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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17 23:28:32

세르게이 미로노프

미로노프에서 넘어옴
제1, 3대 공정 러시아 당수
세르게이 미하일로비치 미로노프
Сергей Михайлович Миронов
파일:세르게이 미로노프.jpg
<colbgcolor=#ffc003><colcolor=#9e1527> 출생 1953년 2월 14일 ([age(1953-02-14)]세)
소련 러시아 SFSR 레닌그라드주 푸시킨[1]
국적
[[소련|]][[틀:국기|]][[틀:국기|]] →
[[러시아|]][[틀:국기|]][[틀:국기|]]
학력 레닌그라드 광업 연구소
상트페테르부르크 기술대학
러시아 행정 아카데미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철학)
직업 정치인, 지구물리학자, 경제학자
경력 제1, 2대 상트페테르부르크 연방시의회 의원
1995년 12월 14일 ~ 2002년 6월 29일
연방평의회 의장
2001년 12월 5일 ~ 2011년 5월 18일
생명 러시아당 대표
2002년 6월 29일 ~ 2006년 10월 28일
독립국가연합의회 의장
2002년 10월 28일 ~ 2011년 5월 18일
공정 러시아 당수
2006년 10월 28일 ~ 2011년 4월 16일
현직 제6~8대 국가두마 의원 (2011년 11월 21일 –)
공정 러시아 당수 (2013년 10월 27일 –)
국가두마 공정 러시아 파벌 대표 (2016년 10월 5일 –)
정당
종교 러시아 정교회
배우자 4번 이혼(올가 미로노바[2])
자녀 2남 1녀
서명
파일:세르게이 미로노프 서명.svg
공식 사이트 https://mironov.ru/

1. 개요2. 생애
2.1. 정계 입문 이전2.2. 정계 입문
3. 정치적 성향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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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세르게이 미로노프러시아의 대표적인 실로비키 정치인으로, 공정 러시아 소속 국가두마 의원이다.

2. 생애

2.1. 정계 입문 이전

1967년 콤소몰에 입단했고, 1971년 소련군 공수군으로 자원입대했으며 1973년까지 리투아니아아제르바이잔에서 복무했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몽골 인민공화국 항공대의 지구물리학자로 파견되었다.

2.2. 정계 입문

1994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연방시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1998년에 재선했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연방시의회 부의장이 되었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전국적인 인기를 얻자 푸틴과 같은 고향 출신 정치인인 미로노프는 2001년 연방평의회 의장으로 등용됐다.

그러나 한낱 지방의회 '부의장'이 대통령의 신임을 얻어 단숨에 연방평의회 의장이 되는 것은 다른 지역 출신 의원들의 반발을 일으킬 만 했고 잘못하면 푸틴에 의해 버려질 수도 있었다. 미로노프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연방평의회 의장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푸틴을 지원했고 토사구팽을 대비해 본인만의 정치적 지지자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미로노프가 연방평의회 의장으로서 가장 먼저 착수한 것은 대통령 임기를 4년에서 7년으로 늘리는 것이다. 1993년 러시아 헌정위기, 두 차례의 체첸 전쟁 등으로 혼란스러운 현대 러시아 정국에서 대통령 임기 4년은 너무 짧다고 주장했고 본인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의원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이 이를 직접 거절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푸틴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 미로노프는 독립국가연합 의장이 되었다.

또한 사회민주주의 성향이었던 미로노프는 생명 러시아당을 창당했다. 본인의 지역 기반이었던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 선거에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했고 대신 생명 러시아당 소속으로 2004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그러나 대선 과정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의 당선 확률을 높이기 위해 출마했다는 등 당선이 목표가 아닌 것 처럼 지나치게 장난스럽게 대선에 임했고 그 결과 꼴찌로 낙선했다.

이렇게 실로비키들은 점점 무리수를 던지던 미로노프를 하나둘씩 떠나갔고 미로노프는 연방평의회 의원으로조차 지명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미로노프는 통합 러시아에 맞설 러시아 연방 공산당보다 거대한 야당을 만들겠다며 본인이 이끌던 생명 러시아당로디나, 연금 수급자당를 합당해 공정 러시아를 출범했다. 이 덕분에 세 중견 정당들을 통합한 미로노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연방시의원들의 지명을 받아 겨우 연방평의회에 복귀할 수 있었다.

