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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아 공국 Principatum Achaeorum | ||||||||||||||||||||||||||||||||||||||||||||||||||||||||||||||||||||||||||||||||||||||||||||||||||
국기 | 국장 | |||||||||||||||||||||||||||||||||||||||||||||||||||||||||||||||||||||||||||||||||||||||||||||||||
■ 아카이아 공국 | ||||||||||||||||||||||||||||||||||||||||||||||||||||||||||||||||||||||||||||||||||||||||||||||||||
1205년 ~ 1432년 | ||||||||||||||||||||||||||||||||||||||||||||||||||||||||||||||||||||||||||||||||||||||||||||||||||
수도 | 안드라비다(1205~1249) 미스트라스(1249~1262) | |||||||||||||||||||||||||||||||||||||||||||||||||||||||||||||||||||||||||||||||||||||||||||||||||
위치 |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일대 | |||||||||||||||||||||||||||||||||||||||||||||||||||||||||||||||||||||||||||||||||||||||||||||||||
정치 체제 | 전제군주제 | |||||||||||||||||||||||||||||||||||||||||||||||||||||||||||||||||||||||||||||||||||||||||||||||||
국가 원수 | 공작 | |||||||||||||||||||||||||||||||||||||||||||||||||||||||||||||||||||||||||||||||||||||||||||||||||
언어 | 중세 프랑스어, 중세 그리스어, 라틴어 | |||||||||||||||||||||||||||||||||||||||||||||||||||||||||||||||||||||||||||||||||||||||||||||||||
종교 | 가톨릭 (국교), 정교회 | |||||||||||||||||||||||||||||||||||||||||||||||||||||||||||||||||||||||||||||||||||||||||||||||||
종족 | 프랑크인, 로마인 | |||||||||||||||||||||||||||||||||||||||||||||||||||||||||||||||||||||||||||||||||||||||||||||||||
건국 이전 | 앙겔로스 왕조 동로마 제국 | |||||||||||||||||||||||||||||||||||||||||||||||||||||||||||||||||||||||||||||||||||||||||||||||||
멸망 이후 | 팔레올로고스 왕조 동로마 제국 |
언어별 명칭 | |
라틴어 | Principatum Achaeorum |
프랑스어 | Principauté d'Achaïe |
그리스어 | Πριγκιπάτον Αχαϊα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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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204년 동로마 제국을 일시적으로 멸망시킨 라틴 제국의 공국. 모레아 공국으로도 불린다. 1224년까지 아테네 공국과 함께 테살로니카 왕국의 속국이었으며, 테살로니카가 이피로스 전제군주국에게 정복된 뒤에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2. 역사
1204년 5월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략하여 동로마 제국을 일시적으로 멸망시킨 뒤, 플랑드르의 백작 보두앵 1세가 라틴 제국의 초대 황제로 등극했다. 그 후 동로마 제국의 옛 잔재들은 십자군에 참가한 세력들에 분할되었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이피로스 일대와 두라초, 코르푸 등 에게 해의 여러 섬 지역을 가졌고, 라틴 제국은 콘스탄티노폴리스와 그 주변의 트라키아, 소아시아 북서부 지역을 가졌고, 몬페라토의 보니파시오 1세는 테살로니카와 마케도니아를 아우르는 테살로니카 왕국을 세웠다. 아테네 일대는 부르고뉴 기사단장 오토 드 라 로슈의 수중에 들어갔고, 펠로폰네소스 반도는 빌라루두앵의 조프루아 1세에게 할당되었다.조프루아는 휘하 병력을 이끌고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상륙하여 메세니아 지역 코로니의 통치자인 요안니스 칸타쿠지노스의 협조를 받아 아카이아와 엘라스를 정복하고 안드라비다와 파트라스 요새를 공략한 뒤 겨울을 보냈다. 그러나 1205년 요안니스 칸타쿠지노스가 사망한 뒤, 이피로스 전제군주국의 미하일 1세 콤니노스 두카스가 라틴인들을 몰아내고자 펠레폰네소스에 개입했다.
이에 조프루아는 테살로니카 왕국에 찾아가서 보니파시오 1세에게 그의 신하인 기욤 드 생리트를 보내달라면서 테살로니카 왕국의 속국을 자처하겠다고 맹세했다. 보니파시오는 즉시 수락하였고, 수백 명의 기사와 보병들을 이끌고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돌아간 두 사람은 코운투라스의 올리브 과수원에서 수적으로 우세한 미하일의 이피로스군을 격파하고 모레아를 공략했다.
