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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9 07:01:57

미국 연방대법관

1. 개요2. 현직 연방대법원장 및 연방대법관
2.1. 존 로버츠(John G. Roberts) 대법원장2.2. 클래런스 토머스(Clarence Thomas) 대법관2.3. 새뮤얼 알리토(Samuel A. Alito) 대법관2.4. 소니아 소토마요르(Sonia Sotomayor) 대법관2.5. 엘레나 케이건(Elena Kagan) 대법관2.6. 닐 고서치(Neil M. Gorsuch) 대법관2.7. 브렛 캐버노(Brett M. Kavanaugh) 대법관2.8. 에이미 코니 배럿(Amy C. Barrett) 대법관2.9. 커탄지 브라운 잭슨(Ketanji B. Jackson) 대법관
3. 역대 연방대법원장4. 역대 연방대법관
4.1. 1900년대 이전4.2. 1900년대 ~ 1940년대 중반까지4.3. 1950년대 ~ 1970년대4.4. 1980년대 이후

1. 개요

미국 연방대법원의 연방대법관에 관한 문서.

2. 현직 연방대법원장 및 연방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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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대법원장
존 로버츠
(2005년 임명, 조지 W. 부시 대통령 지명)
연방대법관
클래런스 토머스
(1991년 임명, 조지 H. W. 부시 대통령 지명)
새뮤얼 알리토
(2006년 임명, 조지 W. 부시 대통령 지명)
소니아 소토마요르
(2009년 임명,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지명)
엘레나 케이건
(2010년 임명,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지명)
닐 고서치
(2017년 임명,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명)
브렛 캐버노
(2018년 임명,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명)
에이미 코니 배럿
(2020년 임명,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명)
커탄지 브라운 잭슨
(2022년 임명, 조 바이든 대통령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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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기준으로 현직 대법관들을 성향으로 분류하면, 보수 성향은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비롯해, 클래런스 토머스 / 새뮤얼 알리토 / 닐 고서치 / 브렛 캐버노 / 에이미 코니 배럿 이렇게 여섯 명, 진보 성향은 소니아 소토마요르 / 엘레나 케이건 / 커탄지 브라운 잭슨 이렇게 셋이다.

2.1. 존 로버츠(John G. Roberts) 대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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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지명으로 2005년에 임명되었다. 미국의 제17대 연방대법원장이자 2023년 현재 연방대법원장이다. 1955년생([age(1955-01-27)]세)으로 뉴욕 주 출신[1]이다. 꽤나 보수 성향이지만, 현직 대법관들 중에서 원체 보수 성향인 사람들이 많아서 로버츠는 그나마 덜 보수적 성향으로 분류된다. 다른 보수 성향 대법관에 비해서 더 부드럽고 협상에 더 적극적이기도 하다.[2]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임명되었음에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들어 보수 성향 대법관이 대거 임명됨에 따라 진보 성향 대법관들과 의견을 같이 하는 상황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또한, 본인이 잘못 결정된 판례를 뒤집고자 할 때는 확 뒤집기보다는 점진적으로 뒤집어나가는 걸 선호한다.[3] 이전의 판례를 존중하는 stare decisis를 최대한 따르려는 대법관으로, 이게 존중되지 않으면 보통법 체계의 안정성이 깨지게 된다고[4] 청문회에서 밝힌 바 있다. 어떻게 보면 정치적 보수가 아닌 말 그대로 과거 및 전통을 존중하는 보수주의적인 대법관이라고 볼 수 있겠다. 배스킨라빈스에서도 자신이 익숙한 초콜릿 칩 맛 아이스크림만 고수해서 먹을 정도로 자신이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는 걸 불편해했다고 친구가 밝힌 적도 있으니 뭐.(…) 초콜릿을 상당히 좋아한다고 한다. 초콜릿을 담아두는 그릇이 빌 때마다 채워두는 것이 대법원장 비서 임무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본래 은퇴 선언을 한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의 후임자로 지명될 예정되었으나, 청문회 중에 지병인 암을 앓고 있던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이 사망한 일이 벌어지면서 대법원장 자리가 공석이 되어버렸다. 이에 대법원장 자리부터 채우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한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로버츠를 대법관 대신 대법원장 임명안으로 바꾼 덕에 현재까지 대법원장이 될 수 있었던 것. 이후 오코너 대법관의 후임은 같은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새뮤얼 알리토인데, 그는 렌퀴스트 대법원장 사후 후임 인사에 하마평에 올랐던 인물이었다.

2.2. 클래런스 토머스(Clarence Thomas)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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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H. W. 부시 대통령의 지명으로 1991년에 임명되었다. 1948년생([age(1948-06-23)]세)으로 조지아 주 출신.[5] 현재 재임 중인 대법관들 중에서 최장수 재임 중인 대법관이자 흑인임에도 불구하고 강경 보수로 평가되는 인물.[6]

대법관 임명 과정 중에 스캔들(어니타 힐 성추문) 때문에 곤혹을 겪어서 꽤나 아슬아슬하게 통과된 대법관으로 남아있다.[7] 현재 대법관 중 유일하게 재판 연구관을 뽑을 때 비교적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 등 명문대가 아닌 로스쿨 출신들도 많이 뽑는 편이다.[8] 다만, 공화당 대통령이 지명한 판사 밑에서 일한 학생(즉, 보수적인 법 철학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만 로클럭으로 뽑기로 유명하다.

