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힐람

D-3
과거, 2차 마도대전 당시.

발터: 하하, 다음 생일에는 꼭 온달 님 좋아하시는 걸 준비할게요. 쑥떡이라든가, 약과라든가. 물론 그게 뭔진 잘 모르겠지만요. 그러고 보니 아힐람 님은 생일이 어떻게 되세요?

아힐람: 생일... 설명해라.

발터: 아, 태어난 날을 말하는 거예요.

아힐람: 태어나지 않았다. 생겨났다. 나는 인류의 의지. 인류가 나를 필요로 할 때 언제 어느 때고 생겨난다.

라우젤릭: 영원히 생겨나고 사라진다는 소리야?

아힐람: 그렇다.

라우젤릭: 그럼 예전 기억도 다 남아 있어? 그러니까 우리를 만나기 전의 기억들 말이야.

아힐람: 그건... ...남아 있지만 남아 있지 않다. 잊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억하는 것도 아니다.

라우젤릭: 야. 네 말이 더 어렵다, 지금.

아힐람: 미안하군...

이카테스톨: 그럼 생각나는 작은 것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하다 보면, 언젠가는 완전히 기억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아힐람: 작은 것?

이카테스톨: 네!

아힐람: ...작은 것.

브랜든: ...왜 날 보지?

라르곤: 어? 키 재보시려고요? 하하, 그런데 브랜든은 머리 만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렇지, 브랜든?

브랜든: ... ...

온달: 작은 것이라잖나, 작은 것.

브랜든: 주둥이.

라우젤릭: 생각난 김에 우리도 키 한번 재볼까? 헬가보다 내가 좀 더 큰 것 같지 않아?

헬가: 뭐? 네가? 한참 더 크고 와야 하지 않겠어?

라우젤릭: 우이씨! 잘 보면 내가 좀 더 크다니까? 아니면 누가 더 높이 뛰는지 재볼래? 어? 그건 내가 이긴다, 진짜로!

아슬란: 높이 뛰는 건 알카나스도 만만치 않지 않나?

알카나스: ... ...

아슬란: 이야!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다! 새벽부터 비가 올 것 같으니 이동도 못 할 텐데 격투기 대회 같은 건 어떠냐!

헬가: 어어, 네 몸부터가 반칙이세요.

아슬란: 나? 어... 그럼 나는... 한 손만 쓰겠다!

헬가: 어쭈? 너 지금 나 무시해? 내가 너한테 질 것 같다 이거야?

아슬란: 어? 아, 아니. 그, 그게 아니라...!

라우젤릭: 그럼 힘 안 써도 되는 운동회 같은 건? 예를 들면 노래자랑이나 댄스 경연 같은 거!

발터: 헤헤, 그건... 라우젤릭 님이 당연 우승 아니실까요?

라우젤릭: 으응, 자신이 없다 이거야? 우리 전.설.의.영.웅.께서?

발터: 그, 그거 계속 강조하지 마시라니까요!

알카나스: 이봐.

미리안드: ...

알카나스: 헬가가 감자를 구웠는데, 들겠나?

미리안드: 저쪽에 권해라.

알카나스: 너는 항상 그렇게 빠져나가니까. 조용히 있을 테니 어수선해질 걱정은 않아도 된다.

미리안드: 하지 않았다.

알카나스: 다행이군.

(플레이어 이름): 어푸풉... 어흑...

시프리에드: 무슨 일이죠?

아힐람: 물이 담긴 대야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구해줬다.

시프리에드: 네?

(플레이어 이름): 그, 그게 아니라...! 세수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힐람 님 때문에 놀라서 그만 고개를 더 깊게 넣어버린 것뿐이에요!

아힐람: ...위험한 상황이 아니었나.

시프리에드: 네. 사람은 세수라는 걸 해요. 물로 얼굴에 묻은 먼지나 여러 잔여물을 씻어내는 거죠.

아힐람: 그렇군... 미안하다.

시프리에드: 이참에 세수하는 방법을 배워보시죠. 자, 여행자는 다시 돌아갔군요. 얼른 따라가 보세요.

아힐람: 나는 씻을 필요가 없다.

시프리에드: 네. 그런데 씻는 이유로 몸을 깨끗하게 하려는 것 하나만 있지는 않아요. 따뜻한 물에 몸을 씻으면 기분이 좋아지죠.

