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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2 01:38:28

호색한

색골에서 넘어옴
1. 개요2. 특징3. 실존 인물
3.1. 한국3.2. 동양3.3. 서양
4. 가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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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호색한(, Pervert)은 남성 중에서 성적으로 문란하고 여성을 지나치게 밝히거나 성욕이 과다한 자를 의미한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에 의하면, 여색을 몹시 좋아하는 남자를 지칭하는 단어이며, 좀 더 강화된 표현으로 엽색이 있다. 반대로 남성을 지나치게 탐하는 문란한 여성일 경우엔 치녀 혹은 색녀라고 한다. 색골, 색마, 색충, 색정광은 성별에 상관없이 쓸 수 있다.

난봉꾼, 변남, 변태, 치한, 여답돼, 여미새, 보빨러 등과도 혼용되어 쓰이기도 한다.[1] 목석의 반대말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성범죄자바람둥이, 카사노바, 양다리인 남자 등이 호색한에 해당한다.

2. 특징

3. 실존 인물

3.1. 한국

3.2. 동양

3.3. 서양

4. 가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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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각 표현의 세세한 뉘앙스나 강도 차이는 있다.[2] 실제로 북유럽인을 제외한 서양인들은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에 대체로 거리낌이 없는 편이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을 굉장히 조심스러워하는 한국인동아시아인들과는 정반대다.[3] Baby는 원래 아기를 뜻하는 단어지만 섹시한 젊은 여성을 뜻하는 속어로 변질되었다. 영어권에서 아기를 뜻할 때는 Infant라고 한다.[4] 이러는 이유가 어이가 털린다. 남성에게 여성을 빼앗길 가능성이 높을수도 있기 때문. 애초에 "난 오로지 여성을 위해서 만들어진 존재다!"라고 외치는 마당에 남성을 죄다 적으로 볼 게 뻔한 편.[5] 아니면 과거에 사이가 안좋았던 사람들이 대부분 남자라는 이유도 있다.물론 여자에게 안 좋은 걸 당해도 호색한인 경우가 있으니 애매하다[6] "남자는 여자를 때리면 안 된다."가 기본 모토인 호색한이 이 정도라면 그건 호색한 입장에서 더는 여자로 보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 가관인건 실제로 그 여성이 남성공포증에 걸린 이유가 이 개념없는 호색한들의 추태(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등.)때문에 그렇게 된 경우도 허다하다. 한마디로 잘못된 만남인 셈.[7] 무려 26명에 달하는 왕비를 두었다. 광종 때에 이것 때문에 대숙청을 해야했지만 통일 당시에는 호족들을 포섭하기 위해서 필요한 적절한 선택이었다.[8] 이 경우는 두 부인에게서 나온 형제들끼리 사이가 돈독했던 케이스다.[9]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여겨지는 것이 바로 문종이 재혼을 하지 않아 단종을 보호해줄 태후가 없었다는 점으로 여겨진다.[10] 그가 페도필리아인지는 확실치는 않지만, 일단 애건 어른이건 관계없이 여러 여자에게 추파를 던졌다는 것만큼은 명백한 팩트이다. 이로 인해 성범죄 전과를 저질렀으므로 SNS 활동을 금지하도록 규정을 정한 것이다. 참고로 이건 정준영과 승리 등등도 마찬가지로, 인스타, 페이스북 뿐만 아니라 구글, 유튜브도 제대로 이용하기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11] 얼마나 비호감으로 낙인찍혔는지 본인 못지않게 논란이 많은 이근에게 까불다가 맞았는데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번에는 이근이 때릴만했다는 반응을 보였을 정도다.[12] 맨 위의 아들 4명이 일찍 죽어 양녕대군은 5번째 자식임에도 실질적으로 장남이나 마찬가지였다.[13] 사실 군주의 경우, 왕위를 잇고 왕실의 사직을 보존할 의무가 있는 자녀들을 최대한 많이 낳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는데다, 어차피 호색한이건 말건 성군이기만 하면 백성들 입장에서는 아무 상관이 없어서, 생각 외로 호색한인 명군이나 성군도 많다. 지금 설명하는 이방원-세종대왕 부자도 그렇고, 프랑스 최고의 성군으로 칭송받는 앙리 4세도 생전에 '팔팔한 오입쟁이'로 불릴 정도로 여자관계가 복잡했다. 