2.3. 새뮤얼 알리토(Samuel A. Alito)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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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지명으로 2006년에 임명되었다. 1950년생([age(1950-04-01)]세)으로 뉴저지 주 출신.[9] 대법관 중 가장 강경 보수로 평가되는 인물[10]. 판사로서의 지적 능력은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연방제3항소법원 판사 재직 당시 강한 자(정부 및 경찰)의 편을 적극적으로 들어준 패턴 때문에 청문회 때 문제가 되었다. 또한 성 차별주의자 및 인종 차별주의자들 동문 집단인 Concerned Alumni of Princeton[11]의 멤버였다는 게 밝혀져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 본인은 공화당 정부에 있는 직업에 지원을 했고, 멤버라는 걸 밝히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 당시엔 그렇게 했다고 했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그래서 그런지 역대 네 번째로 많은 반대 표가 나왔다.(58-42)

2.4. 소니아 소토마요르(Sonia Sotomayor)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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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지명으로 2009년에 임명되었다. 1954년생([age(1954-06-25)]세)으로 본인은 뉴욕 출신[12]이지만 부모님이 푸에르토리코 출신. 적극적 우대조치가 없었다면 자신은 여기에 없었을 거라면서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국민투표(referendum)로 적극적 우대조치를 금지시킨 표결을 무효화시켜야 한다고 올라온 소송(Schuette v. BAMN)에서 6:2로 압도적으로 밀렸지만, 강렬한 어조로 반대의견을 벤치에서 읽었다.[13] 인터뷰에 따르면, Schuette 케이스에 썼던 반대 의견은 앞서 피셔 대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Fisher v. University of Texas Austin) 재판 1 라운드에서 쓰기로 한 반대 의견을 여기서 썼다고 한다.[14] 본인에 따르면, 당시 소토마요르의 격렬한 반대 의견을 읽고 분위기가 너무 험악해지겠다 싶다고 생각한 다수파 대법관들이 결국 물러나서 협상한 게 저 결과였다고. 브라이어와 캐스팅 보트인 케네디가 협상을 주도했다고 한다.#

2024년 11월, 미국 대선 및 상하원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공화당의 승리가 점쳐지자, 민주당과 진보진영 일부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소토마요르 대법관이 70세가 넘는 고령인데다, 지병인 당뇨를 앓고 있어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후 자칫 건강에 큰 문제가 생긴다면, 그렇지 않아도 수적 열위에 있는 진보 대법관의 수가 더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트럼프 행정부 1기때, 긴즈버그 대법관의 사망으로 보수진영에 대법관 자리를 하나 내줘 4:5에서 3:6으로 보수 우위가 만들어졌고, 낙태권 등 첨예한 이슈에서 번번이 가로막힌 민주당으로서는, 연방대법관 수성에 필사적이다.

2.5. 엘레나 케이건(Elena Kagan)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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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지명으로 2010년에 임명되었다. 1960년생([age(1960-04-28)]세)으로 뉴욕 주 뉴욕 출신.[15]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더불어서 화합을 주도하는 대법관 중 하나라고 한다. 이렇기 때문에 케이건 대법관은 대체로 만장일치인 의견을 집필하곤 한다곤 하고, 다수 의견으로부터 집중을 분산시키거나 다수 의견을 약화시킬 수도 있는 보충 의견을 쓰는 걸 최대한 지양하는 편이기도 하다.

대법관들 중에서 위트 있는 의견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닥터 수스의 우화를 반대의견에 인용하기도 하였으며, 스파이더맨 로열티 관련 소송이었던 킴블 대 마블 엔터프라이즈(Kimble v. Marvel Enterprise) 다수의견에서도 스파이더맨 관련 노래를 인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만화책 덕후로 알려진 케이건의 덕력이 여기서 제대로 터져주었다.## 다수 의견 원문. 위트에 있어서는 스컬리아 대법관 못지 않다는 평.

또한, 세대 차이 때문에 새로운 기술이나 비디오 게임 등에 덜 익숙한 다른 대법관들과는 달리 이에 대한 이해도 뛰어난 편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주 비디오 게임 규제법 관련 사건이었던 Brown v. Entertainment Merchant Association 사건에서도 스컬리아 대법관이 "모탈 컴뱃이 뭥미"하는 동안에 케이건 대법관은 구술변론에서도 이 게임 얘기가 나왔을 적에 문제 없었다고 한다. '내 밑에서 일하는 로클럭 몇 명도 이런 게임 참 좋아한다'고 말해서 구술변론 중 분위기를 가볍게 만든 건 덤.

