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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21:31:46

알버트 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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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알버트 피시
Albert Fish
파일:x9w93pfj1wy71.jpg
본명 해밀턴 하워드 피시
Hamilton Howard Fish
이명 웨스터리아의 늑대인간(Werewolf of Wysteria)
브루클린 흡혈귀(Brooklyn Vampire)
달빛 미치광이(Moon Maniac)
회색 남자(Gray Man)
부기맨(Boogey Man)
출생 1870년 5월 19일
미국 워싱턴 D.C.
사망 1936년 1월 16일 (향년 65세)
미국 뉴욕 주 오시닝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65cm, 59kg
범죄 정보
유형 연쇄살인, 유괴, 식인
사상자 최소 3명
범행 기간 1924년 ~ 1932년[1]
체포 1934년 12월 13일
처벌 사형(전기의자형)

1. 개요2. 생애3. 살인 수법4. 그레이스 사건5. 체포6. 희생자들
6.1. 살해된 것이 확인된 피해자6.2. 의심되는 피해자
7. 재판8. 사형 선고9. 사형 집행10. 편지 공개 요청 거부11. 여담12.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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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I like children, they are tasty."[2]
"난 애들이 좋아, 맛있거든."
"한 개인이 이러한 모든 성적 이상증세를 보유했다는 기록은 법학이나, 의학 역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 알버트 피시의 정신감정을 담당한 프레드릭 워댐 박사의 말.

미국연쇄살인범.

미국인들에게 가장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연쇄살인마이며[3] 미국인들뿐만 아니라 심리학자, 프로파일러들도 앨버트 피시의 사례를 연쇄살인범 사례 중에서도 가장 잔인한 사례로 꼽으며 앨버트 피시를 미국 역사상 희대의 살인마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동 연쇄 유괴, 강간, 살인, 식인이라는 인간으로서 저지를 수 있는 가장 극악무도한 범죄를 넘어서 그 이상의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2. 생애

해밀턴 하워드 피시[4]는 1870년 5월 19일 워싱턴 D.C.에서 아버지 랜들 피시(Randall Fish)와 어머니 엘런 피시(Ellen Fish) 사이에서 태어났다. 해밀턴이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무려 75세였으며 어머니는 32세였지만 아이큐가 80대로 경계선 지능에 해당했다. 피시 가족은 정신병력이 있었는데 삼촌은 조증을 앓고 있었고, 큰형인 월터(Walter)는 정신병원에 보내졌으며, 누나인 애니(Annie)는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 해밀턴이 5살 때 아버지 랜들은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어머니 엘런은 막내인 해밀턴을 세인트 존 고아원(Saint John's Orphanage)으로 보냈다.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무자비한 구타를 당하거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위행위할 것을 강요당하는 등 심각한 학대를 당했는데, 언젠가부터 피시는 학대를 당하면서 성적인 쾌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고아원에서 2~3년을 지낸 후 다시 어머니에게로 돌아가 생활하게 되는데 얼마 뒤 체리나무에서 떨어져 머리에 심한 상처를 입었으며 이후 현기증과 두통을 경험했다. 이 때의 사고가 그의 이상 성격을 형성하게 된 원인이라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5][6] 12살 때 전보 소년을 하던 한 청년과 사귀게 되었다. 문제는 이 청년이 심각한 변태여서 피시에게 유롤라그니아(Urolagnia), 코프로페이지아(Coprophagia)[7]라는 대소변을 섭취하는 행위를 가르쳤다. 이때부터 피시는 동성애적 성향을 지니게 되었다.

앨버트 피시는 낮은 수준의 공교육을 받았고 페인트공이나 잡역부로 공사현장에서 일했다. 1896년에 메리 호프만(Mary Hoffman)이라는 19세의 여자와 결혼해 6명의 자녀를 얻었지만, 피시의 아내는 자기 집에서 하숙하던 잡역부와 바람이 나고 말았다. 피시는 아내에게 그 사내와의 관계를 정리할 것을 요구했지만, 아내는 오히려 자기가 낳은 아이들이 자야 할 매트리스까지 가지고 사라졌다. 그 일 이후 피시는 이상한 행동을 했는데, 달빛 아래에서 알몸으로 "난 그리스도다!"라고 말하거나 생고기를 씹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아내 때문에 미쳤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는 이미 미쳐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후 자학 행위는 점점 심해졌고 여자들에게 익명으로 성희롱 편지를 발송하거나, 어린아이에게 강간을 시도하다가 실패하여 체포되어 교도소에 투옥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악마에게도 최소한의 인간성은 남아 있었는지, 후술될 그의 잔악 행위들을 자식들에게 하지는 않았다. 특히 해밀턴의 자식들은 '상냥한' 아버지였다고 법정에서 증언할 정도였다. 다만 자신을 때려 달라고 부탁한 적은 있다.

