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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1 18:21:49

아주화친회

1. 개요2. 결성3. 한계 및 의의
목적
‘제국주의에 반항하여, 아시아에서 주권을 잃어버린 민족의 독립달성’
회원자격
‘아시아인으로 침략주의를 주장하는 자를 제외하고, 민족주의·공화주의·사회주의·무정부주의자를 불문하고 모두 입회할 수 있다’
장빙린, 아주화친 회약장

1. 개요

아주화친회1907년 도쿄에서 결성되어 반제국주의를 내세운 동아시아 최초의 국제조직이다. 삼균주의를 내세워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던 경험이 있는 조소앙이 참여한 단체이기도 하다.

2. 결성

러일전쟁 이후 일본에서는 반제국주의 운동이 깊어지고 있었다. 당시 러일전쟁의 승리는 동양이 서양을 상대로 거둔 최초의 승리로 받아들여졌으며 이에 많은 사람들이 이를 계기로 동아시아가 서구의 압제에서 해방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1907년 중국의 혁명가였던 류스페이, 허전과 인도인 펄한이 중심이 되어 반제국주의를 목표로 내세운 아주화친회를 조직하였다. 첫 번째 회합에는 중국의 혁명가들과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던 아나키스트 운동가였던 고토쿠 슈스이 등이 참가하였다. 이후 열린 두 번째 회합에서도 베트남의 독립운동가인 판보이쩌우와 같은 네임드 인사를 비롯한 베트남인 유학생들과 필리핀인들이 참가하였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장빙린의 주도 하에 아주화친 회약장을 작성하였으며 제국주의자들을 제외한 모든 세력이 연대할 것을 주장하였다.[출처]

이후 베트남, 필리핀, 한국, 미얀마, 말레이시아 등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과 반제국주의자들이 계속해서 가입하면서 서구의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동아시아 국가들의 독립과 민족이 해방될 수 있기 위한 혁명연맹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들은 아시아의 연대와 사회혁명의 완수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내세웠으며 이를 위해 민족, 지역, 문명 등을 초월하는 연대가 꾸려져 아시아가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아주화친회는 본부를 도쿄에 두고 한국, 중국, 인도, 필리핀, 베트남, 미국 등에 지회를 설립하여 독립과 민족해방을 위해 노력하였다.[출처]

당시 일본에 유학하고 있던 한국인 유학생들 중에서도 일부가 아주화친회에 참가하였다. 당시 800명의 한국인 유학생들 중에서 대부분은 일본의 조선에 대한 병탈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일본인이 출석하는 회합에 참여할 수 없다고 하여 아주화친회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였지만 훗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요인이자 제2대 국회의원이 된 조소앙은 아주화친회에 참가하여 다른 동아시아 국가의 운동가들과 함께 연대하였다.[출처]

3. 한계 및 의의



[출처] 동북아역사넷[출처]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