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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문제/사상별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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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무신론/악신론3. 다신교4. 일신교

1. 개요

악의 문제에 대한 사상별 입장을 정리한 문서.

2. 무신론/악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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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신론 및 악신론' 단락명에 '이신론'을 추가하지 않는다.
  2. '악신론적 답변의 단순성을 묘사하는 일러스트레이션'[1]을 유지한다.
  3. '무신론 및 악신론' 단락에서는 다신론에 관한 서술을 축소한다.
  4. <사피엔스> 인용을 유지한다.
  5. 악의 문제와 신의 유무를 완전히 별개라고 서술하지 않으며, 다만 조금 다른 문제라고 서술한다.
  6. '관련 문서' 단락에서 '교수와 학생' 문서에 대한 링크를 제거한다.
}}}}}}}}}

'악의 문제'가 신의 절대성을 부정함으로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기 때문에 이게 전적으로 무신론에 치중된 문제로 생각하기 쉽지만, 정확히는 세상에 악이 존재하기 때문에 전지전능하고 지선한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모순이기에 전지전능하며 지선한 신은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이지 신 자체가 존재하진 않는다.라는 의미는 아니다. 데이비드 흄의 역설을 인용하자면, 전지하지 않거나, 전능하지 않거나, 또는 지선하지 않은 신이라면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 즉 악의 문제는 신의 존재 증명과는 조금 다른 문제이다.

일례로 신은 존재하지만 신은 세계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신론적 발상은 악의 문제와 전혀 모순되지 않으며,전지전능한 신이 사악한 악신이라고 주장하는 악신론에서도 지선이 포함되지 않으므로 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되진 않는다. 신에게 의지가 없거나 선하지 않은 경우이기 때문이다.
이신론자들에게는 악을 설명하기가 쉽다. 착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세상이 전지전능하고 완벽하게 선한 신에 의해서만 통치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독립된 악의 힘이 돌아다니고, 악의 힘은 나쁜 일을 저지른다. 이신론자의 견해에는 나름의 단점이 있다. 악의 문제를 풀어주기는 하지만, 질서의 문제 앞에서 당황하게 한다. 만일 세상을 유일신이 창조했다면, 세상이 이토록 질서가 잘 잡히고 모든 것이 동일한 법칙을 따르는 현실이 분명하게 설명이 된다.
그러나 만일 세상에 두 대립되는 힘인 선과 악이 있다면, 둘 사이의 싸움을 관장하는 법칙을 정한 존재는 누구인가? 두 나라가 싸울 수 있는 것은 둘 다 똑같은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인도의 목표물에 명중할 수 있는 것은 양국에서 동일한 물리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만일 선과 악이 싸운다면, 이들이 따르는 공통의 법칙은 무엇이며 그 법칙은 누가 정했는가?
요약하면, 일신론은 질서를 설명하지만 악 앞에서 쩔쩔맨다. 이신론은 악을 설명하지만 질서 앞에서 당황한다. 이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논리적 방법이 하나 있다. 온 우주를 창조한 전능한 유일신이 있는데 그 신이 악한 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신앙을 가질 배짱이 있는 사람은 역사상 아무도 없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존재하는 유일한 신이 악신이라고 가정하면 악의문제가 해결되지만, 일신교에서 유일한 신앙을 악으로 주장할 수 있는 종교가 지금껏 없으므로 우리는 그런 종교를 알지 못 했다는 대답을 내놓았다.[2] 세상에 악한 유일신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이 생각은 "악신론"(dystheism/maltheism)이라고도 불리곤 한다. 만일 악신론이 옳다면, 선은 악의 지속과 번성을 위해 사육되는 일종의 가축에 불과하게 된다.

실제로 악신론의 관점에서 천국과 지옥, 권선징악에 대해서 존재나 기준은 있으나, 그 기준이 신의 변덕에 의해 바뀔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즉 기준에 따라선 지옥에 갈 악인이 신의 변덕으로 천국에 갈 수도, 반대로 선인이 신의 변덕으로 지옥에 갈 수도 있다는 것. 극단적으로는 이 세계 자체가 인간이 사육장의 벌레를 관찰하듯 신이 그들을 관찰하고 가지고 노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본다. 당연하겠지만 이런 신앙이 제대로 이루어질리도 없으니 유발의 주장대로 여태껏 유일신적 악신 신앙이 없을 수 밖에 없다.[3]

물론 존재하는 신이 지선하지 않거나(이신론/범신론, 악신론) 전능하지 않다는(일부 다신론) 해답 이외에도, 아예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신론적인 발상으로도 악의 문제의 모순이 해결되기 때문에 무신론자들이 무신론을 주장하게 되는 근거 중 하나로 이용되기도 한다.

