈마허가 고의로 충돌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일었다. 특히 힐이 피트인 후 시트에서 내려 리타이어했을 때 만세를 부르던 슈마허의 반응은 안티들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본인의 첫번째 월드 챔피언이 확정되는 순간이라 기쁜건 당연하겠지만 본인의 무리한 블록으로 충돌하여 리타이어한 상대에 대한 반응으로써는... 물론 슈마허의 팬들은 베네통 포드 B194[1]로 94시즌에서 가장 빠른 차인 윌리엄스 르노 FW16을 상대하기 위해서 공격적인 드라이빙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월드 챔피언이 된 순간 기뻐서 나온 반응이 뭐가 문제냐고 옹호한다. 이로 인해 F1의 유명한 잡지인 Autocourse[2] 1994년판에선 이 충돌사고 때문에 슈마허를 그 해 넘버 2 드라이버로 평가하기도 했다.

두 번째 고의 충돌 의혹은 1997년 최종전 헤레스 서킷 스페인 GP에서 벌어진 자크 빌르너브와의 충돌사건인데 이 건은 고의충돌로 인정되어, 슈마허는 시즌 포인트를 몰수 당하며 챔피언십 2위 자격도 박탈당한다.[3]

https://www.youtube.com/shorts/sa2FH-GeVbQ
안 통하죠! 안 통했어, 미하엘 이 자식, 아쉽게도 잘못 박았네.
That didn't work. That didn't work, Michael. You hit the wrong part of him, my friend.
해설위원 마틴 브런들[4], 슈마허가 빌르너브와 충돌한 직후

퀄리파잉에서 2위였던 슈마허는[5] 스타트에서 빌르너브를 앞지르며 시종일관 선두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두번째 피트 스톱 직후 빌르너브가 슬립스트림을 이용해 인을 선점하며 브레이킹 포인트에서 레이트 브레이킹으로 추월을 시도하니, 슈마허는 빌르너브를 막기 위해 인으로 진입하다 자신을 이미 추월한 빌르너브를 측후방으로 방향을 더욱 틀며 충돌했다.[6][7] 그러나 오히려 슈마허의 차는 튕겨져 나오며 리타이어했고, 빌르너브는 약간의 손상으로 페이스가 느려지긴 했지만 결국 3위로 골인하면서 그 해 챔피언십 타이틀을 획득한다. 94년과 마찬가지로 당시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던 윌리엄스 르노 FW19를 페라리 F310B로 상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공격적인 드라이빙을 하다가 이렇게 됐다고 옹호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사고만큼은 분명 슈마허의 잘못이다. 그리고 이 사건의 고의성으로 인해 94년의 사고도 고의로 유발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기도 했다.[8]

2.3.1. 옹호론

하지만, 슈마허가 타 드라이버들에 비해서 너무 과한 비난을 받은 측면도 크다. 1990년 일본 GP에서도, 당시 챔피언십 선두이던 아일톤 세나가 챔피언 타이틀 확정을 위해 오프닝 랩에서 프로스트를 고의로 들이받아 동반 리타이어 했으나, 슈마허처럼 큰 비난을 받진 않았다. 세나는 자신을 추월했던 프로스트를 고의로 들이받았고, 스즈카의 1번 코너 진입속도는 200km/h를 훌쩍 넘을 수 있다. 이와 같은 고속에서 충돌을 유발한 것은 저속에서 들이받은 슈마허의 사고보다 훨씬 위험하기 때문에 슈마허보다 더 크게 비난받아야 하는 것이 옳기도 하다.