그리고 취임한 2010년 8월 7일부터 후술할 닐 고서치가 임명된 2017년 4월 29일까지 가장 나이가 적고 서열이 낮은 대법관이었기 때문에, 대법관 9명이서 같은 방을 쓰면서 일할 때 누군가 노크하면, 모두가 막내인 케이건을 쳐다보면서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투표 세는 것, 합의 내용 기록하는 것도 다 케이건 대법관 몫이었다.[16]

대법원 카페테리아에 프로즌 요거트(Frozen yogurt) 기기가 들어온 것도 케이건이 프로즌 요거트 덕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청문회 당시, 상원 의원들과 코미디 쇼(?)를 찍기도 하였다 카더라. 코미디 쇼 내용은 청문회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던 무렵, 상원의원 린지 그레이엄(Lindsay Graham)이 지난 크리스마스에 어디에 있었냐고 물어보았고, 유대인인 그녀는 “아시잖아요, 다른 유대인들처럼 중국집에 있었을 겁니다.” 대답하여 좌중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역시 유대계인 척 슈머 의원이 끼어들어 “다른 데는 연 곳이 없잖아요.”라고 덧붙인 건 덤. 이런 내용이 웃음을 자아낸 이유는 미국계 유대인들이 크리스마스에 중국 음식점을 많이 찾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링크 참조.

2.6. 닐 고서치(Neil M. Gorsuch)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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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명으로 2017년에 임명되었다. 1967년생([age(1967-08-29)]세)으로 콜로라도 주 덴버 출신.[17] 지명 과정은 상당히 드라마틱했다. 2016년 2월 13일(미 현지 시각)에 앤토닌 스컬리아 대법관이 갑자기 사망하여 대법관 자리에 공석이 생겼다. 당시 임기가 1년 남은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공석을 채우기 위해서 DC항소법원에서 19년간 판사로 재직한 (2013년부터는 최고 판사(Chief Judge)로 재직) 메릭 갈런드(Merrick Brian Garland)[18]를 차기 대법관으로 지명했으나, 공화당이 상원 다수를 장악한 상황에서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인 미치 매코널이 "오바마가 누굴 지명하던 간에 청문회도 없을 것이며, 투표도 없을 것이다. 2016년이 대통령 선거 해이기 때문에 다음 대통령이 뽑도록 해야 됨!"이라고 뻐기면서 무산되었다.[19]

결국 앤토닌 스컬리아 대법관의 빈 자리는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스컬리아의 공석을 채울 연방대법관을 지명하게 되었다. 토머스 하디먼, 닐 고서치, 윌리엄 프라이어 셋 중에서 대통령의 지명은 고서치에게 갔지만, 민주당 상원 의원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치게 되었다. 공화당은 결국 민주당 필리버스터를 무효화하기 위해 핵 옵션[20]을 동원하면서까지 지명 통과된 비교적 드라마틱한 인준 과정을 거쳤다. 꽤나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대법관이어서 그런지, 민주당에서 반대가 꽤 격렬[21]했다. 찬성 54표[22], 반대 45표로 클래런스 토머스에 이어서 두 번째로 많은 반대 표를 받은 대법관이 되었다. 새뮤얼 알리토가 세 번째로 많은 반대 표를 받은 대법관으로 내려앉은(?) 건 덤. 그리고 뒤를 이은 브렛 캐버노 대법관이 반대 48표[23]로 토머스 대법관[24]과 동률이 됨에 따라 고서치는 세 번째, 알리토는 네 번째로 내려앉았다.

다만, 트럼프와 기대와는 무색하게 2020년 6월 보스톡 대 클레이턴 카운티(Bostock v. Clayton County) 사건에서는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같이 진보 성향의 대법관들의 편에 서서 성 지향성성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차별 반대에 손을 들어주었다. 또한 선주민 부족들의 자치권 및 독립성(Native American tribal sovereignty)에 대체적으로 적대적인 편인 다른 보수 성향의 대법관과는 달리 일관적으로 선주민 부족의 편을 들어주는 대법관이다.[25] 고서치가 지명되었을 때 고서치의 이념에 상관 없이 선주민 부족들이 지명 지지 의사를 표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대다수의 대법관이 선주민이 많이 살지 않는 지역[26]에서 일하다가 올라온 반면에 고서치는 콜로라도 주에서 판사를 했기 때문에 선주민들이 연루된 사건을 자주 다룰 기회가 많았던 영향이 컸다. 특히 선주민 부족의 독립성에 관련 사건에서는 반대의견, 보충의견, 다수의견 여부에 상관 없이 선주민들이 겪어야 했던 참상 및 역사를 다루기 때문에 (예: Washington Department of Licensing v. Cougar Den Inc. 사건 보충의견, McGirt v. Oklahoma 사건 다수의견, Oklahoma v. Castro-Huerta 사건 반대의견, Lac du Flambeau Band of Lake Superior Chippewa Indians v. Coughlin 사건 1인 반대의견, Haaland v. Brackeen 사건 보충의견, Arizona v. Navajo Nation 사건 반대의견) 미국 선주민 역사를 공부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

