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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07-22 15:45:27

부여고(불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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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be673> 제후왕 및 후작
우현왕 좌현왕 불사후 면중후
부여기 부여곤지 부여례 목간나
도한왕 아착왕 매로왕 불사후
저근 부여고 부여력 부여고
매라왕 벽중왕 불중후
사법명 찬수류 해예곤
섭정 비정통
전지왕 섭정 찬탈 비정통 비정통
부여훈해 부여설례 진이왕 부여태
부흥운동 대방군왕 (멸망이후)
제32대 국왕 대방군왕 대방군왕
풍왕 부여융 부여경
문헌 상 언급
음태귀수왕 덕좌왕 호왕 진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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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국 제후왕
작위 <colbgcolor=white,#191919> 불사후(弗斯侯)
직위 광무장군(廣武將軍) > 건위장군(建威將軍)
성씨 부여(扶餘)
고(固)
생몰연도 미상

1. 개요

광무장군(廣武將軍) 여고(餘固)는 정치에 공로가 있고 국정(國政)을 빛내고 드날렸으므로 이제 가행건위장군(假行建威將軍) 불사후(弗斯侯)라 하였습니다.
廣武將軍餘固, 忠効時務, 光宣國政, 今假行建威將軍·弗斯侯.
남제서 동남이열전 백제

백제의 왕족이자 제후왕. 490년 불사후 작위를 받기 이전에는 광무장군이었다.

국내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고, 남제서에서 동성왕이 올린 표문에서 등장한다.

2. 생애

490년 동성왕의 요청으로 남제에게 건위장군(建威將軍) 불사후(弗斯侯)의 관작을 제수받았다. 표문에 의하면 부여고는 정치에 공로가 있고 국정을 빛내고 드날렸다고 한다.

한편 불사후 작위는 472년 개로왕의 사위인 부여례가 가지고 있던 작위였다. 이후 490년에 동성왕이 부여고를 불사후에 임명한 점을 보면 부여례는 490년 이전에 물러났거나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