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2-01 19:06:04

스웨덴의 아스트리드 공주

'''
파일:벨기에 국왕 문장.svg
벨기에 왕비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debe00, #ffda00 20%, #ffda00 80%, #debe00); color: #000;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레오폴드 1세 레오폴드 2세 알베르 1세 레오폴드 3세
루이즈 도를레앙 오스트리아의 마리 헨리에테 여대공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 스웨덴의 아스트리드 공주
보두앵 알베르 2세 필리프
파비올라 데 모라 이 아라곤 파올라 루포 디 칼라브리아 마틸드 뒤드켐 다코
국왕 }}}}}}}}}

<colcolor=#000000> 벨기에 레오폴드 3세의 왕비
스웨덴의 아스트리드 공주
Prinsessan Astrid av Sverige
파일:30fd56e59af179441606866dd5f0140f.jpg
이름 스웨덴어 아스트리드 소피아 로비사 튀라
(Astrid Sofia Lovisa Thyra)
프랑스어 아스트리드 소피 루이즈 티라
(Astrid Sophie Louise Thyra)
네덜란드어 아스트리트 소피아 루이세 티라
(Astrid Sophia Louise Thyra)
출생 1905년 11월 17일
스웨덴 스톡홀름
사망 1935년 8월 29일 (향년 29세)
스위스 슈비츠 퀴스나흐트
장례식 1935년 9월 3일
벨기에 왕국 브뤼셀 라컨 성모 성당
배우자 레오폴드 3세 (1926년 결혼)
자녀 조제핀샤를로트, 보두앵, 알베르 2세
아버지 베스테르예틀란드 공작 칼 왕자
어머니 덴마크의 잉에보르 공주
형제 마르가레타, 메르타, 칼 베르나도테
종교 루터교회가톨릭

1. 개요2. 작위3. 생애
3.1. 어린시절3.2. 결혼3.3. 왕세자비3.4. 왕비3.5. 사망
4. 가족
4.1. 조상4.2. 자녀

[clearfix]

1. 개요

벨기에 4대 국왕인 레오폴드 3세의 첫 번째 아내이자 스웨덴의 공주. 보두앵 국왕과 알베르 2세의 어머니다.

백설공주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하얀 피부의 기품있는 미인이었으며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 것에 열정적이었다. 덕분에 남편 레오폴드 3세과 더불어 벨기에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왕비이다. 그러나 교통사고로 인해 안타깝게도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 작위

파일:1280px-Alliance_Coat_of_Arms_of_King_Leopold_III_and_Queen_Astrid.svg.png
파일:Royal Monogram of Queen Astrid of Belgium.svg
<rowcolor=#000> 문장 모노그램

3. 생애

3.1. 어린시절

파일:1280px-H._K._H._Prinsessan_Ingeborg_med_Prinsessorna_Margareta,_Märta_och_Astrid_(1910).jpg
어머니 잉에보르 공주와 마르가레타, 메르타 공주와 함께
1905년 11월 17일 스웨덴 오스카르 2세의 3남인 칼 왕자와 덴마크의 잉에보르 공주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칼 왕자 부부는 18살 정도 나이 차이가 났다. 아스트리드는 가족들과 함께 소박하게 살았고 스웨덴에서 인기가 대단했다. 어린 시절 아스트리드는 조용하고 수줍음이 많았고 어머니 잉에보르는 활달한 메르타를 더 아꼈다고 한다. 그런 아스트리드를 진정 이해해 준 사람은 아버지 칼 왕자와 큰언니 마르가레타였다. 14살이 되던 해에 마르가레타가 결혼했는데 이때 무척 슬퍼했다.

당시의 많은 공주들이 그랬듯이, 아스트리드는 스톡홀름의 고아원에서 유아들을 돌보는 등 자선 활동을 했다. 수영, 스키, 승마, 골프와 같은 야외 활동도 좋아했다고 한다.