2.7. 브렛 캐버노(Brett M. Kavanaugh)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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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명으로 2018년에 임명되었다. 1965년생([age(1965-02-12)]세)으로 워싱턴 D.C. 출신.[27] 이 사람 역시 임명 과정이 순탄치많은 않았다.# 청문회 과정에서 조지 W. 부시 정권 시절 이메일 해킹과 관련하여 미 의회 앞에서 위증을 했다는 혐의와 고등학교 시절 집단 성폭행을 했다는 주장이 있었지만##2, 캐버노의 집단 성폭력을 폭로한 여성 3명 모두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고, 목격자도 없었다. 여기에 민주당과 공화당의 제프 플레이크 상원 의원이 요청한 FBI의 조사도 기간과 범위의 한계가 있기는 했지만, 성폭행 증거가 나오지 않았고, 끝내 50:48로 상원의 인준을 받는 데 성공했다.[28] 그러나 인준 이후에는 존 로버츠 대법원장 및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과 함께 온건보수 성향의 대법관으로 평가되며 대법원의 캐스팅보트라는 평가를 받는다.

2.8. 에이미 코니 배럿(Amy C. Barrett)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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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명으로 2020년에 임명되었다. 1972년생([age(1972-01-28)]세)으로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 출신.[29] 위의 고서치와 캐버노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세 번째 대법관이며, 역시나 임명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발단은 역대 미 연방대법관 중에서 가장 강경한 진보 성향으로 여겨지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2020년 9월 18일 췌장암으로 타계하면서 시작되었다. 문제는 당시가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기간이었고, 긴즈버그 대법관은 손녀에게 전한 유언에서 "대통령 선거 전까지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지만, 대통령이 그녀와 대척점에 선 트럼프라는 것! 아무튼 그녀의 별세 소식에 트럼프와 공화당은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며 청문회 절차 진행 및 인준을 강행했다. 2016년 막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메릭 갈런드를 후보자로 지명한 상황이 재현된 셈.[30]

결국 2020년 10월 26일 오후 8시, 에이미 코니 배럿에 대한 인준안이 찬성 52표, 반대 48표로 상원 본회의를 간신히 통과했다. 반대 표를 던진 메인 주수전 콜린스를 제외한 공화당 상원 의원 52인 전원의 찬성으로 가결.[31] 민주당 상원 의원들은 전원 인준에 반대하였다. 대법관 임명이 야당의 찬성표를 전혀 얻지 못한 채로 인준된 것은 151년 만에 최초다.# 자세한 내용은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변수 문서를 참고했으면 한다.[32]

근본주의 성향의 가톨릭교도로 전통적인 보수주의자이며, 남편(제시 배럿) 역시 검사이다. 7남매 중 장녀이며, 본인도 아이티에서 입양한 아이 2명과 자녀 5명까지 모두 7남매를 키우고 있다. 자녀 중 막내는 다운증후군이었으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출산했다. 전통적인 가부장제적 가정상과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를 지지한다고 알려져 있다. 청문회 중 민주당 상원 의원이 질문한 핵심 사항에는 모두 답변을 피하거나 원론적인 답만 냈다. 단면으로 동성애자, 양성애자의 인권에 대한 질문에 성적향("Sexual Preference")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면서 성적 지향을 부정했다.[33] 반면 공화당 의원들은 찬양 일색이어서 양당의 성향이 극과 극으로 갈라진 상황을 보여주었다.

2.9. 커탄지 브라운 잭슨(Ketanji B. Jackson)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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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대통령 지명으로 2022년에 임명되었다. 1970년생([age(1970-09-14)]세)으로 워싱턴 D.C. 태생이나 성장기를 마이애미에서 보냈다. 2022년 찬성 53표, 반대 47표로 역대 세 번째로 많은 반대 표로 상원 본회의를 간신히 통과해 임명됐다. 이로써 233년만에 미국의 흑인 여성 대법관이 탄생했다. #

3. 역대 연방대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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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역대 연방대법관

4.1. 1900년대 이전


* 존 마셜 할런 ,(러더퍼드 B. 헤이스 지명),
38대 연방대법관. '분리하되 평등하게'를 내세워 흑백을 분리한 인종 차별 판결을 내린 악명 높은 플레시 대 퍼거슨(Plessy v. Ferguson) 사건에서 유일하게 반대 표를 던져서 '위대한 반대자(The Great Dissenter)라는 별명을 가진 대법관이었다. 입법자의 의도에 충실하게 헌법을 해석해야 한다는 사법 자제론을 주장하면서도 민권에 대한 의견은 진보적이었다. 그의 손자도 연방대법관을 지냈는데, 이름도 존 마셜 할런(John Marshall Harlan)으로 같다.