2.3.2. 비판론

다만 세나의 경우와 차이도 있는데, 세나는 고카트 레이스의 휠투휠 기법을 F1에 적용한 사람이다. 레이스에선 틈이 생기면 파고들어야 옳다라는 주의였고 전통적인 레이서들은 안전을 더 중요시했기 때문에 그의 가치관이 새롭게 평가받던 시기이다. 세나의 사건을 들여다보면, 세나는 폴 포지션의 그리드 위치가 레코드 라인이 아니었고 노면상태가 상대적으로 나쁜 것을 발견하였기 때문에 라인 변경을 요구했지만 FIA가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이미 1989년 일본 GP에서 프로스트가 세나에게 고의성 짙은 추돌을 유발하고 프로스트 자신은 리타이어로 승점으로 인한 우승을 노렸다. 이를 의식한 세나는 사고 직후 다시 시동을 걸어 경기를 지속해서 우승을 하고 시상식을 기다렸지만 프로스트와 FIA는 진입로에 대한 기존에 없던 규정을 들어 프로스트에게 우승을 넘겨주었다. 이렇게 불공정한 환경에서 두 라이벌은 서로에게 진입 우선권을 내어주지 않고 과도한 경쟁을 이어나갔다. 이런 상황속에서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슈마허의 사건과 동일한 선상에서 분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3. 사건사고

3.1. 스키 사고

파일:미하엘 슈마허 스키사고.png
은퇴한 뒤 가족들과 스위스에서 조용히 살고 있던 2013년 12월 30일 (현지시각 29일 밤) 프랑스알프스에서 가족들과 스키를 타다가 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졌다.[9] 헬멧을 쓴 채로 바위에 부딪혔는데, 사고 직후에는 의식이 있었고 헬리콥터로 인근 병원에 옮겨졌으나 그런대로 멀쩡한 줄 알았는데 결국 중태에 빠져 큰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검사 결과 두개골 외상으로 인한 뇌출혈이 있어 바로 응급수술을 받았으나 이후 수 개월간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10]

이후 슈마허는 3월 11일에 겨우 산소호흡기를 떼고 스스로 호흡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사고 후 약 6개월 만인 6월 16일[11] #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았다. 목소리와 접촉 등에 반응을 보인다는 자비네 켐 슈마허 매니저의 공식성명으로 보아서는 완전히 회복되진 않은 모양. 향후 재활치료에 전념하겠지만 평생 휠체어를 타고 일상생활에 항상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때 중태에까지 빠졌고 자칫하면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에 이를 수도 있었던 상황에 비하면 많이 호전된듯 하다.

의식이 깨어난 후 자택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주치의에 따르면 언어장애나 기억장애 등이 올 수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도 살아남아서 다행이라는 반응. 2015년 1월 소식에 따르면 가족의 목소리에 눈으로 반응을 하는 등의 반응을 보이나 치료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듯 한데, 불행히도 점점 안 좋은 소식들만 들리고 있다. 2016년 11월 로스 브런에 따르면 어떤 상태인지 구체적인 내용은 없지만 긍정적인 상태라고 전했다. 기사#

2018년 8월 파리마치의 보도에 따르면 확실히 예전보다 호전된 모습을 보인다. 이제는 물 속에서는 조금씩 움직이는 것도 가능하다고. 그러나 아직 혼자 걷거나 서지는 못하며, 간혹 휠체어에 태워 병실 바깥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면 울기도 하였다는, 팬들 입장에서는 마음 아픈 소식 역시 전해졌다.#

2019년 1월에 50세 생일을 맞아 가족 측이 또다시 입장 발표를 했는데, 여전히 별다른 긍정적인 소식은 없다.

2019년 7월 30일, 아직은 말이 어눌하지만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다고 한다. 예전 페라리 크루들과 함께 집에서 독일 GP를 시청했다고.[12]

사고 이후 근황 사진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3.2. 가짜 인터뷰 사건

먼저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독일의 주간지인 악투엘레에서 유명인과 대화할 수 있도록 개발된 AI 쳇봇과 나눴던 대화를 실제로 미하엘 슈마허를 직접 만나서 인터뷰한 것처럼 가짜 뉴스를 올려버린 것이다. 해당 사건은 프리한 19의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의 전성시대 19 편에서 다뤄진 바가 있다. 심지어는 표지에 대놓고 "미하엘 슈마허와의 첫 인터뷰"라고 적고는 표지 맨 하단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진짜 같았다."는 글을 남기며 뻔뻔한 모습을 보였다.