3. 다신교

파일:problem_of_evil_mental_gymnastics.png
유일신 종교인 기독교악의 문제 변증에 대한 다신론적 답변은 가장 자명하면서도 일반적인 해로 제시될 수 있다.
사실 다신교 입장에선 신경쓸 가치도 없는 문제다. 기본적으로 다신교의 신들은 단독으로선 전지전능하지 못한 인격신이 많고,[4] 각 역할에 걸맞은 성향이나 행동을 하므로 악한 행동을 부추기는 악신과 선한 행동을 부추기는 선신이 별개의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 끝난다.

다른 관점으로는 '아직' 세상의 질서가 정립되고 있는 과정이라고 보는 종교에서는 더더욱 의미가 없다. 이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결과적으로는 절대적 선이 존재하는 세계가 이루어지나, 단지 지금은 아닐 뿐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힌두교가 이에 속한다.[5][6]

그 외에 조로아스터교앙그라 마이뉴이집트 신화아포피스 같이 선신에 맞먹는 능력을 지닌 순수한 악을 증명하는 악신이 있는 종교면 세상에 존재하는 악은 악신 탓이라고 돌리면 되므로 '악의 문제'가 먹히지 않는다. 조로아스터교에 따르면 아후라 마즈다가 앙그라 마이뉴에게 3,000년에 한 번씩 선과 악의 싸움을 하자며 이긴 쪽이 세상을 지배하자고 제안했는데 그 때가 세상이 창조된 후 3,000년 뒤였고 그래서 다시 3,000년 뒤에 첫 번째 대결, 또 그 3,000년 뒤에 두 번째 대결, 그리고 그로부터 또 3,000년 뒤에 마지막 대결이 벌어진다고 한다.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이 마지막 대결이 벌어지던 그 때 조로아스터가 태어났다고 말한다. 즉, 현세는 선과 악의 대결이 끝나지 않은 상태라고 주장하는 것이 조로아스터교의 교의의며, 이를 간략화한다면 앙그라 마이뉴조차 절대신의 피조물이며 악은 옳지 않은 것이기에 언젠가는 사라질 운명이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 악은 남아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아포피스의 경우는 의 쌍둥이[7]로 악신이기는 하나 라와 괴수물을 찍는 등 단편적인 묘사만 존재하기에 앙그라 마이뉴나 사탄과는 양상이 다소 다르다.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의 사탄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나, 앙그라 마이뉴, 아포피스와 달리 사탄과 야훼는 이원론적으로 대립하는 맞수 관계가 아니다.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에서 야훼는 유일신이며 만물의 창조주이자(빛이 있으라) 지고지선한 존재이며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다. 즉, 사탄과 악마도 야훼의 일개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욥기에서는 사탄이 야훼의 허락 하에 욥에게 재앙을 안겨주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는 종교에서 말하는 만물을 초월한 야훼의 권능을 잘 묘사한 부분으로 꼽히지만 결과적으로는 훗날, 후술하듯 지선한 신이 악이 발생하도록 방관하느냐, 스스로 나서 악을 창조했느냐?라는 모순을 남기게 되었다.

물론 다신교 문화권에서 악의 문제에 대한 화두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문서 상단에 기재된 사마천의 사기부터가 중국 신화를 기반으로 한 한나라 시대의 저작물이며 중국 신화 역시 다신교를 모태로 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 역시 '악이 존재하는 것은 신이 악을 없앨 수 없거나 없애려고 하지 않아서이다.'라는 논지를 통해 악의 문제에 대한 화두를 제시했다.