4.2. 1900년대 ~ 1940년대 중반까지







4.3. 1950년대 ~ 1970년대





4.4. 1980년대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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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대법원장 지명 당시에는 메릴랜드에 거주하고 있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따라서 공식 기록에 남는 홈 스테이트(home state)는 메릴랜드.[2] 반면, 클래런스 토머스 현 대법관과 스컬리아 前 대법관은 이념적 순수성을 더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협상을 하지 않으려 든다. 협상을 해서 자신이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차선의 결과를 얻으려 했던 윌리엄 브레넌 대법관과는 대조적이다.[3] 스컬리아는 이걸 보고 가짜 사법소극주의(faux judicial restraint)라고 비꼰 바 있다.[4] "jolt to the legal system"라는 표현을 썼다.(4분 35초 전후에)[5] 대법관 지명 당시에도 조지아에 살았으며, 따라서 홈 스테이트(home state)는 조지아이다.[6] 흑인에 대한 대표적인 편견 중 하나로 인종 차별 반대에 앞장서는 흑인들을 보면서 다른 이슈에서도 매우 진보적일 거라는 생각이 있는데, 인종 차별에 대한 부분을 제외하곤 보수적인 성향의 흑인들도 많다.[7] 52대 48로 지명 통과. 그 다음은 커탄지 잭슨으로, 53대 47로 통과되었다. 그 다음은 닐 고서치 대법관으로, 54 대 45로 통과되었다. 그 다음은 새뮤얼 알리토 대법관으로 58대 42이다. 이전에는 가장 아슬아슬하게 인준받은 대법관이라 서술되어 있었으나, 이젠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지명한 브렛 캐버노가 역시 성추문 때문 50 대 48로 겨우겨우 통과되었다.[8] 예일 법대를 졸업했지만, "흑인이어서 혜택 받고 졸업했겠지"라는 차별을 받았다. 예일대 로스쿨 졸업장에 담뱃갑에 붙어 있는 15센트 가격표를 붙여 지하실에 쳐 박았을 정도였다고 하니 명문대 외 다양한 학교 출신의 법학도들을 뽑는 이유가 짐작이 간다. 더하여 이 경험 탓에 어퍼머티브 액션에도 대단히 적대적이다.[9] 대법관 지명 당시에도 뉴저지에 살았으며, 따라서 홈 스테이트(home state)는 뉴저지이다.[10] 그의 판결 내용만 보면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 보다도 더 보수적이다.[11] 지금은 해체되었지만, 해체되기 전까진 프린스턴 측에서도 골칫거리로 여겼다고 한다.[12] 대법관 지명 당시에도 뉴욕 주에 살았으며, 따라서 홈 스테이트(home state)는 뉴욕.[13] 적극적 우대조치 반대 표결의 무효화에 찬성한 것은 소토마요로와 긴즈버그 2명뿐이었다. 진보적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알려진 브라이어도 보통 적극적 우대조치에 호의적인 입장이지만, 이건 민중의 뜻이기 때문에 존중되어야 한다는 입장에 섰다. 케이건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송무차관으로 참여한 경력이 있어서 심리에 참여하지 않았다.[14] 피셔 라운드 1은 좀 더 엄밀한(rigorous)한 심사를 적용해서 재심리하라는 의견을 내고 연방항소법원으로 보내는 것으로 일단락지었다. 사실 재심리가 났을 뿐, 피셔 대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의 경우도 본래는 5-3으로 적극적 우대조치 정책이 위헌 판결 났을 거라고 했다. 보수성향 4명+케네디 vs 긴즈버그, 브라이어, 소토마요르의 구도였다. 케이건은 법무차관으로 일한 경력이 있으므로 심리에 참여 불가.[15] 다만 대법관 임명 당시에는 매사추세츠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공식 기록에 남는 홈 스테이트(home state)는 매사추세츠이다.[16] 여담으로, 1994년 8월부터 2006년 1월까지는 브라이어 대법관이 11년이나, 이후 케이건 대법관 임명 전까지는 새뮤얼 알리토 대법관이 막내 노릇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나라나 직장이든 막내가 제일 힘든 건 마찬가지….[17] 대법관 지명 당시에도 콜로라도에 살았으며, 따라서 홈 스테이트(home state)는 콜로라도.[18] 조 바이든 집권 후 법무장관으로 기용된다.[19] 매코널 원내대표는 4년 뒤 긴즈버그 대법관이 사망하자 정반대 입장을 취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5주 전 임명한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을 인준했다[20] 연방판사 지명 토론을 끝내고 지명 찬반 투표로 넘어가기 위해선 상원의원 100명 중 과반수가 아닌 60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2013년 당시 상원 다수당이었던 민주당이 연방 항소법원 판사 지명 통과를 위해서 이걸 썼고, 2017년에는 소수당이 된 민주당의 필리버스터를 씹고 고서치 지명 찬반 투표로 넘어가기 위해서 공화당이 썼다.