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4ecd5><colcolor=#015566> 안영나 安泳娜 | Ahn Young Na | |
출생 | 1961년 7월 16일 ([age(1961-07-16)]세) |
서울특별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미술가 |
학력 | 서울교동초등학교 덕성여자중학교 서울예술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동양화과/석사) |
가족 | 아버지 안화용(安華鏞, 1929~2016), 어머니 강신정(姜信貞, 1933~2010) 사이 1남 2녀 중 둘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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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영나(Ahn Young Na,安泳娜,1961년 7월16일~)는 한국인에게 가장 위로가 되고 한국인의 서정적인 감성을 필묵색(筆墨色)으로 표현하는 한국화 화가이다.2. 생애
(위)아버지 안화용, 어머니 강신정 여사.(아래 왼쪽부터)조지메이슨 대학교 알링턴 캠퍼스 갤러리 전시참여, 면천에 수묵 ‘Flower No Flower’한국적 작품발표, 2001. 서울예고 졸업식 후 어머니와 함께 교정에서, 1980. 서울대학교 대학원 졸업 때, 왼쪽 어머니와 안영나, 이모 강신희 여사(1925~2011), 1986. 왼쪽은 평생 소외계층에 인술을 베푸셨던 이모부 남궁윤 박사(전 청주남궁병원장,1922~1998), 이모와 안영나 대학졸업 때, 1984. |
안영나 1961년 7월16일 저명한 정형외과 전문의였던 아버지 안화용( 安華鏞, Ahn Wha Yong, 1929~2016 )과 어머니 강신정(姜信貞,1933~2010) 사이 1남2녀 중 둘째로 서울에서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다. 서울교동초등학교, 덕성여중, 서울예고를 졸업하고 1980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 입학하였다.
할아버지 안재학(安在鶴)은 경도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졸업 후 베를린대학 유학생으로, 이후 연희전문 교수를 역임했는데 한국양화(洋畫) 개척자인 설초 이종우(李鍾禹,1899~1981, 동경미술학교졸업)화백과 절친한 친구였다. 안재학 친형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민세 안재홍(民世 安在鴻,1891~1965)으로 안영나는 조카 손녀인데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글을 보고 집안에 애국자가 계시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안영나는 대학시절 심경 박세원(心耕 朴世元), 산정 서세옥(山丁 徐世鈺), 노석 신영상(老石 辛永常), 백계 정탁영(白溪 鄭晫永), 일랑 이종상(一浪 李鍾祥)교수에게 지도받았고 한국화의 현대화에 주력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게 된다. 대학원에서 중국청나라화가 팔대산인(八大山人)연구로 석사 받았다. 안영나는 충북청주 서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1992~)이다. 1986년 결혼 했으며 슬하에 1남1여를 두었다.
3. 년대별작품영상
4. 작품세계 발자취
(위 왼쪽부터)=단면-자연으로부터(바위산수), 162×97㎝ 한지 먹 채색, 1987. 인물연구-노인군상, 162×97㎝ 한지 먹 채색, 1987~1988. 삶에서-풍경, 167×332㎝ 한지 먹 채색, 1995. 삶에서-풍경, 167×332㎝ 한지 먹 채색, 1995. 단면-자연으로부터, 140×190㎝ 화선지 수묵 채색, 1990. (아래 왼쪽부터)꽃에서-풍경, 295×211㎝ 한지 먹 채색, 1991. 삶에서-풍경, 가산화랑 설치, 1997. 꽃에서-풍경, 162×130㎝ 한지 먹 채색, 1999. |
◇한국화의 현대적 모색(1980~1989년)
