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랍/ 封蠟 / Sealing Wax
1. 개요
16세기부터 편지, 포장지, 병 등을 봉하여 붙이는 데 쓰는 수지질의 혼합물. 봉인을 풀었을 때 그 흔적을 남기게 하거나 발신인의 신원, 또는 디자인 장식을 위해 사용한다.2. 역사
옛날 유럽에서는 촛농을 이용하여 동양의 도장 개념인 봉인을 찍었다. 편지봉투 등을 붙일 때, 촛농을 그 부위에 떨어트린 다음 반지에 새겨진 가문의 인장 등으로 찍어 누르는 것이다. 이러면 봉인을 뜯기 전에는 편지를 몰래 뜯어볼 방법이 없거니와 어떻게든 살살 떼어낸다 하더라도 다시 붙일 방법이 없으므로 '이 편지는 아직 아무도 열지 않았습니다.' 하는 증표가 되어 주었다. 군대의 서신 등에도 많이 쓰였다.수신자가 받았을 때 봉인이 뜯겨 있다면 당연히 전령이 의심받고 극형에 처해져야 했다. 하지만 미숙한 전령의 실수라든가 전령이 급히 말 달리느라 너덜너덜해졌다든가 비 때문에 걸레짝이 되었다든가 하는 일이 많아서 대충대충 넘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고온에서 녹는 특성상 기온이 올라가는 여름에는 편지들의 실링 왁스가 전부 녹아 편지가 서로 달라 붙어버리는 사고도 잦았다.
구성은 다양하지만 인도-유럽 간 무역이 시작된 이후 큰 변화가 있었다. 중세 실링 왁스는 보통 밀랍과 유럽 낙엽송 나무의 연둣빛 추출물인 베네치아 송진(Venice turpentine)으로 만들어졌다. 초기의 왁스는 따로 색을 넣지 않았지만 후일 색상을 추가하여 붉은색이나 주홍색으로 물들이기도 했다. 16세기부터는 진고옻, 송지, 수지, 백악이나 회반죽을 섞어 넣은 후 붉은색이나 주홍색으로 염색했는데, 이때 밀랍은 제외되기도 했다. 백악의 비율은 사용 용도에 따라 달라졌다. 포도주병을 봉하거나 과일을 보존하는 데엔 하급이,[1] 문서에는 상급이 사용됐다. 공공 문서를 봉하기 위한 대형 봉랍과 같은 경우엔 밀랍이 쓰였다. 경우에 따라 봉랍엔 용연향, 사향 등 기타 향내가 나는 물질을 추가했다. 아예 황제, 교황 같은 지체 높은 군주들이 직접 내리는 매우 중요한 칙서나 외교 문서의 경우 녹은 황금을 사용하였는데 이를 금인칙서라고 한다.
원래는 밀랍 등 녹았을 때 종이에 스며들고 달라붙는 물질과 쉘락이나 송진처럼 굳은 후 딱딱하고 잘 깨지는 물질을 섞어 사용해, 종이에 잘 달라붙으면서도 봉인을 뜯을 때 반드시 깨져서 다시 붙이기 불가능하게 만들어졌다. 다만 셸락과 송진은 공통적으로 불이 잘 붙는다는 단점이 있어 현재 흔히 사용되는 심지형 실링 왁스에는 부적합한 데다, 너무 잘 깨져 우체국 등을 이용해 배송하기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대의 실링 왁스는 대부분 파라핀으로 적당히 기분만 내는 용도이다. 현대의 실링 왁스는 오리지널처럼 종이에 잘 달라붙지도 않고 적당히 말랑말랑해서 손재주가 좋으면 밀랍을 부러뜨리지 않고도 편지를 열어본 후 감쪽같이 다시 붙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실제로 보안을 요하는 문서를 봉하는 용도로는 부적합하다.
실링 왁스의 색도 당시에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공문서나 회사 간의 편지 등 공적인 서신에서는 반드시 붉은색을 써야 했으며, 사적인 연락에는 다른 색상을 사용하거나 아예 후술할 웨이퍼로 대체해도 무방했다. 그리고 검은색은 부고 등의 부정적인 소식을 전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2]. 특히 검은색 봉인이 찍혀 있고 편지봉투의 테두리가 검게 칠해져 있는 경우 100% 부고를 의미했다. 이렇게 색을 구별해 사용했기 때문에 편지를 받았을 때 봉인을 뜯기 전에 왁스의 색만 보고도 대충 어떤 내용일지 유추가 가능했다는 특징이 있었다.
