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알레베크 Charles Alévêque | |
한국명 | 안례백(晏禮百) |
출생 | 1865년 7월 5일 |
사망 | 1925년 1월 2일 (향년 59세) |
국적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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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구한말 활동했던 프랑스인이다. 한국 최초의 알레베크 사진 엽서를 만들었으며 역시 최초인 프랑스어-한국어사전을 편찬하였으며 만국박람회 대한제국 정부 대리인을 담당하였다.2. 생애
알레베크는 지한파 프랑스인으로 프랑스와 대한제국 중간에서 여러 역할를 하였다. 상하이의 '인도 극동 프랑스회사’의 대리인 자격이 있었던 그는 무역업자로 대한제국 정부의 근대화사업 구매 물품의 중개역을 담당하였으며, 1897년 10월 처음 한국에 온 이후 대한제국과 상하이를 왕래하였고, 1899년 3월에는 대한제국 정부의 重소총 구입에 관여하였으며 대한제국과 프랑스의 차관 협상에 대한제국 정부의 협상 대리인으로 임명되어 프랑스로 파견되었다.[1] 이때 1900 파리 엑스포의 정부 대리인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1901년 7월에는 롱동(Rondon)과 통킹(Tonkin)에 가서 쌀을 구입하여 왔다.[2] 또한 그는 서울 정동에 설립된 관립외국어학교의 프랑스어 교사도 맡았으며 1901년 최초의 불한사전인 '법한자전(法韓字典)'을 편찬하였다. 프랑스어 제목은 ‘Petit Dictionnaire Français-Coréen’이다. 머릿말에 “À Monsieur Collin de Plancy Ministre de France à Séoul”라 쓰여있어 당시 주한프랑스대사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Collin de Plancy)[3]에게 바친다고 하였다. 참고로 최초의 한불사전은 1880년에 펠릭스 클레르 리델[4] 주교가 만든 한불자전(韓佛字典)이다.3. 알레베크 사진 엽서
한국 우정사와 연관도 있는데 한국 최초의 사진 엽서가 바로 알레베크 사진 엽서이기 때문이다. 1899년 프랑스 우편 고문인 클레망세(E. Clemencent)가 한국의 여러 모습을 담은 사진 엽서를 판매하면 재정에 도움이 될 수있다는 건의를 하여 대한제국 정부가 샤를 알레베크에게 그가 촬영한 사십여 장의 궁궐과 풍속 사진을 엽서로 제작해 줄 것을 의뢰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알레베크 사진 엽서로 한국 우정사 최초의 사진 엽서로서 가치가 크다. 총 48장으로 여러가지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어 구한말 풍속사에 귀중한 자료이다. 한국에서 찍은 사진을 프랑스로 가져가 인쇄하여 제작하였으며 1900 파리 엑스포 때 한국관 기념품으로 팔았다. 일부는 우리나라에 가져와 대한제국 독수리 보통 우표를 붙여서 판매하였다. 48장 중 명성황후 국장 사진이 꽤 된다. 엽서의 형식은 사면의 백색 테두리안에 사진이 있는 형식이고, 오른편에 '알네ᄇᆡᆨᄭᅳ 법국 교사 셔울 ᄃᆡ한'이라는 국문이 쓰여 있으며, 왼편 맨 위쪽에 'Séoul (Corée)'라는 불문, 아랫면에는 엽서 번호와 사진 설명이 적혀 있다.3.1. 엽서 목록
명성황후로 추정되는 엽서[5] | |
본인과 학생들의 사진으로 만든 엽서 | 권신 김홍륙 엽서[6] |
명성황후 국장 사진으로 만든 엽서 | |
탁지부 대신 이용익의 엽서[7] | 궁궐의 옥좌 엽서 |
3.2. 기타
- 2015년 05월 10일 KBS TV쇼 진품명품 998회에 나왔었다. 의뢰인의 알레베크 엽서는 총 20장으로, 감정 위원의 말에 따르면 "전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을 모은 것"이라고 한다. 감정가는 250만원으로 1장당 평균 12.5만원이나 감정위원의 말로는 "희귀성, 선호도가 다 달라서 평균가는 의미없다"고 한다. 그래서 20장 한 세트로 250만원으로 책정하였다. 이는 알레베크 사진 엽서 뿐만 아니라 다른 사진이나 엽서 등도 마찬가지로 대한제국 엽서 중에 주요 인사나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 사진 등 희귀성, 선호도가 올라가는 사진은 비싸게 책정되고 그렇지 않은 일반 풍속 사진 등은 저렴하게 책정되는 것처럼 사진의 내용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동전이나 우표도 마찬가지이다. 대한제국 우표 중에는 똑같은 우표인데 첨쇄가 되어있냐 안 되어있냐에 따라 몇 만원짜리가 1,000만원이 되기도 하고, 사용본인지 아닌지에 따라 같은 우표가 10억대까지 뛰는 경우도 있다. TV쇼 진품명품/방영 목록/2011~2015년 참조. 이후 2020년 5월 24일 같은 방송 1225회에서 위 방송을 보고 수집을 시작하게 되어 총 38장을 소장한 의뢰인이 나와 998회에서 소개되지 않은 16장을 5년만에 새롭게 의뢰하였다. 16장의 총 가격은 240만원으로 책정하였다.
4. 같이보기
[1] 1984, 전정해, 광무년간의 산업화 정책과 프랑스 자본 인력의 활용, 국사논총[2] 1984, 전정해, 광무년간의 산업화 정책과 프랑스 자본 인력의 활용, 국사논총[3] 그의 사진. 고서 수집광으로 직지심체요절을 길거리에서 구입한 사람이다.[4]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6대 교구장[5] 1977년부터 최근까지 국사 교과서에 실렸던 사진이다. 사진 설명이 Dame du Palais. - Costume de ceremonie으로 정장 차림의 궁중 여인이란 뜻이다. Dame이란 단어를 쓴것은 궁녀로 해석된다. 왕비를 뜻하는 reine을 쓰지 않았다.[6] 황제를 독살하려 한 죄로 사형당한 대귀족 김홍륙, 그의 시신은 거리에 팽개쳐진 채로 종로 광장에 이르렀고 군중들은 그의 배를 갈라 따뜻한 간을 꺼내 먹었다"라는 설명이 쓰여 있다.[7] 대한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간의 차관 협상으로 교섭했던 이용익은 프랑스와의 차관 협상 때 샤를 알레베크를 협상 대리인으로 프랑스에 파견하였다. 알레베크는 차관 협상 대리인 겸 1900 파리 엑스포 대리인으로 가서 이 사진들을 인화하고 판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