안영나는 대학원시절 팔대산인(八大山人), 석도(石濤) 등 중국회화론 및 조선후기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 우봉 조희룡에 이르기까지 한국미술사에 몰두했다. 한국화의 새로운 표현기법을 통해 ‘나만의 한국적표현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뇌했다. 금석학(金石學)의 탁본 및 전각기법에 따라 화법을 다양하게 운용하였다 “흉중일기 사의(寫意)와 간명직절(簡明直截)한 운필을 이념으로 하는 팔대산인 예술은 문인화(文人畫)의 확장을 이루었다. 그의 예술이 근대적인 화풍에 육박하고 있지만 백묘법(白描法), 선묘적(線描的) 수묵풍(水墨風)으로써 문인화 본래전통으로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독창성이란 어떤 의미에서 전통성과 상용할 수 있고 그 사이에 조화를 나타내는 것이 주요한 과제다.[1]”
◇한국화의 종합적 인식(1990~1996)
단면-자연으로부터, 자연과 인간-삶에서, 삶에서-풍경 등의 연작을 발표하면서 한국화를 지필묵(紙筆墨)의 종합시각으로 인식한다. 번짐 기법을 구사하고 특히 우향 박래현(雨鄕 朴崍賢)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 “한 화면에서 동시에 보이는 여러 시점에서의 시각들이 있다. 자연을 자신 생각 속으로, 기법의 형식적 일치감 속으로 끌어들여 또 다른 형태의 자연과 조형의 의미를 차분하게 꾸려가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2]” “안영나 작가 화면은 가득한 선묘와 긁어내기. 덧칠하기 등으로 빽빽하다. 이러한 묘법과 새로운 안료 도입을 곧 꼴라주라는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합착목판을 조각도로 파내면서 형상을 드러내고 채색을 가하기도 한다.[3]”
◇우리 삶과 전통의 현대화(1997~2002)
삶에서-풍경, 꽃에서-풍경 연작은 한국화전통산수를 현대화하여 우리 삶과 연결한 작업으로 화훼절지를 대형화면에 월 페인팅(Wall Painting)하였다. 오방색(Obangsaek) 중 청(靑)을 먹 대신 활용하여 현대화에도 기여하였다. 또 버려진 박스에 장난감, 미술재료, 도자기 등을 부착하여 박스설치풍경으로 재해석하였다. “안영나 작가는 대형화폭에 꽃을 테마로 작업을 하였다. 자신의 고유한 기법에 ‘안개 속에 대나무’를 천재적 필치로 한 번에 그려 낸 청대화가이자 양주팔괴(揚州八怪) 한사람인 이선(李鱓, Li Shan, 1686~1761)의 대담함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4]” “나무박스를 하나의 화면, 여백으로 받아들이고 그곳에 선과 색, 물질들을 삽입하거나 자신의 자연, 삶에 대한 인식들의 이미지로 채워 넣는 것이다.[5]”
1999년 폴록-크래스너 재단(Pollock-Krasner Foundation)에서 그랜트(Grant)를 받았다. 2000년 미국의 저명한 ‘작가레지던시 프로그램(Artist Residency Program)’인 야도(Yaddow)에 초대받았다. 2001년 조지메이슨 대학교(George Mason Universiry, 버지니아주)에 교환교수로 참석하였다.
(위 왼쪽부터)Flower No Flower(꽃인가 꽃이 아닌가), 270×165㎝ 한지 먹 채색, 2010. Flower No Flower, 70×140㎝ 한지 먹 채색, 2010. Flower No Flower, 190×136㎝ 한지 먹 채색, 2007<서울시립미술관소장>. (아래 왼쪽부터)=Flower No Flower-꽃과 인생, 120×240㎝(×4) 면천에 혼합재료, 2012~2013. Flower No Flower-사계, 120×240㎝(×4) 면천에 혼합재료, 2012. |
◇먹·아크릴 구상·추상의 융합(2003~2010)
‘꽃에서-끝없는 도전’, ‘Flower No Flower(꽃인가 꽃이 아닌가)’연작을 통해 본격적으로 먹·채색, 구상·추상 등, 동·서를 융합하게 된 시기이며 꽃을 조형적 표현으로 다룬 시기이다. “한지와 천에 먹과 채색이 뒤섞인다. 어떤 매재(媒材)에 구애됨 없는 자유로운 선택이다.[6]” “화가 안영나는 먹 대신 한국적 색채인 오방색을 사용하여 한국전통 발색에 도전하였다. 오방단색조의 화면을 단순하게 표현함으로써 강한 인상을 주며 붓글씨 획(劃)의 미묘한 변조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7]”
“한국화가 안영나 작업은 선이 굵다. 화면 전체의 짜임새에 더 역점을 둔다. 단순함 속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과, 미세 패턴들 속에 숨어 있는 큰 의미의 상생이 압권이다.[8]” “꽃 안에는 유혹과 생식, 투쟁이라는 자연의 법칙과 절정과 환희, 숭고의 인문적 가치가 담겨있다. 꽃의 기호와 상징으로 이 모든 이야기를 함축하고자 하였던 것이다.[9]” “꽃이라는 소재를 둘러싼 표현의 상투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가운데 사물이 주는 진리 구경(究竟)에 접근을 꾀한 안영나의 시각이 기존 수묵화의 관례에 의문을 던지는 실험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10]”
