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스르잔 므르쿠시치 (Срђан Мркушић / Srđan Mrkušić) |
생년월일 | 1915년 5월 26일 |
사망년월일 | 2007년 10월 30일 (향년 92세) |
국적 | 세르비아 |
출신지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포드고라 |
포지션 | 골키퍼 |
신체조건 | 미상 |
소속팀 |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 (1935-1936) BSK 베오그라드 (1936-1944) FK 밀리치오나르 (1945-1946)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1946-1954) |
국가대표 | 11경기 (1941-1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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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고슬라비아(現 크로아티아)의 전 축구 선수.2. 생애[1]
2.1. 어린 시절
므르쿠시치는 제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변호사였던 그의 아버지가 업무상 머물던 포드고라에서 태어났다.1930년, 므르쿠시치의 가족들은 스플리트로 이사했고 므르쿠시치는 축구에 빠졌다. 므르쿠시치가 축구를 하는 것에 그의 부모, 특히 어머니의 반대가 극심했다. 그의 어머니는 축구가 사회적으로 적합한 활동이 아니었다고 반대했지만 므르쿠시치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2.2. 선수 생활
2.2.1. 클럽
므르쿠시치는 AŠK 스플리트 유소년팀에서 축구를 하다 1934년에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 유소년 팀에 들어갔고 1935년에 성인팀에 데뷔했다.1936년에 므르쿠시치는 1930년대 유고슬라비아 1부 리그의 강호였던 BSK 베오그라드로 이적했다. 하지만 1939년에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면서 므르쿠시치의 커리어도 한동안 중단되었고 1944년까지 명목상의 BSK 선수였다.
1945년, 전쟁이 끝나고 유고슬라비아 리그가 개편되면서 므르쿠시치는 FK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창립 멤버가 되었고 1954년 은퇴때까지 즈베즈다의 골문을 지켰다.
2.2.2. 국가대표
므르쿠시치는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였던 1941년 3월 25일, 헝가리를 상대로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 첫 경기를 치렀다.이후 므르쿠시치는 10경기의 A매치에 더 참가했으며 그 중에는 1950년 월드컵도 포함되어 있다. 므르쿠시치는 1950년 월드컵 당시 35세의 노장 골키퍼였지만 유고슬라비아의 3경기에서 모두 골문을 지켰다. 유고슬라비아는 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브라질전에서 0:2로 패하는 바람에 결선 리그 진출에 실패했다.
므르쿠시치는 같은 해 10월에 있었던 오스트리아전에서 유고슬라비아가 2:7로 대패하자 대표팀에서 멀어졌고 므르쿠시치의 자리는 촉망받던 신예 골키퍼 블라디미르 베아라가 차지했다.
2.3. 이후
므르쿠시치는 선수 생활중이던 1946년에 이미 베오그라드 대학에서 산림공학 학위를 취득했었고 선수 은퇴 이후 산림공학 계열에서 일했고 축구장 건설에 참여했다. 또한 그는 FK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재향군인 모임에도 자주 참석했다.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므르쿠시치는 커버 범위를 넓게 가져가면서 페널티 지역의 상황을 통제하고 경기를 조직하는 것을 좋아하던 골키퍼였다.4. 수상
4.1. 클럽
- 유고슬라비아 1부 리그 우승 3회: 1938-39(BSK 베오그라드), 1951, 1952-53(이상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 세르비아 축구 리그 우승 2회: 1942-43, 1943-44(BSK 베오그라드)
- 유고슬라비아컵 우승 4회: 1941(BSK 베오그라드), 1948, 1949, 1950(이상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 유고슬라비아 1부 리그 준우승 3회: 1948-49, 1950, 1952(FK 츠르베나 즈베즈다)
- 유고슬라비아컵 준우승 2회: 1952, 1954(FK 츠르베나 즈베즈다)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