3.2. 결혼

파일:mw278718m.jpg
레오폴드 왕세자와 아스트리드 공주의 결혼사진
아스트리드는 영국에드워드 왕세자노르웨이올라프 왕세자[1]등 여러 왕국의 신붓감으로 거론되었다. 그 중 아스트리드의 약혼자가 된 사람은 벨기에 왕국의 레오폴드 왕세자였다. 1925년 처음 만났고 둘 다 첫눈에 호감을 가졌다.

1926년 9월 21일 두 사람의 약혼식이 발표되었고, 같은 해 11월 4일 스톡홀름에서 시민 결혼식을 올리고 11월 10일 예정된 브뤼셀에서의 종교 결혼식을 위해 11월 8일 가족들과 안트베르펜에 도착했다. 그리고 벨기에 왕실 사람들과 함께 시청으로 걸어갔는데 열광하던 군중들이 앞으로 밀리다가 질서를 잃었고 많은 이들이 짓밟혀 목숨을 잃었다. 아스트리드는 당시에는 이런 상황을 몰랐다가 브뤼셀로 가는 기차에서 전해 듣고 크게 충격을 받았다. 알베르 1세는 브뤼셀에 더 많은 보안 조치를 취할 것을 명했고 다행히 브뤼셀에서는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3.3. 왕세자비

파일:oe69pAV7Jtjj_t4DaNMFVs7QU5jLmiRed699t8c4Jd-Zf4VEj3.jpg
브라반트 공작과 브라반트 공작부인
레오폴드 왕세자와 아스트리드 왕세자비는 프랑스 남부에서 신혼을 보낸 후 벨기에로 돌아왔다. 벨기에에서 그녀는 프랑스어네덜란드어를 배웠다.

벨기에 국민들은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순수한 새 왕세자비에게 열광했다. 남편 레오폴드 왕세자는 아스트리드의 가장 적극적인 지지자였고, 두 사람의 금슬은 매우 좋아서 공식적인 일정에서도 손을 잡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1927년 10월, 아스트리드는 장녀 조제핀샤를로트 공주[2]를 출산했고, 1930년 9월 장남이자 왕위 후계자인 보두앵 왕세손을 낳았다. 또한 그해에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그녀는 소박하게 아이들을 양육했고, 일반적인 가정처럼 자신이 직접 요리를 했다고 한다.

3.4. 왕비

파일:mw161099.jpg
1934년 6월 28일 가족사진
1934년 2월 17일, 시아버지 알베르 1세가 등산하다 실족사함에 따라, 아스트리드는 벨기에의 왕비가 되었다. 4개월 뒤 아스트리드는 셋째 아이를 낳았는데, 그의 이름을 알베르 1세의 이름에서 따 알베르라고 지었다.

아스트리드는 벨기에의 왕비로서 여성, 어린이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돕는 데 집중했다. 1935년 벨기에의 경제 위기 동안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옷이나 돈, 음식들을 모으기도 했다. 또 벨기에의 여러 빈민가들을 직접 방문하여 사회적 약자들을 도왔다.

3.5. 사망

1935년 9월 3일 장례식
1935년 8월, 레오폴드 3세와 아스트리드 왕비는 알프스산맥에서 산행을 하며 여름 휴가를 보냈다. 막내 알베르 왕자는 고작 14개월이었기 때문에 브뤼셀에 남았고, 첫째 조제핀샤를로트 공주와 둘째 보두앵 왕세자는 부모와 함께했다. 8월 28일 아이들은 보모와 함께 기차로 브뤼셀로 돌아갔다.

1935년 8월 29일, 레오폴드 3세와 아스트리드 왕비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산행을 하기로 했다. 레오폴드 3세가 운전을 했고 조수석엔 아스트리드가 뒷좌석엔 운전사가 타고 있었다. 아스트리드 왕비는 지도를 보고 있었는데, 왕비가 레오폴드 3세에게 호수 반대편의 산을 가리키던 순간 차가 길을 벗어나[3] 가파른 비탈을 내려가다가 배나무에 부딪혔다. 레오폴드 3세와 아스트리드 왕비는 충격으로 튕겨져 나와 잔디밭에 던져졌다. 파손된 차량은 계속 내려가다가 나무와 충돌한 후 물 속에 쳐박혔다. 남편 레오폴드 3세는 경미한 부상을 입었고 운전사는 무사했다. 레오폴드 3세는 아내에게 기어가 안고 계속 키스하며 말을 걸었지만 나무 줄기에 머리를 부딪힌 아스트리드 왕비는 두개골 골절과 심각한 머리 부상으로 거의 즉사한 상태였다.[4] 향년 29세였다.