3. 살인 수법

알버트 피시가 그토록 악명을 떨치게 된 이유는 전술했듯이 아동을 유괴하고 끔찍한 방법으로 살해한 후 잡아먹는 미친 짓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가장 큰 무기는 선량하게 생긴 외모였다. 그의 속내는 끔찍한 연쇄살인마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선량하고 온화한 노인이었기 때문에 피해 아동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훗날 체포된 후 본인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아이들의 살이 맛있다며 아이들을 잡아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아이들에게 대바늘을 몸에 쑤셔넣는 행동을 한 뒤 신체를 분해하여 살들을 스튜로 끓여 먹거나 오븐에 구워 먹었으며, 그러고서 그 음식의 맛을 그 어떤 고기도 이만큼 달콤하고 맛있을 수가 없다고 말해서 조사관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자궁 같은 생식기도 먹었지만 남자아이의 성기는 질겨서 도저히 먹을 수 없어서 변기에 던져 넣었다고 하며, 살려 두고 먹을 부위만을 해체한 뒤 죽게 내버려 뒀다.

피시는 피해자인 어린 아이가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상황에서도 개의치 않고 눈을 파내고 성기를 절단하고 배를 갈라 내장을 파헤친다거나, 피해자가 살아있는 상태로 적출한 창자를 자신의 성기에 감싼 뒤 죽어가는 피해자가 보는 앞에서 자위 행위를 했으며, 치아로 음부를 물어 찢거나 견디다 못해 사망한 피해자의 시신을 성폭행하는 등,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짓을 자행했다.

4. 그레이스 사건

연쇄살인범으로서 피시의 악명을 드높인 또 한 가지 이유는 그의 체포 과정이 드라마틱했기 때문이다. 한 편의 범죄 영화를 방불케 하는 이야기였다.

수많은 아이들을 죽이고 먹어치우는 생활을 하던 피시는 어느 날 신문에 광고를 실었는데 '프랭크 하워드'(Frank Howard)라는 가명을 쓰고 자신을 농장주라 하며 거짓 구인 광고를 낸 다음, 광고에 응답하는 청년을 사로잡아 죽일 생각이었다. 당시 피시는 노인이었지만, 숙련된 살인 경험으로 건장한 청년도 간단히 무력화할 자신이 있었다고 한다.

이에 '에드워드 버드'(Edward Budd)라는 18세의 젊은이가 광고를 보고 피쉬에게 연락을 취했고, 피시는 에드워드를 만나기 위해 그의 집으로 갔다. 추후 진술에 따르면 이미 이 때 청년을 잡아 묶어 놓고 거세하여 천천히 피를 흘리면서 고통스럽게 죽어가게 할 구상을 해 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집에서 에드워드의 여동생인 10살의 '그레이스 버드'(Grace Budd)를 만난 후 목표물을 그레이스로 바꿨다.[8] 피시는 그레이스의 어머니에게 자신의 조카가 이 근처에서 생일파티를 열고 있는데 그레이스를 데려가고 싶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시원찮아했지만 아버지는 상류층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기회라며 피시가 그레이스를 데려가는 것을 허락해 주었는데, 이것이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이자 딸을 잃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결국 그레이스 또한 피시 때문에 희생된 이전 아이들처럼 끔찍한 고문을 당한 뒤 사망했고, 그레이스의 시신을 요리해 먹은 피시는 자취를 감추었다. 경찰에 연락하고 나서야 버드 가족들은 피시가 쓴 이름이 가명이고 신문 광고에 나온 농장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안타깝게도 그레이스의 생사는 피시가 잡힌 뒤에 그가 다 털어놓고 나서야 밝혀졌다.

당시 퇴직을 1년 앞둔 형사 윌리엄 F. 킹(William F. King)은 퇴직까지 반납하며 이 사건에 6년간 매달렸지만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고 결국 마지막 수단으로 수사를 종결했다는 가짜 기사를 신문에 실었다. 사실 이건 범인이 제 손으로 단서를 내놓게 하기 위해 형사들이 만들어낸 함정이었고 이 수법에 걸려든 피시는 안심했는지 버드 가족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냈는데 자신을 합리화하는 동시에 버드 일가를 조롱하는 내용이었다. 편지의 내용 번역본. 내용이 끔찍하니 혐오주의.