당시에 실링 왁스보다도 널리 사용되었던 편지 봉합 방식으로는 실링 웨이퍼(sealing wafers)가 있었다. 이것은 밀가루와 달걀흰자, 아라비아검 등을 적절히 배합해 얇게 구워낸 일종의 먹을 수 없는 과자로, 젖었을 때 끈적끈적해 종이에 들러붙는다는 점을 이용해 편지를 쓰는 동안 웨이퍼 한 장을 혀 밑에 머금고 있다가 봉투를 봉할 때 종이 사이에 넣고 격자무늬가 새겨진 전용 도장으로 강하게 눌러 편지를 봉하는 방식이다. 실링 왁스보다 간편하고 가격도 저렴했기 때문에 아주 흔하게 사용되었지만, 아무래도 침 범벅이 된 밀가루 반죽을 편지봉투에 붙이는 것이니 격식을 차린 편지에는 쓰기 힘든 데다가 재료들이 식용이다 보니 벌레나 쥐가 꼬이는 일이 잦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독성이 있는 주사나 비소 화합물을 섞었지만 이런 것은 인간의 몸에도 대단히 좋지 않았기 때문에, 빠르게 도태되어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3. 사용하는 방법
실링 왁스를 사용할 때 필요한 준비물은 실링 왁스, 인장, 멜팅 스푼[3], 라이터 혹은 양초[4]가 대표적이다. 사용하는 방법은 실링 왁스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3.1. 심지형
준비물 : 붙일 것, 심지형 실링 왁스, 인장, 가위, 라이터 |
- 심지를 되도록 바짝 자른 후, 라이터로 심지에 불을 붙여 실링 왁스를 녹인다.[5] [6]
- 실링 왁스를 붙일 곳에 녹은 실링 왁스를 떨어뜨린다.[7]
- 실링 왁스가 굳기 전에 인장으로 실링 왁스를 가볍게 눌러주고 굳을 때까지[A] 기다린다.
- 인장을 떼내어 제작을 완료한다.
3.2. 비즈형
준비물 : 붙일 것, 비즈형 실링 왁스, 인장, 양초, 멜팅 스푼 |
- 멜팅 스푼에 비즈형 실링 왁스 2~3알[9]을 넣고 양초 위에 녹을 때까지 가열한다.[10]
- 멜팅 스푼을 이용해 붙일 곳에 녹은 실링 왁스를 떨어뜨린다.
- 실링 왁스가 굳기 전에 인장으로 실링 왁스를 가볍게 눌러주고 굳을 때까지[A] 기다린다.
- 인장을 떼내어 제작을 완료한다.
3.3. 글루건형
준비물 : 붙일 것, 글루건형 실링 왁스, 인장, 글루건 |
- 글루건에 글루건형 실링 왁스를 끼우고 전원을 연결하여 실링 왁스를 충분히 녹인다.[12]
- 글루건을 이용하여 붙일 곳에 녹은 실링 왁스를 떨어뜨린다.
- 실링 왁스가 굳기 전에 인장으로 실링 왁스를 가볍게 눌러주고 굳을 때까지[A] 기다린다.
- 인장을 떼내어 제작을 완료한다.
3.4. 스티커형
준비물 : 붙일 것, 스티커형 실링 왁스 |
- 테이프형 실링 왁스
- 실링 왁스 뒤편에 있는 양면테이프를 뗀다.
- 붙일 곳에 실링 왁스를 붙이고 누른다.
- 기본형 실링 왁스
- 실링 왁스 뒤편에 접착제나 풀 등을 바른다.
- 붙일 곳에 실링 왁스를 붙이고 누른다.
4. 현재
- 요즘에는 우리나라에도 많이 유통되지만 실링 왁스의 주목적인 보안보다는, 장식용이나 의례 목적으로 많이 사용한다. 특유의 예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모양 때문에 청첩장이나 예쁜 손편지 등에 쓰이며 다꾸나 수공예 등을 즐기는 사람에게도 수요가 제법 있다. 제작 시에 다양한 도구[14]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미 제작해 굳어진 실링 왁스를 스티커형으로 붙이기도 한다.
