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연방대법관으로 임명되었다. 강경 보수 성향으로 분류됐으며 냉철하고도 논리적인 판결로 명성이 높았다.
그와 성향상 대척점에 있는 강경 진보 성향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과 사사건건 대립하며 논쟁을 벌이던 중에, 두 사람이 서로의 법 철학을 존중하게 되어 가장 막역한 친구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스칼리아 대법관과 긴즈버그 대법관은 각자의 가족까지 대동하고 함께 오페라 감상을 즐기러 다닐 정도였다.[1]
스칼리아 대법관이 2016년에 급서하고, 긴즈버그 대법관이 2020년에 그 뒤를 따르면서 두 사람의 우정은 역사가 되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유진 스칼리아 전 미국 노동부 장관을 비롯해 9명의 자녀를 두었고, 스칼리아 대법관의 장례는 워싱턴 D.C.의 성모 무염시태 국가성지 대성전(Basilica of the National Shrine of the Immaculate Conception)에서 그의 아들인 폴 스칼리아 신부 주례 하에 국장으로 진행되었다.
[1]피어스 모건과의 인터뷰 도중 오바마케어 위헌 여부 판결문을 두고 위헌 판결을 내린 4인과 위헌파였다가 합헌으로 포지션을 바꾼 로버츠 대법원장 사이 있었던 알력 얘기가 나왔을 때도 "아 이제 다 화해하고 로버츠 대법원장과는 베프인가요?"하는 질문에도 주저하지 않고 "대법원에서의 내 베프는 루스 베이드 긴즈버그에요"라고 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