[21]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은 인디애나조 도널리, 노스다코타하이디 하이트캠프, 웨스트버지니아조 맨친 3명이었다. 이들의 지역구는 공화당 초강세 지역인데다 이 셋은 2018년에 재선이 걸려 있어 유권자의 분노를 사지 않기 위해 찬성표를 던졌다.[22] 존 매케인을 제외한 공화당 의원 51명 전원 및 상술한 민주당 의원 3명. 매케인은 당시 뇌종양 투병 중이었던 탓에 지역구인 애리조나로 내려가 요양 중이었다. 결국 1년이 조금 지난 뒤에 사망.[23] 50-48. 원래는 51-49, 즉 반대 49표였으나, 모종의 이유로 48표가 되었다. 그 이유는 후술할 브렛 캐버노 대법관에 대한 설명 참조. 토머스 대법관은 찬성 52표를 얻어, 찬성률로 따지면 캐버노가 단연 최저.[24] 52-48. 찬성률은 토마스 대법관이 조금 더 높다.[25] 선주민 부족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있어서는 철저하게 일관적이다 보니, 선주민 부족이 연루된 사건에서 5-4이고 선주민 부족이 패소한 판결이 나왔을 때는 고서치 및 진보 성향 대법관 셋(소토마요르, 케이건, 브라운 잭슨)이 같은 편에 서는 경우가 매우 빈번하다. 반대의견 집필 또한 선주민 법과 역사에 제일 정통한 고서치 대법관이 십중팔구 담당하는 편.[26] 대체로 미국 북동부를 관할하는 항소법원에서 일하다가 지명되었기 때문이다. 선주민 권리에 호의적이기로 잘 알려진 소토마요르 대법관도 대법관이 되고 나서 선주민 역사와 법 등을 공부하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27] 다만 대법관 임명 당시에는 메릴랜드에 거주하고 있었고, 따라서 공식 기록에 남는 홈 스테이트(home state)는 메릴랜드.[28] 공화당 상원 의원 51명 중 딸의 결혼식 문제로 불참한 몬태나스티브 데인스, 기권 표를 던진 알래스카리사 머카우스키 의원(청문 종료 절차(cloture) 표결에는 반대 표를 던졌다. 본 인준표결에도 반대 표를 던지려 했으나, 전술한 데인스 의원이 불참함에 따라 인준 부결은 막고자 기권 표를 대신 던졌다. cloture 표결은 51-49로 통과되었으며, 머카우스키를 제외한 공화당 50인 전원과 민주당 조 맨친 의원이 찬성하고, 맨친을 뺀 민주당 48인 전원과 머카우스키가 반대했다.)을 제외한 49인에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민주당 맨친 의원(웨스트버지니아는 아주 유명한 공화당의 텃밭이다. 트럼프가 20%p 넘는 큰 격차로 승리한 지역. 우리나라로 치면 TK에서 민주당 인사가 개인기로 당선된 꼴이다. 맨친 의원은 당시 재선이 걸려 있어 친 트럼프 유권자들의 분노를 사지 않기 위해 찬성표를 던졌다. 마찬가지로 공화당 텃밭인 노스다코타의 하이디 하이트캠프 의원도 2018년에 재선이 걸려 있었는데, 캐버노 인준에 반대표를 던진 탓에 결국 낙선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그런데 몬태나의 다른 상원의원인 존 테스터는 반대를 던지고도 생환했다.)이 찬성했으며, 맨친을 제외한 민주당 48명 전원은 반대.##2[29] 다만 대법관 임명 당시에는 인디애나에 거주하고 있었다. 따라서 공식 기록에 남는 홈 스테이트(home state)는 인디애나.[30] 이 과정에서 공화당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가 2016년과는 정반대의 입장을 보여 미국 주요 언론들로부터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31] 초기에 반대 의사를 밝혔던 리사 머카우스키 의원은 결국 찬성으로 돌아섰다.[32] 여담으로 지명을 받았던 당시 백악관 앞에서 거리두기도 무시한 채 화려하게 임명 축하연을 여는 바람에 대통령 내외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진 판정을 받게 되었다.[33] 조 바이든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도 과거에 해당 용어를 사용을 한 적이 있음으로 호모포비아로 단정짓기는 성급하다. 하지만 논란이 계속되자 결국 공식 사과했다.[34] 이게 왜 기행이냐면, 휴회 임명이 되었기 때문에 상원에서 인준을 못 받으면 금방 짤릴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속으로 인종차별은 반대했지만 남부 민주당원의 지지가 필요한 걸 잘 알고 있었던 얼 워런은 정식으로 임명 동의안이 상원을 통과하기 전까진 굳게 함구하고 있었던 것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행보였던 것.[35] 10-14로 부결되었지만, 재미있게도 러틀리지의 연방대법원장 지명안에 지지표를 보낸 건 오히려 민주공화당 출신 상원의원 9명이었다. 러틀리지는 연방당 소속이었지만 연방당 상원 15명 중 딱 1명만이 찬성표를 던졌다. 제이 조약을 반대한 것 때문에 같은 당 소속 상원의원들에게 제대로 찍혀버리고 만 것이다.[36] Roger Brooke Taney. 테이니라고 발음할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발음은 터니라고 한다.[37] 이사람의 평생 소원이 연방대법원장이었다. 대통령은 태프트의 부인이 태프트에게 바라는 것이었다고. 태프트 본인도 자신은 대통령보다는 법관 체질인 걸 알고 있었다.[38] 2021년 현재까지 휴즈는 대통령 선거를 위해서 대법관 자리를 사임한 유일한 대법관으로 남아 있다.