◇희망과 기대 생명감의 표출(2011~2023)
이전 새로운 것의 모색에서 그것을 다듬는 시기로 다음도약을 위한 준비단계이다. “안영나 미술가는 민화(Minhwa)안에 담겨있는 미적, 감성적인 엑기스를 느끼고 이를 토대로 자신의 조형 세계를 더욱 독창적으로 조형화시키는 데에 주력하여왔다.[11]” “활기찬 필선, 적극적인 구도와 리듬, 청초한 칼라 등은 그가 도래할 세상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저버리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12]”
5. 개인전·아트페어·미술관소장
개인전 주요 카탈로그 모음(1991~2022) |
△개인전(32회)=2023 갤러리 라메르(서울), 2022 세종아트갤러리(서울), 2021 노원아트갤러리(서울), 2018 인사아트스페이스(서울), 2017 가나아트스페이스(서울), 2014 정부서울청사 문화갤러리(서울), 2012, 2013 스페이스 이노(서울), 2010 인사아트센터(서울), 2009 현대백화점 갤러리H(서울무역점, 목동점), 2008 선화랑(서울), 2004 인사아트센터(서울), 2002 마니프-안영나전(서울), 2001 한국문화원초대(워싱턴 DC), 1999 공평아트센터(서울), 1997 가산 화랑(서울), 1995 서호 갤러리(서울), 1992 덕원 갤러리(서울), 1991 무심 갤러리(청주), 1991 예향 갤러리(서울).
△주요 해외전=2010~2011 칼슈르헤 아트페어(메세 드 칼슈르헤, 독일), 2010 베를리너 리스트(Muenze, 베를린), 2007, 2009 쥬리히 아트 페어(Kongresshaus, 쥬리히), 2009 New York Art Expo 2006(Javit Convention center, 뉴욕), 2004 사라예보 한국 작가 특별전-동양으로부터의 물결(사라예보 국립갤러리), 2000 뒤셀도르프 한국 미술전(시립미술관, 뒤셀도르프), 2000 스트라스부르크 아트페어(엑스포지션 드 스트라스부르크), 1999 리네 아트 페어(젠트 벨지움), 1997 로마 아트 페어(피에라 디 로마, 이태리), 리네 아트 페어(프랑드르 엑스포, 벨기에), 1994 한일현대미술교류전-대화하는 풍토(후바나시 시민갤러리, 일본)
△주요 국내전=2016 여수 국제 아트 페스티발(여수국제박람회장). 키아프 아트페어(코엑스), 2015 서울 아트쇼(코엑스). 평창비엔날레 주제전-생명의 약동(강원도알펜시아). 광주 현대미술전(광주비 엔날레전시장), 2006 움직이는 미술관(국립현대 미술관), 2005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특별전-지역작가전(청주), 2000 동양화 새천년-수묵화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서울시립미술관), 1999 서울화랑미술제 –아라리오 화랑(예술의 전당,서울), 1998 서울판화미술제(예술의전당), 1998 김복진미술제(예술의전당,청주), 1993 문인화 정신의 표출전(서울시립미술관), 1989 한국화-새로운 형상과 정신II(문예진흥원 미술회관,서울),
△미술관 소장=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서울고등법원, 춘천지방법원, 아라리오미술관, 서원대학교.
6. 안영나 화론(畵論)
서원대학교 교수연구실에서 안영나 작가. 사진=권동철(2023,2) |
나는 어릴 적부터 그림을 좋아하였고 덕성여중시절부터 사군자를 그려 한국화 붓에 대하여 이해하고 있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하며 조선 시대 겸재 정선, 표암 강세황, 추사 김정희, 우봉 조희룡에 대한 학습과 탐구 그리고 청전 이상범, 소정 변관식, 심산 노수현 등으로 이어지는 한국근대미술연구에 정진했다. 나의 40여년 한국화 외길은 문인화의 재해석과 확장에 따른 조형적 현대화라는 화업으로 선인들의 사의(寫意,Saui)정신이 바탕이 되고 있음이다. 1980년대 한국화의 정체성과 현대미술의 융합에 관한 시대담론을 관통해 오면서 80년대 중반 대학원논문으로 중국 청나라 초기, 수묵화(水墨畫,Ink Wash Painting)에 의한 간략한 표현, 형태의 단순화와 그에 따른 공간표현을 드러냈던 ‘八大山人 硏究(팔대산인 연구,1986)’로 석사학위 받았다. 새로운 형식과 방향, 다양한 시도를 펼친 산인의 예술세계를 통해 한국화의 새로운 조형지표를 발견해 낼 수 있으리란 기대가 논문배경이다.