편지에 1894년 홍콩에서의 식인 행위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는데 당시 경찰은 이를 병적인 상상의 결과물로 분석했다. 당시 중국에 주재했던 미국 외교관 WW Rockhill의 보고서에 의하면 중국 동북부 지역에서 가뭄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지만 홍콩과는 거리가 멀고 가뭄에 대한 소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당시 홍콩 관련 뉴스는 영국의 신문사들을 통해 기록되었는데 British Newspaper Archive를 통해 확인해보면 그해 7월 전염병으로 다수가 사망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만 식인행위에 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Heimer, Mel (1971). Cannibal; The Case Of Albert Fish. Lyle Stuart.

편지는 식인에 대한 내용과 '내가 네 딸을 먹은 범인이다'라고 말하는 내용을 담았는데 지금이야 이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앨버트 피시가 어떤 인간이고 저 편지를 왜 보냈는지 알고 있지만 당시에는 사람들과 형사들은 저 편지의 심히 자극적인 내용을 쉽사리 믿기 힘들었고 정말 범인이 보낸 편지가 아니라 악질적인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킹은 저 편지가 정말 범인이 보낸 편지이고 믿고 싶지 않지만, 범인은 그레이스에게 정말로 식인이라는 악행을 저질렀다고 생각했다. 지금껏 벌어진 사건들의 편지와 필체도 비슷했고 편지의 세부적인 내용 중에도 범인이나 당시 현장에 없었던 사람이 알기 힘든 내용들이 많았다. 킹은 이 편지의 발신인이 범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수사를 계속했다.

몇 년 만에 추적할 만한 단서가 잡혔지만 추적은 쉽지 않았다. 피시도 바보가 아니었기 때문에 편지에 주소를 남기지 않았지만 편지 봉투는 추적이 가능했는데 범인이 보냈다고 추정되는 이 편지 봉투는 뉴욕 택시 기사 노조의 편지 봉투였다. 처음에는 당연히 뉴욕 택시 기사 노조의 회원들이 용의선상에 올랐지만 인상착의나 필체나 범인과 일치하는 인물이 없었다. 이에 킹은 '누군가가 편지 봉투를 밖으로 가지고 나갔고 이를 범인이 주워서 쓴 것'이라는 추리를 한 후 편지 봉투와 편지지를 사적으로 이용한 분이 계시냐고 물었다. 다행히 용기 있게 건물 관리인이 자신이 집으로 가져가 이 봉투와 편지지를 사용했다고 고백했다.

관리인이 마지막으로 편지 봉투와 편지지를 가져간 곳은 낡은 하숙집이었는데 이곳으로 가서 목격된 범인의 인상착의를 물어보자 주인은 이틀 전 그런 인상을 가진 '앨버트 피시'가 두 달 동안 하숙집에서 묵다가 나갔다고 말했다. 이때 킹과 형사들은 피시의 생계 수단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는데 피시는 아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킹은 우체국에 연락을 했고 직원들의 협조로 우체국에서 아들이 피시에게 보내는 편지와 돈을 가로채는 데 성공했다. 이 말은 피시는 아직 어딘가로 달아나지 않았고 이 근처에 머물고 있다는 이야기였으며 아들이 보내준 돈이 없어진 피시는 다시 이 값싼 하숙집으로 돌아올 확률이 높아진다는 이야기였다. 킹은 피시가 다시 돌아오면 꼭 전화를 달라고 말했는데 한 동안 전화가 없어서 전전긍긍하다가 마침내 피시가 왔다는 하숙집 주인의 전화를 받고는 형사들과 함께 하숙집으로 달려나간다.

하숙집을 박차고 들어간 킹은 피시와 마주쳤는데 침착하게 앨버트 피시가 맞냐고 그에게 물어봤다. 앨버트 피시는 맞다고 대답했는데 현재 그가 무슨 상황에 처했는지 본능적으로 빠르게 알아채고 주머니에 있던 흉기로 저항하려고 했지만, 킹과 형사들에게 금세 제압당했다. 킹은 그를 체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넌 이제 잡혔어."
"I've got you now."

파일:external/40.media.tumblr.com/tumblr_njw48slQzF1tepew7o1_500.jpg

체포된 앨버트 피시와 윌리엄 F. 킹(William F. King) 형사.