[39] 실제로 태프트는 은퇴 한 달 뒤에 사망하였다.[40] 공화당 소속인데 진보적이란 게 의아하겠지만 주지사 시절 보편적 건강보험과 인디언, 아시아 차별 금지를 지지하는 등 진보적인 행보를 보였으며 대법원장이 된 뒤에도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재판이라던가 미란다 재판 등에서 진보적인 의견을 상당수 작성했다.[41] 서열에선 대법원장이 무조건 제일 위이기 때문에 자신이 다수에 있으면 집필자 지정권은 대법원장이 갖게 된다.[42] 의견을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대법관이 있을 경우엔 어느 대법관에게도 집필할 권한을 두 번 주지 않았고, 이 원칙도 자기 자신에게 칼같이 적용했다고 한다. 의견 집필하는데 시간을 질질 끌었던 해리 블랙먼 대법관도 렌퀴스트 아래서는 마감 기한에 맞춰서 집필 끝내야 했다고 한다.[43] 보안을 위해서 내부 메일 시스템을 쓴다고 한다. 합의 과정과 의견 집필은 발표 이전까지 철저한 비밀에 부쳐진다. 로클럭이 발표 이전에 의견에 대해 미리 불었다가는 사실상 법 커리어에 종지부를 찍는 수준의 징계가 내려질 정도이다.[44] 대법관으로 있다가 대법원장으로 올라갔다.[45] 21세기 들어 초임 대법관의 연령이 젊어지고 있지만 대개 40대 후반에 지명되는 게 빠른 수준이라 앞으로도 이 기록이 깨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46] 대법관 중 가장 늦게 들어온 대법관. 합의 때 문 열기, 합의 내용 기록, 투표 기록, 티/커피 준비 등 잡일(…)을 해야 한다.[47] 혹은 알리토 대법관이 2006년 3월 1일 이후에 대법원에 합류했더라면.[48] 반면, 뉴딜을 합헌 판결 내리려 했던 리버럴한 성향의 대법관 셋(벤저민 카도조, 루이스 브랜다이스, 할런 피스키 스톤)은 "The Three Musketeers"라고 불렸다고 한다.[49] 동료 대법관인 피어스 버틀러와 윌리스 밴데반터 또한 반유대주의자로, 연방대법원에 유대인 너무 많이 임명하지 말라고 대통령에게 서한까지 보내기까지 했다. 단, 이 둘과 맥레이놀즈의 차이는 전자의 경우는 본인들의 반유대주의를 겉으로 나타내려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50]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작전을 짤 때 정확한 시각을 트래킹할 필요가 있어서 군인들도 손목시계를 차기 시작한 걸 계기로 성별 가리지 않고 손목시계를 착용하는 문화가 정착하였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여성적인 걸로 여겨졌다고.[51] 나이가 많은 대법관 한 명당 대통령이 공석 여부에 상관 없이 대법관을 최대 6명까지 추가 임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 즉, 자신이 임명한 대법관을 더 앉혀서라도 뉴딜 정책을 밀어붙이려고 한 것이다.[52] 사실 이게 통과가 된다면, 공화당과 민주당 양쪽에서 자기 입맛에 맞는 법원을 만들기 위해 멋대로 판사 수를 늘리거나 줄이는 게 허용되는 전례를 만들게 되기 때문에 민주당에서도 이건 너무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53] 미국 격언인 "A stitch in time saves nine"을 살짝 바꾼 말이다. 미리 한 번 꼬매면 나중에 아홉 번 꼬맬 필요가 없다는 맥락의 격언으로 문제가 생기기 전에 미리 막는 게 낫다는 뜻이다. 합헌 여부부터 의심되는 저 법안이 통과되기 전에 딱 맞춰서 친뉴딜 성향의 판결을 내놓았으니 "9명의 대법관을 구한" 스위치라고 보여진 것이다.[54] 실제로 권리장전을 쓰여진 그대로("literal")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블랙을 "엄격한 해석주의(strict constructionist)"라고 분류하는 경우도 있다. 보수적 법 해석의 상징인 Originalism과 strict constructionism의 차이는 분명하다. 예를 들어 앤토닌 스컬리아 전 대법관은 자신은 originalist이지 strict constructionist는 아니라고 밝혔었다. 같은 '법에 적혀진 대로', '원래 의도했던 대로'라고 해도 원래 헌법을 애당초 보수적으로 해석하느냐 진보적으로 해석하느냐가 차이라고 볼 수도 있다.[55] 후에, 특히 대법원이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사건을 다룰 때 이 과거를 정리하느라 고생이 심했다.[56] 공부를 기가 막히게 잘했다. 하버드 로스쿨에서 루이스 브랜다이스 대법관 이후 역대 최고의 성적으로 졸업했다.[57] 휘트먼 대학 졸업 후 하버드 로스쿨에 합격했으나 돈이 없었기에 일하면서 다닐 수 있는 컬럼비아 대학교 로스쿨로 진학했다. 기차 표를 살 돈이 없어서 워싱턴 주에서 뉴욕까지 기차에서 양들을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갔다. 뉴욕에 도착해선 동전 몇 개밖에 없어서 프래터니티(대학 친목조직) 형의 집에서 자야 했다.[58] 그러나 그리즈월드 대 코네티컷(Griswold v. Connecticut)에서 그는 결혼의 존엄성과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Marriage is a coming together for better or for worse, hopefully enduring, and intimate to the degree of being sacred.”