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2-11 23:56:33

아놀드홍

파일:external/file.dailian.co.kr/news1282096953_216090_1_m.jpg
이름 홍길성
예명 아놀드홍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출생 1971년 12월 7일 ([age(1971-12-07)]세)
전라남도 목포시
신체 186.5cm, 90kg
자녀 아들 홍성호
소속 T.A Global
방송 데뷔 2010년 스토리온 '다이어트 워 시즌 4'

1. 개요2. 생애3. 기타4. 저서

[clearfix]

1. 개요

유튜브
인터뷰

대한민국퍼스널 트레이너, 기업가.

본명은 홍길성. 대한민국 퍼스널 트레이너 1세대 인물이고, 힐튼 그룹 최고급 호텔인 콘래드 서울의 마스터 트레이너 시절 최초로 시간당 교습료 55만원을 돌파했다. 현재는 롯데호텔 피트니스 프로 트레이너이자 T.A Global 대표이사로 재직중이다.

2. 생애

전라남도 목포시 출신으로 유도를 하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꿈꿨지만, 경찰공무원이었던 아버지가 일을 그만두면서 가세가 기울어 목포를 떠나 서울로 올라오면서 유도를 그만두었다.

서울로 넘어온 후 자신의 꿈이 사라지게 되자 나쁜 길로 빠져들었다고 한다.[1] 특히나 고등학교 때 씨름선수로 활약했는데 이때 허리 부상으로 씨름을 그만두고 정신적인 충격이 컸다고. 그러다 17살 때 국사 선생의 눈을 피해[2] 땡땡이를 치고 찾은 영화관에서 당시 친구들과 함께 시리즈를 보러 갔다가(!) 실수로 동시 상영했던 터미네이터를 보게 되었고 이때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몸을 보고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 그날 바로 헬스클럽에 등록해[3]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심상치 않다

이후 1988년에 보디빌더의 세계에 발을 들여서 2000년 어째 12년이나 걸렸다 Mr. 서울 헤비급 1위, 미스터 경기 선발대회 헤비급 1위, 미스터 서울 선발대회 01', 02' 1위, 2001 전국보디빌딩선수권 헤비급 1위, YMCA 전국 보디빌딩대회 1위, 2003년 서울시장배 보디빌딩대회 헤비급 1위 등 승승장구했는데 이때 아버지가 췌장암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우울증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신 바람에, 심신이 피폐해져 방황했다고 한다. 그러다 2004년에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보디빌딩을 할 때 운동한 곳으로 유명한 '월드 짐'이 일산신도시에 생겼는데, 이때 지인이었던 월드짐 아시아 지부 대표의 제안으로 트레이너로 입사하게 되었다.[4] 이때 "거기서 일하면 아놀드 슈워제네거 만날 수 있냐?"라고 물었고 대표가 "1년 안에 네가 이곳을 아시아 매출 1위로 만들면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만나게 해주겠다"라고 했는데 그말을 듣고 '미친 듯이 일만 해서' 아시아 매출액 1위를 달성시키고 미국으로 가서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만났다고 한다.

2006년을 끝으로 보디빌더에서 은퇴한 그는 T.A Global를 설립하고 아놀드홍짐의 대표로 있으며 팀 아놀드라는 단체도 운영중이다.

아놀드홍 몸짱&다이어트라는 다음팟에 영상을 올리고 있는데 헬스장에 가지 않아도 되는 운동들을 알려주고 있어서 유용하다. 그밖에도 100일 트레이닝은 계속 하고 있는 듯하며, 유튜브로 스트리밍을 통해 소통하는 모습을 보인다.

2016년 2월 동업자 정신을 저버린 상술 때문에 네티즌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지하에 있는 운동시설은 건강에 해롭다며 자신의 짐으로 오라는 광고전단을 뿌린 것. 관련기사. 그런데 정작 아놀드홍 짐 본점인 신촌도 지하에 있다는 점. 현재 위 내용의 전단을 뿌린 헬스장의 평점 상황은 나락으로 빠진 상태. 깨알같은 황우석은 덤 결국 아놀드홍이 부산까지 직접 찾아가서 무릎 꿇고 사과했다고 한다. 그 후 지점의 프로모션은 본사의 컨펌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2019년 2월, 국내 약투 운동의 주창자인 박승현이 로이더들의 집중공격을 받는 와중에 합방을 제안했다. 그러나 당시 약을 완전히 끊고 싶어하지 않았던 박승현과 그가 약을 끊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던 아놀드홍 두 사람의 컨텐츠와 관련한 입장 차이가 생겨서[5] 합동방송은 불발되었고, 박승현과 아놀드홍 사이에 약간의 신경전이 있었다. 그 와중에 아놀드홍이 약투 운동에 편승해서 이익을 보려는 것 아니었냐는 비판의 의견도 있었다. 아놀드홍은 박승현 대신 이미 약물을 끊어서 더 접점이 있는 김동현과 합방을 진행했다.

3. 기타

4. 저서



[1] 집에서 횟집을 했는데 단칸방에서 5식구가 같이 살았고 하루 용돈이 500원이어서 간식으로써 가장 배불리 먹은 적이 컵라면과 빵 한 조각 사서 면은 다 먹고 국물에 빵을 불려먹는 거였다고.. 하루 용돈이 500원이면 지금 기준으로 5,000원 수준이다 헬스 클럽에 등록할 돈이 있었으니 절대 배를 곯는 생활은 아니었을 것이다. 배를 곯았으면 키가 186까지 클 수도 없고 헬스 클럽에 갈 생각도 못한다. 하루 500원이면 한달 1만 5천원인데 80년대에 이 돈이면 상당한 액수다. 서울시 물가를 다룬 기사 중에는 83년 기준 짜장면이 천원이었다는 글도 있고, 91 서울데이터베이스연구소에 따르면 80년대 중반에 700원이었다가 91년이 되어서야 1,400원이 됐다는 말이 있어 엇갈리지만, 어쨌거나 아놀드 홍의 학창시절에는 천원이면 충분히 짜장면을 먹을만한 돈이었던 것이다. 5천원까지는 과장이 섞여있어도 어쨌건 이틀에 한번씩 짜장면을 먹을 수 있다면 학생용돈으론 넉넉하게 받는 편이다.[2] 나이가 많은 선생이어서 책상과 의자를 숨기면 못 알아챘다고 한다.[3] 그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그 헬스클럽이란 건 '관장형'일 가능성이 높다.[4] 아시아 월드짐 소속 보디빌더로 활약했으며 현재는 홍보대사로 있다.[5] 박승현의 입장은 나는 이미 약끊지 못할 정도로 갈만큼 갈 놈이니 나같이 되지마라라는 경고성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였지 자기까지 싸잡아 자신을 포함해 이미 약물하던 사람들을 강제로 약에서 손떼게 하려고 한 건 아니었다.[6] 운동선수들은 겉으로는 멀쩡해보여도 고중량으로 운동을 해서 디스크를 많이 겪는다. 그래서 실제로 의사들이 "운동선수가 아닌 이상 무리한 운동을 삼가라" 하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