나는 산수화가 매우 폭넓고 다양한 세계를 가진 언어라 생각한다. 8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단면-자연으로부터, 자연과 인간-삶에서, 삶에서-풍경, 꽃에서 풍경, 꽃에서-끝없는 도전, 꽃인가 꽃이 아닌가(Flower No Flower) 등의 작품명제 저변엔 나의 초자연우주섭리에 대한 해석이 배어있다. 중국 북방산수화 대가 형호(荊浩)가 소나무 사생을 위해 수만 본(本)을 한 것처럼 그러한 정신을 이어받아 모색과 실험을 하고자 했다. 아울러 남북조시대 와유산수(臥遊山水)의 종병(宗炳,375~443)이 말한 산수화가 자연계본질을 내포하고 있는 신비스러운 어떤 것이라면 다양한 표현은 가능해진다고 보았다.
동양화의 오랜 주제인 산, 물, 꽃, 바위 등의 표현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고 명상하며 붓을 들었던 선인들의 수행성(遂行性,Performativity)이 헤아려지기도 한다. 고대원시인들이 사슴, 들소, 물고기 등을 그렸던 것처럼 주술성과 사의성을 나만의 독특한 표현방법과 형, 색을 묘출하기도 하고 날카로운 선을 그려내기 위해 죽필(竹筆)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우연히 이루어진 먹의 흔적과 직감에 의해 이루어진 다양한 표현 또한 존중해 나가며, 먹의 번짐과 채색의 얼룩으로 이루어진 화면을 만들어 본다.
한국화의 꽃 작업은 생략하고 단순화하는 과정을 즐기는 표현이다. 마음 속 커다란 느낌이 화면과 일체화되도록 여러 가지 야생들풀과 줄기로 엮어 만든 큰 붓으로 자유롭게 휘둘러보고 비닐에 먹을 넣어 짜고 뿌리는 드립핑(Dipping)기법으로 한지의 자연미에 입각한 손 맛을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전통적인 동양화의 정신에 어울리면서도 현대적 감각이 있는 작업을 추구하는 나의 작업방향과 부합한다. 이러하듯 전통성과 상용(相容)할 수 있고, 동시대 삶속의 산수를 찾아가는 그곳에는 인간적인 생명력으로 충만 된 가장 한국적인 고유의 표현 언어가 배어있다. 하루 중 가장 진솔하고 순수한 시간이 있다면 그것은 그림 그리는 순간이다. [안영나 화론(Ahn Young Na Hwaron), 대담정리=권동철 미술칼럼니스트, 2023.3]
7. 외부링크
전시현장:인터뷰-한국화가 안영나‥한국화의 재해석 그 발자취의 흔적권동철의 갤러리-한국화가 안영나 울고 웃는 순간에 꽃의 핌
인터뷰-한국화가 안영나‥한국적 미의식 적극 발휘돼야
(화가열전)한국화가 안영나‥물처럼 흐르는 生의 이치
[1] 八大山人 硏究(팔대산인 연구), 安泳娜(안영나) 서울대학교 대학원 동양화과, 1986.[2] 박신의 미술평론가, 자연으로부터-일치와 불일치의 간극으로부터, 1991.[3] 삶의 기록 그 조형적 실현, 오병욱(吳秉郁) 미술평론가, 1995.[4] 쟝 뤽 살뤼모 미술평론가-베르소 아르 에 레트르 주간, 안영나의 ‘눈부심’, 1999.[5] 박영택 금호미술관 수석큐레이터, 마음과 융합된 자연, 1997.[6] 오광수 미술평론가, 꽃이자 동시에 꽃이 아닌(Flower No Flower), ‘꽃에서 사랑으로’,2004.[7] 그레그 메트칼프 미술평론가-메릴랜드대학 교수, 공간과 획의 균형, 2004.[8] 이재언 미술평론가, 존재론적 성찰에 의한 사의(寫意)정신, 2008.[9] 김백균 중앙대 예술대학교수, 꽃과 우주, 2010.[10] 윤진섭 미술평론가,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2010.[11] 장준석 미술평론가, 자유로움이 깃든 현대 한국의 회화, 2012.[12] 서성록 미술평론가, 시들지 않는 꽃,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