- 실링 왁스를 이미 하던 사람들이 입문자에게 가장 권하는 형태는 비즈형 왁스이다. 도구가 다소 많이 필요한 대신 알 형태로 되어 있어서 양 조절이 쉽고 여러 색을 섞거나 색을 바꾸는 등 다른 형태에선 힘든 시도를 할 수 있기 때문.[15] 심지형은 필요한 도구가 적은 대신 양 조절이나 왁스 떨어뜨리는 방향을 정하는 것이 힘들고 글루건형은 대량 생산에 좋지만 중간에 색을 바꾸거나 섞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며 양 조절에도 요령이 필요한 걸 생각하면[16] 비즈형은 꽤나 편한 셈.
- 투명 혹은 반투명한 색상의 실링 왁스도 있으며 이 경우 특유의 색상으로 인해 일반 실링 왁스와 다른 매력이 있는 대신 성분이 약간 달라서 일반 실링 왁스보다 훨씬 높은 온도에서 녹여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
[1] 현재도 일부 와인이나 증류주 병에는 실링 왁스를 쓰는 경우가 있다. 붉은 왁스로 유명한 메이커스 마크의 경우 사실 모양만 따라한 파라핀 재질이어서 부드럽게 잘 따지지만, 일부 유럽산 브랜디는 진짜 실링 왁스를 사용해 쓸데없이 끈적거리고 딱딱하기만 해 봉인을 뜯기 매우 불편하다는 평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경우 (불에 닿거나 왁스 범벅이 되어도 무방한) 커터칼 같은 싸구려 날붙이를 불에 달궈 왁스를 조심스럽게 자르면 된다. 와인오프너가 필요한 와인은 굳이 실링 왁스를 벗길 필요 없이 그냥 스크류를 꽂아 뽑으면 대부분 왁스가 깨지면서 코르크가 뽑힌다.[2] 만약 일반적인 편지를 쓴 사람이 당장 가지고 있는 실링 왁스 중 검은색밖에 남은 게 없어 어쩔 수 없이 검은색 실링 왁스를 사용한 경우, 편지 말머리에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이 예의였다.[3] 필수적인 재료는 아니나 더욱 편리하게 실링 왁스를 사용할 수 있다.[4] 실링 왁스를 녹일 수 있는 도구라면 무엇이든 괜찮다.[5] 심지에 붙은 불을 끄는 과정에서 녹은 실링 왁스에 찍어서 끈다.[6] 형태는 같지만 심지가 없는 심지형 왁스(?)도 있으며 이 경우 왁스에 직접 불을 붙이거나 불에 달군 실링 스푼에 대고 원하는 양이 될 때까지 녹이는 방식으로 사용한다.[7] 그을음이 생길 수 있으나 심지형을 사용하면 어느 정도의 그을음은 감수해야 한다.[A] 보통 15초가 적당하지만 왁스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9] 찍을 인장의 크기, 왁스의 농도, 당사자의 취향 등에 따라 양은 바뀔 수 있으며 심지형이나 글루건형 왁스를 뜨거운 스푼에 대고 녹여서 사용하는 방법도 가능하다.[10] 기포가 올라올 정도로 뜨겁게 가열하면 예쁜 형태가 나오기 힘들어서 대부분 권하지 않으나 본인 나름의 이유로 인해 이때까지 가열하는 소수파도 있다.[A] [12] 설정 온도 창에 녹색 불이 점등되면 충분히 녹았다는 이야기이다.[A] [14] 아무리 적게 마련한다 쳐도 열에 강한 인장과 실링 왁스, 왁스를 녹일 수단은 필수이며 형태나 퀄리티, 뒷정리 등을 생각하면 필요한 물건은 더 늘어난다.[15] 스푼에 열이 남아 있을 때 휴지 등을 이용해 조심히 닦아내면 되는데 이때 실리콘 스푼이나 실링 왁스용 주걱 등으로 미리 왁스를 긁어내면 닦는 과정에서 손실되는 양이 줄어든다.[16] 먼저 끼운 심지가 다 떨어져 갈 때쯤 다른 색을 끼워서 혼색 효과를 노리거나 뜨거워진 총구를 다른 왁스나 색연필 등에 대고 녹아서 묻은 것을 섞는 등의 방법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