5. 체포

체포된 피시는 경찰 조사에서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자신의 모든 범행을 털어놓았는데, 이 때의 자백 내용 중 일부는 검열되어 알려졌음에도 대단히 충격적이고 혐오스러웠다. 피시의 자백으로 인해 다른 미국 지역의 미제 사건이나 음란편지들의 발송자가 누구인지 밝혀졌다. 그리고 피시는 단순히 살인 이외에 상상을 초월하는 자학으로도 수많은 관계자들을 경악케 했는데 그 수법으로는 요도에 장미 줄기 삽입하기, 삶은 대변 섭취하기, 항문을 불로 지지기, 항문에 밀대 삽입하기, 사타구니에 대바늘 29개 박아넣기 등이 있었다. 심지어 자식들에게 못이 달린 주걱으로 자신을 때려서 피가 나게 해달라고 하거나 손톱 밑에 날카로운 물건을 넣어 달라는 등의 부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비정상적인 자학을 정상인이라면 믿기 어려웠고 형사나 프레드릭 워댐, 심리상담가들 또한 피시가 처벌을 피하기 위해 심신장애인으로 위장하려는 속임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9] 특히 사타구니에 대바늘을 박아넣었다는 이야기는 처음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엑스레이를 찍은 결과, 정말로 20여개의 대바늘이 그의 골반 안쪽에 박혀 있었다. 그래서 관계자들이 이를 보고는 전부 경악했다고 한다. 웬만한 영화나 매체에 나오는 가공의 사이코패스들보다 훨씬 지독하고 괴기스러운 괴물이 현실에 나타난 셈이다.

6. 희생자들

앨버트 피시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은 "약 100명의 아이들을 죽이고 식인을 했다"고 하였지만, 정작 심리상담가들은 그가 17명 정도의 아이들을 살해하거나 상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피시의 증언 가운데 상당 부분은 허언증으로 추정된다.

수사 과정에서 알버트 피시가 살해한 그레이스를 비롯해 다른 피해자들을 살해한 장소와 그들의 시신을 묻어둔 곳이 진술되었다. 수사를 통해 피시에 의해 피살된 것이 명백하게 확인된 피해자는 단 3명. 이 외에도 당시 실종된 피해자들 중에 마지막에 피시에게 넘겨지고 이후 생사를 아무도 알 수 없게 된 것이 확실하게 확인된 자들이 6명이었다. 그러나 관련 조사를 끝내기 전 피시의 사형이 집행됨으로써 이 6명은 살해여부 및 생사조차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6.1. 살해된 것이 확인된 피해자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경우에는 그레이스처럼 피시가 죽였고 어떻게 처리했는지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증거로 증명됐을 때만 확인됐는데 워낙 시간이 오래 흐른 뒤라 인정된 사례가 얼마 되지 않는다. 원래는 그레이스 버드 사건만 유죄를 확신하였으나 피시가 순순히 여죄를 진술하면서 나머지 8건 중 두 건이 추가로 확인되었다.

6.2. 의심되는 피해자

피시는 검찰의 조사에서 이들을 살해한 사실도 인정했으며 범행의 구체적 정황도 진술하였다. 따라서 검사도 이들을 살해한 것까지 기소하려고 하였으나 결국 시신이 발견되거나 사망했다는 확고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기소하지 못했다. 종신형 선고 등을 통해 추가조사를 할 기회를 갖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배심원들은 3명의 살해에 대한 죄만으로 사형을 평결하였다.

이들이 실종된 후, 살인범인 피시 본인을 제외하면 이들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7. 재판

피시는 자신에게 넘겨진 뒤 생사불명 상태인 사람들을 죽인 걸 전부 다 인정했으나 검찰은 그레이스 버드처럼 살해된 게 확실하게 증명되는 3명에 대해서만 살인죄로 기소했다. 보통 정신병자인 척하는 연쇄살인마들이 많지만 피시는 진짜로 정신병자가 확실했고 담당의사들도 진지하게 소견서를 작성해 피쉬를 정신병원에 넣어야 한다고 말했으며 변호사도 정신병을 근거로 그의 무죄를 주장했다.

