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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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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선조 전란.jpg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선조
배우 차승원
더빙 일본어: 야마노이 진
영어: 빅 차오
1. 개요2. 작중 행적3. 평가4. 대사5. 기타

1. 개요

영화 〈전,란〉의 등장인물. 조선의 제14대 임금 선조다.

2. 작중 행적

3. 평가

본작의 선조는 왕권신수설 맹신자로, 거머쥔 왕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자신의 권위에 흠집이 나지 않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저지를 음흉한 인물로 그려진다. 무엇보다 신분제도를 뒤흔드는 그 어떤 행동도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는 역모로 간주하며, 이는 후의 극 전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면모가 차승원의 절륜한 연기를 통해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로 탄생했다.

그럼에도 실제 역사 속 선조의 모습을 안좋은 쪽으로만 왜곡시켜 단편적인 악역으로 크게 일그러뜨렸다는 지적 역시 많다. 선조는 권력 욕심이 많긴 했지만, 서자인 허준당상관으로 만들어주거나 정충신, 한명련 등 노비 출신이라도 왜란 중에 공을 세우면 (천영이 그토록 바라던) 면천을 해주고 잘 대우해 준 편이라, 노비를 천하게 생각하며 노비가 왕과 대동하다는 말에 열폭 하는 꽉 막힌 모습으로만 묘사되는 건 실제와 괴리감이 있다. 김덕령에 대한 일방적인 동정론에 기반한 의병숙청설은 너무 낡은 인식이라 말 할 것도 없다.

작중 폐허가 된 근정전 앞에서 궁궐 재건에 병적으로 집착하며 이를 위해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며 증오를 받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아마도 이것은 환도 직후의 이 기사를 근거로 한 듯하다.
전교하였다.
"10년 안에는 궁궐을 짓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여염(閭閻)에 오래 있을 수도 없는데다가 허술하여 우려되는 일이 많다. 더구나 왜적들이 묵던 소굴인데 감히 그런 곳에서 기거하기가 어찌 마음 아프지 않겠는가. 경복궁은 성이 있고 후원(後苑)이 훤하게 넓으니, 지금 즉시 남산(南山) 밖의 소나무를 베어 놓았다가 내년 봄에는 바로 가가(假家)를 지어서 이어(移御)하도록 하라."
선조실록 43권, 선조 26년(1593년) 10월 25일 을사 6번째 기사
특히 광해군에게 후원인 향원정터 쪽을 가리키면서 이름을 지어보겠느냐고 말을 건네는 모습을 보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7년 후'라는 자막처럼 전란이 완전히 끝난 작중 시점과는 맞지가 않다. 오히려 월산대군의 사저가 익숙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작중의 모습도 그렇고 자연스레 환도 직후의 상황처럼 보이는데 굳이 왜 저 같은 자막을 넣었는지는 의문이다. 짧게 지나가는 자막만 '한양 탈환' 이렇게 바뀌었어도 유령도시가 된 한양과 폐허가 된 경복궁을 비추면서 피로스의 승리라는 것을 강조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더우기 옆에서 광해군이 "전란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궁궐을 건설한다고요?" 한마디만 했어도 그야말로 작중의 암군, 폭군 캐릭터임을 더욱 더 강조할 수도 있었으나 자막 하나 잘못 달아서 고증도 다소 어색해지고 캐릭터도 살짝 약해진 경우라고 보면 된다. 어쨌든 작중시점과 가까운 선조 33년에도 경복궁 영건사업이 플랜B로 계속 고려되고 있기는 했었던 듯하다.
해평 부원군 윤근수, 도승지 이상의가 아뢰기를,
"신들이 전교를 받들고 이문통에게 경복궁의 터를 함께 가보자고 청하였더니[1] 문통이 광화문 안의 어로(御路) 위에 나경(羅經)을 놓아보고서는 ‘이 지점이 정전을 세우기에 마땅한 자리이다.’고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강녕전(康寧殿)의 옛터는 지세가 자못 높으니 의당 3층 누각(樓閣)을 세워 백호지산(白虎之山)192)(註 192)(백호지산(白虎之山) : 오른쪽에 있는 산.) 을 항복하게 해야한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따로 쓴 별지를 입계합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선조실록 129권, 선조 33년 9월 30일 경오 2번째기사
이문통이라는 역술가를 불러서 의인왕후묫자리를 알아보느라 바쁜 와중에 따로 이 같은 일이나 시키고 있었으니까 부인에 대한 애정은 거의 없었던 듯하다.

4. 대사

임금이나… 노비나… 대동… 대동하다?
내 백성이? 아니... 왜?
도성의 백성들이 궁에 불을 질렀다는 소식을 듣자
'궁'이라는 글자를 보면 갓머리 아래 '등뼈 려'가 아니더냐? 궁은 집의 형태로 나타난 나라의 등뼈니라. 왕권은 관념이고! 한갓 관념으로는 권위를 얻지 못한다!
세자 에게 궁을 재건해야할 이유를 역설하면서
아랫것에게 마음이 간다 해도 감출 줄도 알아야 하는 법. 편애는 소수의 교만을 낳고 박애는 다수의 무질서를 낳으니, 다스리는 자들의 고달픈 숙명 아니겠는가.
공역을 코로 하냐?

5. 기타



[1] 무엇인가 영건관련 사항에 자문을 받으려 했었던 듯하다.[2] 나머지 두 편은 〈혈의 누〉에서 순조 시절의 인물, 〈고산자, 대동여지도〉에서 철종 시대의 김정호.[3] 차이점이라면 대박 속 최민수의 숙종은 선조에 비하면 짧고 단정한 반면 본작의 선조는 길고 정돈되지 않아 난잡해보이는 수염이 나서 마치 노쇠하고 집착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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