[59] 더글러스, 프랭크퍼터, 잭슨, 블랙의 인생을 노아 펠드먼의 Scorpions이 흥미롭게 다룬다.[60] 사건명은 텍사스 대 존슨(Texas v. Johnson)[61]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편에 자주 서곤 했던 스티븐스 대법관도 성조기 훼손 처벌 조항에 있어서는 일관적으로 합헌을 주장해 왔다.[62] 해당 사건명은 미국 대 아이크먼(United States v. Eichman). 텍사스 대 존슨 사건과 똑같은 라인업 5-4로 위헌판결이 났다.[63] 대체로 같은 편이었던 워런 대법원장과 브레넌 대법관이 대척점에 있었던 몇 안 되는 사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스튜어트 및 브레넌 대법관을 비롯한 6명의 대법관은 자코벨리스의 편, 워런 대법원장을 비롯한 3명의 대법관은 오하이오주 편을 들었다.[64] 이와 비슷한 이유로 도널드 트럼프에게 대법관 지명권을 주지 않기 위해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은퇴를 미뤘었다. 다만 존 폴 스티븐스는 은퇴 이후에도 정정했을 정도로 건강했기 때문에 스티븐스의 전략이 먹혀들어갔다. 스티븐스 대법관은 90세에 은퇴하고도 9년이나 더 살은 반면에 긴즈버그는 이미 2009년에도 암 수술을 두 번 받았을 정도로 안 좋았다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었던 것. 그래서 진보진영으로부터 긴즈버그는 은퇴하라는 압박을 특히 오바마 재임 기간에 많이 받은 반면에 스티븐스는 이 쪽에서는 자유로웠던 편이었다. 긴즈버그는 결국 트럼프의 임기가 끝나기 몇 달 전에 세상을 떠나서 트럼프에게 지명권을 주어버려 가뜩이나 보수적인 연방대법원이 더 보수화가 되는 일을 낳고 말았다. 2022년 6월에 결국 로 대 웨이드 판결이 폐기되는 사태까지 이르게 되자 일이 이렇게까지 커진 거에는 긴즈버그 대법관에게 책임이 있다는 이 나올 정도였다.[65] 이 중 연방대법관으로서 같이 일한 대법원장은 버거, 렌퀴스트, 로버츠 이렇게 셋이다. 60년 중 연방대법관으로 일한 기간은 1975년부터 2010년까지 35년간이다.[66] 정작 본인은 당시에 Chevron이 그렇게 큰 획을 그을 줄은 전혀 몰랐다고 하버드 로스쿨에 방문했을 때 말했었다.[67] 텍사스 대 존슨 사건 구술변론에서도 존슨 측의 변호사가 나왔을 때도 화가 나는 걸 숨기기 힘들어했다고 한다. 본인이 2차 세계대전 베테랑이었던 경험이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있다.[68] 미국 연방대법원 문서 맨 위의 사진이 연방대법원 청사이다. 청사 건물과 관련해서는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문서의 2.3.번째 문단을 참조.[69] 그는 아주 솔직하게 학벌을 중시한다고 말했다: "By and large, I’m going to be picking from the law schools that basically are the hardest to get into. They admit the best and the brightest, and they may not teach very well, but you can’t make a sow’s ear out of a silk purse. If they come in the best and the brightest, they’re probably going to leave the best and the brightest, OK?” 그러나, 사실 학벌은 대법관이 되기 전, 하버드 로스쿨 학장이었던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이 제일 많이 보는 것 같다. 재임 후 2015년까지 케이건이 임용한 24명의 재판 연구관 중 1명 빼고 모두 하버드, 예일 혹은 스탠포드 로스쿨 출신이었다. 옛날에 호러스 그레이 대법관과 올리버 웬들 홈스 대법관은 오로지 하버드 로스쿨 출신만 재판 연구관으로 선발했었다.[70] 대체로 드러지 리포트 같은 보수언론에서 나오는 말이다.[71] 케네디가 작성한 판결문의 마지막 문단은 요즈음 미국에서 결혼 서약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고 한다.#[77][72] 이러한 이유로 일부 종교 관련 사건에서는 진보 성향 내에서도 긴즈버그&소토마요르 vs 브라이어&케이건의 구도가 형성되기도 했다. 그 예가 Trinity Lutheran Church v. Comer 사건과 American Legion v. American Humanist Association 사건이다.[73] 물론 실질적인 최고령자는 위에 나온 존 폴 스티븐스 대법관. 90세에 은퇴했으니 말이다.[74] 다만 대법관 임명 당시에는 매사추세츠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공식 기록에 남는 홈 스테이트(home state)는 매사추세츠이다.[75] 다수: 케네디, 로버츠, 토머스, 브라이어, 알리토. 반대: 스컬리아, 긴즈버그, 소토마요르, 케이건. 굵은 글씨로 쓰여진 대법관은 의견 집필자이다. 수정 4조 관련 사건에서는 로버츠 대법원장-브라이어 대법관-알리토 대법관 콤보(+ 가끔씩 토머스나 케네디가 끼기도 한다)가 심심찮게 보이는 편이다.[76] 긴즈버그가 은퇴하지 않고 사망하여 결국 트럼프에게 임명권이 넘어갔던 영향이 크다고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