8. 사형 선고

그러나 아무리 미쳤다고는 하지만 교활한 방법을 통해 희생자를 꼬드기거나 수사망을 피하고 자기 몸을 지킬 줄은 알았던 인물이라 완벽한 정신병자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 때문에 당시 판사와 배심원들은 유죄 판결 유무를 놓고 혼란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는데 결국 정상인은 아니지만 자기 책임능력은 있다고 판단해서 유죄 판결이 내려짐과 동시에 사형을 선고했다. 사형 방법은 당시 재판이 이뤄진 주에서 사형집행을 위해 쓰던 전기의자형. 그런데 앨버트 피시는 그런 사형 판결이 내려지자 오히려 흥분하면서 기뻐했고 그런 사형 판결을 내려준 판사에게 감사했다.
오오. 내게 마지막까지 새로운 고통을 맛볼 수 있게 해 주신 판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로서 나는 행복하게 죽는 몇 안 되는 사람이 되는군요. 아~ 벌써 그날이 기다려지기까지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형 선고 받자마자 판사에게 한 피시의 감사인사
"전기의자에 앉게 되는 것이 내 인생 최고의 스릴이 될 것이다(Going to the electric chair will be the supreme thrill of my life)."
- 사형을 선고받은 후 피시의 발언.

법정에서 피시는 내내 체념한 듯이 행동했고 재판의 결과에도 관심이 없었다.[10] 다만 그는 잠깐 죽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는데 "그 누구도 이런 삶을 또 겪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나를 붙잡아서 되돌려준 사람이 지옥 제일의 악마라면 세상의 어떤 악마도 사실은 천사일지도 모른다, 신이 나에게 시키신 일이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판결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한 배심원은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이 미쳤다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었지만, 우리 앞에 있는 '그것'을 살려둬선 안 된다는 공포감이 사형을 선고하게 만들었다."
사실 앨버트 피시는 사형 판결에는 불만을 표했지만 집행 방식이 전기의자형이라는 말을 듣고 자신을 짜릿하게 할 수 있는 경험이라면서 기대감을 보였다. 죽을 때 고통을 받으며 죽는 것이 가장 멋진 일이라고 주장했다고.

이후 피시는 싱싱 교도소(Sing Sing Prison)에 이송되었는데 변호사와의 면담에서 "자기는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그것은 자기가 시도해 보지 못했던 유일한 스릴(It will be the only thrill I have not tried)"이라며 다시 한번 전기의자가 자신에게 선사해 줄 짜릿한 경험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었다고 한다.

9. 사형 집행

1936년 1월 16일 피시에게 전기의자형이 집행되었다. 하지만 피시가 사형 당일에 한 행위도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는데, 마지막 식사로 주어진 스테이크를 다 먹은 피시는 전기의자형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제 발로 씩씩하게 스스로 나와서는, 교도관들과 함께 별다른 부축도 없이 사형 집행장에 당당하게 걸어서 도착하였다.[11] 피시는 오히려 전기의자형이 기대된다며 사형 집행을 준비하는 교도관들을 직접 세심하게 도와주고 전극을 붙이는 집행을 담당하는 교도관들과 함께 스스로 몸에 전극을 붙이는 등,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도 비정상적이고 기괴한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고 하며 다른 죄수들은 눈을 가리는데 피시는 눈을 가리는 것을 거부했다. 교도관들이 유언을 묻자 "난 내가 여기 왜 있는지도 모르겠다(I don't even know why I'm here)."고 마지막까지 이해할 수 없는 짤막한 대꾸를 남겼다.

변태적인 성향으로 악명이 높은 피시답게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형을 피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조용히 전기의자형을 받았다. 전기의자형이 시작된지 3분 후, 피시가 사망하면서 시체는 본인이 수감된 교도소의 재소자 묘지에 매장되었다. 그렇게 미국 역사상 가장 잔혹한 연쇄살인마의 전대미문의 살인극도 종료되었다.

10. 편지 공개 요청 거부

피시는 그의 변호사에게 언론 등에 공개해 달라면서 자신의 마지막 편지를 전했다. 이때 기자들이 그 편지를 공개해 줄 수 있냐고 물었지만 피시의 변호사는 이 편지를 절대로 공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기자가 그 이유를 물어보자 변호사는 다음과 같은 답변을 남겼다.
"자신이 태어나서 이렇게 음탕하고 더러운 내용의 문체는 도저히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후 변호사가 죽었으나 피시의 편지는 아직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변호사 본인은 보관 중이라고 말했으나 그가 죽은 뒤에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걸 봤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시가 죽은 뒤 피시의 가족들에게 넘겨버렸거나 몰래 버린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혐오스러운 내용들만 잔뜩 있는 편지를 오랫동안 가지고 있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11. 여담

흔히 '앨버트 피시'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진짜 이름은 '해밀턴 하워드 피시'이다. 앨버트는 그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사망한 셋째 형의 이름이었다. 앨버트 피시로 알려진 이유는 해밀턴이 자신의 이름을 좋아하지 않아서 죽은 형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인 것처럼 사용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해밀턴의 형 앨버트는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고인모독 중 가장 심하다고도 볼 수 있는 걸 당한 셈.