먼저 스코르타에서 농성하던 독사파트리스가 1207년에 사망했고, 아크로코린토스 요새에서 항전하던 레온 스구로스마저 1208년 경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아크로코린토스는 이후 테오도로스 주교의 지휘하에 항전했지만, 결국 1210년 함락당했다.
이리하여 펠로폰네소스 반도 전역을 차지하게 된 아카이아 공국의 첫번째 공작은 기욤 1세 드 생리트였다. 하지만 1209년 조국인 프랑스로 돌아가던 중 사망했다. 기욤을 대신하여 공국을 다스리던 조프루아는 기욤의 사촌인 로베르가 새 공작이 되기 위해 프랑스에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공국을 독차지하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 이보다 앞서, 기욤은 조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자신이 사망할 경우 1년 1일 이내에 합법적인 상속인이 공작이 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영지가 몰수될 것이라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조프루아는 이걸 이용하기로 하고, 베네치아 공화국에 뇌물을 찔러서 베네치아에서 배를 타고 가려던 로베르를 2달간 붙들게 했다. 가까스로 출항한 로베르는 이후에도 온갖 훼방을 받았고, 결국 1년 1일이 지나자 조프루아가 공작에 올랐다. 뒤늦게 도착한 로베르는 강력히 항의했지만 대세를 뒤집지 못했고, 교황 인노첸시오 3세 마저 그를 인정하자 로베르는 어쩔 수 없이 보상금을 받는 대가로 공국을 포기했다.
이렇듯 교묘한 계략으로 공국을 손아귀에 넣은 조프루아는 공국을 잘 다스렸고, 요안니스 3세가 이끄는 니케아 제국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했을 때 6명의 봉신과 100명의 기사, 800명의 궁수와 함께 라틴 제국에 합류하여 방어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뒤이어 공작이 된 아들 조프루아 2세는 유럽에서 가장 공정한 통치를 하는 인물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는 수도 안드라바다에 조폐국을 설치하여 경제 부흥 정책을 실시했으며, 라틴 문학을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꽃피웠다. 이 시기에 제4차 십자군에 대한 귀중한 문헌 기록인 모레아 연대기가 출간했다. 이후 3대 공작으로 취임한 기욤 2세는 1249년 수도를 안드라바다에서 미스트라스로 이전했고, 1255년 에우보이아 섬을 놓고 베네치아와 전쟁을 벌였다.
1259년 니케아 제국의 미하일 8세에 대항하여 아케네 공국, 테살리아, 세르비아, 시칠리아 왕국, 그리고 이피로스 전제군주국과 연합했으나, 그해 9월 펠라고니아 전투에서 참패했다. 기욤 2세는 미처 도망치지 못하고 니케아 제국의 포로가 되었고, 1262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략하여 동로마 제국을 부활시킨 미하일 8세에게 미스트라를 비롯하여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대부분을 헌납하고 모레아의 데스포티스로서 동로마 제국에 충성을 바치겠다고 맹세하고 나서야 풀려났다.
하지만 그는 충성 서약을 철회하고 서유럽 국가들과 동맹을 맺고자 했다. 미하일 8세는 이를 응징하기 위해 이복 동생 콘스탄티노스 팔레올로고스에게 군대를 맡겨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파견했지만, 1263년 프리니츠 전투에서 패배했다. 아카이아 공국은 여세를 몰아 1264년 마크리플라기 전투에서 동로마 제국군을 다시 한번 격파했다. 그 후 1267년 교황청의 중재로 시칠리아 왕국의 제후국이 되었다.
1278년 기욤 2세가 사망한 후, 라틴 제국의 최후의 황제 보두앵 2세는 시칠리아 왕국의 도움을 기대해 시칠리아 국왕 앙주의 샤를 1세가 아카이아 공국을 직할령으로 삼는 걸 인정했다. 그러나 앙주의 샤를 1세와 아들 샤를 2세는 주변에 적이 너무 많아서 아카이아에 큰 관심을 보이지 못하고 단지 돈과 일부 병력만 보냈고, 빌하르두앵의 이사벨라가 1289년부터 남편 에노의 플로렌스와 함께 공국을 다스렸다. 1297년 플로렌스가 사망하자, 이사벨라는 1300년 사보이아의 필리포 1세와 결혼하여 공국을 공동으로 다스렸다. 그러나 1307년, 샤를 2세는 이사벨라와 그녀의 남편인 사보이아의 필리포 1세가 자신의 동의 없이 결혼했고, 필리포가 이피로스 전제군주국에 대한 시칠리아의 원정 때 지원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이사벨라의 지위를 철회했다. 샤를 2세는 자신의 아들인 타란토의 필리포 1세를 아카이아 공작에 대신 선임했다.