심지어는 왕도 아닌 대통령이나 수상들 중에도 이런 부류가 있어서, 미국 역사상 최고의 대통령이라 하면 반드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빌 클린턴이야 말할 것도 없고, 현대 독일국부로 숭앙받는 빌리 브란트 전 수상도 여자를 엄청 밝히는 사람이었다.[14] 세종 본인도 대신들한테 자신이 없을 경우 소헌왕후한테 안건을 보고하고 왕비의 명령에 따르라고 일러둘 정도로 그녀를 신뢰했고, 전술한 18명의 아들 중에서 8명이 소헌왕후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이다.[15] 유퉁은 너무 부인을 자주 갈아치워서 문제지 억지로 성폭행을 하거나 멀쩡한 부인을 냅두고 간통을 저지른 건 아니기 때문이다.[16] 설령 진짜로 날조가 아니라면, 낙화암 전설 때문에 호색한 이미지가 나왔을 수도 있겠지만, 낙화암 이야기도 조선시대부터 돌던 도시전설에 불과하다. 삼천궁녀 이야기때문에 의자왕이 그만큼 여색을 밝혔나 싶겠지만, 실상은 왕권강화를 목적으로 왕궁을 증축했다던가, 아버지 무왕 때부터의 숙원사업이었던 금마저로의 수도 천도를 마무리짓고자 새 왕궁을 지었다던가하는 기록이 많이 나온 것으로 보면, 여색을 멀리했더라도 부족한 일손을 채우고자 그만큼 궁녀들을 많이 간택했을 법도 하다.[17] 한 때 포브스 부자 순위 10위 안에 들어갈 정도로 당시로써는 지금의 이재용 이상 가는 부자였을 것이다.[18] 장남 정몽필과 8남 정몽일은 1992년 대통령 선거 출마 당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정주영 자신이 직접 변중석 소생이 아니라고 밝혔다.[19] 다만 히데요시는 자식들이 모두 요절했기 때문에 살아남은 자식이라곤 늦둥이 도요토미 히데요리 단 하나밖에 없었다.[20] 심지어 중국에서는 21세기에도 관리들이 호색한 짓을 벌이는 것도 모자라 첩까지 두는 게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온다. 예를 들면 지방의 일개 기관장이 첩만 100명 넘게 두었다던가.. 아예 이런 축첩들을 두고 얼나이(二奶), 샤오싼(小三)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정도.[21] 중국어검열삭제하는 이라는 뜻이다(...). 성룡이라는 예명 자체가 자라난 용이라는 뜻이니, 꽤나 적절한 별명인 셈이다.[22] 더불어서 이 인간은 미성년자도 건드린 적 있는 사람이다.[23] 정부인은 슬하에 자식이 없었기에 첩의 자식이었던 조앙을 의붓아들로 삼아 그에게 정말 친아들 이상으로 정을 쏟으며 진심으로 아꼈다고 한다. 결국 조앙이 죽자, 아들을 죽게 한 비정한 아비라며 조조에게 욕을 퍼붓고는 이혼해버렸다. 그 천하의 조조마저 정부인에게 달려가 재결합을 애원했으며, 임종 직전에도 정부인과 조앙에 대한 회한을 말할 정도로 이 일을 후회했다.[24] 문서를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조조가 장수의 숙모를 겁탈한 걸로 부족해 도리어 장수를 암살하려고 했다가 들통나 장수의 분노를 산 게 화근이었다.[25] 폭스 멀더에게는 포르노를 즐겨보는 취미가 있다는 설정이 있는데, 이게 담당 배우인 데이비드 듀코브니의 실제 취미를 배역의 설정으로 집어넣은 것이다.[26] 세르히오 아궤로의 전 부인이기도 하다.[27] 정식으로 결혼을 했다는 설도 있으나, 확실한 물증이 없다.[28] 다만 소 아그리피나는 그 아들 네로의 뺨을 후려칠 수준으로 훨씬 막 나가는 막장녀라서(...), 그녀를 죽인 게 명백한 패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로마인들은 오히려 네로를 동정했다. 물론 어쨌든 패륜은 패륜이라서, 이후에 네로가 몰락할 때, 그의 정적들이나 로마인들이 두고두고 그를 씹는 명분으로 잘 이용해먹었다(...).[29] 딸을 후궁으로 들였다는 얘기는 고대 이집트 특유의 신성혼 풍습때문에 그런거라고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자녀가 100명이 넘는다는 것에서 이미 빼도박도 못할 호색한 확정이다.[30] 특히 후자는 자이르의 전직 장관도 인정한 사실이다.[31] 이 외에도 2명의 자식을 더 입양했다.[32] 버락 오바마에게는 인도네시아인인 계부가 있었다.[33] 이슬람 교리 상 남자가 2번째를 넘겨서 부인을 얻으려면 그 이전에 결혼한 부인들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데다 남편이 케냐에서 중혼을 했다는 사실을 몰랐던 스탠리 앤 던햄이 이를 동의해줄 리가 만무했다.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미국인 부인의 의견을 무시하고 두번째 부인을 얻으려했던 한 사우디인이 이 일로 자기 형들에게 죽도록 얻어터지고 가정 내에서 쭈구리 신세가 된 사례가 있었는데, 사우디보다 좀 더 세속적인 케냐에서도 버락 후세인 오바마 1세의 엽색 행각은 공분을 사고도 남을 일이었다.