어찌나 악명이 높았던 자인지 사형 집행에 대해서 여러 소문이 퍼질대로 퍼졌다. 일례로 전기의자에 앉는 소감을 묻자 '말로만 듣던 전기의자에 앉게 되어 더 할수 없는 스릴과 희열을 느낀다'고 대답하거나, 유언을 묻자 자신은 최상의 스릴을 즐길 준비가 되었으니 멍청한 소리 하지말고 빨리 시작하라며 재촉하곤 미친듯이 날뛰고 웃으면서 죽었다는 이야기 등이 있다. 허나 강한 전류가 인체에 흐르면 안면을 비롯한 전신의 근육들이 제멋대로 뒤틀리기 때문에 이는 현실적으로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또 스스로 몸에 찌른 이십여 개의 금속 바늘 때문에 회로 합선이 일어나 전기 충격 한번 더 주고 나서야 죽었다는 이야기도 떠돌았지만, 실제로 그는 대부분의 다른 사형수와 마찬가지로 앉은 지 3분 안에 바로 사망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 전대미문의 살인자가 저지른 살인 행각의 이야기는 Newgrounds와 유튜브에 Secrets of Wysteria(공포 주의)라는 곡으로 올라와 있다.[12] Geometry Dash의 한 게이머이자 크리에이터인 TriAxis가 이 곡으로 Wysteria라는 맵을 만들었는데 재현도가 매우 높다. # ##

양성애자다. 20대부터 어린 소년들에게 접근하여 성폭행을 저질렀으며 30대에는 남성 애인과 교제를 하였다고 한다.#[13]

12. 미디어


[1] 공식적으로 인정된 범행 기준으로 하면 1928년.[2] 이 문장을 구글 검색창에 입력하기만 해도, 이 사람에 대한 검색결과가 나올 정도로 유명하다.[3] 다만 대중매체에서의 모습이나 사회적 영향력 자체는 흉악범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테드 번디잭 더 리퍼, 조디악 킬러, 찰스 맨슨, 에드워드 게인이 더 큰 편이다.[4] 앨버트 피시는 일종의 예명, 또는 네크로님(Necronym)이라 하는 죽은 사람의 이름을 계승하는 방법으로 자신을 자칭한 것이다. 본인은 해밀턴이라는 이름을 굉장히 싫어해서 어머니에게 들었던 사산된 형 앨버트의 이름을 자칭한 것.[5] 특히 어린아이는 성인에 비해 두개골이 충격을 완화시켜 주는 정도가 1/8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이 추락으로 전두엽 피질이 손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6] 의학계에서는 전두엽 피질이 손상되면 공격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때문에 단순 마조히스트에서 잔혹한 연쇄살인범이 되었을지도 모른다.[7] 각각 소변을 마시는 행위, 대변요리해 먹는(예: 대변을 쪄서 먹는다.) 행위를 가리킨다.[8] 목표물이었던 에드워드가 막상 실물을 보니 너무 건장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9] 프레드릭 워댐은 자신의 저서 "the Show of Violence"에서 감방에서 피시와의 첫 만남을 기술하며 피시가 정말로 "온순하고, 온화하며, 자애롭고, 점잖아 보이는 점"(meek, gentle, benevolent and polite)에 경악했다고 밝혔으며, 피시에 대해 "자신의 아이를 맡겨야 한다면, 충분히 맡길 수 있을 법한 사람"(If you wanted someone to entrust your children to, he would be the one you would choose)이라고도 묘사했다.[10]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혐의를 부인하고 재판을 방해하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11] 미국은 사형수 본인에게 사형 집행 일정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 일반적으로, 그 당시에는 마지막 식사를 본인이 선택할 수 있게 했었다.(지금은 식사 선택이 폐지되었다.) 당연하지만 사형수들은 덜덜 떨다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공포로 다리에 힘이 풀려 교도관들이 부축해 사형장으로 이송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죽기 싫어서 집행 직전까지 난동을 부리다가 교도관들에게 얻어맞고 끌려 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12] 영상 중간마다 짤막하게 나오는 모자 쓴 남자의 검은 실루엣이 바로 앨버트 피시다.[13] 다만 범행으로 살해된 사람들 대다수가 아이였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단순 소아성애자일 가능성이 높다.