사보이아의 필리포 1세는 순순히 아카이아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포기했지만, 이사벨라는 그와 헤어진 뒤 공국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계속 주장하다가 1312년 1월 23일에 사망했다. 1313년 타란토의 필리포 1세가 사망하자, 이사벨라의 딸인 에노의 마틸다가 아카이아의 새 공작이 되었다. 그러나 기욤 2세의 막내딸인 마르그리트가 자신이 공위에 오를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였고, 나중에 마요르카의 페르난도와 결혼한 딸 이사벨라에게 자신의 권리를 양도했다. 페르난도는 마틸다가 아카이아 공국에 오지 않는 틈을 타 공국을 장악하였고, 페르난도와 이사벨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자크가 부친 사후 1315년과 1316년 사이에 아카이아 공국을 장악했다. 그러나 1316년 마틸다와 결혼한 부르고뉴의 루이에게 패배하고 축출되었다.
그 직후 루이는 사망하였고, 나폴리 왕 로베르가 개입하여 마틸다에게 자신의 동생인 두라초의 조반니와 결혼하라고 요구했다. 마틸다가 거부하자, 로베르는 마틸다를 나폴리로 강제로 끌고 간 뒤 수년간 협박을 가했다. 급기야 아비뇽의 교황에게 보내 결혼을 압박하게 했다. 그녀는 부르고뉴의 기사 위 드 라 팔리스와 이미 결혼했다며 거부했고, 로베르는 이를 빌미 삼아 1321년 마틸다를 공작에서 폐위시키고 동생인 두라초의 조반니에게 공국을 주었다. 아카이아 공국은 이 일련의 상황으로 인해 혼란스러웠고, 동로마 제국의 황족이였던 콘스탄티노스 아센[1] 이 틈을 타 1320년까지 공국을 압박하여 펠레폰네소스 반도의 상당수 지역을 공략했다. 조반니는 1325~1326년에 잃어버린 땅을 되찾기 위해 원정을 개시했지만 실패하였고, 이탈리아 반도로 돌아간 후 아카이아에 남아 있던 측근들을 통해 권력을 행사했다.
1333년, 조반니는 자신의 며느리인 카트린에게 공국의 권리를 양도했다. 하지만 아카이아의 지방 귀족들은 그녀에게 충성을 바치길 싫어했다. 카트린은 1338년 이탈리아 용병대를 파견해 귀족들을 복종시키려 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녀는 차선책으로 애인이자 재정 담당관인 니콜로 아차이올리에게 공국을 맡겼다. 1346년 카트린이 사망한 후, 공작 직위는 그녀의 의붓아들인 타렌툼의 로베르에게 넘어갔다. 1345년 니콜로는 로베르로부터 아카이아 공국의 중요한 요충지인 코린트에 대한 권리를 양도받았다. 1364년 로베르가 사망한 후, 나폴리 왕가는 내분에 휩싸였다. 로베르의 동생이었던 필리포 3세가 형의 뒤를 잇자, 로베르의 미망인인 부르봉의 마리아가 자신과 뤼지냥의 기(기 드 뤼지냥과 동명이인이다.)의 아들 위그를 왕위에 세우기 위해 아카이아 공국에서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두 세력의 갈등은 1370년 필리포 3세가 마리아와 위그로부터 공국을 사들이는 조건으로 종식되었다.