[34] 버락 오바마중국인 형제는 2021년 현재 상하이에서 바비큐 전문점을 경영하고 있다.[35] 이로 인해 매달 지출되는 양육비만 2만 5621달러에 달했었다.[36] 전 대통령인 프랑수아 올랑드가 외간 여자와 간통한 사실이 적발되어서 난리가 난 일이 있었는데, 당시 프랑스 여론은 간통 자체는 아오안이고 오히려 그 와중에 자국 대통령이 남의 나라 차인 이탈리아제 차량을 타고 간 것에 발끈했다(...).[37] 루이 13세루이 16세는 호색한이 아니다. 루이 13세는 여자를 싫어했으며 루이 16세는 아내인 마리 앙투아네트 이외의 여성에겐 눈길 한번 안 준 순정남이다.[38] 대표적으로 클레오파트라와의 스캔들이 있다. 클레오파트라는 본래 이집트의 여왕이라는 자신의 지위에 더해서 율리우스 카이사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카이사리온을 통해 로마를 낼름 먹으려 했으나, 이 당시의 로마는 알다시피 이집트처럼 왕국이 아닌 공화국이었던 지라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와의 관계에 대해서 철저하게 오리발을 내밀고 카이사리온 역시 죽을 때까지 친자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녀의 뒷통수를 쳤다.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의 미모에도 감탄하긴 했으나 그녀가 다스리는 이집트의 경제적인 잠재력을 더 탐내어서 철저하게 이용해먹었다. 실제로 암살당한 뒤 공개된 카이사르의 유언장에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리온은 단 한줄도 언급되지 않았고, 카이사르가 생전에 직접 지정한 후계자도 외종손(누나 율리아의 외손자)인 옥타비아누스였다. 물론 그렇다고 클레오파트라가 일방적으로 당한 것만은 아니고 엄연히 클레오파트라도 카이사르와의 관계를 이용해서 자기 왕권을 확고하게 만들었다. 당시 이집트는 클레오파트라와 그 남동생이자 남편인 프톨레마이오스 간에 대립이 있었는데 클레오파트라가 카이사르를 끌어들임으로써 프톨레마이오스를 쫒아낼 수 있었다.[39] 자기 아내가 카이사르랑 바람났는데도 불구하고, 본인이 카이사르빠여서 이를 오히려 영광으로 여긴 남편도 있었다.[40] 찰스 2세의 정부들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을 뽑자면 클리블랜드 여공작 바바라 팔머, 포츠머스 여공작 루이즈 드 케루알, 넬 그윈 등이 있다.[41] 박지성에게도 초대장이 왔었다고 한다! 물론 거절하긴 했다.[42] 18세에 결혼할 무렵에 첫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1년에 185명과 자고 이것도 빈틈없이 이틀에 한 번씩 여자를 갈아치웠다는 소리다.(...)[43] 다만 볼품 없는 외모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여자가 많아서, 연애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여자를 못 만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나름 인기남이었던 셈.[44] 프레디 머큐리게이로 착각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꽤 있는데, 첫사랑이었던 제인 오스틴이라는 여성과 잠시 결혼생활을 하기도 했고, 그의 마지막 연인인 짐 허튼을 만나기 전에도 바바라 발렌틴이라는 여성과 연애를 하기도 했으며, 그가 집에서 열었던 섹스파티에 많은 여성들이 참가하기도 했으므로, 명백한 양성애자였다.[45] 다만, 에이즈는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인 HIV의 존재가 학계에 처음 보고되기 이전에 이미 유럽북아메리카에 널리 퍼져있었으므로, 사생활이 정숙한 편이었더라도 감염의 위험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그걸 방탕한 성생활로 위험도를 알아서 올린 탓에 화를 당한 것이다.[46] 정부를 두는 게 무슨 체면치레하는 거냐고 볼 수 있겠으나, 당시에는 정부가 많을수록 남자답다는 인식이 있었으므로 정부가 없거나 한 명만 있으면 오히려 고자 소리 듣기 딱 좋았다. 그래서 아무리 부인만을 열렬히 사랑하는 군주라도 어쩔 수 없이 정부를 두세 명 정도라도 두긴 했다. 루이 16세마리 앙투아네트가 당대에 엄청나게 욕먹은 이유 중 하나도 루이 16세가 본부인인 마리 앙투아네트에게만 충실해, 정부를 아예 두지 않자 사람들이 루이 16세를 두고 남자답지 못하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질투가 심하다고 욕했기 때문이다.[47] 대략적으로 3일에 한 번씩 여자를 갈아치운 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