아힐람: 그런가.

시프리에드: 그래요.

아힐람: 온달. 세수를 하지.

온달: 뭐?

아힐람: 깨끗해지거나 기분이 좋아지고 싶지 않나. 여기 좋은 방법이 있다는군. 같이 가지.

온달: ... ...

(플레이어 이름): 온달 님! 여기 제가 물 받아 놓았어요! 얼른 오세요. 제가 빡빡 씻겨 드릴게요!

온달: ...대체 뭔 소린지, 원. 그래. 간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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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
마왕의 기억

브란두흐: ... ... 이 기운은...

아힐람: 브란두흐 카디아라크.

브란두흐: !! 누구...! 왕성에는 어떻게 들어온 거지? 분명... 아무도 걸음 할 수 없도록 막았을 터.

아힐람: 나는 현재 너의 왕성에 있지 않다. 나는 너의 생각이 만든 하나의 표상에 지나지 않는다.

브란두흐: ...헛것이라도 본다는 소리군.

아힐람: 틀렸다. 나는 실재한다. 너의 바람이 나를 불러냈다. 인간, 무엇을 바라는가. 너는 이미 스스로 영혼을 가두어 모두를 구했다. 그럼에도 나를 불러낸 의도가 있나. 네가 구한 세상은 흘러가고 있으며, 그렇기에 네가 구할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브란두흐: ... ...

아힐람: 인간, 답하라.

브란두흐: ...한밤 꿈을 꾸는 것이든, 무용한 환영을 보는 것이든. 어느 쪽이든 마주하고 싶지 않다. 꿈이라면 깨어나 절망스러운 현실의 바다에서 헤엄치게 하고, 환영이라면 이만 내 눈을 가린 그림자의 장막을 거두도록. 짐은... 지쳤다.

아힐람: ...기다림은, 언제까지?

브란두흐: ...영원히.

아힐람: 인간의 삶은 영원하지 않다.

브란두흐: 말하지 않았나. 짐은 영혼을 스스로 가두어 모두를 구했다고. 그에 대한 보답인지, 형벌인지. 짐은 이 심연에서 나갈 수 없다.

아힐람: ...바라는 것은?

브란두흐: 없다.

아힐람: 아니, 있다. 그것이 없다면 너는 나를 불러내지 못했다.

브란두흐: ...그래. 짐과 뒤섞인 놈들을 소멸시켜 줄 텐가?

아힐람: 가능하다. 하지만 하지 않을 것이다. 강제로 그릇이 된 너만이 남고, 그들이 소멸한다면 불완전한 네 존재가 현재의 세상에 종말을 불러올 것이다. 나의 목적은 오직 하나, 인류의 수호. 인류의 보전에 해가 되는 것은 모두 제거한다

브란두흐: 그렇다면 간단하지 않나. 짐의 존재를 지우며 이 안에 갇힌 것까지 한 점의 부피조차 남기지 않고 없애다오.

아힐람: 너는 인간이다. 나는 인류에게 해가 될 짓은 하지 않는다.

브란두흐: 짐을 돕겠다는 미명하에 이리 성가시게 굴면서도, 동시에 짐이 바라는 것은 들어줄 수 없다라.

아힐람: ... ...

브란두흐: 짐에게 너의 말을 더 들어줄 용의가 남아 있다 여기나. 아량에도 한도가 있는 법.

아힐람: ...그런가. 너를 도와줄 수는 없겠군.

브란두흐: 그래.

아힐람: ... ...

브란두흐: 슬퍼 마라. 이 또한 짐의 운명이라면 마땅히 짊어질 것이니. 그것이 짐의 사명이고, 스승의 뜻이라면... ...기필코.

아힐람: 나는 인류에게 해가 될 짓은 하지 않는다.

브란두흐: ...그래.

아힐람: 다시 눈을 감으면 너에게 각인된 나의 존재는 잊혀질 것이다. 너는 영원한 삶을 얻었으니 언젠가 또 만난다 해도, 우리는 서로를 모를 것이다.

브란두흐: 우리?

아힐람: 그렇다. 나 역시 너의 심상에서 벗어나면 그대로 기억을 덮는다.

브란두흐: 덮는다라... 잊혀지는 것은 아니군.