AI 쳇봇은 “사고 이후 나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나의 아내와 아이들, 가족 모두에게 끔찍한 시간이었다” 등의 가상으로 만든 답변을 만들었다. 그야말로 황색언론의 진수를 보여준 셈이나 다를 바가 없었고 2014년에 의식을 되찾았다거나 새로운 연인을 코리나가 만났다는 낚시성 기사를 써서 고소당했던 적이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며 다시 이런 악행을 저지른 것이다. 결국 미하엘 슈마허의 가족은 다시 한 번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1] 논란거리가 많은 차량인데, 규정 상 장착해서는 안되는 TCS과 런치 컨트롤이 장착되어 있다는 의혹이 있었고, 런치 컨트롤이 발견됐지만 사용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유야무야됐다. 추후에 경매에 붙여진 B194의 판매자는 트랙션 컨트롤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피트인 시간을 줄이기 위해 연료 밸브 필터를 빼버리려서 화재까지 일어났고, 그라운드 이펙트를 위한 스키드 패드의 사용이 발각되어 슈마허는 벨기에 그랑프리 우승이 취소당하고 2경기 출장 정지를 당한다. 이 때 베네통 포뮬러의 감독은 플라비오 브리아토레2008년 르노 F1 승부조작 사건을 일으키는 등, 승리를 위해서는 비열한 방법도 가리지 않던 작자다.[2] 해마다 Top 10 Drivers 리스트를 발표하는데, 충돌 사고를 일으킨 드라이버의 순위를 항상 한 계단씩 깎는다. 같은 이유로 90년판에선 세나가 2위로 내려가고 프로스트가 1위로 평가됐다.[3] 포인트, 우승, 폴 포지션 등의 기록은 유지됐다.[4] 아이르통 세나의 문서에서도 나오듯이 90년대의 모터스포츠 황금기를 같이 보낸 한 가닥 하던 드라이버였다. 슈마허가 데뷔하고 난 뒤에도 한동안 현역으로 활동했었기 때문에 My friend라는 호칭을 쓴 것으로 보인다.[5] 빌르너브, 프렌첸과 랩타임은 똑같았지만 2번째로 기록했기 때문에 2번째 그리드에서 출발했다[6] 영상을 보면 빌르너브가 옆에 보이자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한번 방향을 돌리며 대놓고 박아버린다[7] 이 때도 94년과 동일하게 슈마허가 빌르너브를 1포인트 앞서는 상황이었다.[8] 94년의 경우 슈마허가 사고 직전에 실수를 하긴 했지만 힐보다 앞서 있었으므로 코너 진입 과정에서 우선권을 가지고 있었고, 2010년 벨기에 GP를 앞두고 사건의 당사자이자 피해자인 데이먼 힐이 슈마허에게 고의성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사고 당사자가 아니라고 하니 제3자는 뭐라고 할 수가 없다. 그리고 많은 팬들도 이 사고에 대해서는 슈마허의 고의성보다는 힐에게 다소 안타까운 사고였다고 생각한다.[9] 사고 당시 14살이였던 아들과 함께 있었다고 한다.[10] 영국 옥스퍼드대의 신경외과 교수 티푸 아지즈는 이후 의식을 회복하더라도 완치가 힘들 것이란 소견을 밝혔다.[11] 마침 그 날은 2014년 월드컵 독일전 첫 경기였다. 슈마허는 축빠인 것으로 알려져 있고, 특히 독일 국대 루카스 포돌스키가 "슈마허를 위해 우승하겠다"는 소감을 밝힌 날이었기에 축구 보려고 깨어났다는 개드립이 작렬했다. 그리고 독일은 조별리그 첫경기에서 포르투갈을 만나 4:0으로 완파했고, 4강 경기에서 브라질을 1:7로 압승, 결국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12] 이날 경기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몸 담았던 메르세데스는 영 좋지 못했지만 (해밀턴 9위, 보타스 DNF) 자신의 멘티이자 후계자 제바스티안 페텔이 페라리로 꼴찌에서 출발해서 2위까지 올라오는 선전을 기하며 아주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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