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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6-02 21:01:37

블라고예 마르야노비치

블라고예 마르야노비치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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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파일:토리노 FC 엠블럼.svg

38대

유고슬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주장
다니엘 프레멜
(1928~1929)
<colbgcolor=#ffffff,#191919> 블라고예 마르야노비치
(1930)
밀루틴 이브코비치
(1930)
밀루틴 이브코비치
(1932)
블라고예 마르야노비치
(1932~1933)
불명
(1934)
브라니슬라프 세쿨리치
(1934)
블라고예 마르야노비치
(1934)
불명
(1935)
밀로라드 아르세니예비치
(1935~1936)
블라고예 마르야노비치
(1936~1937)
베르나르드 히글
(1938)
}}} ||
유고슬라비아의 前 축구감독
파일:external/s24.postimg.org/mo_a.pn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블라고예 마르야노비치
Благоје Марјановић
Blagoje Marjanović
출생 1907년 9월 9일
베오그라드
사망 1984년 10월 1일 (향년 77세)
베오그라드
국적
[[유고슬라비아 왕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71cm, 72kg
직업 축구선수(공격수[1] / 은퇴)
축구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SK 유고슬라비아 (1920~1924)
SK 올림피야 (1924~1925)
BSK 베오그라드 (1925~1939)
SK 추카리치키 (1939~1941)
FK 디나모 판체보 (1945~1948)
NK 프롤레테르 오시예크 (1949)
감독 BSK 베오그라드 (1953~1956)
토리노 FC (1957~1958)
칼초 카타니아 (1958~1959)
FK 포베다 프릴레브 (1959)
국가대표 58경기 37골 (유고슬라비아 / 1926~1938)

1. 생애2. 플레이 스타일 & 평가3. 뒷이야기4. 수상
4.1. 클럽4.2. 개인4.3. 감독

[clearfix]

1. 생애

마르야노비치는 1907년 베오그라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상인이었고 어머니는 주부였다고 전해진다. 어린 시절의 마르야노비치는 베오그라드 근교에서 살았고 그의 형제 니콜라와 공을 갖고 놀기를 즐겼다. 그러다 몇몇 소년들이 보여준 축구 묘기에 넋을 잃은 마르야노비치. 이 순간이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그렇게 축구에 꽂혔고 돈을 탈탈 털어 축구공을 산 그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축구 연습을 하는데 시간을 쏟았다.

이런 마르야노비치를 처음 주목했던 팀은 바로 SK 유고슬라비아였다. 이 팀에서 그는 어린 선수로 남아있었지만 라덴코 밀로비치에 의해 BSK 베오그라드로 팀을 옮겼다. 마르야노비치는 이곳에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쳐보였고 아웃사이드 라이트였던 알렉산다르 티르나니치와 강력한 공격 옵션으로 활약했다.

그래서였을까, BSK 베오그라드는 처음 선수들에게 돈을 줄 무렵 그와 티르나니치에게만 돈을 주기 시작했었다. 이 당시 대략 32달러[2]를 받았다고 알려졌었는데 그만큼 큰 사랑을 받는 선수였고 전 선수에게 돈을 줄 때도 가장 많은 돈을 받았다.

국가대표팀에서도 그의 활약은 대단했다. 올림픽에서는 포르투갈을 만났고 2대1로 패하고 말았다. 여기에서 모사[3]는 출전 자체를 못했고 네덜란드 관광만 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2년 후의 초대 월드컵에서는 달랐다. 전 경기에 주전으로 출전했고 한골을 넣었다. 그리고 여러 친선 경기들에서 그는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고 당시 유고슬라비아 최고의 선수로 명성을 떨쳤다.

이후에는 친정팀 BSK, 이탈리아 등지에서 감독을 맡았다. 하지만 1961년,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우반신 마비와 함께 말을 못하게 되었다. 모사는 1984년에 사망했다.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마르야노비치는 초기 선수 생활에는 패싱에 맛을 들여서 득점을 많이 기록하진 않았지만 BSK에서 그의 스타일을 바꾸었다. 슈팅 파워는 평범하여 힘이 실린 슈팅을 구사하지는 않았지만 정확한 슈팅으로 수많은 득점을 기록했고, 온 몸이 무기인 공격수였다.[4] 게다가 발리슛에 능하여 공이 어디로 오든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축구 지능도 뛰어났고 프리킥 역시 잘 찼다.

30년대 유고슬라비아 최고의 축구 스타였고, 탁월한 골 스코어러였다. 주로 활동했던 BSK 베오그라드에서는 당연히 역대 최고의 선수이고 대표팀에서도 총 36골을 넣어 역대 득점 4위에 이름이 올라있다.

3. 뒷이야기

4. 수상

4.1. 클럽

4.2. 개인

4.3. 감독


[1] 센터 포워드, 아웃사이드 라이트[2] 현재 가치로는 대략 450달러쯤 된다.[3] 마르야노비치의 별명.[4] 발뒤꿈치, 가슴, 심지어는 로 득점한 적도 있다고 한다.[5] 1930년대를 주름잡았던 분더팀의 그 감독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