미로노프는 대통령 임기를 5년 혹은 7년으로 연장하고 3선을 허용하게끔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며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본인을 어필했다. 그러나 여당 통합 러시아는 이를 거부했으며 2008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 푸틴이 불출마를 선언했고 대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출마했다. 이에 분노한 미로노프는 대선에서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지지하되 2007년 러시아 국가두마 선거에는 푸틴이 이끄는 통합 러시아를 지지하지 않고 공정 러시아 독자적으로 출마할 것을 밝혔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인해 떨어지는 지지율로 위기감을 느끼던 통합 러시아공정 러시아라도 자기 편으로 끌어들어야 한다는 급박한 상황까지 직면했다. 2010년 2월 8일, 공정 러시아는 통합 러시아와 화해하고 서로 연합, 그리고 미로노프 대신 새로운 당 대표를 선출할 것을 약속했으며 통합 러시아는 미로노프의 연방평의회 의장 직을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로노프는 의장 직 획득이 확정된 것으로 판단해 불편한 정치인들의 연방평의회 의원직 승인을 거부[3]하는 등 반 헌법적 월권 행위를 일삼았다. 결국 2011년 통합 러시아 소속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의원들이 미로노프를 연방평의회 의원으로 지목하지 않으면서 미로노프는 연방평의회 의장직에서 반강제로 물러나게 되었다. 통합 러시아에게 뒤통수를 맞은 미로노프는 직접 2011년 러시아 국가두마 선거2012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한편 통합 러시아는 2011년 러시아 국가두마 선거에 개입해 원내 1당 자리를 지켰고 부정선거에 반발한 러시아 국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일으켰다. 공정 러시아는 이 시위를 지지했으며 본격적으로 반 푸틴 정당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러나 미로노프가 지난 2004년 대선과는 달리 새 반 푸틴 정부를 세우는 것이 목표임을 어필했음에도 불구하고[4] 2012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꼴지로 낙선하자 위기감을 느낀 공정 러시아는 반 푸틴에서 친 푸틴인지 애매한 스탠스로 바뀌었다. 2011년 총선 직후에는 반 푸틴 성향 의원들의 입당을 허용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친 푸틴 정치단체인 전러시아 인민전선에 가입하고 대표적인 반 푸틴 성향 의원인 드미트리 구드코프, 일리야 포노마료프를 제명하면서 다시금 친 푸틴 성향으로 기울고 있다. 또한 크림 위기 직전 크림 반도의 도시 세바스토폴심페로폴에 방문했으며 동부 우크라이나 위기 극초반 러시아 고위급 정치인들 중 최초로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을 방문하면서 미국, 캐나다, 호주, 스위스에 의해 자금 동결 등의 제재를 당했다.

이렇게 친 푸틴 성향을 어필한 결과로 공정 러시아의 지지율이 4%대로 떨어져 2016년 러시아 국가두마 선거에서 비례 의석을 한 석도 못 얻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지만, 봉쇄조항이 7%에서 5%로 하향 조정됨에 따라 수월하게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반 푸틴에서 친 푸틴으로 전향한 미로노프를 푸틴이 높게 평가한 듯 하다.

2018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을 지지했다.

2021년 12월 안드레이 사하로프가 설립한 러시아 최초의 인권단체인 메모리알이 대법원으로부터 해산 명령을 받자 법원측의 결정을 비판했다.

3. 정치적 성향

안락사를 반대하고 총기 소유 금지, 공무원 가족 소득 신고와 누진세, 사치세 등을 지지하는 등 왼쪽에 있다.

환경적 면에서는 들개, 도둑고양이를 중성화하고 자연에 풀어줘야 한다는 입장이며 오존층 파괴와 기후 변화를 부정한다. 또한 교토 의정서파리 협정이 각 국가들의 이익만을 생각한다고 주장한다.

4. 여담

3번 이혼했고 조카딸 나데즈나 티호노바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연방시의원이다.

4번째 배우자 올가 미로노바의 동생 명의로 모스크바에 초호화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올가 미로노바의 동생의 연간 수입은 1,400만 루블이나, 해당 아파트의 가격은 3억 5천만 루블이다. 올가 미로노바와는 공식적으로 이혼한 상태지만, 올가 미로노바가 결혼 반지를 끼고 있다는 점을 들어 아파트 편법 구매를 위한 거짓 이혼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기사


[1]러시아 레닌그라드주 푸시킨[2] 4번째 부인으로 역시 이혼했으나 가짜 이혼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자세한 것은 여담 문단에 후술.[3] 톰스크 주의 그리고리 톰친은 평소에 미로노프와 불편한 사이였는데, 본인의 연방평의회 의원직을 거부하려는 미로노프의 움직임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미로노프의 지지율을 떨어뜨렸다.[4] 이렇게 반 푸틴 성향을 내세우자 당내 친 푸틴 계파 중 일부가 로디나로 분당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