1373년 필리포 3세가 사망한 뒤에는 나폴리의 여왕 조반나 1세가 아카이아 공작이 되었고, 1376년 브라운슈바이크-그루벤하겐 공작 오토와 결혼한 뒤 남편과 함께 공국을 공동으로 다스렸다. 1377년, 조반나 1세는 아카이아 공국을 직접 통치하기 힘들다고 여겨 구호 기사단에게 위임했다. 그 후 구호 기사단은 1381년까지 그랜드 마스터 후안 페르난데스에 의해 아카이아 공국을 통치했다. 1381년 구호 기사단은 조반나 1세에게 공국을 반환하였지만, 그녀는 이때 두라초의 카를로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하고 체포된 뒤 감옥에 갇혀 죽어가고 있었다. 라틴 제국의 황제를 자칭하고 있던 레 보의 자크는 이 때를 틈타 나바라 용병대를 고용하여 아카이아 공국을 장악했다. 그는 3년만인 1383년 7월 17일에 사망했고, 나폴리 국왕 카를로 3세가 나바라 용병대로부터 아카이아 공작으로 추대되어 1386년 2월 24일 암살될 때까지 다스렸다. 이후 아들 라디슬라오가 나폴리 왕에 즉위하는 동시에 아카이아 공작을 겸임하였고, 1396년 라디슬라오가 사망한 뒤에는 나바라 용병대의 대장인 피에르 보르도가 공작이 되어 1396년부터 1402년까지 다스렸다.
1402년 피에르가 사망한 뒤엔 아내 마리아 2세 자카리아가 공국을 단독으로 통치했지만, 1404년 마리아의 조카 첸투리오네 2세 자카리아가 반란을 일으켜 마리아를 축출한 뒤 아카이아 공작에 취임했다. 그러나 동로마 제국의 봉신인 모레아 전제군주국의 침공으로 국운이 점점 기울었고, 1429년 찰란드리차에서 동로마 제국군에게 포위된 뒤 토마스 팔레올로고스와 자신의 딸 카트린이 결혼하여 부부의 자식을 후계자로 삼는 조건으로 풀려났다. 그 후 1432년 사망하였고, 아카이아 공국은 모레아 전제군주국에게 병합되었다. 이리하여 그리스 본토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라틴계 국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3. 역대 공작
- 1대: 기욤 1세 드 생리트 (재위: 1205년 ~ 1209년)
- 2대: 빌라루두앵의 조프루아 1세 (재위: 1210년 ~ 1229년)
- 3대: 빌라루두앵의 조프루아 2세 (재위: 1229년 ~ 1246년)
- 4대: 빌라루두앵의 기욤 2세 (재위: 1246년 ~ 1278년)
- 5대: 앙주의 샤를 1세 (재위: 1278년 ~ 1285년)
- 6대: 나폴리의 카를로 2세 (재위: 1285년 ~ 1289년)
- 7대: 빌라두두앵의 이사벨라 (재위: 1289년 ~ 1307년) + 에노의 플로렌스 (재위: 1289년 ~ 1297년) + 사보이아의 필리포 1세 (재위: 1300년 ~ 1307년)
- 8대: 타란토의 필리포 2세 (재위: 1307년 ~ 1313년)
- 9대: 마요르카의 페르난도 (재위: 1313년 ~ 1315년)
- 10대: 마요르카의 자크 (재위: 1315년 ~ 1316년)
- 11대: 위그의 마틸다 (재위: 1316년 ~ 1321년) + 부르고뉴의 루이 (재위: 1316년 7월 5일 ~ 1316년 8월 2일)
- 12대: 두라초의 조반니 (재위: 1321년 ~ 1333년)
- 13대: 카트린 (재위: 1333년 ~ 1346년) + 타란토의 로베르 (재위: 1333년 ~ 1364년)
- 공위시대 (1364년 ~ 1370년): 부르봉의 마리아 1세 + 뤼지냥의 위그 vs 타란토의 필리포 3세
- 14대 : 타란토의 필리포 3세 (재위: 1370 ~ 1373년)
- 15대: 나폴리의 조반나 1세 (재위: 1373년 ~1381년) + 브라운슈바이크-그루벤하겐 공작 오토 (1376년 ~ 1381년)
- 16대: 레 보의 자크 (재위: 1381년 ~ 1383년)
- 17대: 나폴리의 카를로 3세 (재위: 1383년 ~ 1386년)
- 18대: 나폴리의 라디슬라오 (재위: 1386년 ~ 1396년)
- 19대: 피에르 보르도 (재위: 1396년 ~ 1402년)
- 20대: 마리아 2세 자카리아 (1402년 ~ 1404년)
- 21대: 첸투리오네 2세 자카리아 (1404년 ~ 143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