아스트리드 왕비의 시신은 기차로 옮겨져 브뤼셀 왕궁의 예배당에 안치되었고 3일 동안 50만 명[5]이 넘는 벨기에인들이 조문했다. 라에켄의 성모 성당에 매장되었고, 이후 그녀의 옆에 레오폴드 3세와 그의 후처 레티 공비[6] 릴리앙 바엘이 안장되었다. 사고 차량은 레오폴드 3세의 뜻에 따라 호수 깊은 곳에 가라앉혔다. 10개월 후 사고 현장에는 아스트리드의 이름을 딴 예배당이 세워졌다.

아스트리드가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인 칼 왕자는 딸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아스트리드는 무척이나 심성이 고왔다. 그 아이는 모두를 사랑했고, 모두들 아스트리드를 사랑했다."
아버지 베스테르예틀란드 공작 칼 왕자의 회고.

4. 가족

4.1. 조상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스웨덴의 아스트리드 공주
(Princess Astrid of Sweden)
<colbgcolor=#fff3e4,#331c00> 베스테르예틀란드 공작 칼 왕자
(Prince Carl, Duke of Västergötland)
<colbgcolor=#ffffe4,#323300> 오스카르 2세
(Oscar II)
오스카르 1세
(Oscar I)
로이히텐베르크의 조제핀 공녀
(Princess Joséphine of Leuchtenberg)
나사우의 조피아 공녀
(Princess Sophia of Nassau)
나사우 공작 빌헬름
(William, Duke of Nassau)
뷔르템베르크의 파울리나 공주
(Princess Pauline of Württemberg)[7]
덴마크의 잉에보르 공주
(Prinsesse Ingeborg af Danmark)
프레데리크 8세
(Frederick VIII)
크리스티안 9세
(Christian IX)
헤센카셀의 루이제 공녀
(Princess Louise of Hesse-Kassel)
스웨덴의 로비사 공주
(Princess Louise of Sweden)
칼 15세
(Charles XV)
네덜란드의 루이세
(Princess Louise of the Netherlands)[8]

4.2. 자녀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 / 자녀
1녀 룩셈부르크 대공비 조제핀샤를로트
(Joséphine-Charlotte, Grand Duchess of Luxembourg)
1927년 10월 11일 2005년 1월 10일 룩셈부르크 대공 장
슬하 3남 2녀[9]
1남 보두앵
(Baudouin)
1930년 9월 7일 1993년 7월 31일 파비올라 데 모라 이 아라곤
2남 알베르 2세
(Albert II)
1934년 6월 6일 파올라 루포 디 칼라브리아
슬하 2남 1녀[10][11]


[1] 올라프 왕세자의 부인인 메르타는 아스트리드 왕비의 작은언니다.[2] 훗날 룩셈부르크 대공 과 결혼해 룩셈부르크의 대공비가 된다.[3] 비가 와서 미끄러웠다고 한다.[4]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이 중 한 명의 말에 따르면 이미 맥이 뛰지 않았다고 하며 관자놀이가 움푹 패였고 머리카락에는 나무 껍질의 작은 조각들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5] 당시 벨기에 인구는 800만 명이었다.[6] 릴리앙은 레오폴드 3세의 부인이었지만 왕비 칭호를 쓰지 않았다.[7] 프리드리히 1세의 손녀이다.[8] 빌럼 1세의 손녀이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외손녀이다.[9] 룩셈부르크 대공 앙리[10] 필리프, 외스터라이히에스테 대공비 아스트리드[11] 파올라 왕비 소생의 자식들 외에도 내연녀 시빌 드 롱샴 남작부인 소생의 사생아 델핀 보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