아힐람: 그러니 인류에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너에게 축복을 내려주겠다. 누군가는 반드시 너를 찾아올 것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너를 구할 것이다. 빛은 누구도 외면하지 않는다. 희망의 얼굴은 언제나 너일 것이다. 그러니... 살아내라.

브란두흐: !!

살아남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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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
혼돈의 기억


아힐람: 체자렛 알티온.


아힐람: 인간, 무엇을 바라는가.

체자렛: 바라는 것이라... 저를 위해서인가요, 아니면 모두를 위해서?

아힐람: 너는 인류에 속한다. 나는 인류의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에서 생겨난다. 너는 무엇으로부터 살아남으려 하는가.


아힐람: ... ...

체자렛: 어머나, 들으셨나요?

아힐람: 네 안에 있는 것이, 인류에 반하는 자인가.

체자렛: 글쎄요. 이 분은 제게 더할 나위 없이 상냥하실 따름인데.

아힐람: 살아남고자, 살아내고자 하는 의지가 나를 불러낸다. 인류를 제하려는 이를 품고 있다면 너는 무엇으로부터 살아남으려 하는가. ...혹, 그자에게서 벗어나려는 것인가. 그렇다면 내가 너를 돕겠다. 너를 그자로부터 해방되게 해주겠다.

체자렛: 싫은데.

아힐람: ... ... 나는 수없이 많은 생을 거듭한다. 인류가 바라는 대로 생겨나고, 인류가 바라지 않으면 사라진다. 이 순환을 처음 시작한 자가 네 안의 그자를 만들어낸 이라는 것을 안다. 우리는 영원히 함께 하나 동시에 영원히 함께 갈 수 없는 존재. 우리는...

체자렛: 희망과 절망. 구원과 파괴. 빛과 어둠.

아힐람: 그렇다. 그러니 나에게도 기회를 주도록.

체자렛: 어떤 기회?

아힐람: 너를 구할 기회.

체자렛: ... ...


체자렛: 고맙지만 사양하겠어요. 저는 이제부터 아주 재미있는 일을 해볼 참이거든요. 제 안에 계신 분께서 몇 마디 일러주셨지만, 그다음을 스스로 꾸려보는 것도 훌륭한 도구의 소임이겠죠. 그렇지 않나요? 당신 역시 착해... 빠진 도구로서 그 정도는 해볼 수 있을 텐데요.

아힐람: 나의 바람은 모두 인류가 원하는 것이다.

체자렛: 인류의 도구라는 뜻이겠네요. 그거 아시나요? 도구는, 언제든 부서질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

아힐람: 안다.

체자렛: 그럼 이것도 아시겠군요. 도구는 본인이 어떻게 쓰이든, 잔말 말고 따라야 한다는 것.

아힐람: ... ...

체자렛: 어느 때에는 당신이 인류를 멸하는 도구로 쓰일 수도 있겠지요.


아힐람: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인류에게 해가 될 짓은 하지 않는다. 그 욕망은 개인이 가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나를 그리 쓰려 한다면 나는 그보다 더 큰 대의를 생각할 것이다.

체자렛: 덤벼 보기라도 하겠다는 건가요?

아힐람: 그렇다. 나는, 너희 모두를 수호한다.

체자렛: ... ... 후후, 알겠어요. 그럴 일은 없길 바라죠. 일단 지금은 제가 당신에게 도움을 청할 일이 없군요. 다음에 제가 당신을 간절히 바란다면 그때는 외면하지 말아 주시겠어요? 예를 들어... ...제국을 건설한다든가.

아힐람: 인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체자렛: 다정도 하셔라.

아힐람: 무엇으로부터 살아남으려는지는 알려주지 않나.

체자렛: 네. 그건 저도 모르는 걸요.

아힐람: 알겠다. 너에게 지지 않는 태양의 축복을 내려주겠다.

체자렛: 아아, 따뜻하군요. 고마워요.

체자렛: ... ... 이제 가실 건가요? 제가 대신 들려 드린 이야기가 당신으로 하여금 흥미로웠을지 모르겠군요.

체자렛: ... ... 후후, 그런가요? 재미있으셨다니 다행이에요. 저도 덕분에 나중에 해볼 재미있는 놀이를 떠올릴 수 있었답니다. 피차 바쁠 테니 이만 끝내도록 하죠. 참, 이걸 물어본다는 걸 잊을 뻔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