그러나 동양에서 논하는 '천도'란 전능하지도 않고 비인간적인 추상적 개념이기 때문에 후술할 "악이라는 것은 인간의 관점일 뿐, 신(천도)의 관점에서는 악이 아닐 수 있다" 라는 변론이 가능한지라 사마천 역시 "천도가 옳은가? 그른가?"라는 열린 결말로 문단을 끝맺을 뿐 끝내 결론을 내리진 못했다. 애당초 동양권에서도 사마천이 논한 백이와 숙제를 마냥 좋은 사람으로 보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으며, 주나라를 등졌다면서 주나라의 고사리는 먹느냐? 결국 현실에서 충성을 다하거나 백성의 구제를 위해 애쓰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죽어버린 인물 아니냐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노자에서 천도를 논할 때 '착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지만, 그 착하다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전쟁에서 사람을 많이 죽인 사람이 있다고 했을 때, '천하를 평정해 장기적으로 민족의 번성과 안녕을 가져다 주었다 한다면 그를 마냥 '나쁜 사람'으로 취급할 수 있는가?', 반대로 '압제자에게 대항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항을 포기하고 자기 자신의 충절을 지키겠다며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을 '착한 사람'으로만 볼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은 인류 역사상 꾸준히 제기되어 온 의문이고, 시대에 따라 역사상의 인물들이 재평가되는 원인이 되었다.

에피쿠로스의 논지의 경우 당시 그리스인의 종교의 밑바탕이었던 그리스 신화의 특징을 감안해보면 앞뒤가 맞지 않다고 볼 여지가 있었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분명 초월적인 존재들이기는 하였으나, 각자 관장하는 분야가 일단 달랐으니 전지전능과는 거리가 한참 먼 신들이었다. 일단 스틱스 강의 맹세를 깰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운명의 세 여신 앞에서는 제우스도 한 수 접어야 했으며, 명색이 올림포스 12신데메테르조차 '저승의 음식을 먹은 자는 저승에 머물러야 한다'라는 저승의 법도를 물리지 못해서[8] 딸인 페르세포네가 일정 기간 저승으로 가는 것을 보고 있어야만 했다. 가장 극적인 부분은 기간토마키아헤라클레스에 관련된 부분으로, 그리스 신들조차 스스로의 힘으로는 기가스를 이길 수 없어 인간의 힘을 빌려야만 했다. 그 외에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인간 세상을 반영한 것마냥 막장스럽고 모순적인 행보를 상당히 보이기도 하는 데다가[9] 세상의 악을 없애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지만[10], 기본적으로는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4. 일신교

하지만 악의 문제는 전지전능하고 지선한 유일신을 숭배하는 일신론에서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된다. 일단 위에서 서술했듯이, 사실 악의 문제는 신이 전지하지 않거나, 전능하지 않거나, 지선하지 않거나 중 하나만 인정돼도 모순이 매우 간단하게 해결된다. 하지만 이러한 일신론 계열 종교에서 신이 전지하지 않거나, 전능하지 않거나, 선하지 않은 존재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이단의 발상에 가까우므로 이러한 결론을 피하고 있다. 전지하지 않고 전능하지 않으며 지선하지 않다는 주장만으로도 문제일 지언데, 아예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전지전능하고 지선한) '신이 있다면 하나뿐'이라는 생각이 고정되어 있는 일신교인일수록 오히려 아예 신을 부정하는 무신론으로 선회하기가 쉬워서[11] 이 때문에 실제로 이 악의 문제에 대해 '무신론의 암초(the rock of atheism)'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이다. 악의 문제가 신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들, 전능하고 지선한 유일신이 존재할 수 없다는 모순 자체가 신에 대한 회의감을 유발하기 좋은 요소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신교 중 최대 세력을 자랑하는 아브라함 계통의 유일신교유대교·기독교·이슬람에서 난제로 유명하다.

수많은 이단의 발생 역시 악의 문제와 관계가 깊다.[12] (기독교)영지주의는 악의 문제 때문에 구약 유대교의 야훼와 신약의 예수 또는 하느님을 상반된 존재로 보았다. 영지주의나 이에 영향을 받은 교파는 악의 문제를 방치하는 전자를 잔혹한 악신(악마) 또는 무능한 선신 등으로 취급하고 숭배를 거부하곤 했다.


[1] 파일:problem_of_evil_mental_gymnastics.png를 의미함[2] 근접한 신앙을 굳이 꼽자면 기독교 교회사 중 마르키온주의카타리파 같은 사상들이 있기는 하나, 주요 기독교에선 당연하게도 이단으로 선언되었으며, 모종의 이유로 이단심판을 하는 정통교회 입장에서 쓴 주장들 외에는 남아있는 사료가 별로 많지 않다. 또 이들의 사상 자체가 출생주의 지향적도 아니었기에 세대가 이어져도 오래가지 않은 것 자체는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3] 물론 이에 대해선 해석이나 관점 여부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실제로 메소포타미아 신화, 페나키아 신화, 아즈텍 신화나 이 신화들로부터 비롯된 인신공양등은 모두 현대 윤리적 관점에서 보자면 '악신'이라 불릴만한 신앙임에도 해당 지역에서는 평범하게 신성시되었다.[4] 당장 북유럽 신화는 신들의 왕이라는 오딘조차 운명에서 벗어나려는 행동 자체가 그 운명에 포함되어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스 신화의 주신 제우스도 어릴적엔 아버지에게 먹히기도 했고, 인격적으로나 능력적으로나 여러번 고초를 겪은 적이 많다. 아예 아일랜드 신화에선 타 종족의 침입이나 신들끼리의 내분으로 다치거나 죽는 경우도 있다.[5] 정확히는 힌두교의 신 시바는 폭력적이며 권능의 발현 과정에서 수많은 파괴와 파멸, 혼란을 초래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파멸을 거침으로서 창조가 이루어진다.를 주장하기 때문에 시바의 행위또한 절대적 선을 위한 '불가피한 희생'으로 본다. 힌두교 내부적으로 보자면 비슈누 브라흐마 교도들은 '시바의 파괴행위가 너무 지나치기 때문에 두 주신이 수습하기도 힘들어 아직 완전한 세계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반대로 시바 교도들은 '두 주신의 능력이 부족하여 시바의 파괴를 따라잡을만큼 창조를 행하지 못해 아직 완전한 세계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라고 본다. 공통적으로 이들의 결과는 동일하나 그 결과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을 반대측 신의 성격or능력적 결함으로 보는 것.[6] 그리고 힌두교 같은 경우에는 세상에는 칼파라는 4단계(완전히 선한 시대인 크리타 유가, 조금씩 사람들이 악에 물들어가는 시대인 트레타 유가, 선과 악이 균형을 이룬 시대인 드와파라 유가, 선이 완전히 무너진 시대인 칼리 유가)가 있으며 선이 완전히 무너진 시대에 세상의 파괴가 일어나고 그 후에 다시 창조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7] 혹은 탯줄, 그림자 등으로 묘사되는 등 아포피스의 표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유형이 존재한다.[8] 상대가 같은 올림포스 12신이며 강력한 힘을 가진 명부의 제왕 하데스였긴 했지만, 제우스를 포함한 올림포스 12신의 대다수가 데메테르의 편을 들고 있던 상황이어서 힘이 꿀리는 상황은 아니었다.[9] 대표적 사례가 트로이 전쟁으로, 신들이 편을 갈라 자신이 지지하는 진영을 도와주고, 상대 진영을 엿먹였다. 결국 신과 영웅들의 시대가 가고 로마의 시대가 오게 된다.[10] 제우스티폰을 잡고, 아폴론피톤을 잡은 것이 대표적이다.[11] 역사학자 스티븐 헨리 로버츠(Stephen Henry Roberts)는 '나는 믿는 신의 수가 (기독교인보다) 하나 더 적을 뿐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12] 신학자가 세속 윤리 규범과 경전 텍스트의 합치를 시도할 때 어떻게든 둘이 조화를 이루도록 텍스트를 비유 등으로 꼬아 해석하려 들면 이단에 빠지기 쉽다. 말이란 것이 결국 하기 나름이라, 어떤 경전 내 문장이 납득이 안 간다고 해서 대안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하면 다른 문장도 다 그렇게 바꿔 해석할 수 있게 되고 직관적인 정규 해석이 무의미해진다는 것은 문자주의의 핵심 논리이기도 하다. 이러한 내적 갈등을 적당선에서 넘기면 이단까지는 가지 않지만, 도저히 넘기지 못하면 이단이 되는 것이다. 이때 다른 텍스트를 다 꼬아 해석하더라도 구세/내세 신앙만은 포기하지 못하면 그대로 이단자로 굳어지게 되고, 그것까지 포기하게 되면 불신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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